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제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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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노동시간 개편이라는 코미디 근자에 있었던 노동시간 개편을 둘러싼 혼란은 윤석열 정부의 문제를 압축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찬찬히 곱씹어볼 가치가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6일 노동시간 개편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개편안이 ‘주 최대 69시간’ 노동을 허용한다는 비판이 나오자 윤 대통령은 16일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고 했다. ‘주 최대 60시간’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자 20일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개인적 생각에서 말씀한 것이지 가이드라인을 주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캡(상한)을 씌우는 게 적절하지 않으면 윤 대통령이 굳이 고집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윤 대통령이 21일 국무회의에서 “주당 60시간 이상의 근무는 건강 보호 차원에서 무리라고 하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대통령실 참모가 대통령의 지시를 ‘개인적 생각’이라고 깎아내리는 것도, 대통령이 다시 ‘내 생각은 변함없다’고 말하는 것도 처음 본다. 외관만 보면 대통령과 참모가 정책을 놓고 공개적으로 노선투쟁이라도 벌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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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기본이 무너진 나라 지난해 여름이었으니 6개월쯤 전 일이다. 검찰 고위간부 출신 변호사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정순신 변호사가 차기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유력하다는 것이었다. 검사 출신이 한창 이 자리 저 자리 꿰차던 때인지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싶으면서도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기 국수본부장 인선을 6개월이나 앞둔 때였는데 벌써 후임자를 낙점했다는 게 상식적이지 않았다. 또 아무리 검찰 정권이라도 그렇지 검사 출신을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자리에 내리꽂는 무리수를 두겠는가 싶었다. 더구나 정 변호사는 한동훈·조상준·이복현 등 다른 ‘윤석열 사단’ 검사들처럼 수사력이 특출난 편도 아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하도 검사 출신을 요직에 발탁하다 보니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오는구나 하고 넘어갔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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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윤석열 대통령은 ‘과격한 이명박’인가 새해가 밝았지만 들리는 것이라곤 온통 우울한 소식뿐이다. 경제 여건은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고, 남북관계는 한층 험악해질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19는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가장 심란한 것은 나라가 이명박(MB) 정부 때로 퇴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더 안 좋은 판본으로. 얼마 전 북한 무인기 여러 대가 영공을 침범해 서울 상공을 휘젓고 다녔다. 일부는 용산 대통령실 인근 상공에 설정된 비행금지구역(P-73) 안까지 들어왔다가 빠져나갔다. 이를 두고 윤석열 대통령은 “수년간 군의 태세가 부족했음을 보여준 사건”이라며 전 정권 탓부터 했다. MB 정부 때인 2010년 11월23일 연평도 포격사건이 터지자 당시 여권이 전 정권의 햇볕정책을 탓한 것과 똑같은 행태다. 그래도 그때는 야당 의원에게 ‘적과 내통’ 운운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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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검찰의 추억, 1호기의 추억 검찰에 출입할 때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급 이상 간부들이 기자들 군기를 잡는 손쉬운 방법이 있었다. 미운털이 박힌 기자를 제 방에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건 약한 편에 속했다. 전화도 받지 않거나, 혹여 받더라도 모르쇠로 일관하면 기자는 ‘단독기사’는 고사하고 남이 쓴 기사도 받아쓰지 못하는 딱한 처지에 놓인다. 때로는 특정 기자의 태도를 문제 삼아 차장검사가 출입기자단과 정례적으로 하는 티타임을 중단하기도 했다. 티타임에서 듣는 말의 뉘앙스로 수사의 진행 상황을 가늠해야 하는 기자들에게 티타임 중단은 일종의 단체기합이었다. 