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숲속의 바이올린

이리저리 나는 새, 하늘이 좁다. 공중에서 한번 뒤척임으로 지상의 여러 도시를 장악한다. 바라보는 이를 단박에 움푹 추락시키는 새. 지저귀는 소리에 장단을 맞추며 겨우내 시무룩하던 지붕도 어깨를 들썩인다. 굴뚝에서 연기가 뭉클뭉클 피어날수록 더욱 적막한 동네. 인공과 자연이 맞닿은 어느 한적한 마을 어귀를 지나 산으로 오른다.

작년에 핀 자잘한 꽃들이 군데군데 미라처럼 그대로 굳어 있다. 가시덤불에서 툭툭툭 뛰어나오는 참새들. 쫄쫄쫄 흐르다 말고 얕은 여울목에 사로잡힌 물이 웅얼웅얼 거품 물며 항의하고 있다. 저 적폐들을 얼른 치우고 길을 틔워달라는 거다. 경사진 비탈에 구르다 만 바위가 엉거주춤 앉아 있다. 그 옆에 고사리 새순이 돋아난다. 양의 이빨을 닮아 양치식물로 분류되는 것들. 저들의 일생에서 사춘기쯤에 해당될 듯 또그르르 말리는 게 바이올린의 스크롤 같다. 골짜기는 너럭바위 피아노를 비롯해 여러 관현악기를 보유한 교향악단이다. 이참에 쉬어가며 이런 생각 하나 해볼까.

사람 얼굴만 한 오동나무 낙엽 사이에 바이올린 하나 있다. 왜 거기에 떨어졌냐고 묻지는 말자. 소리를 좌우하는 여러 요소들-제작연도, 만든 이, 제품명, 재질- 따위를 분석하는 것으로 두툼한 논문 하나 쓸 수 있겠지만 이 또한 생략하자. 떨어진다는 것. 저 난해한 물리 현상에 대해서는 더 많은 말이 필요하겠지만 거론하지 말자. 그저 바이올린 몸통에 대한 생각만 연주하자.

무릇 바이올린은 잘록한 몸매에 낭창한 활대 하나로 구성된다. 저 나무통에서 영혼을 다독이는 멜로디, 피로한 여흥의 뒤끝을 담당하는 선율이 나올 줄 뉘 알았으랴. 저 싱거운 나무토막에 일생을 걸었다가 외나무다리 같은 무대에서 굴러떨어진 이 얼마이랴.

화장실 변기가 미술관에 전시되듯, 썩어가는 낙엽 곁에 푹신하게 누운 바이올린. 박수받는 곳만 골라 다니다 이 애꿎은 자리에서 어리둥절한 바이올린, 소리통은 다람쥐의 놀이터이더니 이내 새카맣게 몰려든 개미들의 차지다. 그간 켜켜이 쌓인 간지럼을 시원하게 긁으며 홀가분하게 변신하는 숲속의 바이올린. 범접 못할 차원의 바람의 음계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예술이나 악보, 지휘자나 환호 따위는 깡그리 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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