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영
정치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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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영의 이면 김건희라는 비극 2 지난 7월 국민의힘 전당대회 때 불거진 문자 파문은 한국 보수 정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위임받지 않은 권력이 대통령 직무에 개입한, 비공식 권력이 공식 권력을 정신적·현실적으로 압도한 사건이었다. 당시 나는 ‘김건희라는 비극’의 글에서 윤석열 정권의 실정을 가리는 ‘김건희발’ 불의에 익숙해지지 말자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처음 불행을 만난 듯 ‘순진한’ 분노가 필요하다고 했다. 두 달 만에 ‘김건희라는 비극’이 다시 등장했다. 이번엔 총선 공천 개입 의혹이다. 김건희 여사가 22대 총선에서 김영선 전 의원에게 지역구를 옮겨 출마할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뉴스토마토 보도에 따르면 김 여사 요청대로 출마지를 옮긴 김 전 의원이 공천에서 배제되자 화가 나서 김 여사와 나눈 텔레그램 문자를 현역 의원 두 명에게 보여줬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여권은 “허구”라 했고, 김 전 의원도 “김 여사와 문자를 나눈 적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왔고, 야당도 특검법 처리 때문에 갖고 있는 증거를 내놓지 않는단 말이 들린다. 대통령실과 한동훈 대표 측의 공천 불협화음, 정권 초부터 계속된 김 여사 의혹을 떠올리면 이번 사건을 미리부터 거짓이라고 단정할 이유가 없다. 이쯤만 해도 충분히 심각하고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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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영의 이면 ‘이재명의 민주당’, 이 지독한 균열 앞에서 처음에서 다음으로 가는 길엔 균열이 있게 마련이다. 다음, 그 다음은 진화와 후퇴를 거듭해야 다다르게 된다. 진화하기 보다 때로 바닥으로 가거나 후퇴하는 경우가 더 많을 수 있다. 그러나 바닥은 뭐든 받아내고 힘이 세다. 넘어지면 바닥을 짚고 일어서야 하고, 씨앗도 바닥에서부터 자란다. 진화의 역행이라는 균열을 이겨내기 위해선 성찰이 필요하다. 이 때 성찰은 바닥의 힘을 믿는 것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시인 송기원 만큼 균열과 성찰에 한 생애를 던진 이가 있을까. 특히 시는 그 인생의 가장 뜨거운 불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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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영의 이면 김건희라는 비극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휘젓고 있는 ‘김건희-한동훈 문자 파문’이 심상치 않다. 댓글팀 의혹까지 그야말로 일파만파 형국이다. 여당 한 중진 의원은 “심리적 분당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누가 무슨 의도로 반년이나 묵은 궁중 비사를 터뜨렸을까. 친윤(석열) 세력 기획설이 근거 있게 들린다. 사건이 알려진 직후 장예찬 전 최고위원의 잇단 폭로, 연판장, 기자회견 논란까지 기획설을 뒷받침하는 실행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이런 내막들이 사실이라면 친윤 기획설은 총선 참패 후 지속되는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로 봐야 한다. 윤 대통령이 거부한 채 상병 특검법을 한 후보가 (조건부) 찬성했는데도 지지층은 한 후보 편을 드는 현실까지, 여권 주류의 공포감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래서 용산 묵인하에 총선 책임론으로 한 후보를 흠집내 판 흔들기에 나섰단 것이 친윤 기획설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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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영의 이면 신경림의 당부 격변기 세계사의 위대한 정치인 중엔 시인들이 많다. 유럽의 대혁명기, 중남미의 반독재 저항사엔 파블로 네루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체 게바라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불의·부조리에 누구보다 예리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존재가 시인이다. 시와 정치가 가까웠던 것엔 언어로 시대정신을 만들었던 유사성도 있다. 그래서 시인은 최초의 예언자, 공적 발화자로 불렸다. 차이가 있다면 시는 인간의 내면을, 정치는 공동체의 내면을 향한다는 점이다. 광주정신이 지배하던 우리의 1980년대도 시의 시대였다. 김남주, 김지하, 박노해, 백무산 등이 기수였다. 