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숙
후마니타스 연구소장·논설위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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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성장 일변도의 생활양식 싹 갈아엎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턱밑까지 차오른 복합적 위기의 실상을 모두가 실감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 나온 책 <새로운 세상의 문 앞에서>는 마치 성경 속의 예언서처럼 읽힌다. 우리 시대의 전방위적 위기를 진단하고, 앞으로 몰려올 불안한 미래를 경고한다. 일견 접점이 많지 않아 보이는 저자 두 사람은 첫 만남에서 대번에 통했다. 책 뒤표지의 부제대로 ‘난민 이주노동자 출신 홍세화와 성소수자 영화감독 이송희일’ 둘 다 ‘차별과 혐오의 최전선 당사자들’이라는 점에서다. 책을 쓰자고 만난 이유 또한 약자들에게 더 먼저, 더욱 가혹하게 다가오는 파국의 그림자를 직감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의 날선 말들, 불편한 기억들이 작은 그림자라도 얹을 수 있게 되길 바라며(세화)” “급진적으로 흔들어 전환하지 않으면 약자들에게 힘든 세상이 가속화될 것 같아서 사회적 발언 기회가 주어졌을 때 참여하게 됐다(희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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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약자와 동행하시겠다고요?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 급락과 물난리 와중에 유난히 귀에 꽂힌 말들이 있었다. 약자, 사회적 약자, 약자와의 동행 등이 그것이다. “공적 부문의 긴축과 구조조정을 통해 재정을 최대한 건전하게 운용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확보된 재정 여력은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껍게 지원하는 데 쓰겠습니다.”(윤석열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대한민국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빈부격차는 심화되고 누군가는 소외받는 그늘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서울시의 모든 정책은 ‘약자와의 동행’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오세훈 서울시장, 싱가포르 ‘세계도시정상회의 2022’ 개회식 특별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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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SPC그룹, 상생·ESG 말하지 말라 파리바게뜨에 발길을 끊었다. 한 3개월쯤 된다.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파스쿠찌, 빚은 등 같은 SPC그룹 브랜드 지점도 되도록 안 갔다. 도심 번화가라면 5분마다 하나씩 만나는, 그물망처럼 촘촘한 ‘파바’와 SPC그룹의 포위망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곳 바로 코앞에도 ‘파바’가 있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 지회장 임종린의 단식 그 후의 일이다. 파리바게뜨에서 15년째 제빵기사로 일하는 임종린 지회장은 지난 3월28일부터 5월19일까지 53일 동안 단식을 감행했다. “점심시간 1시간은 당연히 밥 먹고 쉴 수 있어야 하고, 아프면 당연히 쉬고, 가족이 상을 당하면 당연히 가볼 수 있어야 하고, 일을 했으면 당연히 그만큼 급여를 받고, 임신했으면 당연히 모성보호를 받고, 당연히 연차·보건 휴가를 쓰고, 열심히 일하면 당연히 공정하게 진급하고, 다치면 당연히 산재 처리를 하고, 약속하면 당연히 지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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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참을 수 없는 반도체 인재론의 가벼움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특단의 대책을 주문한 지 2주째, 이른바 ‘반도체 인재론’의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과학기술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할 때만 의미가 있다. 그런 혁신을 수행하지 않으면 교육부가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로 콕 찍혀, 부처의 명운이 걸리게 된 교육부는 연일 ‘반도체 이벤트’를 쏟아내고 있다. 국무회의 이틀 뒤 한덕수 국무총리와 반도체 인재 양성 논의를 시작한 이후, ‘반도체 산업 생태계와 인재 수요’ 토론회를 열어 부처 전체가 온·오프로 반도체 열공을 하는가 하면, 연일 각종 간담회와 대책회의를 숨가쁠 정도로 개최하고 있다. 첨단 인재 양성 특별팀이 꾸려졌고 다음달 중 관련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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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우리는 왜 부모 되기를 두려워할까 사실 이 칼럼 제목은 얼마 전 필자가 참여한 인터뷰의 주제다. 세칭 국내 최고 명문대 학생들이 인터뷰를 요청하며 찾아왔다. ‘공동체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 과정을 탐색해 대안까지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는 전공 수업을 듣고 있다고 했다. 스스로 정한 조별 과제가 ‘우리는 왜 부모 되기를 두려워할까’였다. 여러 질문을 받았지만, 학생들이 정말 알고 싶었던 건 한마디로 ‘어떻게 부모가 될 결심을 했느냐’였던 것 같다. 언제, 어떻게 부모가 되기로 결정했나, 2명을 낳기로 한 이유가 있나, 두렵진 않았나, 후회한 적은 없나, 부모 됨의 행복감과 부담감에 대해 말해 달라…. 불안과 두려움이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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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책학회, 5월27일 춘계 학술대회 개최 한국사회정책학회, 27일‘시대진단과 사회정책의 재도약’ 2022 춘계 학술대회 개최 경제·법·사회복지·사회·여성·정치·행정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의 연구자들이 모인 한국사회정책학회가 윤석열 정부 출범을 맞아 시대진단과 새 정부의 정책과제를 다각적으로 토론하는 2022 춘계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오는 27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리는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는‘새정부 복지,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시대진단과 사회정책의 재도약’이다. 사회보장위원회와 한국노인인력개발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사회보장정보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공동주최하고,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와 사회평론이 후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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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인사청문회, 20여년 절망의 악순환 인사청문회를 할 때마다 절망한다. 