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목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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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건진 문단 “돈으로 행복 살 수 없다”에 깃든 복종과 감내, 내 탓···‘체제 정당화의 심리학’ “당연히 살 수 있죠. 그건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지 않게 하려고 하는 거짓말일 뿐이에요.”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 한 에피소드에서 부자 가브리엘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매리 수녀의 말에 이렇게 대꾸합니다. 미국 뉴욕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사회·정치행동연구소 공동 책임자인 존 T. 조스트는 <체제 정당화의 심리학>(신기원 옮김, 에코리브르) 책 7장에서 이 대화를 인용합니다. 읽기 딱딱한 이 책에서 ‘체제 정당화’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쉬운 사례 중 하나입니다. 아래 동영상 50초쯤 보시면 해당 대화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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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문장 “인류라는 추상물 이야기는 그만두자” 브라질 크레나키 원주민 운동가 아이우통 크레나키는 2000~3000년에 걸쳐 ‘우리’가 구축한 인류라는 관념을 문제 삼는다. “역사에 등장한 그토록 많은 폭력의 사용을 정당화했던 나쁜 선택의 기원에 그 인류라는 관념이 있지 않은가.” 그는 폭력과 생태학살의 식민화 과정이 유럽 백인 남성, 즉 “개명한 인류”가 “야생의 어둠에 남겨진 인류”를 만나 빛을 비춰주려 했던 원칙을 따랐다고 지적한다. 지금도 원주민들은 노동력과 근대화라는 명목 아래 “소속 집단과 고향에서 뿌리째 뽑혀 ‘인류’라는 이름의 분쇄기 안으로 내던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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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사회적 지속 가능성을 보장해야 생태 전환 이뤄진다”····‘사회 생태 전환의 정치’ <사회 생태 전환의 정치>(엮은이 임운택·김민정·강민형, 두번째테제)는 자본주의 이중 전환 문제를 다룬다. “2007~2008년 글로벌 경제의 대침체를 계기로 본격화된 21세기 자본주의의 전환은 2010년대 전 지구 차원에서 디지털 전환과 그린 전환이라는 이중 전환으로 구체화되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그린 뉴딜, 한·중·일은 각각 ‘한국판 뉴딜’, ‘중국 제조 2025’, ‘디지털 어젠다 2030’라는 이름으로 ‘전환’을 시도한다. 엮은이들은 책 서문에 “자본주의 위기 상황에서 국가와 민중의 대항운동이 지닌 해방적 잠재력에 주목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사회세력이 자신의 자율성을 구체화하기 전에 국가와 자본이 위로부터의 개입을 통해 오늘날 자본주의 이중 전환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썼다. 자본주의 위기 상화에서 이중 전환은 지정학 갈등, 사회갈등, 생태전환 갈등 같은 양상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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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 청소년/노동자/학생”의 짧고 비극적인 삶···박이은실 ‘소녀, 농약, 좀비’ ‘소녀’는 1972년 경남 지역의 한 반농 반어촌에 가까운 소도시에서 태어났다. 소녀에겐 소아마비를 앓아 어린 시절부터 다리에 장애가 있는 큰언니와 소녀보다 한 해 먼저 태어난 작은언니가 있었다. 열여섯 살이 되던 1988년 작은 중학교를 졸업한 소녀는 마산의 산업체 부속 한일여자실업고등학교로 진학한다. 그해 5월 본가로 돌아와 ‘제초제’를 마시고 죽는다. “음독 후 병원에 옮겨졌지만 손쓸 방법이 없었다. 소녀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엄마, 나 살고 싶어’였다고 전해진다.” 박이은실(아주 작은 페미니즘학교 탱자 전담교수)은 ‘소녀, 농약, 좀비’에서 한 실존 인물의 짧고 비극적인 삶을 불러내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작동한 일련의 사회-생태를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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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건진 문단 ‘유색인종여성 연대 동성애소설’부터 ‘가부장제 억압 에로방화’, ‘5·18저항 SF만화’까지 이번 주 ‘책건문’은 <민중의 시대>(빨간소금)입니다. 이번 주 ‘책과 삶’ 머리기사는 다른 기자가 씁니다. 12월 문화면에 실었던 기사를 다시 정리했습니다. <민중의 시대>는 1980년대 민중과 민주화운동을 다른 여느 책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1980년대 학술 연구는 “주로 격변과 해방의 서사에 집중”했죠. 박선영(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동아시아학과 젠더학 부교수)은 “민주화의 주체로서 민중지식인에 주목함으로써 노동자, 여성, 일반 시민, 비주류 예술가처럼 함께 동시대를 만든 집단을 소홀히 다루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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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건진 문단 발등이 찍힌다고? 신발에 쇠 덮개 어때?···‘일하다 아픈 여자들’ ‘선탄(選炭)’은 갱내에서 생산한 석탄에 든 잡석 같은 이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을 뜻하는 말입니다. 1960~1970년대 이 일은 주로 여성 노동자가 맡았습니다. 이들을 아낙 ‘부(婦)’를 붙여 선탄부(選炭婦)라 불렀죠. 선탄부 중엔 탄광에서 죽거나 다친 남편들의 아내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나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글쓴이들을 대표해 쓴 <일하다 아픈 여자들>(빨간소금) ‘책을 펴내며’를 선탄부(選炭婦)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온라인에서 선탄부를 이미지 검색하면 여러 장이 뜹니다. 