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
경향신문 기자
탐식(貪食)과 잡식(雜識)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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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일람 樂書一覽 흥미로운 도판 속 크리스마스와 산타 1년 중 이날만큼 ‘몽글몽글’한 설렘으로 마음이 들뜨는 날이 또 있을까. 크리스마스다. 그 기원은 종교적이지만 동서고금, 종교와 민족을 불문하고 전 지구적 축제가 된 지 오래다. 건축·디자인·패션 등 예술 분야의 대형 도감과 어린이 그림책으로 유명한 영국 출판사 파이돈이 펴낸 <크리스마스 북>은 제목처럼 크리스마스에 관한 모든 것을 흥미로운 도판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단순히 그림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현재의 크리스마스가 갖는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맥락과 배경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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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담패설 飮啖稗說 수퇘지의 페로몬과 같다는 ‘땅의 고환’···인간도 홀렸다 땅의 고환(testicles of the earth). 이건 도대체 무엇을 지칭하는 걸까. 힌트를 제시한다. 식재료의 하나다. 식재료는 종종 은유의 대상이 된다. 굴을 ‘바다의 우유’로, 강황을 ‘밭에서 나는 황금’으로 칭하는 것이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례다. 성적인 의미를 담아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홍합을 ‘동해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것이 대표적이다. 홍합을 먹으면 성적인 매력이 더해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도 탐스러운 붉은색, 풍성한 과즙을 가진 토마토를 오랫동안 ‘사랑의 사과(a love apple)’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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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담패설 飮啖稗說 "내가 갈 때까지 씻지 말고 기다리시오"...황제도 반했다 콘텐츠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다. 이 중 음식을 소재로 한 콘텐츠는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데 비교적 유리하다. 최소 ‘평타’ 이상은 보장한다. 원초적 욕망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음식을 만들고 먹고 식재료를 고르는 제각각의 과정은 그 모습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기 쉽다. 음식에 이종 장르를 결합해 다종다양한 서사를 만들어낸 인상적인 콘텐츠도 많다.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던 <흑백요리사>는 원초적 욕망과 이상적 가치에 소구하며 국내외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문화 콘텐츠 소재로 음식이 적극 활용되었던 것은 회화가 유일한 시각적 콘텐츠이던 과거에도 비슷했던 것 같다. 17세기에 발달했던 네덜란드 정물화는 귀족이나 부유한 시민계급에 사랑받았다. 당시 화가들이 주로 사용했던 피사체는 꽃 혹은 음식이었다. 음식을 주인공 삼은 그림을 두고 많은 미술학자나 평론가들은 인간 욕망의 반영이라고 말한다. 생명 유지를 위한 필수 조건이 음식이고 인간의 근본 욕구가 식욕이기 때문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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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당신이 아픈 이유…혹시 패스트푸드?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녹아내리지 않는 완벽한 원형의 아이스크림. 영롱하게 반짝이는 윤기에 먹음직스러운 모양새는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손색이 없다. 초코맛 시리얼이 담긴 박스에는 귀여운 원숭이가 그려져 있다. 밥 먹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이 시리얼은 더 먹겠다고 떼를 쓸 만큼 유혹적인 맛이다. 포장 박스에는 ‘다행히’도 하루 비타민 D 섭취량의 50%가 함유돼 있으며 설탕은 30% 저함량이라는 표기가 되어 있다. 비단 아이스크림, 시리얼뿐일까. 