이들은 군사독재의 질곡 최전선에서 자유, 민주주의, 노동해방의 깃발을 들고 영혼이 아픈 이들을 어루만졌다. 당시 국문학과 출신의 학생운동 리더들이 많았던 것도 “당대의 사회적 요구에 응답해야 할 책임을 지닌”(마야콥스키) 시의 과업을 돌아보게 한다. 그러니 시인을 어찌 정치인, 전사가 아니라 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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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영의 이면 총선이 지운 이름 ‘민주시민’ 알렉시 드 토크빌은 “선거에 의한 대의 공화제가 민주주의”라고 규정했다. 공익 논쟁의 무대가 민주주의이고, 이 과정에서 표출된 갈등을 다투면서 공익을 합의하는 게 정치(선거)라는 뜻이다. 이번 총선은 오래된 속설을 멀찌감치 비켜갔다. 가장 나은 후보를 가려내는 역할을 내던진 정당, 경쟁자를 적으로 간주한 정치인, 국가와 시민사회의 체인벨트 역할을 포기한 (무쟁점) 정치. 어디에도 정치와 민주주의의 권위는 없다. 한 정치학자는 “모든 정당, 보편적인 정치가 붕괴됐음을 확인한 첫 선거”라고 한탄했다. 주권자 입장에선 더 나쁜 세력을 막기 위해 덜 나쁜 세력에게 표를 준 선거로 변질됐다. 최선이 없다면 차선을 택했던 기존 선거와 달리 최악을 면하기 위해 차악을 골라야 했던 것이다. 차악이라 해도 ‘악’은 악이다. 악이 만들 세상에 대한 신뢰가 있을 리 없다. 선거 내내 자질 논란을 빚었던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지역구에서 승패 득표 차(2377표)보다 무효표(4696표)가 더 많았던 것이 이를 입증한다. 그런데도 총선 2주가 지나도록 승자의 성찰도, 패자의 반성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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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주권자의 시간이다 4·10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28일 개막됐다.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출발한 여야는 각각 ‘심판론’을 호소하며 본격적인 선거전에 나섰다. 국민의힘은 ‘이(재명)·조(국) 심판’을 앞세워 ‘거야 심판론’을 지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범죄자 세력이 선량한 시민들을 지배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이·조 심판을 위해 힘을 모아달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실이 있는 서울 용산에서 출정식을 갖고 ‘정권 심판론’을 외쳤다.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2년 만에 퇴행시킨 장본인”이라며 “윤석열 정권 심판은 대한민국 정상화와 민생 재건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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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영의 이면 박용진이 드러낸 어떤 상처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에 엎드린 그를 보며 착잡했다. 2011년 혁신과통합 합류 뒤 그는 민주당의 대변인, 재선 의원으로 활동했다. 오래전 “노무현 정신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한 그의 자책은 14년차 당원 정체성의 기반이 됐다. 너럭바위를 짚고 주저앉은 그의 등은 꽤 오래 굽어 있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22대 국회로 가던 그의 발걸음은 지난 19일 결국 끊겼다. 그의 도전은 민주당 경선 사상 초유의 기록을 남겼다. 세 번의 경선을 치르는 동안 세 번의 페널티(감산 30%)를 받았다. 현역 의원 하위 10% 공개부터 권리당원 투표율 75%, 과반 득표에도 공천 승계 불발, 55% 감산을 감수한 마지막 전략경선. 전 당원 투표라는 기이한 룰 탓에 서울 강북을 국회의원 예비후보가 호남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도 낯선 풍경이었다. 가히 ‘박용진 사태’라 할 만하다. 어쩌랴, 큰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있는 고난의 서사를 갖게 됐다는 말 정도가 그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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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민주당의 인재영입 ‘유감’ 선거 때마다 다양한 인사들이 여야의 얼굴로 나선다. 그 정당의 지향·가치에 부합하는 공천을 하고, 그런 인사를 내세워 선거에 임해야 하는 건 인재 영입의 중요한 원칙이다. 그래야 민주주의도 강화되고 사회를 개혁·통합하는 정당 본연의 기능을 다할 수 있다. 