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이토록 요염한 ‘굴’이라니

박경은 기자

음식과 이야기

카이사르, 루이 14세, 나폴레옹, 비스마르크, 위고, 헤밍웨이, 그리고 카사노바가 즐겨먹던 굴.

[음담패설 飮啖稗說](4)이토록 요염한 ‘굴’이라니

며칠 전 숙취로 쓰린 속을 달래려 시원한 굴국밥을 입안으로 퍼넣고 있는데 문득 메뉴판이 눈에 와 닿았다. ‘굴보쌈-계절 메뉴’. 미친 듯 먹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니 생굴을 먹었던 것이 지난해 김장할 때, 그리고 올 초 친구네 집들이에서 이렇게 두 차례였다. 아직 3월인데 혹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간절한 표정을 지었으나 소용없었다.

유년 시절, 어른들의 식생활은 이해 안 되는 것투성이였다. 그중에서도 굴은 첫손에 꼽을 만했다. 콧물처럼 물컹하고 냄새도 비린 걸 어쩜 저렇게 맛나게도 먹는지. 당신들만 먹으면 될 것을 왜 자꾸 권하는지. 어릴 때부터 식탐이 많아 신기한 먹거리가 있으면 일단 입에 넣고 봤는데 굴은 좀처럼 적응이 안 됐다. 당최 이해 안 되던 그 마음이 무색하게도 20대 후반 어느 시점부터인가 나 역시 굴을 즐기고 있었다. 누구네 집 어린 딸내미가 굴을 잘 먹는다는 둥, 일곱 살밖에 안 된 녀석이 굴을 꿀떡꿀떡 삼킨다는 것 따위가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을 보면 굴은 소위 ‘어른’의 음식이라고 할 만하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탱탱한 생굴, 샤블리 와인에 곁들이는 큼직한 석화…. 다양한 굴 요리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날것으로 먹는 굴이 제일 맛있다. 우리 조상들도 그랬다. 정조 시대의 문장가 이옥은 <백운필>에 다음과 같이 썼다. “석화는 회로 먹으면 최고이고 무침이 그다음이며 젓갈을 담그는 게 또 그다음이고 굴전을 부치는 게 젓갈에 못 미치며, 국을 끓여 먹는 게 가장 못하다”(<한식문화사전>)

해산물을 날것으로 먹지 않는 서양에서도 굴은 예외적으로 날것을 즐긴다. 서구 식문화에서 굴은 비싸고 고급스러운 식재료다. ‘샴페인과 굴’은 성공과 부를 가진 상류층 삶을 상징하는 필수 요소로 여겨지기도 한다. 굴을 호화롭고 맛있게 즐기기 위한 차별화된 레스토랑 ‘오이스터바’도 있지 않나.

동서고금 막론 ‘정력 향상’ 인식
호르몬 분비 촉진 ‘아연’ 함량 높아
‘사랑’ 전 수십개 먹은 카사노바 등
권력자·유명 인사들 유독 굴 탐닉

얼음이 채워진 우아한 쟁반 위에 껍데기를 반만 깐 싱싱한 굴(Half Shell)이 누워 있는 사이로 조각난 레몬이 놓인 모습을 상상해보자. 와인 한 병 곁들이면 이만큼 럭셔리한 식탁이 또 없다. 괜히 가슴 설레고 들뜨는 기분은 덤이다. 윤기가 도는 싱싱하고 희끄무레한 속살을 살살 긁어 호로록 들이마시는 그 순간 입안에서 퍼지는 풍부한 즙과 부드러운 식감은 바다를 한껏 품은 듯하다.

수북하게 쌓인 굴 껍데기를 통해 부와 권력, 쾌락적 삶을 과시하려는 지배계급의 욕망을 드러낸 장 프랑수아 드 트루아의 그림 ‘굴이 있는 점심식사’. 위키피디아

수북하게 쌓인 굴 껍데기를 통해 부와 권력, 쾌락적 삶을 과시하려는 지배계급의 욕망을 드러낸 장 프랑수아 드 트루아의 그림 ‘굴이 있는 점심식사’. 위키피디아

굴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식재료다. 선사시대에도 굴을 먹었다. 세계 각지에서 발견된 패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굴 껍데기다. 굴은 해안가에서 구하기 쉬운 데다 맛이 좋고 영양도 풍부하다. 음식을 담아 먹는 도구로 사용됐을 가능성도 크다. 당시 조상들에겐 두루두루 이로운 식재료였을 게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황제의 식탁에도 올랐다.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 따르면 로마인들은 굴로 만든 요리를 최고급으로 여겼다. 그 시절 신선한 청량감을 위해 굴을 눈에 묻어 식탁에 올렸을 정도라면 얼마나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음식이었을까. 믿거나 말거나 싶지만 한 끼에 굴을 1000개나 먹었다는 황제도 있었고, 철학자 세네카 역시 매주 1000개에 이르는 굴을 먹었다고 한다. 고대 로마에선 굴에 대한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굴 양식도 했다. <박물지>는 굴의 효능에 대해 위를 건강하게 하고 식욕을 회복시켜 준다고 설명한다.

