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영
정치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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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영의 이면 총선이 지운 이름 ‘민주시민’ 알렉시 드 토크빌은 “선거에 의한 대의 공화제가 민주주의”라고 규정했다. 공익 논쟁의 무대가 민주주의이고, 이 과정에서 표출된 갈등을 다투면서 공익을 합의하는 게 정치(선거)라는 뜻이다. 이번 총선은 오래된 속설을 멀찌감치 비켜갔다. 가장 나은 후보를 가려내는 역할을 내던진 정당, 경쟁자를 적으로 간주한 정치인, 국가와 시민사회의 체인벨트 역할을 포기한 (무쟁점) 정치. 어디에도 정치와 민주주의의 권위는 없다. 한 정치학자는 “모든 정당, 보편적인 정치가 붕괴됐음을 확인한 첫 선거”라고 한탄했다. 주권자 입장에선 더 나쁜 세력을 막기 위해 덜 나쁜 세력에게 표를 준 선거로 변질됐다. 최선이 없다면 차선을 택했던 기존 선거와 달리 최악을 면하기 위해 차악을 골라야 했던 것이다. 차악이라 해도 ‘악’은 악이다. 악이 만들 세상에 대한 신뢰가 있을 리 없다. 선거 내내 자질 논란을 빚었던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지역구에서 승패 득표 차(2377표)보다 무효표(4696표)가 더 많았던 것이 이를 입증한다. 그런데도 총선 2주가 지나도록 승자의 성찰도, 패자의 반성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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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주권자의 시간이다 4·10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28일 개막됐다.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출발한 여야는 각각 ‘심판론’을 호소하며 본격적인 선거전에 나섰다. 국민의힘은 ‘이(재명)·조(국) 심판’을 앞세워 ‘거야 심판론’을 지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범죄자 세력이 선량한 시민들을 지배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이·조 심판을 위해 힘을 모아달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실이 있는 서울 용산에서 출정식을 갖고 ‘정권 심판론’을 외쳤다.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2년 만에 퇴행시킨 장본인”이라며 “윤석열 정권 심판은 대한민국 정상화와 민생 재건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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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영의 이면 박용진이 드러낸 어떤 상처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에 엎드린 그를 보며 착잡했다. 2011년 혁신과통합 합류 뒤 그는 민주당의 대변인, 재선 의원으로 활동했다. 오래전 “노무현 정신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한 그의 자책은 14년차 당원 정체성의 기반이 됐다. 너럭바위를 짚고 주저앉은 그의 등은 꽤 오래 굽어 있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22대 국회로 가던 그의 발걸음은 지난 19일 결국 끊겼다. 그의 도전은 민주당 경선 사상 초유의 기록을 남겼다. 세 번의 경선을 치르는 동안 세 번의 페널티(감산 30%)를 받았다. 현역 의원 하위 10% 공개부터 권리당원 투표율 75%, 과반 득표에도 공천 승계 불발, 55% 감산을 감수한 마지막 전략경선. 전 당원 투표라는 기이한 룰 탓에 서울 강북을 국회의원 예비후보가 호남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도 낯선 풍경이었다. 가히 ‘박용진 사태’라 할 만하다. 어쩌랴, 큰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있는 고난의 서사를 갖게 됐다는 말 정도가 그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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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민주당의 인재영입 ‘유감’ 선거 때마다 다양한 인사들이 여야의 얼굴로 나선다. 그 정당의 지향·가치에 부합하는 공천을 하고, 그런 인사를 내세워 선거에 임해야 하는 건 인재 영입의 중요한 원칙이다. 그래야 민주주의도 강화되고 사회를 개혁·통합하는 정당 본연의 기능을 다할 수 있다. 정당은 ‘모셔 오려는’ 인재들에게 영입 목표와 비전을 제시하고, 영입된 인재들이 그 정당의 노선·비전을 상징하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인재 영입이 정당 혁신, 정치 개혁의 결과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더불어민주당이 4월 총선에 투입할 충청권 인재로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캠프에서 정책총괄지원실장을 지낸 신용한 전 서원대 교수를 7일 영입했다. 