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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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최고참 민정수석 법조계에는 기수문화라는 게 있다. 군대에서 군번, 대학에서 학번을 따지듯이 사법연수원 기수를 따진다. 로스쿨 제도 도입 전에는 사법시험을 통해 법률가를 전원 선발했는데, 최종 합격자는 사법연수원에서 2년의 수료 과정을 마쳐야 판사·검사로 임용되거나 변호사로 개업할 수 있다. 연수원 기수가 높다는 건 그만큼 판검사 근속연수가 길거나 변호사 경력이 오래됐다는 뜻이다. 법조계 연공서열의 기준인 셈이다. 언론이 법조계 인사들을 언급할 때 이름 뒤에 나이와 사법연수원 기수를 병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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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배성우 대신 정우성 연기는 연출·각본과 함께 드라마의 3요소를 이룬다. 연출이 감독, 각본이 작가의 작업이라면 연기는 배우의 몫이다. 좋은 연기란 무엇일까.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고유의 캐릭터를 창출하는 능력이 으뜸이지 싶다. 같은 배역이라도 누가 맡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물이 만들어진다. 영화 <배트맨>의 조커를 예로 들어보자. 잭 니컬슨이 연기한 조커가 순수한 악의 구현물이라면 히스 레저의 조커는 악의 철학자,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부조리한 문명의 비평가 같다. 연기파란 이처럼 자신만의 개성을 입힌 인물을 구현하는 배우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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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성노조 1세대들의 김진숙 응원 “긴 공장의 밤/ 시린 어깨 위로/ 피로가 한파처럼 밀려온다….” 시인 박노해가 1980년대 발표한 ‘시다의 꿈’을 읽다 보면, 타이밍(각성제)으로 졸음을 겨우 쫓아가며 밤새 미싱(재봉틀)을 돌리는 1970~1980년대 어린 여성 노동자의 고된 일상이 그려진다. 이 시에 곡을 붙인 같은 이름의 민중가요도 여성 독창이라야 제맛이 난다. 슬픔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는 걸 일깨운다.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이끈 건 여성노동자였다. 의류·가발 제조 등 경공업 중심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국가경제를 떠받치던 때 다수의 ‘수출역군’은 지방에서 상경한 20세 안팎의 여성 노동자였다. 근로조건은 처참했다. 1975년 여성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남성노동자의 42.2%에 불과했다. 노동기본권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가부장적 노사관리와 비인격적 대우는 예사였다. 어용노조가 대부분이던 당시 노동자의 권리를 찾으려면 민주노조를 세워야 했다. 1970년대에 도시산업선교회 등 양심적 종교세력의 도움을 받아 여성노동자 중심의 민주노조운동이 태동한 배경이다. 원풍모방, 동일방직, YH무역, 반도상사 노조 등이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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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한동훈법? 추미애법? 청탁금지법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약칭이다. 2011년 ‘벤츠여검사’ 사건이 발단이 됐다. 여검사가 내연관계인 변호사에게 벤츠승용차·법인카드·명품백 등을 받고 다른 검사에게 청탁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대법원은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자 기존 법으로 처벌 못하는 공직자 비리와 부패를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고, 2015년 3월 제정된 게 청탁금지법이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주도했다 해서 ‘김영란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김영란법처럼 사람 이름을 붙인 법안을 실명 법안이라고 한다. 법 제·개정을 주도한 사람이나, 그 동기가 된 사건의 피해자·가해자 이름을 붙인다. 산업안전보건법을 고친 ‘김용균법’과 의료사고 피해 구제를 위한 ‘신해철법’이 그랬다. 어린이 보호구역 내 교통사고 사망 발생 시 형을 가중처벌하는 ‘민식이법’과 음주운전자 처벌 기준을 강화한 ‘윤창호법’도 도로교통법 개정안에 피해자 이름이 붙은 예다. 실명 법안은 법안 취지를 쉽게 전달하고 홍보 효과가 높은 게 장점이다. 반대로 사람 이름에 초점을 맞춰 중요한 법안 내용을 정확히 알리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김영란 전 위원장은 청탁금지법 국회 통과 후 “제 이름이 안 써지는 쪽으로 부탁드리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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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광주 고교생의 5·18 증언 2002년 요절한 문학평론가 이성욱은 1980년 5월 광주를 “80년대 질풍노도의 반역적 에너지가 자신의 존재증명을 위해 언제나 회귀하던 언덕”으로 규정한 바 있다. 80년대 민주화 세대에게 ‘고립된 광주’는 실존을 무겁게 짓누르는 부채의식이었고, ‘대동 광주’는 언제고 기어이 맞아야 할 지나간 미래였다. 광주항쟁은 시민항쟁이었고, 10대 청소년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국이 우리를 부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금남로 시위에 나섰다가 옛 광주노동청 앞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숨진 전영진 열사(당시 대동고 3학년)가 그중 한 명이다. 당시 계엄사 상황일지에는 5월19일 대동고, 중앙여고 학생들의 학내 시위 상황이 기록돼 있다. “금남로에서는 우리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라며 교문을 박차고 나가려는 제자들과 “나가고 싶은 학생들은 나를 밟고 가라”며 만류하는 스승이 끝내 함께 울고 말았다는 증언도 있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는 ‘칼라가 넓은 수피아여고 하복을 입은 누나’가 헌혈을 하러 왔다가 시신 수습을 돕는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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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7전8기 김종철 2000년 초 민주노동당 창당을 기점으로 한국 진보정당의 역사는 만 20년이 지났다. 20년 세월이 쌓이면서 진보정당을 구성하는 세대 폭도 넓어졌다. 4·15 총선 이후에는 3세대론이 주된 분류법으로 통한다. 1세대는 권영길·노회찬·심상정 등 2004년 총선 때 원내에 진출한 이들이다. 1960년대 초반 이전 출생한 세대다. 3세대는 지난 총선 때 당선된 장혜영·류호정 등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세대다. 1세대가 활발한 의정활동으로 진보정당의 대중적 위상을 한껏 끌어올렸다면, 3세대는 청년문제라는 시대의 화두를 타고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사이에 진보정당 운동에 묵묵히 헌신해온 2세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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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코로나 추석강령 예년 같으면 추석 민족대이동이 시작될 때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올해만큼은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는 게 효도하는 길”(정세균 국무총리)이라는 생각이 많아져서다. 