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서

성현아 문학평론가

동료 작가의 첫 책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나는 그에게 책이 참 좋았다고 거듭 말했다. 고마워하던 그는 “진짜 괜찮으니까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그게 더 도움이 돼요. 책 어땠어요?”라고 다시 물었다. 좀 더 구체적이면서도 약간은 부정적인 피드백을 얻고자 하나보다 싶어, 비판할 요소들을 궁리하다가 몇 가지 떠오르는 대로 말해주었다. ‘서문의 첫 구절은 구조가 복잡해 쉬이 읽히진 않았다’, ‘결말부에 반복되는 단어는 어감이 썩 좋지 않다’ 정도의 의견이었다. 그는 흡족한 표정이 되어 고민할 거리를 제공해 주어 고맙다고 했다. 나도 웃어넘기고, 자리를 즐겼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쩐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책의 몇 부분을 꼬투리 잡고 나자 그 책이 구축한 아름다운 세계가 와르르 무너진 것 같은 다소 비약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곰곰이 고민해 보니, 내가 훼손한 것은 책이 아니라 나의 진심 같았다. 나는 진정으로 그 책이 좋았다. 나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작가의 눈치를 본 것도 아니었고, 격식을 차리기 위해 억지로 짜낸 말도 아니었으며, 터무니없이 긍정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와 나는 좋다는 말은 진심이 아닐 것이라고 단정했을까? “솔직히 말해서…”라는 서두 뒤에는 날카로운 평가가 따르는 것이 더욱 자연스러워 보이기 때문일 테다. 듣기에 좋은 말은 아무래도 진솔함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사람들은 부정적인 평이야말로 듣는 이가 상처를 받을까 혹은 말하는 이가 자신이 나쁜 사람으로 보이진 않을까 염려하며 숨겨놓았던 본심이라고 쉽게 믿는 것 같다.

최은영의 소설 <한동안>(<문학인> 2023 겨울호)에도 친누나인 ‘수연’에게 솔직한 대답을 요구하는 동생 ‘인수’가 등장한다. 네 살 터울인 둘은 종일 붙어 다니며 즐겁게 놀았으나 인수가 일곱 살에 혈액암을 판정받자 서로 소원해진다. 수연은 투병 중인 인수와 예전처럼 즐겁게 지내고 싶어 하지만, 아픈 동생을 조심스레 대하라고 주의를 받으며 점차 장난을 치지 않게 된다. 치료에 많은 돈이 들자 가세가 기울고 쾌활하던 아빠는 일을 늘리다가 과로로 죽게 된다. 인수가 다니는 병원 근처로 이사하느라 학교를 옮기고, 졸업식과 같은 행사에 아무도 오지 않을 때도 수연은 불평조차 하기 어렵다. 어른이 된 인수가 자신이 아프고 나서부터 모든 상황이 나빠졌고 누나도 힘들어졌다고 말하자 수연은 힘들었던 것은 맞지만 너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못 박는다. 그러자 인수는, 한순간이라도 솔직해질 수 없냐고 수연을 쏘아붙이며, 가족에게 짐이었을 자신을 원망한다고 말하라고 채근한다. 수연은 그런 인수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솔직함을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가슴 아프게 하는 말과 연관 지어 생각”하기에 인수가 바라는 솔직함도 그런 성질의 것임을, 수연은 안다. 하지만 인수를 싫어하거나 원망했다는 것은 수연의 진실이 아니다. “수연에게 솔직함은 오히려 그 반대편에 있었다. 나, 너와 멀어져서 마음이 아팠어.”(259쪽)

솔직하게 말하겠다며, 무례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런 언사는 가식 없는 내면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자신의 예의 없음을 참고 견디길 강요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배우려는 이들에게 ‘솔직히’라는 부사를 방패 삼아 비난의 말을 쏟아내는 선배나 선생도 적지 않다. 그러한 모독의 말은 긴장감을 주어 누군가가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명분 아래 불가피하고도 허심탄회한 비판으로 둔갑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베어내어 상처를 주는 말이, 그리고 그것이 아물며 새살이 돋게 해주리라고 자찬하는 입술이 과연 솔직함에 더 가까울까. 좋은 것을 좋다고, 아픈 것을 아프다고 털어놓는 마음에 꼭 날 선 미움이 담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그런 솔직함이 좋다.

성현아 문학평론가

성현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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