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숙
후마니타스 연구소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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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 박살 프로젝트 남녀고용평등법 ‘버전 2.0’ 필요…성평등 임금 공시제부터 시행하자 1987년 제정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은 모집·채용, 교육·배치, 승진, 정년·퇴직 및 해고 등 고용의 과정과 임금과 임금 외 금품, 복리후생에서 남녀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한국은 국제노동기구(ILO) 100호와 111호 비준을 통해 국제적으로 임금 차별과 고용상 차별금지를 천명하고 있는 나라다. 그런데 한국의 일터에선 채용부터 해고, 극심한 임금격차까지 성별 차별이 공기처럼 익숙하다. 임원 100명 중 95명이 남성이고, 여성 노동자는 일생 동안 남성보다 30% 적은 임금을 받으며, 여성 3명 중 1명이 임신과 출산, 육아를 이유로 일터를 떠났다가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다.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차이인데, 우리 사회는 문제의식마저 느끼지 못한다. 선진국들은 이 같은 차이를 ‘성차별’이라 한다. 없애야 할 부끄러운 격차로 보고, 해소를 위해 노력 중이다. 사회 구성원 절반의 가능성을 사장시키는 것은 사회 통합과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규율뿐인 박제된 법조항을 실제 생활에서 작동하는 ‘남녀고용평등법 버전 2.0’으로 새로 써야 한다. 그래야 남녀 모두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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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 박살 프로젝트 ②엄마는 못 배워서, 딸은 경력단절이라…시대불문 ‘차별 쳇바퀴’ 지난해 한국의 임금노동자 2044만6000명 중 여성은 908만5000명이었다. 이 중 비정규직이 409만1000명이었다. 전체 정규직 노동자 1302만명 중 여성 비중은 38.4%였다. 여성 5명 중 1명(22%)은 고용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했다. 10명 미만으로 확대하면 40%다. 300명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경우는 전체 여성노동자 중 9.6%였다. 남성노동자 중 5명 미만, 300명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율은 각각 14.3%, 16.1%였다. 모든 세대에서 여성들은 임금차별을 겪었다. 지난해 가장 임금 차이가 작은 20~24세 구간에서 여성들은 남성 임금의 93.8%를 받았고, 50대에선 남성의 절반 수준만 받았다.(이상 2020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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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 박살 프로젝트 한국 여성노동, 생각해 봐야 할 3가지 ①성별 임금, 설명되지 않는 차이가 ‘2배’ 국제노동기구(ILO)는 2013년 ‘동일 임금 가이드라인’을 통해서 성별임금격차를 차이와 차별 요인으로 구분했다. 교육과 훈련, 직무경험(근속년수), 성별 직종 분리, 전일제와 시간제 노동의 차이, 기업규모, 노동조합 가입의 성별 차이를 성별임금격차를 유발시키는 설명되는 요인으로 지적했다. ILO가 마지막으로 지적한 요인은 설명되지 않는 요인으로, (직접적인) 임금 차별(pay discrimination)이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의 연구결과, 한국의 성별임금격차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차별(66.4%)이 설명되는 차별(33.7%)에 비해 두 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2019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원자료를 이용해 성별임금 함수 추정 결과 성별 임금격차는 5069원이다. 이 가운데 설명되는 차이로 인한 격차는 1706원(33.7%)으로 가장 큰 이유는 근속년수(1096원)가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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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 박살 프로젝트 성별 임금격차에 대한 오해 OECD 회원국 중 독보적인 성별 임금격차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에서, 성별 임금격차는 당연하다는 주장이 횡행한다. 정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까. ■남성이 더 어렵고 위험한 일? >> 여성 종사 직종도 위험하다 남성이 더 위험한 일을 많이 한다는 것은 성별 고정관념이다. 최세림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등은 <성별 직종분리와 임금격차: 현황 및 임금공개의 기대효과> 연구에서 여성과 남성이 주로 근무하는 직종을 비교했다. 