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목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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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건진 문단 발등이 찍힌다고? 신발에 쇠 덮개 어때?···‘일하다 아픈 여자들’ ‘선탄(選炭)’은 갱내에서 생산한 석탄에 든 잡석 같은 이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을 뜻하는 말입니다. 1960~1970년대 이 일은 주로 여성 노동자가 맡았습니다. 이들을 아낙 ‘부(婦)’를 붙여 선탄부(選炭婦)라 불렀죠. 선탄부 중엔 탄광에서 죽거나 다친 남편들의 아내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나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글쓴이들을 대표해 쓴 <일하다 아픈 여자들>(빨간소금) ‘책을 펴내며’를 선탄부(選炭婦)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온라인에서 선탄부를 이미지 검색하면 여러 장이 뜹니다. 마스크도 없이 작은 간이의자에 쪼그려 앉아 잡목이나 돌들을 고르는 모습들이 나옵니다. <일하다 아픈 여자들>을 보면, 선탄부 노동은 지금의 여러 여성 노동과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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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문장 “모두 콘크리트 정글로 뒤바뀌었다” 일본 토건 사업 등을 비판하는 내용의 <치명적인 일본>을 쓴 알렉스 커는 이 책에서도 전통과 환경 파괴를 이야기한다. TV 속 광야에 콘크리트나 전깃줄이 없다면, 세트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풍광의 소멸 와중에 빠져든 건 가부키, 다도, 서예 같은 추상의 세계다. 일본 비판서자 예찬서다. ‘지하 감옥의 달걀’은 고대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전설에 나온다. 이 시인이 나폴리의 카스텔 델로보(달걀성)에 달걀을 선물하며 달걀이 깨지면 성도 부서질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다. 지하감옥에 보관한 달걀도 깨지지 않았고, 성도 무너지지 않았다. 커는 어릴 적 이 성에 살고 싶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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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치사상·철학 핵심은 ‘행동’ ‘양심’ ‘용서’” “김대중 탄생 100주년”을 내건 책이 3권 나왔다. 이 중 새로 쓴 학술서는 <사상가 김대중>(지식산업사)이다. 6명의 국내외 학자가 김대중의 정치사상과 철학에 관해 쓴 책이다. 이영재(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학술연구교수)는 그간 연구에서 덜 조명된 ‘김대중의 여성주의 정치이념’을 썼다. 이영재는 김대중이 여성주의 정치이념을 한국 정치에서 실현해야 할 우선순위로 봤다고 분석했다. “인권과 평등의 가치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한 시대적 지향성” “남성/여성의 대립 차원이 아니라 인도주의와 인권, 민주화라는 보편적 지평” 등을 김대중 여성주의 특징으로 본다. 한국 여성운동과 여성주의 논의 맥락에서 김대중 여성주의 이념도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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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표지?’···쌤앤파커스, 어크로스 책 표지 ‘표절’ 비판 이어져 지난 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오른 출판계 이슈는 쌤앤파커스 1월 출간 예정작 <벌거벗은 정신력> 표지다. 이 책 표지가 어크로스가 지난해 4월 낸 <도둑맞은 집중력> 표지의 한글·영문 폰트, 제목 배치 등이 비슷한 점을 두고 여러 비판과 지적이 나온다. 한글 큰 제목 아래 한글 부제를 넣고, 그 밑에 영문 제목을 배치한 것도 유사하다. 두 책 저자는 영국 저널리스트 요한 하리다. 