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혜영
논설위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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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조제프 푸셰와 한덕수 ‘간보기’는 정치에서 고도의 처세술이다. ‘침묵, 중립적 태도, 명분 쌓기, 최후 행동’. 한 중진 정치인이 설명한 간보기 정치론이다. 겉으론 관망이나 거리두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상대 반응이나 여론 흐름을 보며 권력의 향배를 탐색하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간을 본다는 건 때로 유연하고 신중한 정치의 근육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생존에만 집착할 경우 간보기 정치는 기득권·특권에 기댄 기회주의라는 정치 술(術·재주)로 전락한다. 이런 기회주의는 자신의 그림자도 배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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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4·3과 작별하지 않는다 제주 4·3 사건은 정명(正名)되지 못한 역사다. 2003년 정부 보고서는 ‘1947년 경찰의 3·1절 발포 사건을 시작으로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1954년 9월21일까지 7년 7개월에 걸쳐 진행된 역사’라고 했을 뿐 4·3의 성격, 역사적 평가는 규정하지 않았다. 발생할 수 있는 학살의 모든 유형이 망라됐고 미군정·정부·토벌대·무장대 등 그 누구도 주민 학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건이라서다. 4·3을 보는 상반된 시선은 작가 현기영의 <순이삼촌>에도 등장한다. 주인공 상수의 사촌형은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했지만, 서북청년단 출신 고모부는 “전쟁이란 다 그런 것”이라며 군경을 옹호한다. 이처럼 수난과 항쟁의 소용돌이에 갇혀 있는 4·3의 현실은 현대사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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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권력형 성폭력과 2차 가해 “어떻게 지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의 인권을 빼앗겠습니까.” 자신의 비서를 성폭력한 혐의로 법정에 섰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최후 진술이다. 그러나 안 전 지사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결심공판까지 오면서도 그는 몰랐을 것이다. 이 최후진술이 피해자에게 얼마나 부당한 폭력이고, 무시무시한 공포인지를. 성폭력은 힘을 가진 이가 성적 언동으로 힘이 약한 이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그래서 성폭력은 권력형 범죄이지만, 특히 정치인이 가해자인 사건은 피해자에게 크나큰 압박이다. 가해자들은 막강한 위력을 무기 삼아 범죄를 부인하고, 음모론도 곧잘 편다. 용기를 낸 피해자의 고소·고발에 “왜 이제 와서”로 응수하기 일쑤다. 이들과 친소 관계로 얽혀 있는 비호 세력들도 피해자에게 회유와 압박을 서슴지 않는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건 때 ‘피해 호소인’이라는 말까지 등장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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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보수 논객들의 ‘윤석열 기각’ 경고 국가와 민족, 공동체 이익을 중시하는 것이 보수의 전통적 가치다. ‘보수의 아버지’ 에드먼드 버크의 말처럼 기존 사회질서를 존중하는 세력이 보수라는 점에도 이견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헌정질서, 민주주의’는 보수의 정치적 사명으로 꼽혀왔다. 2004년 ‘뉴라이트’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 보수도 이 궤도에선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뉴라이트는 “반공 일색의 종전 우파를 대체할 새롭고 세련된 우파”라며 세상에 나왔다. 박근혜 탄핵으로 주춤했던 뉴라이트는 윤석열 정부의 핵심 세력으로 재부상했다. 정부 요직만도 김영호 통일부 장관,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김광동 전 진실화해과거사위원장 등 한둘이 아니다. 3년간 ‘진보 좌파 척결’이 이들의 국정과제였고, 극우에 가까운 이념전도 불사했다. 2022년 화물노동자 파업을 ‘북한만큼 위험한’ 행위로 규정했고, 윤석열부터 정권 비판 세력을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고 공격했다. 퇴행과 극우화. 한국 보수가 이 두 단어로 설명되는 현실은 진보에도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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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정의엔 중립이 없다” 추기경의 울림 1974년 9월26일,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된 지학순 주교의 석방을 촉구하는 ‘순교자 찬미 기도회’가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렸다. 기도회는 사제들의 첫 시국선언이었고, 반유신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사제들은 시국선언에서 “한 사람의 집권자가 긴급명령이라는 권력남용으로 국민의 존엄성을 짓밟았다”고 비판하며 유신 철폐, 민주헌정 회복, 국민 기본권 존중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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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헌정수호 세력 압도적 승리 중요…윤석열 지지자 빼고 다 뭉쳐야” 경북 안동 출신으로 고려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했다. 박정희 시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투옥·제적된 전력이 있다. 영남대 교수를 지내며 민주주의·정당·사회운동을 연구했다. 장안대 총장, 대한정치학회장,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등 학계와 시민운동을 넘나들며 폭넓게 활동했다. 