여성들은 위험한 상태에서 위험한 장비로 일하는 ‘사고위험’으로부터는 노출이 적었지만 방사선 노출, 질병·병균, 화상, 자상 등 ‘건강위험’에 노출되는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직종에 근무했다. 여성이 많은 직종은 남성이 많은 직종보다 평균적으로 요구하는 학력이나 훈련 정도 등 자격 요건, 하급자나 생명과 안전에 관여하는 타인에 대한 책임 수준도 높은 편이었다. “남성·여성 직종 간 평균적 특성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여성 직종이 난도와 위험 수준이 낮다고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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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 박살 프로젝트 상장사 성별 노동자 대비 임원 ‘남 2.6%, 여 0.4%’ 1년 후 한국 상장기업의 이사회 풍경이 바뀐다. ‘자본시장법 임팩트’다. 내년 8월부터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는 이사회의 등기이사를 특정 성으로만 선임할 수 없도록 하는 개정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이 시행된다. 50·60대 남성이 기본값인 기업 이사회에 적어도 한 명의 여성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견고한 유리천장에 균열을 내기 위한 입법적 시도다. 법 시행을 1년 앞두고 각 기업들은 앞다퉈 여성 임원 영입에 나서고 있다.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의 152개 상장사가 94명의 여성 임원을 새로 선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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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 박살 프로젝트 대기업 여성 노동자, 남성보다 연봉 3160만원 덜 받고 근속연수도 4.3년 짧아 지난해 국내 상장사 여성 노동자는 남성보다 1562만원 적은 연봉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향신문이 5일 지난해 국내 증시에 상장된 기업 2167개(유가증권시장 768개, 코스닥시장 1399개)가 금융감독원에 신고한 2020년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여성의 임금(중앙값)은 3900만원으로 남성(5462만2464원)의 71.4%였다. 남녀 직원의 임금 격차를 뜻하는 ‘페이갭’은 28.6%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앙값 12.5%(2019년 기준)의 2.3배에 이른다. 페이갭이 50% 이상인 곳, 즉 여성의 임금이 남성의 절반이 안 되는 상장사도 155곳이었다. 239개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OECD 회원국 중앙값 12.5% 이상이었다. 전체 상장사의 88.8% 수준이다. 페이갭이 12.5% 미만인 기업이 239곳, 12.5% 이상 한국 중앙값 32.5% 미만인 곳은 1068곳, 32.5% 이상인 곳은 860곳이었다. 근속연수는 남녀 직원 각각 6.50년과 5.17년으로 남성 직원이 1.33년 길었다. 여성들은 남성보다 더 짧게 근무하고, 임금도 낮은 셈이다. 상장기업 전체 직원 중 여성 직원 비율은 23.9%로 4명 중 1명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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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이런 서울대가 부끄럽다 모멸감. 업신여김과 깔봄을 당하여 느끼는 수치스러운 느낌. 지난달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이후 벌어지는 일들을 쫓는 내내 떼어낼 수 없었던 감정은 이 세 글자였다. 어제까지 일하던 직원의 죽음을 한사코 모른 체하려는 그 조직의 모습에, 고인이 생전 느꼈을 감정이 어땠을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난달 26일 아침, 남편과 함께 출근했던 59세 서울대 청소노동자는 퇴근하지 못했다. 막내딸과의 통화가 마지막이었다. 동료들은 당시 힘들고 멍한 고인의 얼굴을 기억했다. 평소 별다른 지병 없이 건강했던 그는 관악학생생활관(서울대 925동·기숙사)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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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내 딸 이 중사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 주세요” 꿈의 직장이 무덤으로 바뀐 것은 불과 4년 만이었다. 2017년 어렸을 때부터의 꿈인 공군 부사관에 부푼 마음으로 임관한 스무 살 이 중사는 4년 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함께 근무했던 이들은 이 중사를 남의 일까지 도맡아 했고, 한번도 본인 일을 병사에게 미룬 적 없으며, 늘 다른 이를 배려했던 성실하고 책임감 많은 직업군인으로 기억했다. “결코 관심병사일 리 없었던” 그가 비참한 낙인과 굴레 속에 스러졌다. 원치 않은 회식 자리에 불려나갔다가 부대 복귀 차량에서 선임에게 추행을 당한 3월2일부터 지옥 같은 절망 속에 혼인신고 당일 스스로 먼 길을 떠날 때까지 81일. 