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영
정치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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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잼버리가 국채보상운동인가 1997년 11월21일 오후 10시쯤 임창열 경제부총리가 굳은 얼굴로 “국제통화기금(IMF)에 200억달러 구제금융을 요청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12월3일, 정부는 경제주권을 포기하는 합의문에 서명했고, IMF는 김대중·이회창·이인제 대선 후보에게까지 굴욕적인 협정 준수 각서를 들이밀었다. ‘경제신탁통치’라는 국난 회오리가 일상에도 몰아쳤다. 하지만 한숨만 쉴 시민들이 아니었다. 장롱에 숨겨둔 돌반지나 우승 메달을 내놓았다. 1998년 1~4월 석 달간 미국 자유의 여신상 무게와 같은 225t의 금이 걷혔다. 이 금모으기 운동은 구한말 국채보상운동의 ‘시즌2’로 평가받았다. 강요된 애국심이 없었다고 할 순 없지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아이들·노숙인까지 나선 그 마음은 자발적 애국심이 채웠다. 반면 부유층 참여는 저조했다. 정부는 ‘국민의 과소비’를 외환위기 원인으로 지목했고, 교과서에도 그렇게 실었다. 국가 차원의 ‘장밋빛 경제’ 부도와 재벌 대기업의 탐욕이 일으킨 국난 책임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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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6411의 왼쪽 가슴, 다시 노회찬 정치인의 죽음을 제대로 추모하려면 판단과 결심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우상화, 권력화의 덫에 빠지기 쉽다. 2018년 7월 세상을 떠난 노회찬 전 의원. 세상은 그의 부재에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정치적 공과보다 애틋한 서사의 기억이 더 컸고, 그의 상실에 슬픔은 분명했지만, 뭔가 분명하지 않은 분노 같은 것이 있었다. 당시 빈소에서 울음소리가 크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지난 5년 동안 노회찬이 ‘6411 정신’으로 호명됐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지난해 4월 노회찬재단이 회원·시민 610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45.1%가 노회찬 정신의 핵심을 ‘6411 투명인간’이라고 답했다. 이강준 노회찬재단 사업기획실장은 “약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되찾게 하는 것이 노회찬 정신이고, 이를 위해 6411 프로젝트를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단의 3대 핵심 사업인 노회찬 정치학교, 노회찬 아카이브, 노회찬 비전포럼은 6411 프로젝트의 긴 여정이다. <노회찬 평전> 저자인 이광호 전 진보정치 편집장은 진보정당의 실패에서 6411 정신을 재해석했다. “노회찬은 세상의 공기를 바꾸는 게 목표였고, 6411은 이를 실현하려는 노회찬의 언어였다. 그러나 진보정당은 약자들에게 여전히 투명정당이다. 진보정당이 투명인간들의 당으로 거듭나려면 노회찬의 언어를 넘어서야 한다. 이것이 6411 정신”이라고 했다. 진보정치가 현재에 맞는 언어를 찾아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의 부재 5년을 관통했던 6411 정신, 진보는 어떻게 호명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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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리더의 ‘휴가 독서’ 리더의 말은 힘이 세다. ‘군자가 개념이 잡힌 언어를 쓰지 않으면 백성은 혼란스럽다’고 한 공자의 정명론(定命論)은 리더가 구사하는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리더의 말엔 다양한 세상, 다양한 삶과 소통하는 지혜와 직관과 철학이 묻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1년 여름휴가에 토머스 프레이가 쓴 <미래와의 대화>를 챙겨갔고 이후 ‘정보화 강국’을 미래 비전으로 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개조론>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등을 휴가철 도서로 권했고, 정부 요직에 추천 도서 저자를 중용하기도 했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1등은 없다>를 쓴 오영교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드골의 리더십과 지도자론> 저자인 이주흠 전 리더십비서관 등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축적의 시간>을 권유하고, 그 책 주제처럼 대한민국을 추적국가에서 선도국가로 정의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휴가지 도서 목록엔 <정의란 무엇인가> <로마인 이야기>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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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뉴욕 학생권리장전 1689년 영국 의회가 제정한 권리장전은 명예혁명의 산물이다. 명예혁명이 영국의 새로운 정치 시대를 열었다면 권리장전은 개인의 자유와 시민권을 확립했다. 미국에선 독립혁명 직후 개인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발효된 수정헌법(1~10조)을 권리장전이라고 불렀다. 인권을 명문화한 헌법 정신이며, 권력과 시민권의 균형추 역할로 민주주의의 정신적 토대를 제공한 것이 권리장전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5일 “뉴욕 학생권리장전은 학생의 권리와 함께 책임과 의무도 비슷한 비중이지만, 학생인권조례에는 권리만 있지 책임과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가 일부 학생들의 무책임한 행동을 방조한 결과 교권이 침해됐다는 논리를 펴기 위해 뉴욕 학생권리장전을 끌어온 것이다. 