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제혁
논설위원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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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미스 슬로운과 아마추어 공수처 영화 <미스 슬로운>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로비의 핵심은 통찰력입니다.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 승자는 상대보다 한 발짝 앞서서 회심의 한 방을 상대보다 먼저 날려야 하죠. 상대를 놀라게 만들되, 상대에게 놀라선 안 됩니다.” 총기규제 입법 로비스트인 주인공의 이 ‘로비스트 철학’은 대반전의 서막이자 영화의 클라이맥스이다. 적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인다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는 명대사이다. 슬로운의 말에서 ‘로비스트’라는 주어를 ‘검사’로 바꾸어도 어색하지 않다. 무엇이 수사의 중심이고 주변인지, 줄기이고 가지인지, 어디가 급소이고 변죽인지 보는 눈은 경험과 직관이 어우러진 통찰에서 나온다. 수사는 심리전이다. 피의자는 혐의를 감추고, 검사는 혐의를 밝힌다. 피의자의 행동을 예측하고 결정적인 패를 적시에 흔들어야 방어태세가 무너진다. 심리전의 전제는 탄탄한 수사이다. 증거와 주변 진술을 갖고 있어야 심리전이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수사력이란 사건의 핵심을 짚고 증거를 찾는 능력은 물론, 그렇게 확보한 증거를 활용하는 능력까지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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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윤석열에게 검찰의 바깥은 없다 검사 윤석열은 정치인처럼 말했다. 2013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에 대한 외압을 폭로하며 “이왕 이렇게 된 거 시원하게 말씀드리겠다”고 한 것이 그렇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팀 수사팀장에 임명된 뒤 “수사권 갖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냐”고 한 것이 그렇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2012년 11월15일 2200억원 상당의 기업어음을 사기 발행한 혐의로 구자원 LIG그룹 회장 일가를 기소했다. 윤석열 당시 특수1부장이 브리핑에서 “금융시장에 대한 폭탄투척 행위”라며 불을 뿜던 모습이 기억난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 체제를 거치면서 검찰의 공소장에 격문투의 표현이 부쩍 늘었다는 평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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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호랑이 등에 올라탄 공수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지난 10일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검사와 김웅 의원의 자택·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국민의힘이 반발하는 것을 ‘정치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검사 출신 의원들까지 정색하는 건 볼썽사납다. ① 공수처 수사의 필요성. 이 의혹이 공수처 수사 대상이라는 건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검사 등의 권력형 비리 의혹이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다. 이런 의혹 수사하라고 공수처를 만든 것이다. ② 사안의 중대성. 지난해 총선 직전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참모가 범여권 정치인과 언론인에 대한 고발장을 야당에 전달해 고발을 사주·청탁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이다. 종래 ‘정치 검찰’의 이미지는 권력의 입맛대로 수사·기소하는 검사였다. 검찰은 주연이기보다 조연이었고, 기획자이기보다 하수인이었다. 이번 의혹은 이런 통념적 권력 배치를 전도한다. 검찰이 전체 기획을 주도하면서 야당을 하위 파트너로 삼으려 했다면 정치 검찰의 흑역사를 새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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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노무현이 꿈꾼 세상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문제로 시비가 붙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이낙연 전 대표를 공격하는 소재로 들고나왔다. 새천년민주당 소속이던 이 전 대표가 노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진 게 아니냐는 것이다. 새천년민주당은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자민련과 노 대통령 탄핵을 공동 추진했었다. 이 전 대표 측은 “반대표를 던졌다”고 했다. 표결에 참여한 195명 중 2명이 반대표를 던졌는데, 그중 한 명이 이 전 대표라는 것이다. 얼마 전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언론중재법과 관련해 “‘논두렁 시계’ 같은 가짜뉴스, 그것을 받아쓰기 하던 언론의 횡포, 여기에 속절없이 당하셔야 했던 것이 노무현 대통령”이라며 “그렇게 당하셨던 것처럼 우리 국민들도 언론개혁·검찰개혁 한마디도 못하고, 언론·검찰에 당해야만 한다는 것이냐”고 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노무현 정부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경직된 언론 환경을 구축하겠다는 것인가”라고 하자 반박하며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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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이준석의 시간과 조국의 시간 슈테판 츠바이크는 워털루 전투를 다룬 글에서 이렇게 적는다. “운명은 이상한 변덕에 사로잡혀 아무에게나 자신을 맡기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은 세계사에서 가장 놀라운 순간들이기도 했다. 운명의 실이 아주 보잘것없는 사람의 손에 떨어지면 (…) 태풍 앞에서 행복해하기보다는 파랗게 질려 벌벌 떨면서 자신의 손에 쥐어진 운명의 실을 놓아버린다. (…) 위대한 것이 하찮은 것에 자신을 내주는 일은 겨우 1초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지난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36세인 이준석이 대표로 선출되는 것을 보고 이 구절을 떠올렸다. 적어도 지금 ‘별의 순간’에 가장 근접한 이는 윤석열도 다른 누구도 아닌 이준석이다. 한 세대의 퇴조와 새로운 세대의 등장, 보수의 재구성과 나비효과, 극단적 진영정치의 해체 내지 완화, 진보하는 보수와 보수하는 진보의 공수 전도를 알리는 서막일 수 있겠다 싶다. 