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숙
후마니타스 연구소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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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홍보부족이라고? 시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장난 지금 나랑 하냐.” 최근 ‘주 69시간 노동’을 둘러싼 논란을 보며 오래전의 이 유행어가 떠올랐다. 정부가 운을 떼고, 바람몰이를 하고 위원회를 조직해 안을 만들어 입법예고까지 한 정책이 뒤집힐 판이다. 정부안의 공식 명칭은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일주일 120시간 노동’을 거론한 이후, 취임 직후인 지난해 6월부터 착수해 현 정부가 야심차게 밀고 있는 소위 ‘노동개혁 1호 법안’이다. 지난해 말 이미 ‘주 69시간’ 안이 나왔고, 노동계 의견 수렴이 없었다는 비판에도 밀어붙여 지난 6일 공식 발표됐다. 그 후엔 모두가 아는 대로 난리통이다. 역풍에 놀란 윤 대통령은 발표 8일 만에 재검토를 지시했다.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고도 했고, 노동 약자의 여론을 더 청취해 방향을 잡겠다고 한다. 개편안은 다음달 17일까지 40일간 입법예고를 거쳐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지만, 앞으로의 향방은 알 수 없다. 근로기준법 개정안 통과의 키는 여소야대 국회가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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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무책임·무공감 정부, 민심에선 이미 탄핵됐다 보름 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이태원 참사 대응 책임을 물은 것이다. 대통령실은 탄핵안 가결 20여분 만에 “의회주의 포기” “의정사에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는 전광석화 입장문을 내놨다. ‘초유의 국무위원 탄핵소추’ 기사가 언론마다 대서특필됐다. 논란이 커질 사안이면 진작 자진사퇴하거나 경질했기 때문에 예전엔 이 같은 ‘사태’로까지 번지진 않았다. 사퇴가 마땅하다는 민심을 정면으로 거슬러, 탄핵소추안이 압도적으로 통과될 때까지 버틴 상황 자체가 ‘초유의 사태’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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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켜이 쌓인 역사의 흔적 따라, 5000년 전 파라오가, 인간을 닮은 신들이 말을 걸어 왔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미라, 투탕카멘, 람세스, 클레오파트라, 오벨리스크와 거대한 신전들…. 이집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서양의 주요 문화를 잉태하고 키운 ‘문명의 요람’으로도 일컬어지는 이집트는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며 영화와 드라마, 예술에 끊임없이 차용되고 변주되며 상상력의 원천으로 역할해 왔다. 한편으론 많은 이들이 인생에 한번은 가고 싶은 버킷리스트로 꼽는 곳이다. 그러나 쉽게 갈 엄두는 나지 않는, 매력적이지만 심리적인 거리가 먼 곳이기도 하다. 코로나로 굳게 닫혔던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의 인문기행 하늘길이 3년 만에 열렸다. 2020년 진행했던 이집트 고대문명 탐방도 3년 만에 재개됐다. 국내 최고의 고대 이집트 전문가인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 소장이 이끄는 10박12일의 일정을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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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문화 답사기’···“잊지 못할 인생 여행, 다시 오고 싶어요” 11세부터 68세까지,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자영업자, 교사, 교수, 세무사, 승려까지. 33명의 답사단은 연령도, 하는 일도 다양했다. 취업준비생도,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도 왔다. 모두가 “잊지 못할 인생 여행”이라고 했다. 3명은 3년 전 이집트 여행에 이어 두번째 참가했다. 3년전 초등학생 딸 민서와 참가했던 김경화씨는 이번엔 남편과 아들 재원이까지 온 가족이 함께 왔다. 김씨는 “이집트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한 압도적인 크기의 건축물들이 주는 감동을 가족 모두 느꼈으면 해서 다시 찾았다”며 “남편도, 아이들도 수 천 년 전의 경이로움을 만난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특히 민서는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면서 최고(古), 최대 수식어가 붙어 있는 이집트가 내 취향”이라며 3년 뒤 다시 가겠다고 말할 정도로 이집트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역시 3년 전 이집트에 왔던 정태기씨는 율리우스력 등 서양문화의 본류가 되는 이집트 문명에 감동을 받고, 한번 더 보고 싶어서 왔는데 딸이 따라오겠다고 해 함께 왔다고 했다. “이번엔 3년 전에 못 본 부분까지 볼 수 있었다”는 정씨는 몇 년 후 이집트를 다시 한번 찾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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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기막힌 윤 정부의 교육개혁, ‘담대한 시장화 구상’ 현 정부가 추진하려는 교육개혁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연초부터 잇달아 나온 교육부의 업무보고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서다. 