검찰과 언론의 극단적인 정보 비대칭에서 가능한 군기잡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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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윤 대통령은 ‘전환기 리더’가 맞나 근래 국내외에서 들리는 소식은 전환기의 위기가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섰음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지구 전체가 거대한 화약고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전쟁의 포성이 갈수록 커지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도는 곳이 있다. 백악관이 거둬들이기는 했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아마겟돈 전쟁’ 발언은 핵전쟁이 공상의 영역이 아니라 실재하는 위험임을 상기시킨다. 크름대교 피폭 후 러시아가 키이우를 보복 공격했다는 한 줄 속보를 접하자 먼저 머리에 스친 것도 ‘설마 전술핵은…’ 하는 것이었다. 어느덧 핵공포가 나와 같은 평범한 생활인의 잠재의식에도 깃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불안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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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윤석열 정부의 삼위일체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을 진단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지지율이 푹 꺼진 상황이었으니 평가가 좋았을 리 없다. 부정적 평가는 무책임한 실험주의, 무분별한 복수주의, 법기술 만능주의로 요약된다. 무책임한 실험주의는 ‘일단 바꾸자’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용산 이전의 후과를 단단히 치르고 있다. 이전 정부가 대통령실 이전을 검토했다가 포기한 데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게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이전부터 했다. 윤 대통령이 서초동 자택에서 용산 집무실까지 차량으로 출퇴근하고 한남동 옛 외교부 장관 공관을 대통령 관저로 뜯어고치는 어수선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졸속은 졸속을 낳는다. 대통령 관저 공사를 둘러싼 여러 잡음, 용산 대통령실 앞 옛 국방부 연병장에서 열린 추레한 광복절 기념식이 그렇다. 청와대 위기대응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서울 도심에 폭우가 쏟아진 날 대통령실이 우왕좌왕한 것도 대통령실 졸속 이전이 한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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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실패가 예정된 사정정국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이제 겨우 두 달 조금 넘었을 뿐이지만 벌써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30%대 초반으로 추락한 지지율이 그것을 보여준다. 여론조사기관들이 분석한 지지율 하락 원인은 대동소이하다. 인사 실패, 경험·자질 부족, 경제·민생 소홀, 소통 미흡, 독단 등이다. 경험도, 능력도 없으면서 태도까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것이 지난 5일 도어스테핑이다. 윤 대통령은 인사 실패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손가락질을 하며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들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 다른 정권 때와 한번 비교를 해보라. 사람들의 자질이나 이런 것”이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그날 박순애 교육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면서는 “임명이 늦어져서, 언론에, 또 야당에 공격 받느라 고생 많이 했다. 소신껏 잘하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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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검찰공화국과 검사들의 전성시대 바야흐로 검사들의 전성시대다. 검찰밥을 먹어야 관가에서 행세깨나 하고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시절이 되었다. 대통령실은 집사와 문고리부터 인사라인까지 검찰 출신이 꿰찼다. 고위공직자를 추천하는 인사기획관은 검찰 수사관 출신이다. 그를 보좌하는 인사비서관, 고위공직 후보자를 2차 검증하는 공직기강비서관은 검사 출신이다. 법률비서관도 검사 출신이다. ‘대통령의 집사’인 총무비서관, ‘문고리 권력’으로 통하는 부속실장은 검찰 수사관 출신이다. 행정부를 봐도 검사들의 전성시대가 여실하다. 법무부 장차관도, 법제처장도 검사 출신이다. 국정원 기조실장은 물론 총리 비서실장까지 검사 출신이다. 공정거래위원장도 검사 출신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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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저물어가는 칼잡이 검사의 시대 검찰개혁은 노무현 정부 이래 한국 사회의 주요 의제였다. 