지금은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사회대개혁정책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 정당 정치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선거제 개혁, 진영대결을 넘어서는 연합정치 실현을 과업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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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전재국의 준동 작가 정아은은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의 북콘서트를 앞두고 지인에게 어려운 질문을 받았다. 전두환과 윤석열, 누가 더 나쁘다고 생각하나. 정 작가는 전두환은 폭력 행사형, 윤석열은 사적 이익 추구형 지도자로 표현했을 뿐, 즉답을 피했다.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이거나 잡아가두는 폭력 행사형 지도자가 전두환이라는 것이다. 사적 이익 추구형은 공적 의제에 관심 없지만, 공적 의제를 추진한다 해도 사적 이익에 도움 될 때만 밀어붙인다고 정 작가는 답했다. 대통령 윤석열을 이렇게만 보기엔 미흡했던 모양이다. “공사 인식이 없어 뭐든 할 수 있고 아무것도 안할 수 있다”고 정 작가는 한마디 보탰다. 어떤 일을 저지를지 예상할 수 없는 지도자가 더 위험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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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더 빠르게 행동하라” 공동체 위기가 닥칠 때마다 광장을 메운 여성들은 ‘새로운 집단’으로 조명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여성들은 언제나 저항의 광장을 지켜왔다. 광우병 촛불집회, 박근혜 탄핵 집회가 그랬다. 그러나 광장의 시간이 끝나면 여성들의 목소리는 외면당했다. 촛불 열기 속에 들어선 문재인 정부도 광장의 요구를 수용하는 데 인색했다. 소수자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이 촛불민심인데도 차별금지법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서 12·3 내란과 탄핵 정국에서 응원봉을 들고 선 여성들은 이번만큼은 쉽게 광장을 떠나지 않을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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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The buck stops here’ 대통령은 한 시대 국정의 최종 결정권자, 최후 책임자이다. 한가롭게 남 탓을 할 수 없는 자리다. 옛 왕조시대 임금들이 가뭄 때마다 기우제를 지낸 것도 하루하루 힘든 백성들의 삶에 정치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였다. 뉴스를 볼 때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도, 비가 오지 않아도 다 내 책임인 것 같다”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런 심경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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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전두환 휘호석 군사반란과 내란, 학살을 빼고 전직 대통령 전두환을 평가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것은 집권 후 폭압적인 공안 통치로 이어졌다. 그러나 2021년 10월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 윤석열은 그를 상찬했다. “5·18과 12·12를 빼면 전두환은 정치는 잘했다.” 그때 윤석열의 속내를 알아차려야 했다. 단순한 강경 우파 지지층에 대한 구애성 발언이 아니라 ‘집권하면 전두환식 통치를 하겠다’는 뜻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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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영의 이면 이번은 달라야 한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대혼란기를 인터레그넘 개념으로 설명했다. “위기는 정확히 말하면 낡은 것이 소멸해가고 있는데 새로운 것이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놓여 있다. 이러한 인터레그넘(권력의 궐위와 헌정질서 공백)에서는 극히 다양한 병리적 증상들이 출연하게 된다.” 그람시의 진단이 타당하다 해도 12·3 불법계엄 후 우리의 지난 두 달은 단순한 궐위와 공백의 시간이 아니었다. 낡은 것(수구 보수)의 소멸은커녕 그보다 더 낡은(극우 보수) 것의 등장이라는 위기에 직면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대통령 윤석열은 끊임없이 법 집행을 거부하더니 법원에 구속 취소를 청구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을 구속기소한 법원에 유감을 표한 것도 모자라 연일 헌법재판관을 향해 색깔론 공세를 펴고 있다. 국회에 폭력의 상징인 백골단을 세운 것도 이들이다. 지지자들은 1·19 법원 침탈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키며 집권 세력의 법치 농락에 공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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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영의 이면 ‘모든’ 윤석열과의 결별 최승호의 ‘대설주의보’는 1980년대 군사독재의 폭압을 대설(大雪)에 빗댄 시다. 시는 세상을 얼어붙게 만든 눈보라 군단을 백색의 계엄령이라고 했다. 2024년 12월3일, 백색의 계엄령은 현실의 언어가 됐다. 장갑차와 헬기를 앞세운 계엄군이 국회에 투입됐고 선관위 침탈을 시도했다. 접경지 강원도 양구에도 군인들이 드나들었다. 그날 밤 계엄이 성공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두건, 야구방망이로 무장한 계엄군이 선관위를 침탈하고 부정선거가 확인됐다는 발표가 나온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지피던 극우세력들이 광장을 장악한다. ‘수거(체포) 대상’들은 언제 체포·사살될지 모를 공포에 갇힌다. 북의 공격을 유도해 ‘전시·사변 또는 그에 준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소추안이 부결됐다면 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내란 사태를 일으킨 대통령이 복귀한 뒤 반대파를 색출한다. 탄핵 집회에서 응원봉을 들고 선결제에 동참했던 시민·기업은 직장을 잃거나 세무조사에 시달린다. 수많은 야권 인사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등 조작된 혐의로 정치생명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