성추행 직후 명백한 증거까지 제시하고 스무 번이 넘도록 신고했지만, 백방으로 보낸 구조신호는 조직적 은폐에 꽉 막혔다. 도움의 손길은 닿지 않았다. 유족들이 국민청원을 하지 않았다면 ‘단순 변사’로 묻힐 뻔한 억울한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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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빨간 날’의 귀환 달력의 빨간 글씨는 직장인들에게 행복을 주는 날이다. 공휴일을 속칭 ‘빨간 날’이라고 하는 나라는 제법 많다. 영어에도 ‘red letter day’라는 표현이 있고, 노르웨이나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홍콩에도 자국어로 ‘빨간 날’이라는 단어가 있다. 기원전 6세기 로마 달력에서 중요한 날을 빨간색으로 표시했던 관행이 중세시대 서적에서 중요 단어에 붉은 글씨를 사용하는 것으로 부활했고, 현재 달력의 ‘빨간색 휴일’로 이어졌다. 기원이 어떻든 빨간 날은 전 세계 공통으로 즐거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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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장유유서 장유유서(長幼有序). 유교 도덕사상의 기본인 오륜(五倫) 중 하나로, 어른과 아이 사이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네 글자가 근래 자주 소환되고 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 과정에서 나타난 ‘이준석 돌풍’에 장유유서를 언급하면서 먼저 불을 붙였다. 정 전 총리는 특정 단어만 확대해석하지 말아달라고 해명했지만, 결과적으로 ‘꼰대’ 이미지가 도마에 올랐다. 그 후엔 ‘장유유서 법’이 화제에 오르고 있다. 대통령 출마연령을 40세로 묶고 있는 헌법이 대표적이다. 1952년 이승만 전 대통령 시절 선거법에 규정됐다가 10년 뒤 박정희 정권 때 헌법에 들어가 60년 가까이 대못처럼 고정됐다. 국회의원 피선거권 연령을 25세 이상으로 제한하고 금전적 장벽인 기탁금 제도 등을 규정한 공직선거법, 정당 가입 연령을 18세로 제한하는 정당법도 정치 참여 문턱을 높여온 ‘장유유서 법’으로 지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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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나는 효행상이 불편하다 매년 특정 시기에 맞춰 나오는 이른바 ‘캘린더성 기사’들이 있다.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늘 무심히 넘기다가 올해는 끝내 울컥하고 말았다. 나의 현실과 미래, 청년·자녀 세대의 미래 등이 겹쳐 보여서다. 정부가 어버이날을 맞아 포상하는 효행자상 얘기다. 49회째인 올해는 101세 노모의 손과 발이 되어 정성으로 봉양한 70세 아들 택시기사가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국민포장을 수상한 60대 여성은 편찮으신 홀아버지와 형제들을 30년간 돌봐왔으며, 지적장애 아들 양육과 92세 시어머니 돌봄 등에 헌신했다. 지난해, 5년 전, 10년 전도 그리 다르지 않다.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전형적인 공적사항 몇 가지를 옮기면, “치매를 앓는 시부모님을 직접 봉양” “24시간 곁에서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아픈 남편과 자녀들을 부양하며, 암 투병 중인 부친을 봉양” “행복한 가정을 위해 헌신” 등이다. 길게는 30~40년 한결같은 헌신으로 수상한 효행자 다수는 60~70대 여성들이다. 마땅히 칭찬받을 행실이지만, 상의 취지가 효행을 북돋우고 널리 퍼뜨리는 것이라면 따라할 엄두조차 꺾는다는 점에서 효과는 의문이다. 내 주변 상황과는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사연들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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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유령 간호사’ 스스로를 ‘유령 간호사(ghost nurse)’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수술실 등에서 바쁘게 일하는데 근무를 했다는 기록이 남지 않는다. 업무 자체가 불법이라 존재하지만 존재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부족한 의사를 보충하기 위해 간호사나 응급구조사, 의료기사 등에서 임의 차출한 진료보조인력, 곧 PA(Physician Assistant)가 그들이다. PA의 대부분(약 95%)이 간호사여서 현장에선 수술실 전담간호사, PA간호사 등으로 불린다. 국제간호사의날인 지난 12일, PA간호사들이 좌담회를 열어 충격적인 무면허 의료현장을 고발했다. 12년차의 한 간호사는 수술에 늦은 집도의를 대신해 환자 복부를 절개한 뒤 복강에 배액관을 삽입, 충수돌기와 담낭, 위장을 절제하는 “전임의 수준의 불법의료행위”를 했다고 폭로했다. 신규 간호사에게 의사 아이디(ID)로 처방을 내는 법부터 가르치는 사례는 애교 수준이었다. 환자의 동맥라인(A-line)을 잡다 신경을 잘못 건드려 팔을 절단해야 했던 사례도 나왔다. 폭로에 나선 PA간호사들이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