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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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미래에도 죽은 자가 산 자를 도울 수 있게 하려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10일까지 세 차례의 쿠데타가 있었다. 지난해 12월3일 밤 느닷없는 대통령의 비상계엄 발표로 내란이 시작된 것이 첫 번째 쿠데타였다. 두 번째 쿠데타는 조희대 대법관이 저지른 사법 쿠데타였다. 세 번째는 국민의힘에서 경선 절차를 통해 선출된 대선 후보를 교체하기 위한 막장 드라마였다. 세 번의 쿠데타는 모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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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28세 청년 활동가 P에게 P야, 내란의 밤부터 지난 파면 결정까지 이어진 광장에서 스태프가 되어 뛰어다니는 너를 보았다. 폭설이 내리고, 살을 에는 북풍이 몰아치는 남태령과 한남동에서 밤을 지새우는 너를 SNS를 통해 보았다. 그 밤을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했다. 하지만, 그때 밤을 같이 지새우지 못한 미안함보다 더 큰 미안함이 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쓴다. 28세의 청년 활동가인 너는 내게 물었다. 열일곱살에는 세월호 참사, 스물두살에는 이태원 참사를 겪은 1997년생인 너. “우리 97년생은 저주받았어요. 세상은 바뀔까요?” 내가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었겠니? 인권운동 오래 한 것밖에 내세울 게 없는 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바뀌겠지, 아마 변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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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윤석열 파면 뒤에 ‘계몽시민’이 해야 할 일 “저는 계몽되었습니다.” 윤석열 변호를 맡아서 ‘계엄령’을 ‘계몽령’이라고 한 김계리 변호사가 헌법재판소 최종변론에서 한 말이다. 그 뒤에 시민들은 유행처럼 이 말을 패러디했다. 그런데, 계몽이라니? 김계리 변호사는 역사에 등장한 ‘계몽주의’ 다음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알고 있을까? 계몽주의 시기에 계몽된 시민들은 시민혁명의 주체가 되어 중세와는 다른 근대를 열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를 부정하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생각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계몽이었다. 한마디로 왕과 귀족이나 평민들이 모두 평등하다는 급진적 사고로 계몽하는 일이었다. 결국 김계리 변호사는 단어를 잘못 선택한 것이다. 그는 반동을 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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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겨울 공화국’에서 ‘수거’되지 않기 위하여 나는 불안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12·3 비상계엄의 날 이후 아내는 24시간 TV를 켜놓는다. 잠잘 때는 TV를 끄라고 해도 “뭔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불안하다”고 한다. 대통령이 감옥에 가 있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불안한 마음은 줄어들지 않는다. 난데없는 12·3 비상계엄 이후 77일째다. 그날 밤 여의도 국회 앞으로 시민들이 달려왔고, 응원봉을 들고나온 2030세대가 여의도의 밤을 신나는 축제판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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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윤석열씨, 그만 감옥 갑시다 38년 전 오늘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하다 죽었다. 그의 나이 22세였다. 12·3 비상계엄이 성공했다면, 그건 38년 전처럼 누군가 고문을 당하다 죽을 수 있는 나라가 되었을 거다. 사찰과 도청, 검열과 강제납치와 고문이 일상이 될 것이다.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간첩으로 조작되고, 의문사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나라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아니 지금쯤 전쟁이 났을 수도 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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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추억의 내란, 현실의 내란 1주일 사이에 많은 일이 일어났다. ‘1년 같은 하루’의 나날들이다. 느닷없는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뒤 2시간 만에 국회는 계엄 해제를 결의했다. 아찔한 장면들이 여럿 있었고, 긴박한 시간이 이어졌다. 밤 12시경 국회 앞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시민들이 그 밤중에도 여의도 국회로 달려오고 있었다. 시민들은 장갑차를 맨몸으로 막아섰고, 출동한 계엄군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6시간 만에 윤석열은 계엄 해제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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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윤 정권 퇴진 뒤,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지난 11월9일 세종로 일대에는 수십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민주노총 등 윤석열정권퇴진운동본부(퇴진운동본부)가 주최한 총궐기대회에서는 윤석열 탄핵을 주장했다. 이와 별도로 집회를 연 한국노총도 윤석열 정권 심판을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건희 특검 수용을 촉구했다. 