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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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이용마와 방문진법 2019년 8월21일 세상을 떠난 MBC 기자 ‘이용마’는 공영방송의 영욕이 깃든 이름이다. 2012년 이명박 정권이 ‘방송 장악 하수인’ 김재철을 MBC 사장으로 임명했을 때 노조 홍보국장이던 그는 “기껏해야 해고밖에 더 되겠냐”며 170일간 파업을 주도했다. 거리 곳곳에서 “언론이 권력 입맛에 맞춰선 안 된다”며 낙하산 인사 반대를 외쳤고 공영방송 독립을 호소했다. 강고한 원칙주의자였던 이용마는 김재철 사장에게 눈엣가시였다. 노조 홍보국장이던 그가 노조위원장에 앞서 1호 해직자가 된 까닭이다. ‘부당해고 1호 기자’로 2000일 넘게 싸우며 겪은 고행 탓이었을까. 2016년 복막암이라는 몹쓸 병이 그를 덮쳤다. 해직 5년9개월 만에 복직한 2017년 겨울 그는 병색이 짙은 모습으로 출근해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지 않으면 사회는 올바로 나아갈 수 없다”고 했다. 복직 이후에는 ‘MBC를 국민 품으로’ 돌리기 위해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개혁에 남은 힘을 쏟았다. 방문진 이사 선임 구조를 바꾸고, 국민대리인단이 사장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그가 떠난 뒤 세상은 ‘방문진법’을 ‘이용마법’이라고 불렀다. -
여적 공존의 정치, 허대만 경북 포항에서 더불어민주당 깃발을 들고 정치를 한다는 건 “악마의 맷돌에 인생을 갈아넣는 일이었다”. 2022년 8월22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허대만 전 경북도당위원장의 말이다. 1995년 지방자치가 부활하자마자 고향 포항으로 달려온 그는 그해 전국 최연소 시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그에게 허락된 영광은 여기까지였다. 이후 치러진 7번 선거에서 모두 낙선했다. 출마, 낙선, 출마 또 낙선이라는 참혹한 성적표를 받아들고도 그는 민주당 옷을 벗지 않았다. 예견된 패배를 조롱하듯 “딱 한 번만 눈감고 무소속 출마도 고려해 보라”는 제안이 그를 흔들었다. 하지만 유혹이 강하면 강할수록 ‘악마의 맷돌’을 더 세게 움켜쥔 그는 ‘과메기도 (국민의힘 계열)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민주당 험지에서 정치 인생 30년을 갈아넣었다. 그 ‘악마의 맷돌’은 지역주의였고, 승자독식 선거제였다. -
여적 원폭 피해자 2·3세들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80년 전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 2세대 피해자들을 위해 온 삶을 바친 고 김형률씨의 말이다. 자신의 잦은 병치레가 전쟁과 핵의 야만 때문임을 알게 된 그는 2002년 3월 “원폭 피해 2세”임을 국내 최초로 공개했다. 원폭 피해자들의 고통이 ‘전쟁’이라며, 전쟁 같은 삶을 끝내겠다던 김씨의 호소는 원폭 2세 환우회 결성과 원폭피해자지원특별법 제정의 불씨가 됐다. -
여적 송언석의 ‘사면 청탁’ 사면은 양날의 검이다. 사회적 상처를 치유하고 정의를 회복하는 길이지만, 권력이 정의를 덮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1997년 12월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합의한 전두환·노태우 사면이 단적이다. 정적을 용서한 화해 조치였지만 군사반란에 면죄부를 준 정치적 타협이라는 비판도 컸다. 그만큼 원칙·가치가 시비되는 게 사면이다. 사면은 국민 통합이라는 명분을 뛰어넘어 법치·사법 정의를 실현해야 정당성이 있다는 의미다. -
여적 ‘면접관’ 전한길 “위로부터의 친위 쿠데타는 제압했는데 아래로부터의 내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한국사 강사 출신 유튜버 전한길씨의 국민의힘 입당 논란을 지켜본 한 원로의 걱정이다. 전씨는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고 부정선거 음모론에 앞장선 인물이다. 위헌·위법한 내란을 옹호한 전씨의 입당 논란 자체가 국민의힘이 윤석열과 절연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국민의힘은 전씨를 앞세워 국회 한복판에서 ‘윤 어게인’을 부르짖으며 제2의 내란을 꿈꾸고 있다. 당 중진 의원들은 전씨 초청 행사를 잇따라 열었고, 전씨는 이 자리에서 “윤석열 절연과 부정선거론 회피가 국민의힘 지지율 하락 원인”이라고 성토했다. 그는 입당 이유를 “국민이 원하는 당대표를 선출하기 위해”라고 했다. ‘윤 어게인 부정선거 음모론자’를,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하기 위해 입당했다는 것이다. 그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은 지도부와 친윤 기득권 세력들이었다. 민주주의·헌정질서를 지켜야 할 공당이라면 극단적·반사회적 주장을 펴온 이런 인물을 끌어들여선 안 된다. 내란을 반성하고 혁신의 길로 나서도 시원찮을 판에 ‘전한길’이라는 내란 척후병을 끌어들여 당을 휘젓게 하다니, 차라리 공당이길 포기하는 게 낫다. -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기관차 역할의 국정기획위, 열차인 정부와 나란히 달려 때론 불안”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정책 멘토’로 불린다. 지난 대선에서 이 대통령의 정책총괄본부장을 맡았다. 1986년 성남지역 시민단체 활동부터 경기연구원장, 경기도지사 인수위 공동위원장을 맡으며 이 대통령과 40년 인연을 맺어왔다. 무상복지, 기본소득, 청년배당 같은 이 대통령의 핵심 정책을 설계하며 ‘정치인 이재명’의 성장을 도왔다.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도 경제분과를 맡아 경제정책 수립에 참여했다. 지난달 16일 출범한 국정기획위원회를 이끌며 이재명 정부 5년의 국정 밑그림을 짜고 있다. -