맛 좋고 영양이 풍부한 데다 값비싼 식재료는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수단이다. 서구 역사에 굴에 탐닉했던 권력자나 유명 인사들이 무수히 많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카이사르, 루이 14세, 카사노바, 나폴레옹, 위고, 비스마르크, 헤밍웨이 등은 굴 마니아로 꼽히는 대표적 인물들이다. 장 프랑수아 드 트루아의 ‘굴이 있는 점심식사’ 같은 그림은 부와 권력, 쾌락적 삶을 과시하려는 지배계급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신흥 부르주아의 취향을 저격했던 17세기 네덜란드 풍속화에는 굴이 등장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저 과시용이었을까. 굴이 이처럼 오랜 기간 사랑받은 것은 성을 향한 인류의 원초적 욕망과 밀접하게 엮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굴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성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페루 출신 작가 이사벨 아옌데는 음식에 담긴 에로티시즘적 의미를 다룬 저서 <아프로디테>에서 “굴은 최음제 요리의 여왕”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2005년 5월10일)도 “비아그라가 나오기 전 사람들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약이 아닌 음식에 의존했다”면서 “로맨스와 관련해 굴보다 더 명성을 얻은 건 없을 것”이라고 썼다.

굴은 동서고금에서 정력에 좋은 음식이라고 인식되어 왔다. 바다의 우유라는 별명처럼 굴은 영양분이 풍부하다. 정력이나 남성 건강에 특효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굴에 아연 함량이 많기 때문이다. 아연은 남성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고 정자를 생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서양에서는 ‘굴을 먹어라, 더 오랫동안 사랑할 수 있다(Eat Oyster, Love Longer)’는 속설이 오랫동안 전해져 왔다.

굴의 성적인 의미는 생김새 때문이기도 하다. 굴이 여성의 성기를 닮았다는 인식은 고대부터 이어져 왔다. 이는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탄생 설화와 무관하지 않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의 아들 크로노스는 아버지의 성기를 잘라 바다에 던진다. 성기에서 나온 정액과 바닷물이 섞인 거품 속에서 아프로디테가 태어났다. 보티첼리의 그림 ‘비너스의 탄생’에선 가리비 위에 서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굴 껍데기가 아프로디테의 상징이라는 기록들도 많다. 예술사가 리아나 체니는 ‘네덜란드 풍속화에서 굴의 성적 상징’이라는 논문에서 “굴 껍데기는 고대부터 중세,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아프로디테의 상징이 됐다”고 쓰고 있다. 다산, 사랑, 쾌락, 성의 여신인 아프로디테가 함께한 신들의 잔치에는 굴이 등장한다. 프랑스 플로리스의 ‘신들의 향연’, 헨드릭 반 발렌의 ‘펠레우스의 결혼’ 등 16~17세기 네덜란드 회화 작품에는 반나체 상태로 느른한 표정을 지으며 굴을 즐기는 신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최음제(aphrodisiac)의 어원이 아프로디테(aphrodite)인 것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영국의 뉴스매체 아이(i)는 굴이 어떻게 성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는지 분석하는 기사(2018년 2월13일)에서 “르네상스 시대에 굴은 성적인 욕망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의학서에 자주 등장했으며 17세기엔 사창가를 찾는 사람들에게 절인 굴을 제공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썼다. 또 당시 굴은 여성의 성기를 가리키는 속어로도 사용됐다. 성과 관련한 용어 사전 ‘섹스 렉시스 닷컴(Sex-Lexis.com)’에 굴(oyster)을 입력하면 17세기부터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는 설명이 나온다.

굴과 정력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카사노바다. 희대의 호색한 카사노바가 사랑을 하기 위해 아침마다 굴을 수십 개씩 먹었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려져 있다. 그는 굴을 어떻게 먹었을까. 우아하게 식탁 앞에 앉아 굴을 즐겼을까. 그가 쓴 자서전 <불멸의 유혹>에는 연인과 어떻게 굴을 먹었는지 묘사되어 있다. 과연 불멸의 호색한답다.

“펀치를 만들어 마시고 굴을 먹었다. 우리는 입에 든 굴을 혀로 서로의 입에 넣어주며 놀았다. 사랑하는 남녀가 즐길 수 있는 놀이로 이보다 더 도발적이고 감각적인 것은 없다. … 사랑하는 여자의 입이 요리하는 굴의 맛은 그 어떤 굴 요리보다 맛있다. 침이라는 소스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침을 씹고 삼킬수록 사랑의 욕구는 더욱 커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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