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숙
후마니타스 연구소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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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시민들이여, 공공의료에 투표하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 2년이 다 돼가는데 왜 아직도 아침마다 시민들이 남은 병상 수를 걱정하고, 병상 몇 %가 찼다는 것이 주요 뉴스가 되어야 하는지를. 또 왜 거대 양당의 대선 후보들은 우리 사회 최대 현안인 코로나 위기 극복과 의료 문제에 대해서는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지 말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정부가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시행 이후 지난 한 달간 행정명령을 통해 확보한 중증 병상은 단 27개다. 4주 내에 확보하겠다고 한 준중증 병상도 목표치의 절반만 확보한 상태다. 3조원 가까운 돈이 주로 민간병원의 병상 확보 등 치료대응에 들어갔는데도, 병상 확보에 이렇게 애를 먹고 있으니 복장이 터진다. 300병상 규모 공공병원 20곳을 만들 수 있는 비용이다. 돈은 돈대로 쓰고, 확진자 폭증 속에 병상 대기자도, 그 과정에서 숨지는 환자도 늘어만 가고 있다. 공공병원에 진작 투자했다면 이런 사태까지는 오지 않았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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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놀 권리 “하루를 잘 논 아이는 짜증을 모르고, 10년을 잘 논 아이는 마음이 건강하다. 음식을 고루 먹어야 건강하게 자라듯이 ‘놀이밥’도 꼬박꼬박 먹어야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편해문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중) 아이들에게 놀이는 삶 자체다. 놀지 못하면 병든다는 것을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먼저 안다. 이렇게 중요한 아이들의 ‘놀 권리’는 아동협약에도 일찌감치 주요 권리로 규정되어 있다. 1차 세계대전 후 제정된 유엔아동권리협약 제31조는 ‘아동에게 놀이는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적 복지권’이라고 규정한다. 방정환 선생도 1923년 ‘어린이날 선언’을 발표하며 어른과 어린이를 동등한 주체로 대하고 어린이들이 뛰어놀 놀이터 등 여건을 마련해줄 것을 주문했다. 대한민국 어린이헌장(1988년)이나 어린이놀이헌장(2015)에도 이런 취지가 들어 있음은 물론이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놀이행동 전문가인 스튜어트 브라운은 놀이의 반대말은 ‘일’이 아니라 ‘우울’이라고 했다. 제대로 놀지 못하는 아이들이 우울한 어른이 되고, 나아가 우울한 사회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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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인생게임과 세컨드 찬스 보드게임 중에 ‘인생게임’이란 것이 있다. 룰렛에 나온 숫자대로 게임판 위를 돌며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에 진학한 뒤, 혹은 고교 졸업 후 직장에 들어가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집 사고 보너스를 받으며 은퇴할 때까지 인생 스토리를 담은 게임이다. 1960년 미국에서 출시돼 세계 각국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보드게임의 클래식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있어서일까. 유난히 눈길이 간 부분은 게임판 중간쯤에 있는 직업 바꾸기 코너다. 대졸 또는 고졸로 시작은 달라도 한곳에서 만나고, 또 재교육을 받아 연봉을 높이거나 직업도 바꿀 수 있다. 직업에 따른 연봉 차이가 씁쓸하긴 하지만 새로운 선택을 통해 인생 행로를 변경하는 것이 가능하다. 순간 감동했다. 현실과 너무 달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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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주4일 근무제 노동시간 단축이 화두가 된 건 세계적으로도 100년 남짓에 불과하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하루 14~16시간의 살인적 노동이 다반사였다. 