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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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서울시장 내가 출마할 일은 없어…다른 역할? 그때 판단할 것” 김민석 국무총리는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의 ‘86세대 정치인’이다. 1990년 정계 입문 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발탁해 15·16대 총선(서울 영등포을)에서 당선되며 정치권 ‘젊은 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 패배하고 정몽준 대선캠프로 탈당한 후 정치자금법 위반 재판, 해외 유학으로 18년간 야인의 길을 걸었다. 21·22대 총선에서 잇따라 당선된 뒤 지난해 9월 윤석열 내란 가능성을 경고했으며, 더불어민주당 주요 선거를 총괄한 ‘전략통’으로 꼽힌다. 당 정책위의장·수석최고위원을 거쳐 지난 6월 이재명 정부 첫 국무총리에 지명됐다. -
여적 분노 미끼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매년 사회적 변화나 사람들의 관심사를 포착한 단어를 신조어로 정한다. 올해의 단어는 ‘분노 미끼’(rage bait)다. 이 말은 소셜 미디어에서 사용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단계를 넘어 분노나 불쾌감을 의도적으로 유도해 클릭·댓글 참여를 높이는 콘텐츠 전략이다. 지난해보다 사용 빈도가 3배 늘어난 ‘분노 미끼’가 소셜 미디어 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가장 잘 표현했다는 것이 선정 배경이라고 한다. -
여적 ‘초코파이 재판’ 무죄가 남긴 것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은 굶주린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 징역을 살았다. 밀렵꾼인 그의 사냥용 총이 발각됐다는 이유로 5년형이 추가됐고, 4차례 탈옥을 시도한 괘씸죄가 덧씌어져 형량이 늘어난 것이다. 장발장이 감당한 가중처벌은 이게 다가 아니다. 도망친 장발장을 감옥에 넣는 일이 과업이었던 자베르 경감도 있다. 장발장이 존경받는 ‘마들렌 시장’이 된 뒤에도 자베르는 “범죄자는 영원히 악하다”는 신념을 꺾지 않은 극단적 법 수호자이자 가해자였다. 감옥에서 나온 장발장을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 받게 한 ‘노란 여권’ 역시 그에겐 전과자 증명서라는 가중처벌이었다. -
여적 복종의 의무 법의 권한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갑’의 얼굴을 하다가도 진짜 일해야 할 때면 정권 뒤에 숨어 아무 판단도 하지 않는 ‘을’의 얼굴을 하는 조직. 똑똑한 관료일수록 조직 우선주의와 상명하복이 가장 유리한 생존 기술임을 치열하게 터득한 조직. (노한동,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중) 10년차 전직 공무원의 신랄한 고발록이 전하는 한국 공직사회의 현실이다. 책 곳곳엔 가짜 노동, 쓸데없는 규칙, 책임 회피로 둘러싸인 공직의 지옥도가 담겨 있다. 특히 저자는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가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건을 들며 “공직사회는 블랙리스트를 지시받고 실행할 때도 무기력했지만, 처벌과 조사가 끝난 후에도 통렬한 반성은 찾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이 거대한 침묵이 두려웠다고 한다. 그 자리에 자신이 있었더라도 항명하지 못했을 테고, 앞으로도 위법한 지시가 늘 있을 거라는 사실이 두려움의 실체였다. -
여적 민주노총 30년, 여전한 ‘전태일들’ 권영길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13일 전태일 추도식이 열린 마석 모란공원을 찾았다. 55년 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몸을 불살랐던 전태일, 세상은 ‘산업화의 그늘에 가려진 노동자를 드러낸 불꽃’으로 전태일을 기억한다. 권 지도위원은 올해만큼은 전태일을 다르게 추모하고 싶다고 했다. 먼지 속에서 하루 15시간 일하는 어린 노동자를 애처로워하고 버스비를 털어서 산 풀빵을 여성 시다(여공)들에게 나눠줬던 그 청년 재단사를 소환했고, “가장 아프고 낮은 곳을 향했던 그 마음이 지금 우리가 실천해야 할 전태일 정신”이라고 했다. 그렇게 산 전태일의 분신 이후 어린 ‘여성’들은 더 이상 전태일의 ‘불쌍한 여공’에 머물지 않았다. 동일방직·반도상사·YH무역 노조운동은 ‘0번 여공’으로 불리던 이들을 자존감 넘치는 노동자로 만든 사건이었다. -
여적 “한동훈 쏴죽이겠다” 전쟁범죄·쿠데타 같은 한 국가의 역사적 과오나 유혈 사태는 대부분 ‘군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그때 군의 진술은 국가폭력의 진상을 밝히는 무게 있는 증언일 수밖에 없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계엄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한 목격 군인들의 진술은 군 발포 명령을 추적하는 결정적 근거가 됐다. 나치 전쟁범죄를 단죄한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증인으로 선 독일군 고위 장성들은 “나는 명령을 받았지만 그 명령이 범죄인 줄 알았다”고 했다. 국제형사재판소가 “상명하복이라도 불법 명령은 거부해야 한다”는 원칙을 명문화한 데도 이들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다. -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트럼프, 저리 손 내미는데…김정은과 만날 가능성 50% 이상”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 김종인은 경제학자 출신 정치인이다.