여적 56년 만의 미투, “내가 이겼습니다” 1964년 5월6일, 최말자씨는 길을 알려달라며 갑자기 달려든 치한에게 붙잡혀 넘어졌다. 몇번이고 일어나 도망가려 했지만 제압당한 최씨는 그의 혀를 깨물었다. 그것이 깜깜한 밤길에서 18세 소녀가 할 수 있었던 저항의 전부였다. 하지만 피해자인 최씨는 가해자의 성폭력에 맞서다 그의 혀를 절단했다는 이유로 ‘가해자’로 전락했다. 당시 검찰은 피해자의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고 중상해죄로 기소했고, 최씨는 6개월 이상 구치소에 갇힌 채 수사와 재판을 받았다. 반면 가해자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재판부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선고를 내렸다. 최씨는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가해자는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검찰의 억지 횡포는 최씨의 운명을 가혹하게 옭아맸다. -
여적 박정훈 대령의 복귀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나.” 2023년 7월31일 전직 대통령 윤석열이 폭우 실종자 수색작전 중 숨진 해병대 채 상병 사건의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한 말이다. 채 상병 순직 사건은 이 ‘격노’로 180도 바뀌었다. 수사 축소, 경찰 이첩 자료 무단 회수, 구명로비 의혹까지 무리한 수중수색을 지시했던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비호하려는 권력의 무리수가 이어졌다. 이 사건을 파헤치던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의 수사권을 뺏은 것도 ‘격노’ 직후였다. 경찰 이첩 서류를 회수하라는 지시를 거부한 박 대령을 국방부 검찰단이 ‘집단항명 수괴’로 기소했고, 권력 실세들도 “채 상병 사건은 박정훈의 항명이 본질”이라고 몰아세웠다. -
여적 성평등 조각 “미국 헌법은 여성에 대해 어떤 것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미국의 헌법·민주주의 권위자인 로저스 M 스미스가 “대통령·부통령 등을 설명하면서 남성 대명사를 30번 사용한 미국 헌법”이 여성 시민권을 외면한다고 비판하며 한 말이다. 이는 비단 미국 헌법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스미스의 경고는 지난 6·3 대선을 관통한다. 여성 후보 부재, 성평등 의제 실종, 이준석의 성혐오 발언, 유시민의 여성 노동자 폄훼… 여성을 외면하고 홀대하는 정치의 흔적들이다. -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당 태종에 쓴소리 마다 않던 위징처럼…‘거울 같은 참모’ 돼야죠”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거친 5선 중진 의원이다. 1989년 사법연수원 수료 후 민변과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한 뒤 총선에 출마해 경기 양주에서 내리 당선됐다. 네차례 백봉신사상을 수상한 정 의원은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의회주의자로 꼽힌다.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38년 정치적 동지라는 인연 때문에 ‘친명계 좌장’으로 불리지만, 수시로 비판을 아끼지 않는 ‘레드팀’ 역할을 자임해 왔다. 2017년 대선 경선 때부터 이 대통령의 정치 행보를 지원했고 이번 대선에선 후보 직속 국가인재위원장을 맡았다. -
여적 진보정치 ‘종잣돈 0.98%’ 선거철만 되면 진보정당 후보들은 사표론에 시달린다. 소수 정당 후보의 낙선자 표는 주권자 의사가 반영되지 못하는 ‘죽은 표’라는 의미다. 사표론은 ‘거대 정당의 인질극’이라 불릴 정도로 양당제 폐해를 상징하는 한국 정치의 대명사나 다름없다. 다당제를 가로막고 진보층의 주권 행사를 침해하는 정치가 사표론이라는 비판도 되풀이된다. 반면 결선투표제, 연동형 비례대표제처럼 사표를 제도적으로 제거하는 정치 개혁은 더디기만 하다. -
여적 낯 두꺼운 ‘파면 대통령들’ 독단에 사로잡힌 국정 최고 지도자가 공동체의 미래를 생각할 리 없다. 권력기관을 손아귀에 쥐고, 인재풀이 좁고, 실정 원인은 야당·언론 탓으로 돌린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의 국정농단, 윤석열의 12·3 내란은 그렇게 잉태됐다. “거짓말로 쌓아 올린 커다란 산이다.”(박근혜)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윤석열) 파면 후의 두 말도 똑같이 민심의 분노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