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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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그들은 자기 죄를 알지 못하나이다 2024년 12월3일 밤 갑작스레 불법적인 계엄이 선포되어 온 국민이 불안에 떨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국회를 지켜준 사람들,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선 의인들, 발 빠르게 대처한 국회의원들, 불합리한 명령에 미온한 반응을 보인 군인들 덕분에 계엄은 해제됐다. 밤새 창밖의 헬기 소리를 들으며, 서슴없이 ‘처단’을 운운하는 포고령을 보면서 나는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저번 주에 송고한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글은 출간되지 않겠구나, 어쩌면 이전에 썼던 글이 문제가 되어서 변고가 생길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숨죽여 뉴스만 보았다. 용기를 내어 국회로 달려나가준 이들에게 오래도록 죄스러웠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분들께 빚을 졌다며,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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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노벨 문학상 수상의 여파로 한강 작가의 소설에 관해 글을 쓰거나 이야기할 일이 생겼다. 담당할 한 권을 택해야 할 때마다 나는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창비, 2014)를 골랐다. 그것이 한강 작가의 가장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초등학생이던 때, 우연히 <80년 5월, 푸른 눈의 목격자>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이는 5·18 민주화운동이 진행 중이던 당시의 현장을 촬영한 독일 기자 힌츠페터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영상물이다. 왜 사람을 쏘아 죽이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로 총에 맞아 입이 사라진 시신을 봤다. 그날 이후로 며칠을, 풀숲에 숨어 떨다가 공수부대에 발각되어 끌려가는 악몽에 시달렸다. 열 살에 처음 마주한 압도적인 잔혹을 어른이 되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어쨌거나 오랜 시간 관심을 쏟아온 만큼 그 동력으로 잘 쓸 수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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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얼어붙지 않는 한강과 한국문학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벅찬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동료 작가들, 문학계 종사자들, 선후배 연구자들, 학생들과 서로 축하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한강 작가님이 이룬 쾌거이지만, 모두가 제 일처럼 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매일매일이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의 축제 현장 같다. 왜 이제 와서, 뒤늦게 한강 작가의 책을 읽냐는 비판도 있다고 한다. 다소 황당한 지적이다. 모든 나라의 작가와 작품을 알 수 없듯이, 한국 독자도 한국의 작가를 모를 수 있다. 구태여 수상작을 궁금해하는 예비 독자들을 배척할 필요는 없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고 나면 세계 각국의 독자들이 선정된 작가와 그의 작품을 궁금해하면서 따라 읽곤 한다. 미리 알고 읽어두었다면 즐겁고 뿌듯한 일이고, 읽어보지 않았다면 새로운 경험을 기대하면 될 일이다. 읽어 본 사람과 읽어볼 사람들이 각자의 다채로운 감상을 즐겁게 나누면 그만이다. 한 사람이라도 한국문학에 관심을 가져준다면, 한강 작가님의 치열하고도 섬세한 문장들을 차곡차곡 읽어 이어간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벅찬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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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기약과 기대 추석 연휴에는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 다녀왔다. 머무는 지역에서 멀고 일이 많아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반갑고 애틋했다. 모처럼 가족끼리 모여 앉아 밥을 먹고 산책을 했다. 그때마다 나는 두 분이 가보지 못했지만 분명 좋아할 만한 곳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흥미로운 과학 전시를 관람했는데 아빠도 직접 보면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될 거라고. 윌밍턴 바다에는 하얗고 동그란 조개껍질들이 많은데 반질반질한 표면을 손끝으로 문지르면 나까지 덩달아 간지러워진다고, 엄마가 분명 좋아할 거라고 한참을 떠들었다. 아직 가보지 않은 많은 곳에 겪어보지 못한 행복들이 마구마구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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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화내는 여자, 싸우는 여자, 사랑하는 여자 밤길을 조심해야 한다. 묻지마 범죄를 당할 수도 있으니까. 