하지만 2010년 학생인권조례를 자문했던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학생권리장전은 개인주의가 강한 미국 사회 특성을 반영해 학생 책무를 별도로 규정(24개 항목)했지만, 학생인권조례는 시민적 공화주의가 근간이라 학생 책무를 따로 둘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학교 공동체 속에서 학생 간 권리를 조화롭게 조절해야 한다는 취지가 학생인권조례 전반에 깔려 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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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보수의 사상전, 그 두번째 화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반국가세력’을 말하며 문재인 정부를 겨냥했다. 또, 대북 적대관을 가진 김영호 교수를 통일부 장관에 지명하고 극우 유튜버 김채환씨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에 임명했다. 이는 윤석열 정부를 ‘극우’로 규정짓게 한 사건이다. 그전만 해도 윤석열 정부 성격이 보수인지, 전체주의인지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분분했다. 통치 기조는 반문재인을 앞세운 우파 자유주의, 통치 방식은 검찰식 권위주의라는 공감대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취임 2년 즈음부터 극우 인사들이 정권 요직에 중용됐고, 권력 주변에서나 맴돌던 극우적 발언이 권력 중심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이데올로기를 공유하지 않은 세력을 ‘이권 카르텔’로 낙인찍고, 사회적 합의를 거친 중요한 가치가 속절없이 무너졌다. 한 사회학자는 이 현상을 1932년 독일 상황에 빗대며 “히틀러 집권 뒤 극우주의자들이 정권 핵심 세력이 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년”이라고 했다. 속도와 내용 면에서 윤석열 정부의 퇴행은 권력 속성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준비된’ 극우화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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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박원순 다큐 ‘첫 변론’ 서지현 검사의 고발 후 각계각층에서 일어난 ‘미투(Me Too)’ 운동은 성폭력이 이 세상 폭력의 밑바닥임을 확인케 했다. 작은 권력이라도 있는 곳이면 어디든 성폭력이 침투해 있었다는 게 속속 드러났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통계를 보면, 그중에서도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해자 관계가 가장 많은 곳이 직장이었다. 2020년엔 30.1%, 2022년엔 22%를 점했다. 상담소는 “직장은 우월한 지위와 권력을 이용한 성범죄가 발생하기 쉬운 대표적인 단위”라고 했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권력형 성범죄의 골격을 형성한다는 사실도 미투 운동에서 속속 조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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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제3세력의 도전 역대 제3세력은 정치 불신을 비집고 등장했다. 늘 거대 양당 체제의 불만이 쌓이고 무당층이 증가한 전국선거 전에 깃발을 들었다. 지역·노선·보혁 사이의 정치 공간을 노린 것이다. 1996년 자유민주연합, 2002년 정몽준의 국민통합21, 2007년 창조한국당, 2016년 안철수의 국민의당 등이 대표적이다. 자민련은 그해 15대 총선에서 50석, 국민의당은 20대 총선에서 38석을 차지해 원내교섭단체 수준의 세력화에 성공했다. 내년 4월 22대 총선 앞에도 제3세력이 꿈틀거리고 있다.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으로 신당의 물꼬를 텄다. ‘오는 9월 발족, 수도권 중심 30석’ 로드맵을 내놨다. 금 전 의원은 “정치 불신이 극에 달해 국민들은 새로운 구상을 갖고 있다. (신당은) 지금까지와 다른 새로운 틀”로 갈 거라고 했다. 양향자 무소속 의원은 오는 26일 신당 창당 발기인대회를 연다. 일찌감치 현역 의원 가세설도 흘리고 있다. 여권 내 이준석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 야권 내 호남 중진들은 호사가들이 불지피는 신당설에 고개를 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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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민주당, 간절하고 절박한가 정치는 점진적 개혁을 지향한다. 그래서 정당 혁신은 오래 걸린다. 그만큼 오래갈 수 있는 혁신이 중요하다. 자원이 많지 않은 야당의 혁신은 더 어렵다. 대부분의 야당 혁신이 자해적 권력투쟁에 그친 이유다. 맨 처음 인물과 시스템을 두고 격렬한 투쟁이 시작된다. 그러다 지도부 권력을 손상시키지 않는, 참신한 외부 인사로 물갈이와 제도 정비를 시도한다. 정치 시장에 내부 수술을 맡겨도 안 되면 다음은 비대위 출범, 당명 변경이 동반된 신장개업이다. ‘혁신은 실패하고 방만 바꿔버리는’(김수영의 ‘그 방을 생각하며’ 인용) 식이다. 책임정치는 기대 난망이다. 혁신 주체가 다음엔 혁신 대상이 되고, 혁신할수록 기득권만 공고해지는 악순환 앞에 혁신 실패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수 있겠나. 하물며 거대 입법권력이라 온갖 기득권이 얽힌 더불어민주당은 오죽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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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최고의 시대에 최악의 시절을 지나며 프랑스 혁명 전후 폭풍전야와 혼돈의 새벽을 다룬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는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서문으로 시작된다.