이 같은 노동현실은 1919년 국제노동기구(ILO)가 출범하며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노동자들은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이토록 뼈빠지게 일하는지 묻게 됐다. 인간다운 삶,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새로운 지향점이 됐다. ILO 창립 당시 제1호 협약으로 ‘1일 8시간, 1주 48시간’ 노동 원칙이 확립됐고 1935년 주 40시간, 주 5일제가 국제표준이 됐다. 세계는 이제 주 4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4년간의 주 4일 근무제 실험을 마치고 실제 노동시간 단축에 들어갔다. 스페인과 일본도 제도 마련에 나섰다. 국내에선 수년 전부터 배달의민족이 월요일 오후 출근하는 주 4.5일제를 도입했고, 신세계·SK 등 일부 대기업 계열사들도 주 4일 근무를 시범 적용하고 있다. 올해 설립된 게임 스타트업 엔돌핀 커넥트는 주 4일·36시간(화~금 9시간씩) 근무제를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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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상대적 빈곤 열흘 전인 지난 17일. 전국의 아침기온이 뚝 떨어지며 10월 중순으론 이례적인 한파 특보(한파 경보·주의보)가 발령됐다. 아침기온 1.3도를 기록한 서울은 2004년 이후 17년 만에 10월의 한파주의보라고 했다. 한파주의보 발령 기준 중 ‘아침 최저기온이 전날보다 10도 이상 하강해 3도 이하이고 평년값보다 3도가 낮을 것으로 예상될 때’에 해당된다. 11월, 12월엔 영하 1, 2도의 최저기온이 되레 따뜻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요는 춥다고 느끼는 것은 상대적이라는 점이다. 상대빈곤율이라는 것이 있다. 인구 전체를 연간소득 순으로 줄 세웠을 때 딱 중간에 있는 소득을 중위소득이라고 하는데, 그 중위소득의 50% 미만인 계층의 비율을 뜻한다. 쉽게 말하면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누리는 일정 수준의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비율이다. 엊그제 한국의 상대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4번째로 높다는 씁쓸한 소식이 전해졌다. 코스타리카(20.5%), 미국(17.8%), 이스라엘(16.9%)에 이어 한국은 16.7%였다. OECD 평균인 11.1%보다 훨씬 높고, 덴마크(6.1%)나 아이슬란드(4.9%) 등 북유럽 국가와는 3배 가까운 차이다. 불과 두 세대 전만 해도 기아에 허덕이던 한국은 절대빈곤율을 빠르게 줄이며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국가적 부의 축적은 모두에게 고루 돌아가지 않았다. 이미 수년 전부터 OECD는 한국적 빈곤의 이유를 터무니없이 낮은 공공사회 복지비용과 이원적 노동시장으로 인한 불평등 확대라고 짚어왔다. 지난달 영국 일간 가디언은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분석한 기사에서 “작품 속 살인 게임이 끔찍하다고 해도, 끝없는 빚에 시달려온 이들의 상황보다 얼마나 더 나쁘겠는가”라며 불평등의 민낯을 직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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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변희수, 이예람… 가해자는 대한민국 군대다 우연인지 같은 날이었다. 지난 7일 군인을 천직으로 여겼던 두 청년의 죽음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죽음으로 군 내 성폭력을 고발한 이예람 공군 중사에 대한 국방부의 최종 수사 결과 발표와 성전환 수술 뒤 군에서 강제 전역을 당한 고 변희수 전 하사가 낸 전역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1심 승소를 했다는 소식이 동시에 전해졌다. 절망하며 죽어가는 군인조차 끌어안지 못하는 대한민국 군대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돌아본 날이다. 공군 성폭력 피해자로 불렸던 이예람 중사의 이름이 알려진 건 지난달 28일이었다. 사랑하는 딸이 지난 5월21일 사망한 후 130일째. 군 당국의 최종 수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아버지가 기자회견을 자청해 딸의 이름과 얼굴을 드러냈다. 억울한 죽음의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고 잘못한 자들이 모두 단죄되리라 철석같이 믿었던 아버지는 수사가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불길한 예감에 딸의 이름을 걸고 특별검사 도입을 호소했다. 