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영
정치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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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이재명, 한번은 돌파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해석 투쟁으로 소란스럽다. 표결 공방은 이내 이 대표 거취 논란으로 번졌다. 총선 리스크와 정계개편 밑그림이 연동됐다. 그러다 지난 8일 더미래 기자회견 후 이 문제가 사그라들었다. 비명계 일각에선 “이 대표가 물러나도 전당대회에서 이길 가능성이 낮다”는 좀 더 현실적 이유를 들었다. 그러면서도 “장기전”이라는 표현을 썼다. 사법 리스크가 살아 있는 한 이 대표 거취는 언제든 뇌관이라는 ‘느긋함’이다. 추가 구속영장, 당 지지율을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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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그토록 치밀하고 친절한 적, 소선거구제 나경원 전 의원이 결국 전당대회 출마를 포기했다. 그가 끝까지 돌파하길 원했다. 검찰 정권이 정치를 만만하게 대하지 않길 바랐고, 권력의 완력에 무너진 여당 전대가 제자리를 찾길 바랐다. 팜파탈이나 여장부 아니면 버티기 어려운 여성 정치도 성장하길 바랐다. 그러나 그는 주저앉았다. 나경원 사태는 유신 시절 ‘코털 사건’을 연상케 한다. 1971년 야당이 오치성 내무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키자 박정희 대통령 명령을 받은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김성곤 공화당 의원 등의 코털을 뽑아버린 사건이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의 유승민 원내대표 제거 사건도 있었지만 나경원 사태는 그때와 비견할 수 없는 막장 드라마다. 권력의 탄압을 넘어 여당 전체를 집단적으로 줄 세운 모습은 정당 민주주의 붕괴라 불러도 될 만하다. 한 정당 안에서도 내 편 아니면 적으로 구분짓는 현상이 심각해졌다. 정치 전반적으로 혐오와 불신이 구조화된 상황에서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집권여당 전체가 공천이라는 권력의 불심검문에 속수무책으로 걸려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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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어쩌다 정치 기자가 되어 12월31일과 1월1일 사이엔 도랑이 있다. 작년과 새해는 오늘과 내일일 뿐인데도. 올해 건너야 할 도랑은 유난히 넓다. 지인 허대만, 정태인, 김재용이 세상을 떠났다. 기자와 취재원으로 만났던 노옥희 선생까지.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고 했다. 사마천에 따르면 이 차이를 가르는 것은 죽음의 방향이다. 이들은 한 뼘이라도 나아가기 위해 진보의 무게를 감당했던 사람들이다.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이다. 지난 25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쓴 조세희 작가가 별세했다. 마음속 기둥 하나가 뽑히는 느낌이었다. 뭐든 ‘첫’이란 관형사가 붙으면 독하고 강렬해진다. 첫사랑, 첫 기억…. <난쏘공>은 나의 ‘첫’ 소설이었다. 당시 소설들과 달리 가진 자의 죄와 가지지 못한 자의 고통이 다투는 계급 문제와 이 전쟁에서 매번 지는 가지지 못한 자의 소외를 다뤘다. 주인공 난쟁이와 앉은뱅이는 산업화 시대에도 가장 멀리 있는 타자였다. 그러나 도시 빈민 김불이씨 가족의 낯선 현실이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내 이웃이 겪는 익숙한 현실임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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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가장 정치적인 애도 2022년 10월29일 밤, 서울 용산 이태원동 119-7번지 골목에서 두 번째 세월호가 침몰했다. ‘두 번째 세월호’란 말을 수차례 쓰고 지웠다. 한 번 비극을 겪었다고 다음 비극이 슬프지 않은 건 아니다. 웃다가도 심란하고, 자다가도 수시로 깼던 지난 한 달이었다. ‘두 번째 세월호’는 참사 규모만 해당하지 않는다. 유족을 향해 ‘시체장사’라 하더니 이번엔 ‘감성팔이’라 비난하고, 꼬리 자르기식 책임 전가가 등장하는 장면도 8년 전과 유사하다. 애도와 추모를 탈정치로 몰고 가려는 시도 또한 낯설지 않다. ‘두 번째 세월호’는 국가 권력의 총체적 무능이 한 사회를 유지하는 상식적 기준을 무너뜨렸고 정치적 내전을 불사했던 상황을 집약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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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윤석열·이재명의 적대적 공생 정치 스스로 사라진 게 아니라 국민들이 정치를 버린 수준까지 이르렀다. 정치가 있다면 단 하나,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적대적 공생뿐이다. 윤 대통령 리스크가 이 대표를, 이 대표의 리스크가 윤 대통령을 살리는, 역설의 정치다. ‘윤석열 리스크’의 핵심은 고립이다. 윤 대통령에게 여당은 자기 세력이 아니다. 