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절이었고,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서문은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절망의 겨울이었다”는 말로 이어진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년이 되는 10일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문장을 생각한다. 최고의 시대에 만난 최악의 시절…. 미래에 희망이 있고, 그 희망이 아름다울 때 꿈이라 부를 수 있다. 사람에게 꿈이 있듯 나라에도 꿈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나라의 꿈이 나의 꿈이 되는 때는 최고의 시대라 할 수 있다. 문화국가론을 외쳤던 백범 김구의 꿈, 흑인해방을 넘어 미국의 자유와 평등을 말했던 마틴 루서 킹의 꿈을 당시 국민들이 받아들인 것처럼. 대한민국 시민들은 탄핵과 촛불집회를 거치며 헌법 제1조를 체화했다. 태극기부대조차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보이지 않는 적’ 코로나19와 싸웠던 3년은 불평등이라는 상처가 드러난 시간이지만 성찰과 공존을 깨닫게 된 치유의 시간이기도 했다. 조금은 더딜지라도 나와 나라의 꿈이 만나는 최고의 시대를 열어가는 중이었다. 적어도 윤석열 정부를 겪기 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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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전직 대통령이 사는 법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큰 공적 인물이다. 그래서 ‘역사적 개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가난한 이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을 벌였고, 세계 곳곳에서 인권 옹호자, 분쟁 해결사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재임 당시엔 ‘인기 없던’ 대통령이었던 그를 두고 미국인들은 “처음부터 전직 대통령이었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고 할 정도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은 기념관·연구소를 만들고, 세계를 돌며 강의에 나서기도 한다.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실천하는 대통령들도 있다. 우루과이의 호세 무히카 대통령은 대통령궁을 노숙인 쉼터로 개방하고 자신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핀란드 첫 여성 대통령 타르야 카리나 할로넨은 12년 임기를 마친 뒤에는 저잣거리에서 이웃들과 수다를 떠는 시민의 삶을 보내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해도 대통령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는 인식, 시민 개개인이 권력의 주체라는 정치 문화가 이들을 평범한 자연인의 삶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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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정치는 짧고 사랑은 길다 어떤 인생이든 ‘피가 도는 한순간’이 있다. 화양연화가 오기 전 깊은 고통과 원망, 후회로 움푹 파였던 세월을 가리킨다.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4·5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당선됐다. 강 의원과 진보당의 ‘피가 도는 한순간’은 짧지 않았다. 현실적으론 당명 개정 후 3년, 정치적 의미까지 보태면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이후 8년이나 된다. 강 의원 당선과 진보당 부활에 해석이 분분하다. 우선 윤석열 정권과 집권 여당 심판론이 통했다는 것이다. 강 의원은 선거운동과 당선 소감에 이어 지난 10일 첫 등원길에도 “윤석열 검찰독재 심판”을 말했다. 하지만 호남은 보수 심판론이 우세한 지역이라 현 정권 심판을 승리 요인이라 하기엔 다소 머쓱하다. 생활·민생 정치를 당선 동력으로 꼽는 의견도 있다. 진보당이 선거 3개월 전부터 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 음식을 챙기고, 새벽운동 나온 주민들과 호흡하며 거대 양당과 차별화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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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밥 한 공기’ 돌격대 정치 ‘강 대 강’ 대결 정치가 극심해질수록 돌격대를 자처하는 정치인이 속속 등장한다. 권력투쟁이 일상화된 정치판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기술’이 필요하다. 그 기술은 독한 말일 때가 많고, 남성 의원보다 여성 의원이 부각되는 일도 점점 늘고 있다. 2004년 17대 총선 비례대표부터 여성 50% 할당과 교호 순번 배치를 규정한 선거법이 적용돼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두 자릿수로 늘었고, 정치의 야수적 속성을 따질 때 남녀를 구분할 잣대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반복해서, 여성 돌격대로 도마에 오르는 이가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이다. 여당 최고위원인 조 의원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2021년 1월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막말로 공격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를 비판한 고 의원을 향해 ‘조선시대 후궁’이라는 혐오적 표현을 썼다. 오 후보 승리를 위해 여성이 모욕스러워 할 독설을 여성이 날리며 기동 타격대로 나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