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아
문학평론가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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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습관적 감정에 맞서서 며칠 전, 구립 도서관에서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읽고 독서 토론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여러 논제를 두고 활발히 이야기를 나누는 뜻깊은 자리였다. 사실 나는 이 행사를 준비하느라 꽤 애를 먹었다. 한국 문학을 전공해 카뮈와 그의 작품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달 가까이 틈날 때마다 관련 논문과 책을 읽으며 작가와 작품을 공부해야 했다. 웃긴 건 내가 이미 독서 모임 플랫폼 ‘그믐’에서 <이방인> 읽기 모임을 이끈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방인>을 인생책으로 소개했는데, 정작 소설의 배경이나 카뮈의 생애에 대해서는 소상히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사랑했던 이유는 하나의 단어 때문이었다. 바로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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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붙드는 이야기 최근 한 출판사의 문학상 심사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응모된 단편소설이 1000편이 넘었다. 대상작 1편과 가작 4편 등 총 5편을 뽑았기 때문에 경쟁률 또한 높았다. 나를 포함해 4명의 작가로 꾸려진 심사위원단은 쉼 없이 소설을 읽어야 했다. 심사위원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는 소설적 완성도를 갖추었는지, 문제의식에 새로움이 있는지, 기성 작가의 스타일을 따라 하지 않고 개성적인 목소리로 서술하는지 등을 기준으로 삼아 투고작을 읽었다. 사실상 대부분의 응모작은 초반 한두 장만 읽어도 본심에 올릴 만한 작품인지 판단할 수 있었다. 끝까지 다 읽는다고 해도 그 결정이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한때는 나도 투고자였으므로 그 절실한 마음을 안다거나 하는 단순한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의 이야기에 붙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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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밀고 두드리기 초고를 쓰는 일보다 그것을 고쳐 쓰는 일이 더 어렵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나는 원고 작업을 할 때면, 퇴고(推敲)의 늪에 갇혔다고 느끼곤 한다. 고쳐쓰기는 말 그대로 늪이다. 정해진 끝이 없기 때문이다. 아주 약간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한 글자 바꿔놓고 뉘앙스의 차이를 곰곰 비교하면서 종이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글은 자꾸 보다 보면 너무 익숙해져서 수정하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낭독하기 어려운 부분은 리듬감을 살려 다시 가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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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도움받지 않을 권리 최근 미국 올랜도의 디즈니월드에 다녀왔다. 동심을 자극하는 캐릭터들, 미래를 꿈꾸게 하는 불꽃놀이,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어우러진 풍경까지, 설렘의 연속이었다. 그중 가장 반가웠던 것은 휠체어를 탄 사람들도 큰 어려움 없이 이 공간을 함께 즐긴다는 점이었다. 엎드린 자세로 타야 하는 롤러코스터에도 휠체어 이용자를 위해 개조된 칸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디즈니월드로 가는 셔틀버스를 탈 때면 기사님은 언제나 휠체어에 탄 손님들 자리를 먼저 마련했고, 줄을 서서 기다리던 승객들은 이를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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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시선을 피하는 방법은 없지만 자타공인 극내향인인 최강록 셰프가 MBTI 검사를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 걱정하지 않는 편이다’라는 문항을 읽더니 대뜸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가 않아, 기본적으로”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폭소했던 기억이 난다. 외향적인 나로서는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를 고민하는 차원을 넘어서 ‘아예 보이고 싶지 않다’는 태도가 낯설고 재밌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엔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나를 보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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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더 멀리 사색할 의무 지난달 개관한 민주화운동기념관에 다녀왔다. 무거운 마음으로 전시관을 나왔을 때 옛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서 사람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다. 민주화 운동가들을 고문하던 공간, 취조를 위해 설계된 건물을 배경으로. 13년 전 어느 볕 좋은 날, 가까이 지내던 대학 선배와 남영동 대공분실까지 걸어간 적이 있다. 