쌤앤파커스는 9일 페이스북에 ‘첫 독자를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책 광고를 내며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의 화제작”이라는 선전 문구와 함께 <벌거벗은 정신력> 표지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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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건진 문단 우리는 위대한 지배계급, 규칙 따위 적용되지 않아···‘옥스퍼드 초엘리트’ 영국 총리를 지낸 보리스 존슨이 2017년 9월 외무부 장관 자격으로 미얀마 수도 양곤의 황금탑(쉐다곤 파고다)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러디어드 키플링의 시 ‘만달레이’를 낭송하기 시작했죠. “돌아와 주세요. 영국 군인이여….” 옆 사람들에게 “이 시 기억나”라고 묻습니다. 다음 구절을 읊지는 않았지만(또는 촬영이 안 됐을 수도 있지만), 시는 “만달레이로 돌아와 주세요”로 이어집니다. 퇴역 군인이 식민지 버마 소녀와 키스했던 시절을 회고하는 내용의 시죠. 일본 외무상이 2017년 한국 유적을 방문한 자리에서 “돌아와 주세요, 황군(皇軍)이여, 경성으로 돌아와 주세요”라는 내용의 시를 읊은 셈입니다. 미얀마 주재 영국 대사 앤드루 패트릭이 “마이크가 커져 있어요. (이 시를 낭송하는 게)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부적절합니다”라며 말려야 했습니다. 존슨은 별일 아닌 양 듣고는 여느 관광객 같은 표정을 지으며 스마트폰으로 주변을 촬영합니다. 당시 가디언 등이 영상을 입수해 보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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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약자’ ‘카르텔’ 호명에 담긴 윤석열 정권의 분리통치···조문영 “빈곤은 이벤트·브랜드화 아니라 철폐·종식 대상” 조문영(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은 지난해 크게 주목받은 학자 중 한 명이다. 연말 <빈곤 과정>(글항아리)은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다. 제자들로 구성된 ‘빈곤의 인류학’ 연구팀 글을 엮은 <동자동, 당신이 살 권리>(글항아리)도 ‘올해의 인권상’을 수상했다. 두 책에 관한 학술계 리뷰도 이어졌다. 학문적 성취는 20여 년을 빈곤 연구에 매진한 결과다. 대학생일 때 서울 봉천동 공부방 교사 활동부터 최근의 동자동 공공개발 연구까지를 두고 ‘학문과 삶이 일치한다’는 평가도 있다. 조문영은 이를 곤혹스러워한다. 서울대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연세대에서 ‘정규직 교수’로 일하는데도, 빈곤을 오래 연구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온 평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자신을 종종 ‘모순적 존재’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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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건진 문단 자연에서 성폭력 트라우마를 치유하다···배리 로페즈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배리 로페즈(1945~2020)는 “이 시대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평을 들은 자연 작가입니다.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이승민 옮김, 북하우스)는 마지막 에세이집입니다. 미국에선 2022년 나왔죠. 출판사가 단 부제는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 여정’입니다. 고통?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아동 성도착자에게 4년 반 동안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지역 어른들에게 전폭적으로 신뢰를 받던” 남성이었는데, 나중에 가짜 의사이자 소시오패스, 병적 자아도취자로 밝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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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책 사이 출판사들의 착취 민음사가 노동자가 지각하면 분 단위로 월급에서 차감하다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적발됐다. 임직원 경조사 때는 노동자들에게 대장을 돌려 부조 금액을 적게 한 뒤 월급에서 덜어냈다. 사내에는 “지각비가 없으면 열심히 출근하는 사람이 손해”라 여기는 이들도 있다고 하니, 을들 간의 적대와 경쟁도 제대로 부추긴 셈이다. 