정당은 ‘모셔 오려는’ 인재들에게 영입 목표와 비전을 제시하고, 영입된 인재들이 그 정당의 노선·비전을 상징하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인재 영입이 정당 혁신, 정치 개혁의 결과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더불어민주당이 4월 총선에 투입할 충청권 인재로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캠프에서 정책총괄지원실장을 지낸 신용한 전 서원대 교수를 7일 영입했다. 신 전 교수는 박근혜 정부 땐 대통령직속 청년위원장을 맡았고 2018년 지방선거에선 충북지사 후보로 나서는 등 주로 여권에서 활동했다. 그는 “윤석열 대선 후보 시절 정책 실무책임자로서 작금의 정책에 큰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며 “결자해지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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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싫다’ 2010년대 중반 페미니즘 리부트 운동이 일어났을 때 젊은 여성들은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죄와 벌)라는 구절을 소환하며 김수영을 여성혐오 시인의 첫 줄에 세웠다. 반면 2013년 무렵 ‘안녕들 하십니까’ 릴레이 대자보가 나붙던 시절엔 언론자유를 다룬 그의 시(김일성 만세)를 패러디한 글이 쏟아졌다. 김수영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분단, 4·19 혁명과 반동을 겪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시대와 불화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갔다. 포로수용소에 2년이나 갇혔던 자신을 친공 포로도, 반공 포로도 아닌 민간 억류인이라 했던 것처럼. 적당히 뭉개지 않고 평생을 시대의 이분법과 싸운 현재진행형의 시인 김수영은 그래서 가장 정치적인 시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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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비례 1번’의 탈당 2004년 총선에서 도입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복수의 정당과 다양한 각계 대표자들을 국회로 진출시켰다. 비례대표 의원들은 소속 정당 지지자를 대표하는 대리인 성격이 강하다. 그중에서도 비례 1번은 여야의 지향점·비전을 대표하는 ‘대리인 1호’로 간주된다. 비례대표 1번의 탈당, 그것도 진보정당 비례 1번이 당을 떠나는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정당 정치 퇴행일 뿐 아니라 진보정당 가치를 최선두에서 부정하는 ‘치명적 사건’이다. 정의당 비례 1번, 류호정 의원이 15일 탈당을 선언했다. 류 의원은 정의당이 4월 총선에서 진보정치 세력과 추진하는 선거연합신당을 운동권 최소연합이라고 몰아세우며 “더불어민주당 2중대로 가고 있는 정의당의 몰락을 막지 못했다”고 했다. 정의당의 정체성 정치를 지적하면서 사실상 민주당이 주도하는 범야권 비례연합신당에 정의당도 조만간 합류할 것이라는 비판이다. 조국 사태, 박원순 서울시장 조문 파동 당시 류 의원 입장을 보면 ‘민주당 2중대론’은 탈당 사유로 설득력이 없지 않다. 평소 진보정치라는 정체성(대리인)보다 의원 개인의 자율성(수탁인)을 중요시했던 성향도 탈당 동력이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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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이재명이 버려야 할 아홉켤레 구두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박정희 정권 개발독재에 맞섰던 ‘성남(광주대단지) 민권운동’을 다뤘다. 서울 도심개발 지역에서 쫓겨나 광주대단지로 강제 이주된 주인공 안동 권씨에겐 윤기 나는 구두 열 켤레가 있었다. 딱지에 불과한 전매입주권, 칠흑 같은 루핑집, 갚을 길 없는 토지취득세 고지서. 이런 진흙탕 같은 삶과 반짝이는 구두 꾸러미는 어울리지 않았다.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두 페르소나를 품고 살았던 권씨였다. ‘이래 봬도’ 대학 나온 사람 권씨와 ‘광주대단지 토지불하 가격시정 투쟁위원회’ 위원장 권씨라는 간극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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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공룡 선거구 “안 가본 데가 많아 ‘갈수록 내 지역구는 면적이 늘었다’라는 푸념이 저절로 나왔다.” 4개 시군이 한데 묶인 선거구에 출마했던 정치인이 한 말이다. 전직 광역단체장은 “지역구가 너무 넓어 장이 서는 날에만 겨우 얼굴을 비쳤다”며 복수의 접경지에서 치른 선거를 기억했다. 선거를 민주주의 꽃이라고 한다. 선거구는 꽃을 심고 가꿀 땅이다. 그 구역을 정하는 과정은 공정해야 한다. 그래서 선거구가 특정 정당에 유리하게 획정되는 ‘게리 멘더링’을 막기 위해 선거구 법정주의’가 채택되고, 표의 등가성과 지역 불균형 해소를 지향한다. 그러나 선거구 법정주의는 점점 격차가 벌어지는 지역 대표성 문제를 키웠다. 이 사각지대에서 등장한 괴물이 바로 ‘공룡 선거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