신화가 있는 정치인도, 가치의 리더도 아니다. 이런 처지라면 핵심세력을 확장하려는 노력이 상식적이다. 그마저도 어렵다면 관료를 조직화했던 역대 대통령의 경로라도 따라야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집권 6개월여 만에 권력기관 1급 관료 상당수를 인사조치했다. 정권 초 권력기관에 파견된 1급 관료들은 각 부처 인재들이다. 이들이 짐을 싸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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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허대만과 허대만들의 동행 한 시절 깊게 연대한 누군가의 죽음은 내 삶을 성찰하게 한다. 이때 누군가의 죽음은 소설가 박상륭이 통찰했던 ‘공문(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닌’ 것이 된다. 허대만 전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 포항에서 1995년 전국 최연소 시의원으로 당선됐지만 이후 7번 선거에서 7번 모두 낙선했다. 포항에서 민주당 깃발을 들고 30년 가까이 정치를 한다는 것은 ‘악마의 맷돌’에 인생을 갈아넣는 일이다. 스스로에게 가했던 심적 질타는 얼마나 매서웠을까. 결국 그는 쓰러졌다. 두 번의 시한부 선고에도 여러 해를 넘겼지만 지난 8월22일 생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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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윤석열 정부의 최전선, 김순호 최전선은 적과 가장 가까운 전장이다. 전투에서 최전선이 없으면 전진할 수 없고, 최전선이 버텨야 뒤로 밀리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최전선이라는 말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정치적 의미의 최전선은 과거가 침범 못하게 막고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이 최전선이었다. 뒤로 밀리진 않았지만 대전환 시기를 헤쳐나가진 못했다. ‘다음’에 대한 기대가 윤석열 정부를 낳았다. 그러나 지금 최전선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위해, 어디에 깃발을 꽂고 싸워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 콩자루가 터져 여기저기 콩이 난무하는데도 뭐부터 쓸어담아야 할지 허둥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 20%대가 이를 시사한다. ‘매우 잘못했다’는 의견이 30%대인 조사 결과도 있다. “선거는 내가 좋아하는 인물을 고르면 된다는 의미에서 시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행위와 같다. 둘 사이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물건을 잘못 사면 피해는 구입자에게 귀속되지만 선거는 그 인물을 택하지 않은 타인에게 돌아간다.” 사회학자 욘 엘스터의 말이다. 그도 미처 짚지 못한 부분이 있다. ‘그 인물을 선택한 사람에게도’ 피해가 돌아가고 있다. 부정평가 30%대는 지지층도 등 돌린 결과다. 혹자는 윤석열 정부를 ‘이명박 시즌 2’라고 한다. 나쁜 정치이지만 이명박 정부는 개발·자본 중심이라는 지향은 있었다. 윤석열 정부는 그마저도 없다. 그러니 인사니, 정책이니, 리더십이니 쇄신의 우선순위를 매겨본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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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이런 세대교체는 없다 68혁명은 젊은 세대의 분투가 세상을 바꾼 역사다. 이들은 전쟁의 상흔을 잊은 기성세대에 반기를 들었다. 낮엔 시위로, 밤엔 대항문화로 혁명의 중력을 키웠다. 계급 투쟁만 혁명으로 치부했던 기성세대는 이들을 철부지 취급했다. 세대 갈등은 68혁명의 화두였다. 68세대는 해나 아렌트 같은 당대 거인들과 겨뤘고, 반전과 권위주의 타파라는 시대정신을 실천했고, 전 세계 청년들과 일체감을 이뤘다. 68혁명은 환경, 페미니즘, 소수자 운동 등 전환기 시대까지 영향을 미쳤다. 1969년 박정희 정권이 3선 개헌에 돌입한 뒤 야당인 신민당에서 40대 기수론이 등장했다. 김영삼·김대중·이철승 의원이 주역이었다. 이들은 민주주의 쟁취, 비타협 투쟁, 선명 야당이라는 화살을 당수 유진산에게 겨냥했고, 유진산은 이들을 ‘구상유취’라고 깎아내렸다. 1971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40대 기수론은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8년 평민연을 시작으로 4차에 걸친 외부 인사를 영입하며 야당 정체성을 다졌다. 당시 정치세력이 소홀히 다뤘던 ‘민주화, 인권, 평화통일’ 가치를 강령으로 채택했다. 김대중 정치 자체가 시대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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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임미애의 이의제기 지방선거는 정치의 본질이다. ‘이 골목 주민이 한 말을, 저 골목 주민도 했다면 그게 민심’임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골목의 욕망이 마을의 서사로 나아가는 화두가 나의 일상임을 구체적으로 깨닫게 한다. 지방선거는 공중전에 묻어가기도 하는 대선, 총선과 달리 직접 온몸을 불사르는 지상전이다. 