코로나19는 고령층에 특히 위험하다. 귀성이 자칫 방역의 둑을 무너뜨리고 부모님 건강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오죽하면 ‘정부가 추석 연휴 기간에 강제로 국민 이동을 자제시켜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6만여명이 동의했을까. 열흘 전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서 86%는 ‘추석 연휴에 가족·친지 간 만남이 감소할 것’ ‘정부의 비대면 추석 권고에 참여할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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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대표직 벗는 심블리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노동운동가 시절 ‘철의 여인’으로 불렸다. 금속노조 사무처장이던 2003년 국내 최초로 산별 중앙교섭을 통해 ‘임금삭감 없는 주5일 근무제’ 도입 합의를 끌어내면서 얻은 별명이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단병호 전 의원과 함께 문·단·심으로 불리던 때다. 2017년 대선을 거치면서 심 대표에게 ‘심블리’(심상정+러블리)라는 새로운 애칭이 생겼다. 청년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모습이 공감을 샀다. ‘철의 여인’과 ‘심블리’는 강단 있는 노동운동가 심상정이 진보적 대중정치인으로 진화한 과정을 압축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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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그 쇳물 쓰지 마라 지난해 산업재해로 2020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1165명은 일 때문에 병들어서, 855명은 일하다 추락하거나 기계에 말려들거나 해서 죽었다. 산재 사망사고는 대부분 영세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사망자 다수는 비정규직·사내하청·특수고용직과 같은 불안정 노동자다. 생명보다 이윤의 논리로 작동하는 위험의 외주화가 주요인이다. 우리 경제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고용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에 있는 이들의 육신을 갈아넣어 지탱하는 구조인 셈이다. 이런 섬뜩한 본질을 보여주는 사고가 2010년 9월7일 발생했다. 충남 당진의 한 철강업체에서 일하던 20대 김모씨가 전기로 위에서 작업하다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 전기로에는 1600도가 넘는 쇳물이 담겨 있어 유족은 김씨 시신도 찾지 못했다. 제페토라는 필명의 누리꾼이 인터넷 댓글을 썼다.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제목의 조시였다. “광염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못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두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시는 입소문을 타고 퍼져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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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평등버스 미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서 벌어진 ‘버스 보이콧’ 사건은 흑인 민권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1955년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가 버스에서 백인에게 좌석을 양보하지 않아 체포되자 흑인들은 버스 보이콧으로 저항했고, 연방대법원은 흑백 좌석을 분리한 시 조례와 그 근거가 된 주법률에 위헌 판결을 내린다. <셀마>는 10년 뒤 같은 곳에서 벌어진 흑인투표권 쟁취운동(몽고메리 행진)을 다룬 영화다. 비폭력 평화행진 도중 마틴 루서 킹 목사는 말한다. “난 지쳤어. 우린 뭘 하는 거지?” 함께 걷던 목사가 답한다. “벽돌을 하나하나 쌓는 거지. 우리는 최대한 길을 닦는 거야, 돌멩이 하나씩.” 희망은 만들어가는 거라는 이 말은 “희망이란 길과 같은 것이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고 한 루쉰의 잠언과 통한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 309일간 고공농성을 벌인 해고노동자 김진숙이 수만명이 이어진 ‘희망버스’에서 본 것도 벽돌 한 장, 돌멩이 하나가 쌓여 만드는 기적이었다. 그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 만들어낸 너무 행복하고 기적 같은 싸움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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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헌법 10조 행복추구권을 처음 규정한 문서는 미국 독립선언문이다. 1776년 7월4일 필라델피아 대륙회의(2차)에서 승인된 독립선언문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됐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고 적시했다. 7월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 됐다. 대한민국 헌법 10조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돼 있다. 이 조항은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주도한 8차 개헌 때 새로 넣어 오늘에 이른다. 군사반란과 광주학살로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가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헌법에 담은 건 짓궂은 역설이다. “민주도 정의도 없다”고 지탄받은 민주정의당 집권기는 행복을 추구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야만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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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노영민 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안보실장, 백선엽 장군 빈소 조문 예정 청와대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12일 오후 4시쯤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백선엽 장군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조문에는 청와대 국가안보실 김유근 1차장, 김현종 2차장도 함께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백 장군 빈소에 조화를 보내 애도의 뜻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