대한민국의 고위공직자, 소위 사회지도층이라 하는 이들이 사는 법이 얼마나 일반 대중과 다른지를 매번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초대 내각 청문회는 특히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부터 파행이다. 국무위원 청문회는 시작도 안 했는데, 제기된 산더미 의혹들로 이미 지칠 지경이다. 일단 후보자들의 재산 규모가 서민들로선 근접하기도 어렵다. 새 정부 초대 장관 후보자 18명의 청문요청안에 따르면 이들의 재산 평균은 약 38억8000만원이다. 지난해 가구당 평균자산은 5억253만원(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이었다. 문재인 정부 1기 내각보다 15억원가량 늘었고, 9년 전 박근혜 정부 1기 내각의 2배도 넘는다. 절반이 넘는 10명은 본인 또는 가족 명의로 이른바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에 집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 인구의 3% 남짓이 살고 있는 이곳에 국무위원 후보자 55.6%가 집을 소유하고 있다. 이들이 어딜 바라보며 어떤 정책을 펼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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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윤석열 당선인, AI 교육혁명이 대체 뭡니까 이젠 정책의 시간이다. 모든 분야에서 새 정부의 정책 방향에 온 이목이 쏠려 있다. 그런데 교육에 대해선 선거 기간 중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을 들은 기억이 없다. 한 유튜브 예능 채널에 출연해 “기술고등학교·예술고등학교·과학고등학교, 고등학교 갈 때는 학교들을 좀 나눠야 될 거 같다”며 이미 49년 전부터 존재해 온 특성화고·특목고의 필요성을 언급해 대체 언제 적 얘기냐는 빈축을 샀던 기억만 강렬하다. 당선인의 1호 교육공약이 뭐였나. 공약집을 뒤적여봤다. ‘AI 교육혁명’이라는 알기 힘든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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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시민의 승리, 학교급식 10년의 진보 우리는 별 감흥 없이 당연하게 누리고 있지만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정책들이 있다. 며칠 전 우연히 유튜브 동영상으로 보게 된 국내 친환경무상급식 실태가 그 한 예다. “이런 식사가 매일 나온다고?” “게다가 돈도 안 낸다고?” 한국 공립학교의 급식 재료와 메뉴, 조리 과정을 소개하고 다른 몇 개국의 급식을 비교하는 내용이었는데, 부러움과 감탄을 금치 못하는 외국인들의 반응에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한국 학교급식의 높은 수준은 한국 체류 경험이 있는 외국인들을 통해 꽤 오래전부터 화제가 되어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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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여가부 폐지, 윤석열이 꿈꾸는 세상은 뭔가 그래서 여성가족부를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달 7일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를 올리며 젠더 이슈를 핫 이슈로 끌어올린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암호에 가까운 일곱 글자, 공약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한 달이 되도록 진지한 후속 논의나 설명은 없다. 원희룡 국민의힘 선대본부 정책본부장은 최근 “일단 해체부터 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1월25일 세계일보 인터뷰)고 밝혔다. 무책임하다. 나머지 주요 후보들은 모두 초기 입장을 견지한 예측 가능한 방향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여가부를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성평등인권부로 바꾸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여가부를 성평등부로 개편하고 역할과 권한 강화를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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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새해, 다시 ‘인간’의 힘을 믿는다 새해가 밝았다. 새로운 소망과 다짐의 시간이지만, 그럼에도 희망만을 얘기하긴 힘든 새해다. 그 바탕엔 3년차에 접어드는 코로나19 상황이 있다. 지난해 이 무렵에도 코로나는 주요 뉴스였다. 길어지는 거리 두기에 따른 피로감, 자영업자들의 어려움, 백신 접종을 시작한 다른 나라들에 대한 부러움과 국내 백신 수급 상황에 대한 기사들이었다. 2월 말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는 집단면역 시점과 탈코로나의 희망도 솟아났다. 그러나 이젠 아무도 코로나가 끝날 것이라 섣불리 기대하지 않는다. 감염병은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계속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마저 더해진다. 지난 2년간 일어났던 일들이 생각나지도 않고, 언제 일이었는지 헷갈린다는 사람들이 많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힘든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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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배리어프리’ 사회로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낯설던 ‘배리어프리’(barrier-free)’라는 말이 최근 심심치 않게 사용되고 있다. 고령자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사회생활 참여를 방해하는 장벽(barrier)을 허물자는 의미다. 이 말은 1974년 유엔 장애인 생활환경전문가회의에서 ‘장벽 없는 건축 설계(barrier free design)’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등장한 개념이다. 초창기엔 건축학계를 중심으로 경사로 등 물리적 장벽 없애기에 치중했던 논의가 최근엔 제도·법률적 장벽, 문화·정보의 전달, 심리·정신적 장벽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국내에서도 정부 공식행사의 수어 통역, 방송 자막 등은 어느새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문화·공연계에서도 장애인 관객의 접근성을 높이려는 ‘배리어프리’ 움직임이 활발하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통역이나 자막 제공,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해설, 점자 프로그램북 등이 대표적이다. 자폐성 장애·발달장애인을 위해 조명이나 음량·음향 효과를 조정하고 공연 중 이동을 허용하는 ‘릴랙스 퍼포먼스’도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