신 전 교수는 박근혜 정부 땐 대통령직속 청년위원장을 맡았고 2018년 지방선거에선 충북지사 후보로 나서는 등 주로 여권에서 활동했다. 그는 “윤석열 대선 후보 시절 정책 실무책임자로서 작금의 정책에 큰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며 “결자해지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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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싫다’ 2010년대 중반 페미니즘 리부트 운동이 일어났을 때 젊은 여성들은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죄와 벌)라는 구절을 소환하며 김수영을 여성혐오 시인의 첫 줄에 세웠다. 반면 2013년 무렵 ‘안녕들 하십니까’ 릴레이 대자보가 나붙던 시절엔 언론자유를 다룬 그의 시(김일성 만세)를 패러디한 글이 쏟아졌다. 김수영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분단, 4·19 혁명과 반동을 겪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시대와 불화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갔다. 포로수용소에 2년이나 갇혔던 자신을 친공 포로도, 반공 포로도 아닌 민간 억류인이라 했던 것처럼. 적당히 뭉개지 않고 평생을 시대의 이분법과 싸운 현재진행형의 시인 김수영은 그래서 가장 정치적인 시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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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비례 1번’의 탈당 2004년 총선에서 도입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복수의 정당과 다양한 각계 대표자들을 국회로 진출시켰다. 비례대표 의원들은 소속 정당 지지자를 대표하는 대리인 성격이 강하다. 그중에서도 비례 1번은 여야의 지향점·비전을 대표하는 ‘대리인 1호’로 간주된다. 비례대표 1번의 탈당, 그것도 진보정당 비례 1번이 당을 떠나는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정당 정치 퇴행일 뿐 아니라 진보정당 가치를 최선두에서 부정하는 ‘치명적 사건’이다. 정의당 비례 1번, 류호정 의원이 15일 탈당을 선언했다. 류 의원은 정의당이 4월 총선에서 진보정치 세력과 추진하는 선거연합신당을 운동권 최소연합이라고 몰아세우며 “더불어민주당 2중대로 가고 있는 정의당의 몰락을 막지 못했다”고 했다. 정의당의 정체성 정치를 지적하면서 사실상 민주당이 주도하는 범야권 비례연합신당에 정의당도 조만간 합류할 것이라는 비판이다. 조국 사태, 박원순 서울시장 조문 파동 당시 류 의원 입장을 보면 ‘민주당 2중대론’은 탈당 사유로 설득력이 없지 않다. 평소 진보정치라는 정체성(대리인)보다 의원 개인의 자율성(수탁인)을 중요시했던 성향도 탈당 동력이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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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이재명이 버려야 할 아홉켤레 구두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박정희 정권 개발독재에 맞섰던 ‘성남(광주대단지) 민권운동’을 다뤘다. 서울 도심개발 지역에서 쫓겨나 광주대단지로 강제 이주된 주인공 안동 권씨에겐 윤기 나는 구두 열 켤레가 있었다. 딱지에 불과한 전매입주권, 칠흑 같은 루핑집, 갚을 길 없는 토지취득세 고지서. 이런 진흙탕 같은 삶과 반짝이는 구두 꾸러미는 어울리지 않았다.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두 페르소나를 품고 살았던 권씨였다. ‘이래 봬도’ 대학 나온 사람 권씨와 ‘광주대단지 토지불하 가격시정 투쟁위원회’ 위원장 권씨라는 간극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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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공룡 선거구 “안 가본 데가 많아 ‘갈수록 내 지역구는 면적이 늘었다’라는 푸념이 저절로 나왔다.” 4개 시군이 한데 묶인 선거구에 출마했던 정치인이 한 말이다. 전직 광역단체장은 “지역구가 너무 넓어 장이 서는 날에만 겨우 얼굴을 비쳤다”며 복수의 접경지에서 치른 선거를 기억했다. 선거를 민주주의 꽃이라고 한다. 선거구는 꽃을 심고 가꿀 땅이다. 그 구역을 정하는 과정은 공정해야 한다. 그래서 선거구가 특정 정당에 유리하게 획정되는 ‘게리 멘더링’을 막기 위해 선거구 법정주의’가 채택되고, 표의 등가성과 지역 불균형 해소를 지향한다. 그러나 선거구 법정주의는 점점 격차가 벌어지는 지역 대표성 문제를 키웠다. 