마스크도 없이 작은 간이의자에 쪼그려 앉아 잡목이나 돌들을 고르는 모습들이 나옵니다. <일하다 아픈 여자들>을 보면, 선탄부 노동은 지금의 여러 여성 노동과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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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문장 “모두 콘크리트 정글로 뒤바뀌었다” 일본 토건 사업 등을 비판하는 내용의 <치명적인 일본>을 쓴 알렉스 커는 이 책에서도 전통과 환경 파괴를 이야기한다. TV 속 광야에 콘크리트나 전깃줄이 없다면, 세트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풍광의 소멸 와중에 빠져든 건 가부키, 다도, 서예 같은 추상의 세계다. 일본 비판서자 예찬서다. ‘지하 감옥의 달걀’은 고대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전설에 나온다. 이 시인이 나폴리의 카스텔 델로보(달걀성)에 달걀을 선물하며 달걀이 깨지면 성도 부서질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다. 지하감옥에 보관한 달걀도 깨지지 않았고, 성도 무너지지 않았다. 커는 어릴 적 이 성에 살고 싶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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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치사상·철학 핵심은 ‘행동’ ‘양심’ ‘용서’” “김대중 탄생 100주년”을 내건 책이 3권 나왔다. 이 중 새로 쓴 학술서는 <사상가 김대중>(지식산업사)이다. 6명의 국내외 학자가 김대중의 정치사상과 철학에 관해 쓴 책이다. 이영재(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그간 연구에서 덜 조명된 ‘김대중의 여성주의 정치이념’을 썼다. 이영재는 김대중이 여성주의 정치이념을 한국 정치에서 실현해야 할 우선순위로 봤다고 분석했다. “인권과 평등의 가치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한 시대적 지향성” “남성/여성의 대립 차원이 아니라 인도주의와 인권, 민주화라는 보편적 지평” 등을 김대중 여성주의 특징으로 본다. 한국 여성운동과 여성주의 논의 맥락에서 김대중 여성주의 이념도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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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표지?’···쌤앤파커스, 어크로스 책 표지 ‘표절’ 비판 이어져 지난 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오른 출판계 이슈는 쌤앤파커스 1월 출간 예정작 <벌거벗은 정신력> 표지다. 이 책 표지가 어크로스가 지난해 4월 낸 <도둑맞은 집중력> 표지의 한글·영문 폰트, 제목 배치 등이 비슷한 점을 두고 여러 비판과 지적이 나온다. 한글 큰 제목 아래 한글 부제를 넣고, 그 밑에 영문 제목을 배치한 것도 유사하다. 두 책 저자는 영국 저널리스트 요한 하리다. 쌤앤파커스는 9일 페이스북에 ‘첫 독자를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책 광고를 내며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의 화제작”이라는 선전 문구와 함께 <벌거벗은 정신력> 표지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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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건진 문단 우리는 위대한 지배계급, 규칙 따위 적용되지 않아···‘옥스퍼드 초엘리트’ 영국 총리를 지낸 보리스 존슨이 2017년 9월 외무부 장관 자격으로 미얀마 수도 양곤의 황금탑(쉐다곤 파고다)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러디어드 키플링의 시 ‘만달레이’를 낭송하기 시작했죠. “돌아와 주세요. 영국 군인이여….” 옆 사람들에게 “이 시 기억나”라고 묻습니다. 다음 구절을 읊지는 않았지만(또는 촬영이 안 됐을 수도 있지만), 시는 “만달레이로 돌아와 주세요”로 이어집니다. 퇴역 군인이 식민지 버마 소녀와 키스했던 시절을 회고하는 내용의 시죠. 일본 외무상이 2017년 한국 유적을 방문한 자리에서 “돌아와 주세요, 황군(皇軍)이여, 경성으로 돌아와 주세요”라는 내용의 시를 읊은 셈입니다. 미얀마 주재 영국 대사 앤드루 패트릭이 “마이크가 커져 있어요. (이 시를 낭송하는 게)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부적절합니다”라며 말려야 했습니다. 존슨은 별일 아닌 양 듣고는 여느 관광객 같은 표정을 지으며 스마트폰으로 주변을 촬영합니다. 당시 가디언 등이 영상을 입수해 보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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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약자’ ‘카르텔’ 호명에 담긴 윤석열 정권의 분리통치···조문영 “빈곤은 이벤트·브랜드화 아니라 철폐·종식 대상” 조문영(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은 지난해 크게 주목받은 학자 중 한 명이다. 연말 <빈곤 과정>(글항아리)은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다. 제자들로 구성된 ‘빈곤의 인류학’ 연구팀 글을 엮은 <동자동, 당신이 살 권리>(글항아리)도 ‘올해의 인권상’을 수상했다. 두 책에 관한 학술계 리뷰도 이어졌다. 학문적 성취는 20여 년을 빈곤 연구에 매진한 결과다. 대학생일 때 서울 봉천동 공부방 교사 활동부터 최근의 동자동 공공개발 연구까지를 두고 ‘학문과 삶이 일치한다’는 평가도 있다. 조문영은 이를 곤혹스러워한다. 서울대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연세대에서 ‘정규직 교수’로 일하는데도, 빈곤을 오래 연구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온 평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자신을 종종 ‘모순적 존재’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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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건진 문단 자연에서 성폭력 트라우마를 치유하다···배리 로페즈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배리 로페즈(1945~2020)는 “이 시대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평을 들은 자연 작가입니다.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이승민 옮김, 북하우스)는 마지막 에세이집입니다. 미국에선 2022년 나왔죠. 출판사가 단 부제는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 여정’입니다. 고통?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아동 성도착자에게 4년 반 동안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지역 어른들에게 전폭적으로 신뢰를 받던” 남성이었는데, 나중에 가짜 의사이자 소시오패스, 병적 자아도취자로 밝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