그 흐름은 검찰권 분산으로 수렴하는데, 박병석 국회의장이 지난 22일 중재안으로 제시한 ‘검찰수사권 단계적 폐지’에 여야가 합의하면서 마침표를 찍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검찰은 수사권, 수사지휘권, 기소권을 모두 가졌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수사할 수 있었다. 지휘권자의 위치에서 경찰 수사의 개시부터 종결까지 관여했고, 재량껏 기소 여부를 판단했다. 검찰 수사를 제한한 첫 조치는 검찰총장 직할부대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폐지였다(2013년). 지난해부터는 검찰의 수사 범위가 제한됐다. 검찰은 ‘6대 중대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산업·대형참사)만 수사한다. ‘박병석 중재안’은 검찰의 수사 범위를 2대 범죄(부패·경제)로 다시 축소하고, 2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장차 신설될 중대범죄수사청에 이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검찰의 수사 기능이 경찰, 중수청, 공수처로 분해되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지휘권도 얄팍해졌다. 경찰은 수사개시권에 이어 지난해부터 수사종결권까지 확보했다. 검찰이 경찰 수사에 관여할 수단은 영장청구권과 보완수사권 정도이다. 검찰의 기소독점 견제 수단으로 재정신청 범위가 확대됐고 검찰 수사심의위가 도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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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지난 대선의 아이러니 50대 초반인 또래 지인에게서 들은 얘기다. 대선 투표일을 앞두고 20대 초반인 아들과 마주앉았는데, 이재명을 찍어야 한다고 설득하자 아들이 그러마라고 하면서도 영 마뜩지 않은 표정을 짓더라는 것이다. 그 아들은 처음에는 홍준표를, 다음에는 안철수를 지지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지난해부터 여러 명에게서 들었다. 전하는 이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요즘 젊은 애들은 참’ 하며 개탄하거나 어이가 없다는 식이었다. 문득 십수년 전 보수논객 조갑제가 주창한 ‘어버이 역할론’이 떠올랐다. 휴대전화와 인터넷 커뮤니티로 무장한 젊은 세대가 비주류 정치인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게 20년 전이다. 당시 기성세대가 느꼈을 당혹감과 허탈감이 어쩌면 지금 50대가 느끼는 것과 비슷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0대는 과거 6·25 세대나 산업화 세대처럼 기성세대가 되었구나.’ 이 엄연한 현실을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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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이번 대선에서 심상정에게 바라는 것 이탈리아 공산당 지도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낡은 것은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위기는 생겨난다. 이 공백기에 다양한 병적 징후가 나타난다”고 했다. 역사학자 도널드 서순은 근래 펴낸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이라는 책에서 이 말을 인용하면서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 놓인 공백기의 주요한 특징은 불확실성이다. 넓은 강을 건너는 것과 비슷하다”고 덧붙인다. “오래된 강물이 뒤에 있지만 반대편은 아직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물살 때문에 뒤로 밀려서 빠져죽을 위험도 있다. 어떤 일이 생길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 공포에 짓눌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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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미스 슬로운과 아마추어 공수처 영화 <미스 슬로운>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로비의 핵심은 통찰력입니다.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 승자는 상대보다 한 발짝 앞서서 회심의 한 방을 상대보다 먼저 날려야 하죠. 상대를 놀라게 만들되, 상대에게 놀라선 안 됩니다.” 총기규제 입법 로비스트인 주인공의 이 ‘로비스트 철학’은 대반전의 서막이자 영화의 클라이맥스이다. 적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인다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는 명대사이다. 슬로운의 말에서 ‘로비스트’라는 주어를 ‘검사’로 바꾸어도 어색하지 않다. 무엇이 수사의 중심이고 주변인지, 줄기이고 가지인지, 어디가 급소이고 변죽인지 보는 눈은 경험과 직관이 어우러진 통찰에서 나온다. 수사는 심리전이다. 피의자는 혐의를 감추고, 검사는 혐의를 밝힌다. 피의자의 행동을 예측하고 결정적인 패를 적시에 흔들어야 방어태세가 무너진다. 심리전의 전제는 탄탄한 수사이다. 증거와 주변 진술을 갖고 있어야 심리전이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수사력이란 사건의 핵심을 짚고 증거를 찾는 능력은 물론, 그렇게 확보한 증거를 활용하는 능력까지를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