우리가 일상에서 먹고 마시고 음미하는 먹거리의 상당수는 맛과 모양, 편의성, 경제성을 두루두루 충족시키고 있는 ‘제품’들이다. 바쁘고 팍팍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 입장에선 시간을 들여 수고롭게 준비할 필요도 없고 원재료를 사서 손질해 만드는 것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하지만 실상 이 먹거리들은 음식이라 부르기 민망한 ‘물질’들이다. 미국, 영국 등 소위 선진국 사람들이 섭취하고 얻는 에너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이 물질들은 음식이 아닌 음식, 즉 ‘초가공식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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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담패설 飮啖稗說 화끈, 부끄···입에 담기 어려운 떡 한 커뮤니티에 올랐던 글이 사회관계망서비스를 비롯해 뉴스로까지 퍼지면서 잠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지인들의 모임에서 누군가가 “이 정도면 떡을 치죠”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분위기가 말 못할 정도로 싸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발화자의 의도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뜻이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전혀 ‘다른 뜻’을 떠올렸다. 부자연스럽게 조용해진 분위기를 어색한 웃음으로 마무리했다는 것이 주된 사연으로, 최근 몇년 새 불거진 문해력·어휘력 문제까지 소환하며 사회관계망서비스를 달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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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맥스웰·맥심·아메리카노…‘소비 역사’를 보면 한국이 보인다 2023년 한국인은 연간 405잔의 커피를 마신다. 전 세계 평균(152잔)을 훌쩍 뛰어넘는 커피 소비 대국이다. 100여년 전 국내에 선보인 커피는 1950년대 미군 기지에서 흘러나온 커피로 대중화되기 시작해 동서식품의 맥스웰하우스(1970년)·맥심(1980년)으로 이어진 인스턴트 커피가 전 국민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2009년 장기하와 얼굴들이 ‘싸구려 커피’라는 곡으로 커피믹스를 노래하던 그 시절, 인스턴트 커피의 대명사 ‘믹스커피’의 인기는 정점을 지나고 있었다. 이를 기점으로 커피의 취향은 밥 한끼 값에 육박하는 ‘아메리카노’로 바뀌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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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꽁치구이에도 이런 역사가…맛깔나게 풀어낸 일본 어식문화 ‘일식’ 하면 떠올리게 되는 것은 생선이다. 고급 일식집의 스시부터 소박한 가정식에 나오는 생선구이 한 토막에 이르기까지 일본 밥상에서 생선을 떼어놓긴 어렵다. 일본 식문화의 중심이 생선이란 건 젓가락만 봐도 알 수 있다. 한·중·일 3국은 공통적으로 젓가락을 사용한다. 그중 길이가 가장 짧고 유독 끝이 가늘고 뾰족한 것이 일본의 젓가락이다. 생선 살을 효율적으로 잘 발라먹기 위해서다. 심지어 일본인들은 스스로를 ‘어식민족’이라고 칭한다. 해산물을 먹는 사람이란 뜻이다. 우리에겐 생소한 단어지만 일본인들은 곧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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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담패설 飮啖稗說 푸릇함 속 야릇한 19금 채소 따지고 보면 들어본 이야기이고,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그래도 늘 귀를 쫑긋 세우게 되는 화젯거리가 있다. ‘뭐가 몸에 좋다더라’ ‘이런 증상이 있을 때 이걸 먹으면 특효다’ 따위의 건강 정보다. 내 몸의 건강 상태와 직결되는 먹거리 이야기에 동하는 원초적 호기심은 뿌리치기 어렵다. 기승을 부리는 더위가 가실 줄 모르는 요즘 꽤 많이 언급되는 먹거리가 있다. 특유의 향과 청량한 뒷맛을 가진 채소, 부추다. 의사나 식품 전문가들이 권하는 부추의 효능은 기력 회복과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다. 혈액 순환을 돕고 소염효과도 뛰어난 데다 간과 위장, 신장의 기능을 개선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 기력을 잃고 지치기 쉬운 여름철을 나는 데 도움이 되는 팔방미인 부추의 효능을 보노라면 보약에 버금갈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동의보감>이나 <식료찬요> 같은 옛 의서에도 부추는 간을 튼튼하게 해주고 위장과 신장을 이롭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상지대 초빙교수를 지낸 농부이자 목사 임락경은 <나를 살리는 음식과 건강 이야기>에서 “부추는 채소라기보다는 약재에 가깝다. 50병 통치약은 되겠다. 