출판계의 비극은 민음사 같은 경우 그나마 노동조건이 다른 출판사보단 나은, 아니 덜 나쁜 곳이라는 점이다. 출판노조로부터 북라인드(Book-lind)에 오른 제보 사항을 전해 받았다. 지각비 등을 고발한 곳이다. 노동조건이나 근로기준법 관련해선 “직원 갈궈 쫓아낼 때는 권고사직 인정 안 해줌” “급여 날 안 지켜줌” “야근은 5일 중 5일” “야근비 안 줌” “상사 퇴근 전 퇴근 못함” “편집자가 카드 뉴스 제작” 같은 내용이 올랐다. “5인 사업장인데 1년에 5인 나감” 같은 글도 있다. 사주나 상사에 관한 글도 많다. “어른들 심기 건드리면 절대절대 안 되는 곳”, “사장이 분노조절 장애” “사장은 창업주 동생” “회장님 손자”, “딸이 물려받을 예정”. “메신저 자리 비움 기능 체크” 같은 사측의 감시에 관한 글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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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적인 것’ 착취하는 금융자본” 맞선 “투쟁의 절대적 민주주의” “오늘날 민주주의는 단지 땅(토지 및 부동산)을 기반으로 하는 지대와 대면할(그리고 그것에 맞설) 뿐 아니라 무엇보다 금융지대, 즉 다중에 대한 통치의 근본 도구로서 화폐를 전 지구적으로 동원하는 자본과 맞서고 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타계한 안토니오 네그리(사진)가 <‘대위기’ 상황에서 지대에 관한 몇 가지 고찰>에서 한 말이다. 네그리가 2008년 금융위기를 두고 쓴 글이다. 네그리는 ‘금융화’가 “자본주의적 명령의 현재적 형태”라며 이렇게 썼다. “명백히 금융화는 여전히 지대와 연결되어 있으며 자본주의적 착취의 모호함과 모순뿐 아니라 폭력적 의도 모두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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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건진 문단 ‘남자 집권 보안법’부터 ‘친일 반민족주의’까지···‘올해의 문단과 문장들’ 이번 주 경향신문 ‘책과 삶’ 지면은 ‘올해의 책’입니다. 이번 주엔 ‘올해의 책’을 정리하느라 따로 읽은 책이 없습니다. ‘책건문’은 제가 서평 일로 읽은 책들 중에서 ‘올해의 문단(문장)’을 골라봤습니다. 책건문에 소개한 책들은 제외했습니다. 기사 링크도 전합니다. 더 자세히 읽고 싶은 분들은 보시면 될 듯합니다. 반전 메시지를 담은 소설과 시가 여럿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직접적으로 다룬 건 하종오의 40번째 시집 <“전쟁 중이니 강간은 나중에 얘기하자?”>(도서출판b)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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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의 문장 “그저 존재함의 재능” 페미니스트 철학자이자 장애학과 돌봄 분야 이론가 에바 페더 키테이는 “(딸 세샤의) 상당한 인지장애와 신체적 장애는 내가 전문 철학자가 된 이래 철학에 대한 내 이해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고 말한다. 장애학을 철학에 끌어와 “세샤의 자리”를 만든다. 기존 철학은 의존하는 이들을 무능하고, 미숙하며 도태된 존재로 여긴다. 플라톤은 ‘결함이 있는 아기’는 죽도록 놓아두라고 명령했다. 로크와 칸트는 이성이 모자란 사람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정의했다. 장애인 등을 ‘결여된 존재’로 보는 관점은 현대 철학에서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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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성공으로 가는 길, ‘믿음’에서 찾아라 팜젠사이언스 회장 한의상이 쓴 ‘신뢰받는 조직, 신뢰 가는 구성원을 위한 믿음 경영 이야기’다. 폐병에 시달리던 가난한 소년 용접공은 성공의 비결로 ‘신’을 꼽는다. 책 제목으로 삼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을 뜻하는 ‘믿을 信’을 잘 섬겼다. ‘몸 身’이나 ‘신하 臣’일 수도, 초월자 ‘神’도 섬김의 대상이었다. 책은 “불신은 대단히 비싼 대가를 치른다. 스스로를 믿는 것이야말로 성공의 첫 번째 비결”이라는 랠프 월도 에머슨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도 믿지 못하는 세태를 이야기한다. 한국은 ‘맹신 사회’에 ‘종교 백화점’으로 불리는 곳이다. 불교, 기독교, 유대교 등 여러 종교에서 긍정적 믿음의 가능성을 끌어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