당시 우리는 사회 토론 동아리에 속해 있었고 그 주에 논의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현장을 확인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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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예술하기 딱 좋은 나이 올해 3월부터 한국문학예술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온라인 문학 플랫폼 ‘글틴’의 멘토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글틴 게시판에 자신이 쓴 글을 올리고 멘토 작가들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수필과 비평문에 코멘트를 달고 매달 장원을 선정해 심사평을 쓴다. 매주 강의실에서 마주하는 학생들은 다 성인이기 때문에 사실상 청소년의 글을 이리 가까이서 읽는 것은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 내가 청소년이었던 시기가 있었음에도 시간이 오래 지나고 나니 마치 그런 적 없었던 것처럼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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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삶에 빛을 들이는 스승 5월15일, 스승의날이다. 스승이란 제자를 가르쳐 바른길로 인도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몰랐던 사실을 깨치도록 이끈다는 것은 계몽한다는 말과도 같다. 계몽은 어두울 ‘몽(蒙)’에 열 ‘계(啓)’ 자를 쓴다. 흔히 사리에 어두운 상태를 벗어나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끔 계도한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이를 꼭 지식의 영역에 국한해서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어둠에 덮여 있던 생각을 열어젖히는 행위로도 해석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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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웃자고 한 이야기에 죽자고 달려들어야 할 때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2024)을 뒤늦게 봤다. 회식 자리에서 한 남자는 두 손을 모으고 웃는 직장 동료에게 그렇게 웃으니까 “게이 같다”고 핀잔을 준다. 테이블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함께 웃지만, 김고은 배우가 연기한 ‘재희’는 그에게 따진다. 게이 같은 게 도대체 뭐냐고, 게이면 어때서 그러느냐고. 그러자 주변 사람들은 농담이니까 분위기 어색하게 만들지 말라고 그녀를 만류한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라는 다그침에 재희는 “그냥 쟤한텐 그게 목숨 같나 보다 하시면 안 돼요?”라고 되받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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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좋아서 하는 마음 봄의 기운을 담뿍 머금은 3월이 왔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문학을 가르치는 나는 어김없이 칠판에 의자 하나를 그린다. 잘 그리지 못해서 가끔 변기같이 보이기도 하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것을 우리는 ‘의자’라고 부릅니다. ‘의자’라는 말과 실제 의자는 무슨 관련이 있나요?” 학생들은 일제히 “없어요”라고 대답한다. “네, 맞습니다.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언어와 의미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언어의 자의성이라고 해요. 혹은 그 관계가 필연적이지 않다는 뜻에서 언어의 우연성이라고도 말해볼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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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무심한 다정 성격 유형 검사인 MBTI가 유행한 후, 나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서운함을 덜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절친한 친구는 내가 “속상해서 염색했어”라고 말하면 “응, 잘했네”라고 답하는 사람이다. 그럴 때면 친구가 우울한 일이 있었다는데 어떻게 궁금해하지도 않을까, 하다못해 염색이 잘됐는지라도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 의아했다. 친구가 늘 나를 무성의하게 대한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속상한 일이 생기면 그게 무엇이든 알아내어 적절한 위로를 건네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10년이 넘도록 친하게 지내왔는데 왜 매번 나만 최선을 다하는지, 반대로 친구는 나를 다정히 대해주지 않는지가 불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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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붓끝에 따라오는 불과 꽃 1933년 5월, 베를린 광장에서는 반(反)나치적인 도서로 분류된 책들이 불태워진다. 프란츠 카프카, 프로이트, 아인슈타인의 저서도 이때 태워진다. 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미하 울만이 설치한 조형물 ‘도서관’의 안내판에는 하인리히 하이네의 희곡 <알만조르>의 문장이 쓰여 있다. “그것은 다만 서곡이었다. 책을 태운 자들은 결국에는 사람도 태울 것이다.” 실로 분서가 홀로코스트로 이어지는 무시무시한 진행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확인했다. 서적을 대상으로 한 탄압은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에도 일어난다. 당시 책 파기에 동원되었던 한 교사는 당국에서 봉건적, 자본주의적이라고 규정한 책들을 재활용하기 위해 낱장을 손수 찢어내야 했고, 2t에 달하는 책이 제지공장 기계에서 휘저어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리처드 커트 크라우스, <문화대혁명> 교유서가, 2024, 88~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