화장실을 이용할 때 조심해야 한다. 몰카에 찍힐 수도 있으니까. 연애상대를 신중히 골라야 한다. 이별을 고했다가 살해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한다는 사실이 티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페미’로 낙인찍혀 조리돌림당할지도 모르니까. 여성혐오 범죄의 빈도를 과장하는 것 같은가. 최근 한 달로 아주 좁게 범위를 제한해도 지금 조심해야 한다고 열거한 일들의 실제 사례를 기사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다. 이제는 조심해야 할 요소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SNS에 올린 사진이나 증명사진이 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불법 합성물(딥페이크) 성범죄에 악용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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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지연의 미학 뉴욕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다녀왔다.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이 광활한 미술관에는 세계 각국의 유물과 예술품이 모여 있는데 그 수만 약 300만점에 달한다고 한다. 로댕의 조각, 이집트 벽화, 고흐와 한국 화가 박수근의 그림 등 다양한 예술작품을 접할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함께 미술관을 관람한 친구가 물었다. “오늘 본 것 중에 어떤 게 가장 예술적이었어?” 나는 평소에도 좋아했던 모네의 루앙 대성당 그림이라고 대답하려 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그림을 마주했을 때, 그 아우라에 잠식되었던 순간이 무척이나 황홀했기 때문이다. 햇빛에 따라 달라지는 성당의 모습을 그린 연작이지만, 결국엔 빛의 일렁임만 화폭에 남은 것 같은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더 예술적이라 느꼈던 순간을 말하게 되었다. 휴대폰 카메라로 1초면 찍을 수 있을 조각상 앞에 이젤을 놓고서 불편해 보이는 간이의자에 몸을 욱여넣은 채 조각상을 따라 그리고 있던 화가들. 인내심을 가지고 아주 천천히, 잡히지 않을 예술의 진실 같은 것을 구하면서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고 있던 사람들. 그들이 가장 예술적이었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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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죽음을 업은 삶 지난달에 발간된 시집 <천국어 사전>(타이피스트, 2024)의 추천사를 썼다. 저자인 조성래 시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채로, 시집 파일을 넘겨받았다. 어느 봄날, 나는 지하철을 기다리며 종이에 인쇄된 그의 시편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의 고향이기도 한 ‘창원’이 제목인 시가 눈에 띄었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창원으로 갔다// 이제 두 달도 더 못 산다는 어머니/ 연명 치료 거부 신청서에 서명하러 갔다.” 시에는 ‘어머니’가 누워 계신 병원의 구체적인 이름도 등장하는데, 그곳은 공교롭게도 내가 태어난 병원이었다. 엄마가 종종 내게 들려주었던 환한 이야기의 배경, 거기서 화자의 어머니는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울다가 또 잠시 뒤에는 “자기가 죽을 것을 까맣게 모르는 사람처럼” 웃어 보인다. 죽어갈 어머니와 그의 예견된 죽음을 생각하며 울고 있는 사람, 축복처럼 불어든 생에 놀라 울음을 터뜨렸을 사람과 나를 낳고 기진한 엄마가 한 공간에 어우러져 있는 듯했다. 슬프고도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그렇게 생각해 버려도 되나 싶어서 죄스러웠다. 결국 나는 그 자리에 우뚝 서서 타야 할 지하철 몇 대를 그대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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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공간에 머무는 기억 학교 축제에 가수 ‘뉴진스’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들뜬 마음으로 졸업한 동기들을 불러 모았다. 나는 학부를 졸업한 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녔고, 이제는 여기에서 강의를 한다. 그러니까 스무 살부터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같은 캠퍼스를 수없이 오간 셈이다. 친구들은 이렇게 오랜 시간 한 장소에 매여 사는 나를 ‘지박령’이라고 놀리곤 한다. 오랜만에 학교를 찾은 동기들은 이곳저곳을 둘러보고는 새삼 옛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나는 머무르는 사람이라 그런 걸까? 익숙한 교정을 거닐 때 딱히 새로운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저 얇은 반죽이 겹겹이 쌓인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캠퍼스의 공간마다 여러 기억이 층층이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원래 뭐가 있었더라?” 묻는 친구에게 “계단이 있었는데 에스컬레이터가 생겼지”라고 큰 감흥 없이 대답해 주었다. “여기서 우리 밤샘 공부하고 컵라면 먹었잖아, 여기가 우리 넷이 처음 후배들 밥 사준 곳이고.” 내가 덤덤히 일러줄 때마다 친구들은 감탄했다. “어떻게 다 기억해?” “나야 뭐, 항상 여기에 있으니까.” 건조하게 말했지만, 아마 나는 동기들이 떠난 공간에 남은 기억을 홀로 가꾸고 있었나 보다. 