이준석이 그것을 감당할 그릇이 되는지, ‘태풍 앞에서 행복해’할지 아니면 ‘파랗게 질려 벌벌’ 떨지 지켜볼 일이지만, 우연이건 노력의 결과이건 시대의 배역을 맡을 기회가 그에게 주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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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1991년 5월을 생각하며 정태춘의 노래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감싸는 정서는 쓸쓸함이다. 거기에는 1991년 5월 투쟁의 잔해를 응시하는 처연함이 있다. 화자는 92년 초여름, 비 내리는 서울 종로 어디쯤에 있다. 그는 우산을 들고 횡단보도를 분주히 지나는 사람들, 비에 젖은 탑골공원 담장 기와, 고가차도 신호등 위에서 웬디스 햄버거 간판을 읽는 비둘기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풍경이 상념으로 이어진다.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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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물질 날아와 주민들 차량 얼룩 피해” 환경부, 대산산단 제조업체에 배상 결정 석유화학산업단지 인근에 차를 주차했다 차량 표면에 얼룩이 생기는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86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정부 결정이 나왔다. 환경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는 충남 서산시 대산읍 주민 76명이 대산석유화학단지 내 석유화학제품 제조업체 3곳을 상대로 낸 분쟁 조정 신청에서 주민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8일 밝혔다. 주민들은 2019년 6월 해당 사업장 인근에 주차했다가 차 표면에 흰 반점 모양의 얼룩이 생기는 피해를 입었다. 차량은 사업장의 플레어스택(석유화학공장의 공정 과정 중 발생하는 가연성 가스를 연소시키는 굴뚝)과 1~2㎞ 떨어진 곳에 주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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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부동산 투기 수사 주체를 둘러싼 여권의 입장이 어지럽다. 처음에는 경찰이 수사해야 한다고 하더니 느닷없이 특검을 꺼냈다. 검찰이 직접 수사하는 건 반대하는가 싶더니 검사가 수사할 수 있는 범죄가 발견되면 검찰이 직접 수사에 나서달라고 한다. 신도시 투기 의혹을 가혹하리만치 수사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검찰개혁의 줄기가 흐트러진다는 점이다. 특검 도입, 검찰의 직접수사 동참 주문은 여권이 주장하는 검찰의 직접수사 축소, 경찰 수사 확대·강화 기조와 어긋난다. 국민이 공분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가릴 것 없이 쥐부터 잡아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개혁의 성패는 일관성에 달려 있다. 예외적 상황이라고 자꾸 예외를 두면 개혁은 넝마가 된다. 상황론은 개혁의 독이다. 예외적 상황에도 간단없이 유지하는 개혁이라야 성공한다. 그것이 안 되는 경우는 둘 중 하나다. 개혁 방향이 잘못됐거나, 개혁의 의지와 철학이 빈곤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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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코로나19 시대의 불안 전환기의 급류에 휩쓸린 사람은 그 사태의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기 힘들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싸이거나 어제까지 단단하던 대지가 불현듯 출렁이는 데서 오는 현기증을 느낄 뿐이다. 세상이 바뀔 거라는 예감은 뚜렷한데 변화의 실체와 방향은 흐릿할 때, 그 틈을 메우는 것이 불안이다. 코로나19 시대의 심층심리는 ‘불안’이다. 불안은 방어적 심리이고, 사람은 방어적일 때 공격적이 된다. 각자도생을 위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불안을 먹고 자란다. 불안과 증오는 거리가 멀지 않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고 공동체를 깨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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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최고참 민정수석 법조계에는 기수문화라는 게 있다. 군대에서 군번, 대학에서 학번을 따지듯이 사법연수원 기수를 따진다. 로스쿨 제도 도입 전에는 사법시험을 통해 법률가를 전원 선발했는데, 최종 합격자는 사법연수원에서 2년의 수료 과정을 마쳐야 판사·검사로 임용되거나 변호사로 개업할 수 있다. 연수원 기수가 높다는 건 그만큼 판검사 근속연수가 길거나 변호사 경력이 오래됐다는 뜻이다. 법조계 연공서열의 기준인 셈이다. 언론이 법조계 인사들을 언급할 때 이름 뒤에 나이와 사법연수원 기수를 병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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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배성우 대신 정우성 연기는 연출·각본과 함께 드라마의 3요소를 이룬다. 연출이 감독, 각본이 작가의 작업이라면 연기는 배우의 몫이다. 좋은 연기란 무엇일까.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고유의 캐릭터를 창출하는 능력이 으뜸이지 싶다. 같은 배역이라도 누가 맡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물이 만들어진다. 영화 <배트맨>의 조커를 예로 들어보자. 잭 니컬슨이 연기한 조커가 순수한 악의 구현물이라면 히스 레저의 조커는 악의 철학자,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부조리한 문명의 비평가 같다. 연기파란 이처럼 자신만의 개성을 입힌 인물을 구현하는 배우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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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성노조 1세대들의 김진숙 응원 “긴 공장의 밤/ 시린 어깨 위로/ 피로가 한파처럼 밀려온다….” 시인 박노해가 1980년대 발표한 ‘시다의 꿈’을 읽다 보면, 타이밍(각성제)으로 졸음을 겨우 쫓아가며 밤새 미싱(재봉틀)을 돌리는 1970~1980년대 어린 여성 노동자의 고된 일상이 그려진다. 이 시에 곡을 붙인 같은 이름의 민중가요도 여성 독창이라야 제맛이 난다. 슬픔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는 걸 일깨운다.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이끈 건 여성노동자였다. 의류·가발 제조 등 경공업 중심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국가경제를 떠받치던 때 다수의 ‘수출역군’은 지방에서 상경한 20세 안팎의 여성 노동자였다. 근로조건은 처참했다. 1975년 여성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남성노동자의 42.2%에 불과했다. 노동기본권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가부장적 노사관리와 비인격적 대우는 예사였다. 어용노조가 대부분이던 당시 노동자의 권리를 찾으려면 민주노조를 세워야 했다. 1970년대에 도시산업선교회 등 양심적 종교세력의 도움을 받아 여성노동자 중심의 민주노조운동이 태동한 배경이다. 원풍모방, 동일방직, YH무역, 반도상사 노조 등이 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