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에 엎드린 그를 보며 착잡했다. 2011년 혁신과통합 합류 뒤 그는 민주당의 대변인, 재선 의원으로 활동했다. 오래전 “노무현 정신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한 그의 자책은 14년차 당원 정체성의 기반이 됐다. 너럭바위를 짚고 주저앉은 그의 등은 꽤 오래 굽어 있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22대 국회로 가던 그의 발걸음은 지난 19일 결국 끊겼다.
그의 도전은 민주당 경선 사상 초유의 기록을 남겼다. 세 번의 경선을 치르는 동안 세 번의 페널티(감산 30%)를 받았다. 현역 의원 하위 10% 공개부터 권리당원 투표율 75%, 과반 득표에도 공천 승계 불발, 55% 감산을 감수한 마지막 전략경선. 전 당원 투표라는 기이한 룰 탓에 서울 강북을 국회의원 예비후보가 호남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도 낯선 풍경이었다. 가히 ‘박용진 사태’라 할 만하다. 어쩌랴, 큰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있는 고난의 서사를 갖게 됐다는 말 정도가 그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의 전부였다.
‘박용진 사태’가 휩쓸고 간 지난 한 달, 적잖이 심란했다. 한 시대를 순환했던 민주당 정치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우선, 주류가 교체됐다. 민주당엔 정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정체불명의 세력(혹자는 경기동부, 한총련을 지목한다)이 핵심 세력으로 등장했다. 정당 노선도 이질적으로 변했다. 민주당은 김대중 정부 이후 중도진보 정당의 길을 걸었고, 노동·보편적 복지국가 강령을 채택한 2009~2011년은 그 길의 정점이었다. 당 밖 시민사회도 ‘영향력 정치’를 과시하며 민주당과 경쟁적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적어도 담론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민주당 정치의 맥이 될 거라 기대할 만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을 거치며 기대가 무너졌다. 이재명 대표를 추종하는 (강성) 당원들의 권력이 극대화됐고, 극대화한 당원 권력을 증폭시킨 이 대표의 힘이 사실상 공천 정국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보니 주류 후보를 배려한 공천룰(민심을 배제한 전 당원 투표), 원칙도 기준도 없는 경선(차점자 승계 불발, 전략경선 등)이 난무하면서 사천(私薦), 비명횡사, 정적 죽이기란 말이 공론장을 휩쓸었다. 전례 없는 일이다. ‘반윤석열’ ‘정권심판’ ‘이재명 지키기’만 연호하는 후보들을 보니 총선에서 승리한다 한들 무슨 정치를 할 건지 답답하고 당혹스러웠다. 이뿐만 아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전 소장 등 더불어민주연합의 후보 교체 과정은 민주당이 민주주의 보루 역할을 포기했다는 방증이고, 시민사회는 스스로 ‘반윤석열’이라는 민주대연합의 하위 파트너로 격하한 참담함을 남겼다.
이 모든 퇴행을 집약한 것이 ‘박용진 사태’다. 미성년자 성폭력 가해자의 형량 축소를 자랑한 민변 변호사가, ‘수박’을 응징하기 위해, 지도부와 강성 당원 지지를 업고 불과 이틀 만에 ‘국회의원 배지를 주워’(유시민 작가 표현), 총선 가도에 안착한 과정. 한 지인은 “민주당은 ‘설마’를 총선 기조로 정한 것 같다. 설마 하던 일이 모두 사실이 됐다”며 허탈해했다.
당 주류는 ‘박용진 사태’를 “원내에서 당원 중심 정당으로 가는 혁명”을 상징한다고 했다. 경선 결과만 보면 유의미한 해석이다. 평소 20~30%대였던 당원 투표율이 70%를 훌쩍 넘겼다. 아무리 ‘개딸’로 불리는 강성 당원들의 입김이 세다 해도 나머지 당원들이 동조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결과다. 주류 측은 이 대표 중심으로 정권심판에 매진하는 것이 총선 과제인데, 이를 흔들고 거스른 국회의원에 대한 당원들의 심판이 공천 결과라고 강조한다.
과도기든 종말이든 당원 중심 정당의 성패 여부는 일단 총선 성적표에 달려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당원 중심 정당의 본질이다. 1인 보스, 의원 중심 체제에 눌려 있던 당원들에게 의사결정권을 주는 게 당원 중심 정당이다. 그러려면 당원들의 일상적 당무 활동을 보장하고, 토론을 거쳐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는 정당 구조를 갖춰야 한다. 이 구조 속에서 당의 비전을 사유하고 훈련한 당원들이 공직 후보를 뽑는 절차가 공천이고, 그래야 정당도 수권 능력을 증명하고 국민 신뢰를 얻게 된다. 정당 민주주의의 명분을 만드는 주체가 당원이라는 의미다.
지금 민주당은 어떤 경로를 지나고 있나. 당원의 힘을 투표권으로 축소하고, 내부 이견을 배신으로 낙인찍고, 이 대표 비판 세력을 적으로 돌리는 데 이용한 건 아닌가. ‘당원’의 역사적 가치가 실종된 정당을 당원 중심 정당이라 할 수 없다. 또, 이런 정당의 당원은 ‘이재명의 당원’일 뿐 ‘민주당 당원’이라 부를 수 없다. ‘박용진 사태’가 민주당의 혁명이라는 말,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다. 아무래도 진짜 혁명이 필요할 때 혁명을 겪지 못한 목격자(송경동, <내일 다시 쓰겠습니다> 중)로 4월의 봄을 맞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