이 사각지대에서 등장한 괴물이 바로 ‘공룡 선거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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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거꾸로 가는 선거제…민주당이 막아야”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지난해 5월22일 “30여년의 공직 여정을 마무리한다”며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크고 작은 정치권 호출에도 꿈쩍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던 김 전 총리가 지난 27일 경향신문과 첫 언론 인터뷰를 했다. 그는 “선거제 개혁 논의가 후퇴하면 안 된다는 절박감 때문에 나서게 됐다”고 했다. “정치만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고 있다. 불신의 정치를 바꾸는 틀이 선거제다. 그런데 어렵사리 물꼬(준연동형 비례제)를 트고도 위성정당을 만들어 정치를 희화화시킨 정치권이 다시 퇴행의 길을 가려 한다면 국민의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다.” 김 전 총리는 이 인터뷰가 정치 재개 선언은 아니라고 했지만 “내가 기여할 상황이 되면 움직이겠다”며 역할론을 부인하지 않았다. 다음은 김 전 총리와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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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부겸 “거꾸로가는 선거제, 민주당이 막아야”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지난해 5월22일 “30여년의 공직 여정을 마무리한다”며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크고 작은 정치권 호출에도 꿈쩍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던 김 전 총리가 지난 27일 경향신문과 첫 언론 인터뷰를 했다. 그는 “선거제 개혁 논의가 후퇴하면 안 된다는 절박감 때문에 나서게 됐다”고 했다. “정치만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고 있다. 불신의 정치를 바꾸는 틀이 선거제다. 그런데 어렵사리 물꼬(준연동형 비례제)를 트고도 위성정당을 만들어 정치를 희화화시킨 정치권이 다시 퇴행의 길을 가려 한다면 국민의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다.” 김 전 총리는 이 인터뷰가 정치 재개 선언은 아니라고 했지만 “내가 기여할 상황이 되면 움직이겠다”며 역할론을 부인하지 않았다. 다음은 김 전 총리와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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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이준석 정치에 묻는다 2년 전, 정치권은 30대 야당 대표 선출에 화들짝 놀랐다. ‘이준석 돌풍’이다. 이준석 돌풍은 기존 정치에 세 갈래 맞바람으로 불었다. 정치교체, 정권교체, 세대교체였다. 낯선 ‘블랙 스완’인 그를 대표로 맞은 국민의힘은 “보수의 앙시앵레짐을 무너뜨린 체제교체”라고까지 평했다. (모호하지만) 공정·능력주의라는 좌표를 앞세웠고, 보수가 금기시한 사회적 의제도 건드렸고, 대구에선 “탄핵의 강을 건너자”며 상한선을 깼다. 대놓고 지지해도 민망하지 않은 ‘멀쩡한 보수’ 이준석의 탄생은 정치 전반의 변화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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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학전 소극장과 김민기 집 정리를 하던 중 오래된 책 사이에서 뭔가가 툭 떨어졌다. 1995년 극단 학전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 포스터였다. ‘새로운 계절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수고로 실려온다’는 말처럼 30년 전 빛바랜 포스터 한 장으로 겨울을 맞게 될 줄이야. 1998년 외환위기 사태 직후 연변에서 온 선녀는 지하철 1호선에서 고단한 서울의 삶과 만난다. 곰보할매, 빨간바지, 문둥이로 불린 밑바닥 인생들은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를 증명하는 이름이다. 선악 구도도, 딱 떨어지는 클라이맥스도 없이 시끄럽고 단조로운 소음으로 가득 찬 <지하철 1호선>은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몸부림밖에 없었던 이들의 인생, 그 자체였다. 비좁은 객석에 3시간 가까이 앉아 있으면 ‘지하철 1호선’에 탑승해 있는 것 같았다. 궤도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이들의 노래가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였다. 1994년 초연 이후 15년 동안 4000여회 공연되는 동안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지하철 1호선> 무대에 올랐고 시사풍자 뮤지컬의 원조로 평가받았다. <지하철 1호선>이 고단한 시대를 버텨낼 수 있었던 건 소극장 ‘학전’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