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식이법 놀이’서 놓친 사실확인

언론의 사실 확인 관행은 저널리즘 윤리와 책임의 핵심 논제이다. 별다른 사실 확인 없이 특정 출입처나 보도자료에만 의존하는 받아쓰기 기사 작성,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일부 사실만 부각하는 선택 편향성, 심지어 특정한 사실을 언론 스스로 만들어내는 관행이 대표적인 지적사항들이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온라인 저널리즘 환경이 구축되고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온라인 커뮤니티 글이나 SNS 메시지를 유일한 정보원으로 삼아 손쉽게 작성된 기사들이 범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온라인 공간의 발화도 언론 보도의 주요 정보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보도하고자 한다면 일차적으로 사실의 교차 확인이 필요하다. 가장 기초적인 취재 작업 없이, 온라인 공간에서 밈(meme)으로 떠도는 정보나 대중적 정서를 단순 인용 보도를 통해 사실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는 미확인 사실을 사실로 확인하고 승인하는 효과를 낳는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는 확증편향이 발생하기 쉬운 공간이다. 오로지 남들의 주목을 얻기 위해 소수자에 대한 비하나 노골적인 차별을 드러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일상적으로 쓰이는 미세차별의 의미를 담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데 상당수 언론들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특정 SNS상에서 유행하는 표현과 밈이 독자들이 알아야 할 최신의 것으로 여기면서 적극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민식이법 놀이’라는 표현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린이는 주변 환경에 대해 다소 부주의할 수 있다. 이는 어린이의 악의 때문이 아니라 어른보다 시야가 좁고 위험에 대한 판단을 느리게 하기 때문이다. 차도에서 주의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그래서 학교는 어린이들을 위해서 교통안전 수업을 하고, 등하교 시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교통안전 지도를 한다. 그런데 언론 보도의 ‘민식이법 놀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어린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을뿐더러 어린이들이 놀이 문화로 만연된 것처럼 기정사실화한다.

선명하지 않은 블랙박스 화면을 근거로 운전자 입장에서만 어린이들을 바라보면서 어린이가 입은 상해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어린이 또는 그 부모의 악의가 보인다고 주장하는 특정 유튜버의 주장들이 확산되는 데에는 언론도 많은 책임이 있다. 실제로 이 표현을 사용하는 기사들의 정보원은 특정 유튜브 채널과 특정 커뮤니티인 경우가 상당수이다. 정보원이 누구인가라는 점은 결국 언론의 시각과 위치가 어디인가와 관련된다. 어린이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고는 어떠했을지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이 미숙함을 악의로 판단하는 목소리를 언론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중계하면서 언론 역시 동일한 위치에 서게 된다.

물론 몇몇 언론은 취재를 기반으로 ‘민식이법 놀이’라는 용어가 일부 온라인 공간에서 만들어져서 확산된 과장된 표현이며, 이 표현의 사용이 오히려 문제 해결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정치인 등이 이 표현을 공식 계정에서 당당하게 사용했다. 그나마 몇 안 되던 사실 확인 기사들이 힘을 잃어버린 것이다. 논란이 되자 정부 부처들은 해당 포스팅이나 카드 뉴스 등을 삭제했다. “몰랐다, 아동 혐오의 의도가 없었다”라는 식으로 변명했지만, 차별과 혐오는 그 무지 자체가 문제이지 의도성 여부가 고려될 사안은 아니다.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라는 무책임한 전달의 말이 여러 언론을 통해 반복되면서 결국 사실인 양 확정되고, 그것이 다시 정치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양상이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비단 ‘민식이법 놀이’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언론은 사실 확인 책임과 아울러 어떤 위치에서 사건을 기사화하는가에 대한 책무성도 고려해야 한다. 그것이 저널리즘의 본연이고 기사 작성에서 가장 일차적인 고려사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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