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의 손자인 그는 1981년 총선을 시작으로 5선을 모두 비례대표로 지냈다. 노태우 정부 보건사회부 장관·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일하며 의료보험·재벌개혁 정책을 설계했다. 1987년 9차 헌법 개정에서 경제민주화 조항 신설을 주도했다. 위기에 처했던 2012년 새누리당, 2016년 더불어민주당, 2021년 국민의힘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전국선거 승리를 이끌어냈다. 여야 넘나들며 해결사 역할을 한 그는 ‘여의도 포레스트 검프’ ‘킹메이커’로 불린다. -
여적 이시바의 아쉬운 고별사 종전 50주년인 1995년 나온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이 식민 지배와 침략전쟁을 했다”며 처음으로 과거사에 대한 정부 차원의 반성과 사죄를 밝혔다. 당시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를 표명한다”며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 세대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했다. 2015년 아베 신조 총리의 70주년 담화는 명백한 퇴행이었다. 아베 담화의 방점은 “다시는 전쟁의 참화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말보다 “이후 세대가 사죄하는 운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데 찍혀 있었다. 아베의 다짐처럼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를 마지막으로 일본 정부는 과거사와 관련해 주변국에 사죄하지 않고 있다. -
여적 정치인의 언어 ‘양비’로 불린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철학을 말로 전달하는 데 앞장섰던 참모였다. 새 시대의 첫차가 되고팠던 노 전 대통령 의지를 전하려다 보니 ‘노무현의 언어’는 늘 관성과 개혁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거칠고 뾰족하고 비타협적인 언어를 동원할 때가 잦았다. ‘우리가 옳다’는 신념으로 시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정치의 언어라고 확신한 것이다. -
여적 시민 개헌 이재명 정부가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개헌을 1호 국정과제로 확정했다. ‘국민주권의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새로운 헌정체계’를 맨앞에 내건 국정기획위원회 제안을 수용한 것이다. 정부는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고 대통령 4년 연임제와 결선투표제,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등을 주요 의제로 택했다. 눈길 끄는 건 개헌 효과다. 국정기획위는 보고서에 “내란 이후 훼손된 헌법정신을 복원하고,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썼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시한 단계적 개헌론까지 덧붙이면 새 정부 의지를 담은 열쇠말은 ‘국민이 주도하는 개헌’일 테다. 개헌을 말할 때 국민 주도 주권을 언급하지 않은 정부는 없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는 여느 때와 다르고 절실해야 한다. 윤석열 내란의 아픔을 치유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자는 시민 요구가 참으로 크다. -
여적 조국 비대위원장 조국혁신당이 11일 조국 혁신정책연구원장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성비위 사태로 위기에 처한 당을 바로 세워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된 것이다. 광복절 특사 후 11월쯤으로 잡은 조국의 정치 일선 복귀도 당겨졌다. 그의 등판을 두고 갑론을박이 컸지만, 조국혁신당은 ‘조국’을 빼곤 설명할 수 없는 정당이다. 다른 인물이 비대위원장을 맡는다 해도 여론은 “조국 입장은 뭔가”를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또 성비위 사태 가해자도 조 위원장 측근이고, 이 당의 창업주이자 실질적 리더도 조 위원장이다. “당 위기는 전적으로 제 부족함 때문”이라는 조 위원장 일성은 기회도 위기도 그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5년 뒤, 기울어진 운동장 평평하게 만든 정부라는 평가 받고 싶다”···우상호 정무수석 인터뷰 강원 철원 출생으로 1987년 6월 항쟁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과 이한열 장례집행위원장을 맡은 86세대 대표 정치인이다. 199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추천으로 정치에 입문한 뒤 2021년 국회의원 불출마를 선언할 때까지 서울 서대문갑에서 4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2022년 대선 후 비상대책위원장, 대변인·최고위원 등 당내 여러 중책을 거쳤다. 대화와 타협을 정치의 본령으로 생각한다. 이재명 정부 초대 정무수석으로 다시 정치 일선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