예감대로 수사 결과는 맹탕이었다. 입건된 군 관계자 25명 중 15명이 기소됐다. 그러나 정작 이 중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초동 부실수사 책임자와 수사 지휘부는 한 명도 기소되지 않았다. 피해자가 핵심 증거를 확보해 군사경찰에 제출하고, 백방으로 호소하다 죽음으로 성폭력을 고발했지만, 결국 핵심 관계자들에게 면죄부만 주고 수사는 종료됐다. 대통령이 엄정 처리를 지시하고, 국방부 장관은 사상 첫 특임검사를 세우고 민·관·군 합동위까지 구성했어도 달라진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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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수능 킬러문항 방지법 영화나 드라마 속 킬러의 모습은 섬뜩하다. 몸을 숨긴 채 조용히 표적에 다가간 뒤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총격을 가한다. 단검으로 제거 대상의 급소를 공격하는가 하면 높은 건물에 은신해 있다 원거리 목표물을 단 한 방에 저격한다. 피가 튀는 끔찍한 상황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임무에 집중한다. 그런데 이 킬러라는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교육에서도 쓰인다. 학생들 간 변별력을 높인다는 이유로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출제되는 최고난도의 문항을 ‘킬러문항’이라고 한다. 고교 교육과정 범위와 수준을 넘어서는 킬러문항은 가뜩이나 수험장에서 긴장하는 수험생들을 ‘저격’한다. 배점이 대부분 3~4점으로 다른 과목보다 높은 수학에서 저격 본능을 뽐낸다. 지난해까지 객관식과 주관식 마지막 문제인 21, 30번 문제가 킬러문항으로 꼽혔다. 문·이과 통합형 수능으로 바뀐 올해부터는 수학 영역 선택과목에 따라 킬러문항도 달라지고 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현직 교사와 교육과정 전문가 12명으로 평가단을 꾸려 9월 치른 모의평가를 분석했다. 그 결과 수학 문제 4개(공통수학 3문항, 미적분 1문항)가 고교 교육과정 수준과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단했다. 대학 과정 수학을 배운 경우라면 쉽게 풀 수 있겠지만, 고교 교육과정에서 배운 내용만으로는 풀이 과정이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것이다. 결국 정상적인 학교교육만으로는 준비가 어렵고 학원에서 따로 배워야 유리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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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웰컴 제너레이션 ‘웰컴 홈’ ‘웰컴 백’ ‘웰컴 투 ○○’ …. 환영한다는 뜻의 웰컴(welcome)은 듣기만 해도 정겹다. 두 팔 벌려 환대하는 포근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어떤 일도 적극적으로 대한다는 긍정적인 어감도 준다. 웰컴 센터니 웰컴 드링크, 웰컴 키트, 웰컴 보드 등 이 말이 들어간 언어조합과 상품이 많은 이유이다. 이 ‘웰컴’이 최근 뜻밖의 조합으로 깊은 울림을 던졌다. 추석연휴인 지난 20일(현지시간) ‘미래세대와 문화를 위한 대통령 특별사절’ 자격으로 유엔총회 연단에 선 방탄소년단(BTS)의 입에서 ‘웰컴 제너레이션’이란 말이 나왔다. 이들은 “가장 다양한 기회와 시도가 필요한 시기에 길을 잃게 됐다는 의미에서 지금의 10대, 20대들을 코로나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코로나19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젊은 세대의 진취성을 강조했다. 변화에 겁먹기보단 ‘웰컴’이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걸어 나가는 세대라는 의미에서 ‘웰컴 제너레이션’이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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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고교학점제, 꼭 지금 해야 합니까 또다시 정권 말 교육현장의 대공사가 시작됐다. 학교 현장에선 고교학점제발 태풍이 한바탕 몰아닥칠 기세다. 고교학점제 안착을 위한 ‘2022 교육과정 개편’이 올 하반기에 시작돼 연내에 교육과정 주요 사항 발표, 내년엔 개정 교육과정 고시, 2024년 2월 ‘2028 대입제도 개편안’ 발표 등이 이어진다. 한동안 얼마나 시끄러울지 한숨부터 나온다. 지난달 교육부의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적용을 위한 단계적 이행 계획’ 발표를 보면서도 한숨이 더해졌다. 