그중 눈길이 간 것은 ‘한국형 차터스쿨’이었다. 교육부는 지난 5일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며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지원방안으로 미국 차터스쿨, 영국 아카데미 사례 등을 참고해 학교 운영 방식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차터스쿨은 외부 기관이 주정부와 협약(charter)을 맺고 운영하는 공립학교로, 재정지원과 함께 학생 선발과 교사 채용, 교육과정 등의 자율권을 보장받는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중앙일보 1월16일)에서 내년부터 한국형 차터스쿨, 이른바 ‘협약형 공립고’를 시범운영하겠다고 다시 못 박았다. 이 부총리는 “좋은 학교를 많이 만들어 공교육 전반을 끌어올리겠다. 대표적인 게 협약형 공립고다. 혁신도시에 대규모 투자를 했지만 교육 때문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많다. 기업과 연계해 민간의 자율성을 부여하면 명문고들이 생겨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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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여러분, 새해엔 알아서 버티셔야 합니다” 2023년 새해에, 2000년 이후 강산이 두 번 바뀐 신년 벽두에 이런 걱정을 하게 될 줄, 이런 제목의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한층 팍팍해진 일상을 이어가는 일 자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절감하는 하루하루다. 생각이 뻗어가는 대로 열거해 본다. 새해엔 최악의 고용한파가 몰아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지난 연말 공공기관을 혁신하겠다며 2025년까지 공공기관 정원을 1만2000명 이상 줄이는 감축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공공부문을 효율화하고 민간 일자리를 늘리겠다지만 글쎄다. 경기가 안 좋은데 기업 규제를 푼다고 일자리가 늘어날까? 어림도 없다. 과거 사례를 돌아봐도, 현 상황을 봐서도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올해 취업자 수 증가 폭은 지난해 81만명에서 10만명으로 90% 급감이 예상된다. 대책은? 아직이다. 관계부처 합동 일자리TF가 이달 중 내놓겠다는 고용정책을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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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10년> 함께 책 읽고 토론하며, 글쓰며… 인생 후반 가꾸는 ‘지혜의 정원’ 지난주 7일 수요일 오전, 멀리 바다가 보이는 부산 영도구 함지로의 영도도서관 내 지혜 플러스관 문을 열자 토론의 열기가 후끈했다. 주제는 ‘환경’. <침묵의 봄>과 <그레타 툰베리와 달라이 라마의 대화> 두 권이 주 텍스트였지만, 원자력에너지를 환경 관점에서 어떻게 볼 것인지부터 개인의 실천과 정부·기업에 압력을 가하는 정치·소비자 운동까지, 또 각자 경험담과 실천적 제안, 환경 문제로 돌아본 인간의 본성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이야기가 흘러넘쳤다. 이날 모임은 영도도서관이 지난 8월10일부터 10월26일까지 12주간 매주 수요일 오전 3시간씩 ‘대화, 공감, 소통, 치유의 지혜’라는 제목으로 진행한 지혜학교의 두 번째 후속모임이었다. 도서관 지혜학교는 지역 대학이 기획하고 도서관과 연계해 신중년의 인문활동을 지원하는 인문심화 프로그램이다. 2019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했으며 올해는 137개 도서관 140개 프로그램으로 확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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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이게 말이 되냐고요” 비정상 대한민국 2022년이 보름 남짓 남았다. 각종 결산의 시기, 한 해를 결산하는 기사들도 쏟아져 나온다. 역대급이라는 숫자 뒤, 팍팍한 현실이 그려지는 뉴스들이 적지 않다. 하나하나가 수백만 가구, 수천만 시민의 한숨과 눈물, 불안을 담고 있을 ‘폭탄’들인데, 건조한 몇 줄로 무감각하게 소비된다. 올해는 자산 상위 20% 가구(16억5457만원)와 하위 20% 가구(2584만원) 간 자산 격차가 64배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실질소득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로 줄어든 가운데, 양극화가 뚜렷했다. 하위 20%의 소득 감소율이 상위 20%보다 3배 이상 커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졌다. 소득 하위 20% 중 적자 가구 비중이 57.7%에 달했고, 이들은 월평균 34만3000원씩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29세 이하 가구주의 평균 부채는 5014만원으로 1년 새 41.2% 폭증했다(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3분기 가계동향조사). ‘부자감세’로 세수는 대폭 줄고, 내년 24조원의 재정지출 삭감안으로 각종 복지가 줄어들면 빈부 격차는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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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이주호 부총리와 윤석열 정부, ‘위험한 컬래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임명했다. 