우리가 아는 벤치와 식당, 굴곡진 길과 언덕의 벚나무를 마주할 때마다 추억을 되새기면서 지워지지 않도록 덧칠했던 것 같다. 이 장소에 머무는 기억과 한 번도 헤어진 적이 없기 때문에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 같은 게 없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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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글쓰기는 포롱포롱 이번주에는 담당하는 교양 강의에 특강 강사로 한 시인을 모셨다. 강의를 시작하며 시인은 한 편의 에세이를 보여주었다. 그러고는 “누가 쓴 글 같아요?”라고 물었다. 사유도 문장도 아름다운 완성도 높은 글이었다. 나는 우리가 함께 아는 여러 작가를 떠올렸다. 친하다고 말했던 그 소설가의 글인가? 아니면 수필집을 펴낸 그 시인의 것일까? 학생들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이 글은 코미디언의 글입니다.” 나를 비롯해 강당에 앉은 이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방송에서 보아왔던 유쾌한 이미지와 사뭇 다른 진중함에 놀란 것이기도 하겠지만, 다들 그 글을 전문 작가가 썼다고 추측했기 때문일 테다. 시인은 누구나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여러 작품을 보여주었다. 유명한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와 파블로 피카소가 쓴 시도 함께 보여주었는데, 붓질하듯 시어를 덧칠해 내는 독특한 작법이 생경하고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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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이분되지 않을 자유 한국의 대표 시인으로 손꼽히는 정지용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다. 설령 그를 잘 모른다 해도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향수’의 구절만큼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몇년 전, 정지용의 문학을 주제로 하여 학위논문을 쓰던 때에는 시인이 멀게만 느껴졌었다. 현대시의 아버지로 불리는 정지용은 다작하였고, 일본어와 한자, 영어로도 글을 썼기에 연구자의 입장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그때의 나는 다수의 작품과 방대한 양의 선행 연구를 읽어내며 문학사적 의미를 유추하는 데 급급했다. 오랜 시간 그를 연구하다 보니, 최근에는 관점이 달라졌다. 글 뒤에 살아 숨 쉬는 한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정지용은 문학이 예술성과 자율성, 정치성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던 염결한 시인임에도, 일제강점기에는 검열과 탄압을 견뎌야 했으며 해방 이후에는 소위 ‘빨갱이’로 몰려 곤욕을 치러야 했다.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광복을 맞이하여 이제는 자유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기뻐하던 그가 해방 이후에도 사상 검열에 시달리며 추구하고자 했던 문학과 멀어져야만 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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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존재와 부재의 증명 이달 초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화 <로기완>(2024)은 살기 위해 벨기에로 밀입국한 탈북인 ‘기완’의 삶을 들여다보는 조해진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각색한 영화다. 영화가 보여주는 사랑으로의 성급한 귀결은 배우들의 호연으로도 잘 봉합되지 않는 듯해 아쉬웠지만, 기완이 낯선 땅에서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해 분투하는 장면은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는 자신이 북한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생의 굵직한 사건들을 진술한다. 이때 어머니의 시신을 병원에 넘기고 돈을 마련했던 비극적인 사연까지 이야기하게 되는데, 해당 병원이 그러한 불법적인 행위를 한 적 없다고 발뺌하자 기완은 궁지에 몰린다. 설상가상 증인으로 나서주겠다던 공장 동료 선주는 그를 배신하고 로기완이 정치적 망명이 인정되는 북한 사람 행세를 하여 난민 지위를 획득하려는 조선족이라고 거짓 진술한다. 기완은 난민의 자격을 갖추었지만 이를 입증하지 못해 고초를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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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솔직히 말해서 동료 작가의 첫 책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나는 그에게 책이 참 좋았다고 거듭 말했다. 고마워하던 그는 “진짜 괜찮으니까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그게 더 도움이 돼요. 책 어땠어요?”라고 다시 물었다. 좀 더 구체적이면서도 약간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얻고자 하나보다 싶어, 비판할 요소들을 궁리하다가 몇 가지 떠오르는 대로 말해주었다. ‘서문의 첫 구절은 구조가 복잡해 쉬이 읽히진 않았다’, ‘결말부에 반복되는 단어는 어감이 썩 좋지 않다’ 정도의 의견이었다. 그는 흡족한 표정이 되어 고민할 거리를 제공해 주어 고맙다고 했다. 나도 웃어넘기고, 자리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