반찬으로 수시로 먹어주면 병이 안 난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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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향신료 확보하라” 대항해시대 각축전 벌인 유럽 열강 많은 역사학자는 세계사의 주요한 변곡점이 된 대항해시대를 연 기폭제가 향신료였다고 이야기한다. 후추로 대표되는, 동양에서 나는 신비로운 향신료는 15세기 유럽 사람들에게 황금 이상의 가치를 지닌 보물이었고 기꺼이 목숨을 걸 만한 대상이었다. 귀한 향신료를 차지하기 위해 유럽 열강들은 앞다퉈 먼 길을 떠났다. 그리고 이는 치열한 경쟁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이어졌다. <향신료 전쟁>은 대항해시대 향신료를 두고 벌어졌던 유럽 열강의 각축전을 그린 책이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열강들이 향신료를 향한 ‘탐욕’으로 어떻게 엎치락뒤치락했는지 보여주는데, 그 무대로 ‘스파이스 제도’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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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들풀에서 곤충까지…전쟁의 업보 속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열도인들 거무튀튀한 보리밥은 요즘 젊은이들도 간간이 별미로 즐기는 음식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겪고 자란 70·80대 이상에겐 진저리나는 맛일지도 모른다. 쌀을 구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했던, 입에서 겉도는 그 거친 보리의 맛 말이다. 전쟁은 총칼과 폭탄으로 목숨을 위협하기도 하지만 먹거리를 구하지 못해 생사의 갈림길에 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살아남기 위해 평소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무언가를 입안으로 밀어넣을 수밖에 없다. <전쟁은 일본인의 밥상을 어떻게 바꿨나>는 중일전쟁부터 아시아·태평양 전쟁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전쟁을 거치는 동안 일본인들의 밥상이 어떻게 피폐해져 갔는지 살펴본 책이다. 문예평론가인 저자는 ‘폭탄이 떨어진대도 요리코너를 이어가며 목숨을 부지한 몇몇 여성지’를 통해 이 과정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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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담패설 飮啖稗說 유혹의 디저트 ‘티라미수’ 부드럽고 달콤한 맛, 사르르 흘러내리는 질감의 디저트. 티라미수다.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 곳곳에서 때아닌 티라미수 타령이 한창이다. “티라미수 케익 티라미수 케익~”하는 노랫말에 맞춰 간단한 춤을 추는 영상이 릴스와 틱톡, 쇼츠 등 쇼트폼 플랫폼을 점령했다. 원곡은 2015년 인디밴드 위아더나잇이 발표했던 ‘티라미수 케익’. 중독성 있는 멜로디에 재미있고 쉬운 안무가 더해지면서 우연찮게 챌린지 바람을 탔다. 덕분에 앞으로 티라미수를 보면 이 곡을 자동반사적으로 떠올릴 가능성이 크다. 한동안 아메리카노 커피 하면 밴드 십센치가 떠올랐던 것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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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담패설 飮啖稗說 정력엔 ‘펄떡펄떡’ 꼬리? 몸통이 억울하겠네 다닥다닥 이어지는 간판의 행렬 속. 무심코 한 곳에 눈이 갔다. ‘살아 있는 비아그라.’ 그로테스크한 기분이 들었으나 간판의 홍수 속에 눈길을 끄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 ‘혹시 장어집인가’ 싶었는데 맞았다. 웬만한 중장년층에게 장어는 스태미나를 충족시켜주는 보양식으로 통한다. 기력이 떨어지는 여름철엔 특히 장어집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을 비롯해 좋은 영양소가 풍부하기 때문에 먹고 나면 기력이 생기고 든든하다. 그뿐인가. 고소하고 진한 풍미를 지닌 진미인지라 많은 미식가를 유혹한다. 숯불 위에서 자글자글 연갈색 빛으로 익어가는 장어는 그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