현 정부 들어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한 14번째 고위직 인사다. 현 정부에 더 이상 잘 어울릴 수 없는, ‘완벽한’ 인사다. 지난달 27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전 부처의 산업부화를 주문했다.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 관련 서비스 산업부라 봐야 하고, 국방부는 방위산업부, 국토교통부는 건설산업부, 농림축산식품부는 농림산업부,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산업부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산업 증진과 수출 촉진을 위해 뛴다는 자세”도 당부했다. 교육부에 대해선 이미 지난 6월 “교육부 스스로가 경제부처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던 터다. 각 부처의 존재이유를 배반할 수도 있는, 기막힌 인식이다. 이런 대통령의 장단에 별 고민 없이 박자를 맞춰줄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이주호 부총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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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배움이 쌓여 큰 흐름…이게 바로 시민력” “주은경 선생님 만나 봤어요?” “주 원장을 만나보세요.” 올해 초 경향신문사 내에서 시민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후마니타스연구소장으로 발령받고 조언을 구하던 필자에게 많은 이들이 주은경 전 참여연대 아카데미느티나무 원장(노회찬정치학교 기획위원·노회찬재단 이사)을 만나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의 이름은 곧 시민교육이 걸어온 발자취 자체였다. 2년 전 정년퇴직하고 지리산 자락에서 일상을 경작하고 있는 그가 최근 30여년 시민교육 기획의 경험담을 담은 책 <어른에게도 놀이터가 필요하다>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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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윤석열 정부 인구정책, ‘용감한’ 역주행 윤석열 대통령이 부쩍 자주 ‘인구’를 거론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는 “인구문제는 미래에 다가올 이슈가 아니라 현재 이슈”라며 “모든 분야의 정책을 총동원하라”고 지시했다. 문제는 내놓는 정책마다 퇴행적이라는 점이다. #1. 여가부 폐지로 인구 늘린다? 정부가 지난 6일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하며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보건복지부 내 차관급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방점은 인구문제에 찍혔다. 합계출산율 0.75명(2분기)까지 내려온 한국의 ‘이례적인 저출생’ 현상은 세계적인 연구 주제다. 한국 출산율을 주제로 한 논문을 연달아 발표한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선임연구원 인터뷰가 최근 국내 언론(한국일보 9월29일)에 실렸다. 그는 “한국 저출생 위기의 근본 원인은 ‘성차별적 사회구조’”라며 “성평등을 이루기 전까지 출산율 반등은 어려울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앞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도 “이대로면 3세대 안에 한국 인구는 현재의 6%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트윗을 날렸다. 여가부 폐지로 추세를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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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뜨거웠던 여름 ‘함께 배움, 함께 성장’ 교육 분야를 꽤 오래 취재해 왔다. 몇몇 정부를 거치는 동안 다양한 교육 주체들과 전문가, 정책담당자 등을 만나며 유·초등부터 고등교육까지 한국 교육을 접해 실상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해 왔다. 결론은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많은 이들에게 고통의 근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과 에너지, 경제적 자원을 한껏 빨아들이면서도 결과는 보잘것없는, 고비용 저효율의 대표 사례이자 희망을 찾기 힘든 주제다. 그런데 지난여름, 전혀 다른 교육현장을 만났다. 6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가 진행한 글쓰기플러스 여름강좌에서다. 코로나 이후 본격적인 대면수업의 시작이었고, 일부 수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겸했다. 주 1회, 퇴근 이후의 저녁 두 시간. 피곤이 몰려올 텐데도, 또 대부분 강좌가 매시간 ‘빡센’ 숙제 제출을 요구하는데도, 교실의 열기는 뜨거웠다. 매시간 출석률은 최소 70%, 대체로 90% 안팎이었다. 하필 특정 요일의 강좌는 매번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비를 뚫고 신문사까지 오고 가는 길이 전쟁이었다. 난관 속에서도 전라도 목포에서 KTX를 타고 첫 주 3번이나 강의장을 오갔던 60대 수강생의 열의엔 강사도 감동했다. 모든 강좌는 끝났지만, 강의 시간 반짝이던 눈빛들, 때때로 웃음으로 들썩였던 분위기, 수업 이후 꼬리를 물던 진지한 질문들은 여운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