그 지상전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참패했다. 3·9 대선 대비 약 650만표(최소 42.6%)가 이탈했고, 호남은 37.7%만 투표했고, 핵심 지지 기반인 40대는 40%대 초반 투표율에 그쳤다. 심판, 응징도 과하다며 용도 폐기라는 평가도 있다. 쏟아지는 반성문은 오십보백보다.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 남측 빨갱이를 지칭한 ‘수박’이 등장하고, 대선 득표가 순정한 지지인 줄 착각하는 ‘졌잘싸’가 회자된다. 마무리는 이번에도 김대중·노무현 정신이다. 하지만 유산도 탕진했다. 호남 투표율은 전국 최저, 김해시장 선거는 15%포인트 차로 졌다. 그 와중에 국민의힘은 5·18과 봉하를 찾고, 민주당 출신 인사들을 후보로 세우고, 지난 대선 땐 대구·경북(TK)에서 탄핵까지 용인했다. 내부 협치는 물론, 상대의 정통성을 수용하는 외부 협치도 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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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집무실 이전’이라는 권력의 좁은 총구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4일 현재 열흘 가까이 청와대 집무실 용산 이전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보수 언론까지 초과권력 행사, 불통, 안보 공백, 졸속 절차라고 비판한다. 그래도 거둬들일 기미가 없자 이전 배경을 놓고 온갖 해석이 등장했다. 어느 순간부턴 합리적 추론이라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 초보라고 하지만 권력에 1㎝ 붙고, 1㎝ 멀어질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아는 특수통 검사 출신 아닌가. 두 달 만에 집무실을 국방부 청사로 옮기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몰랐을까. 귀를 닫고 경주마처럼 달리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이슈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집무실 이전이 몰고올 정치적 파장에 주목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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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나의 ‘20대 대선’ 버킷리스트 20대 대선 전 마지막 칼럼에 꼭 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1987년 3월 <한라산>을 발표했던 시인 이산하. 제주 4·3 항쟁은 <한라산>을 통해 비로소 역사가 됐다. 오랜 절필 후 이산하는 지난해 새 시집 <악의 평범성>을 출간했다. 나치 전범 아이히만에 대한 심경을 밝힌 한나 아렌트처럼 “이 시집엔 희망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없다”고 고백했다. 그는 지금 몸까지 아프다. 많은 지인들은 그가 버텨서 견뎌냈던 그 시절의 빚을 ‘선불 조의금’으로 갚고 있다. 나는 이번 대선을 ‘선불 조의금’으로 건네고 싶었다. 뻔하지 않은 내일을 안기고 싶었다. 낡은 정치와 또 다른 이산하인, 나의 대결. 20대 대선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러나 비호감 대선의 바닥은 생각보다 깊었다. ‘누가 잡아도 나라 안 망한다’는 말이 16년 만에 배회한다. ‘이(저)쪽이 되면 다 죽는다’는 공포감도 짙다. 내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지지자들의 성숙한 지지는 대선 후보가 시대정신을 읽게 하는 힘이다. 노혜경 전 노사모 대표는 “낡은 정치를 청산하자는 노무현 후보의 대선 구호가 먹힐 수 있었던 건 노사모가 낙선운동이 아니라 당선운동을 전개했고, 정치를 움직여온 기존 방식(돈, 조직)을 바꿨고, 이해관계가 아닌 신뢰와 존중을 정치적 언어로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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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창 윤석열이라는 ‘텅 빈 기표’ ‘텅 빈 기표’를 대선 정국에 인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누구나 말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는, 어떤 자리에 놓아도 아무 의미 없이 해석되는 바로 그 ‘텅 빈 기표’. 이번 대선은 정치라는 ‘텅 빈 기표’를 드러냈다. 한 시대는 성공과 실패의 총합으로 만들어진다. 정치는 이 명제가 적나라한 분야이다. 선거가 특히 그렇다. ‘져도 이긴 선거’라는 평가가 있듯 반드시 성공의 기억만 각인되지 않는다. 실제 패자가 더 주목받는 경우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버니 샌더스를 들 수 있다. 비록 낙선했지만 각각 1995년 부산시장·2000년 총선(부산 북강서을)을 ‘지역주의 균열’, 2016년 미국 민주당 경선을 ‘민주적 사회주의’로 뒤흔들었다. 거대한 저류가 어디를 향하는지 정치가 포착했던 시대였다. 2022년은 어떤 성공과 어떤 실패가 빚어낸 시대로 기억될까. 성공은 고사하고 ‘이런 대선은 없었다’는 말만 떠다닌다. 거대 정당 후보들이 뭘 “하겠다”고 약속할수록 불신만 커지는,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다. 시대정신마저 고작 정권교체와 정권재창출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