대학교수들도 연이어 정권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퇴진운동본부는 온라인에서 국민투표(https://outvote.kr/)를 진행 중인데, 11일 현재까지 23만명 이상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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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그때는 애국이고, 지금은 수치인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들은 국가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폭력에 대해서, 국가범죄에 대해서 성찰하라고, 그때 그곳에 있던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을 가지라고, 그래야 인간존엄성을 향한 여정을 계속할 수 있는 거라고 말한다. 나는 그의 작품들을 그렇게 읽었다. 그래서인지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을 듣고 나는 ‘옛 성병관리소’ 철거를 저지하기 위해 철야농성을 벌이는 동두천 소요산 입구가 먼저 생각이 났다. ‘역사적 트라우마’로 남은 사건 중에는 국가가 나서서 미성년 여성들까지 달러 돈벌이에 내몰았던 일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일본군 위안부’만 있었던 게 아니다. ‘한국군 위안부’도 있었고, ‘유엔 위안부’도 있었고, 지금도 ‘미군 위안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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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송두환, 조희연의 이임사를 보면서 요즘은 인권 수난 시대다. “인권에 대한 무시와 경멸”이 매일 일어나고 있다. 과거 일제강점기의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덮고 가자는 대통령과 정부의 관료들이 맨 앞에서 인권을 무시하고 있다. 대통령은 인권을 경멸하는 인사를 거침없이 진행한다. 입법·사법·행정부 등 국가의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차별을 시정해야 할 임무를 맡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에 ‘창조론 신봉자’를 세우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차별금지법을 공산혁명으로 가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누구의 말대로 그의 인식에는 ‘정교 분리’도 안 되어 있다. 인권 관련 단체나 인사들만이 아니라 보수언론조차 임명을 철회하라고 하지만, 대통령이 그런 비판과 조언을 들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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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경제단체들은 공포를 조장하지 마라 최근 재계의 입장문들을 보면 재벌을 비롯한 경제계가 우리 사회의 약자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노란봉투법(노조법 2, 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이 확실해지자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6단체는 지난 8월1일 국회 본청 앞에서 ‘노동조합법 개정 반대 경제계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개정안은 사용자 범위를 무분별하게 확대해 원·하청 간 산업생태계를 붕괴시키고 국내 중소 협력업체는 줄도산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며 ‘경제 망치는 노조법 개정 반대’ 피켓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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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대통령 사람들’로 망가지는 인권기구들 “인권 장사치들도 방청하고 회의 내용을 왜곡하고, 인권단체가 무분별하게 인권위원 사퇴를 요구하는 작태가 벌어진다. 기레기와 인권장사치는 위원장 편이다.” 국가인권위원회 김용원 상임위원이 한 말이다. 김용원 상임위원의 막말과 혐오발언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오죽하면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 중에 강제 퇴장을 당하고, 국회의원들이 ‘김용원 탄핵법률’을 만들겠다고 할까? 국가인권위원회 직원들은 상임위원회와 전원위원회가 있는 날이면 막말과 혐오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호소하고 있다. 자신의 의견을 거칠게 표현하고, 자신의 의견만 옳다는 강변을 이어가고 있으면서 지금까지의 국가인권위원회 결정 구조마저 마음대로 변경시키거나 자신이 해야 할 사건 처리를 미루고는 했다. 군인권보호관이면서 군 사망사건의 피해자 가족마저 고소하는 짓도 저질러왔다. 도리어 자신의 인권 침해적인 언사를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기까지 해왔다. 인권 의식이나 인권적 태도는 기대할 수도 없다. 그릇된 신념에 가득한 독선을 언제까지나 보고 있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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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민주유공자법’ 제정 미룰 수 없다 지난 6월10일, 6월 민주항쟁 기념식이 서울시청에서 열렸다. 지난해에는 정부 책임자들이 불참해서 비판을 받았는데, 한덕수 국무총리가 기념사를 했으니 작년보다는 나았다고 할까? 한덕수 총리는 “대한민국은 이제 민주화와 산업화를 함께 이룩한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지구촌의 자유민주주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주의라는 위대한 유산을 미래세대에게 전해야 한다”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했다는 말도 전했다. 그런데 나는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민주주의 유산을 미래세대에게 전하는 어떤 일을 했다는 것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그와는 반대로 이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총칼만 안 들었을 뿐이지, 민주화를 통해서 제거하려 했던 권위주의 시기의 통치 행태와 뭐가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