단계적 이행이라지만, 고교학점제의 도입시기를 현재 중학교 2학년이 고교에 진학하는 2023년부터로 사실상 2년 앞당겼다. 불과 6개월 전인 지난 2월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계획’ 발표 때만 해도 “현 초6 학년생이 고교생이 되는 2025년 전면 적용”을 말했을 뿐 중1, 중2는 언급된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당사자들로선 “날벼락”이란 말이 나올 법하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이들 2개 학년은 달라지는 교육과정으로 고교학점제를 적용받으면서도 입시는 현행 체제로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교육 엇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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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출발, 캐스퍼 수십종의 새 차가 해마다 쏟아지는 상황에서 이렇게 관심을 받는 신차가 있었을까. 디자인은 물론 작명 과정에 첫 차 출시일까지 다 보도된다. 첫 차의 주인이 누구냐도 화제에 올라, 대통령과 시장, 올림픽 3관왕, 가수 BTS 멤버 등이 후보로 거론됐다. 광주형 일자리의 1호 모델 광주글로벌모터스(GGM)가 현대자동차에서 위탁받아 15일부터 본격 양산하는 신차 ‘캐스퍼’ 얘기다. 이 차에 대한 기대와 상징성을 생각하면 이 정도 관심은 당연하다. 광주형 일자리는 노동자들이 업계 평균 연봉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대신 공장을 유치함으로써 일자리를 확보하고, 기업은 낮은 임금으로 가격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다. 노사가 한 발씩 양보해 일자리를 늘리고 상생하자는 취지다. 2015년 광주시가 ‘사회통합형 일자리’를 추진한 이후 7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첫 결실을 맺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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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OECD 최악 성별 임금격차, 바꿀 생각이 있긴 합니까 지난 몇 주간 여성노동 문제에 대한 취재를 자원해 ‘유리천장 박살 프로젝트’ 기사를 작성했다. 매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 유리천장 지수 실태와 최악의 성별 임금격차에 부끄럽다는 논평을 하는 것이 지겨웠다. 원인이 뭔지, 되풀이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알고 싶었다. D데이는 여성가족부의 상장법인 성별 임원 현황 조사 발표일로 잡았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상장기업 임원 중 여성은 5.2%로,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유리천장 지수’ 항목 중 하나로 발표하는 OECD 회원국의 여성 임원 비율 평균(25.6%)의 5분의 1 수준이었다. OECD 최악이라는 불명예를 벗지 못하고 있는 성별 임금격차 취재 결과는 더 절망적이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3년 ‘동일임금 가이드라인’을 통해 성별 임금격차를 ‘차이’와 ‘차별’ 요인으로 구분했는데, 2019년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설명될 수 없는 차별 요인(66.4%)이 차이 요인(33.7%)의 2배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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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 박살 프로젝트 ②남녀 임금격차 ‘OECD 최악’ 한국, 개선 노력도 ‘바닥’ 한국은 26년째 성별 임금격차 꼴찌 국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95년 이래 최하위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더 큰 문제는 개선 노력도 바닥권이라는 점이다. 경향신문이 OECD 홈페이지에서 1995년부터 2019년까지 회원국들의 성별 임금격차 추이를 분석한 결과, 한국은 이 기간 44.2%에서 32.5%로 11.7%포인트 임금격차가 감소해 26.5%의 향상률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는 같은 기간 OECD 평균 향상률 33.9%엔 미치지 못한 수치다. 한국의 바로 앞 순위인 일본은 36.7%였고, 임금격차를 빠르게 줄여온 영국은 이 기간 42.9%의 향상률을 기록했다. 각각 한국의 1.4배, 1.6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