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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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22대 국회는 ‘생명안전 국회’가 될 것인가 “10년 전 세월호 참사 때도, 2022년 10·29 이태원 참사 때도 정부는 없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했던 말이다. 정부만이 아니라 국가 전체가 사라지는 상황이 익숙했던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여전히 안전하지 못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지난 4월16일, 인천과 안산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추모식에서 정부 관계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슬픔을 딛고 국민의 마음을 모아 모두의 일상이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한발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재해와 사고로부터 자유로운 바다’를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안산과 목포 등에서 진행되고 있는 추모사업도 차질 없이 추진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해양수산부 장관 강도형). 추모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주무장관으로부터 들었으니 그나마 다행인 것일까? 이날 나온 대통령의 추모 말이나 한덕수 총리의 말이나 정부 관계자의 말은 모두 맹탕이었다. 유가족을 비롯한 피해자들, 그리고 시민들이 바라던 말들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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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다시 노란 리본의 물결을 만들어야 할 때 오는 4월16일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10주기를 맞아서 추모전시회, 연극제, 영화 상영회, 북토크 등의 다채로운 문화행사도 열리고 있고,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도회를 곳곳에서 연다. 당일에는 안산과 인천에서 기억식과 추모식이 열린다. 그렇지만 4월10일 치러지는 22대 총선으로 인해 언론에서도 10주기를 잘 다루지 않는다. 지난주에는 답답한 마음에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제작된 영화 극장 개봉과 공동체 상영회를 알리는 대량 문자를 발송했다. “10주기 시민위원으로 참여하겠다” “잊고 있었는데 알려줘서 고맙다” 등의 반응이 돌아왔다. 그런데 이런 문자도 있었다. “(이제) 일선으로 돌아가 생활 전선에서 열심히들 생활하시고, 그만 세월호 우려먹으시오.”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열심히 활동했던 사람이 이런 문자를 보내다니… 잊으려 했지만, 이 문자는 계속 남아서 주머니에 든 가시처럼 마음을 콕콕 찔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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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당신의 안녕을 묻는 행진 등대가 있는 방파제에 걸린 깃발들에 ‘진상’만 남고, ‘규명’은 없다. ‘책임자’는 있는데, ‘처벌’은 없다. 거센 바람에 올이 풀려나가버린 깃발들은 지금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것은 거기 선 붉은 등대와 이제는 빛이 바랠 대로 바란 등대의 노란 리본이다. 10년 전 팽목항은 뉴스의 현장이었다. 이곳에서 배로 1시간 반을 달려가야 하는 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 팽목항에는 중앙대책본부를 비롯해 수많은 몽골텐트가 가득 들어차 있었고, 혼란스러웠다. 시신이 이곳에 들어오면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하염없이 기다리던 유가족들이 하나둘 떠나고, 마지막까지 시신을 찾지 못한 실종자 가족들이 지키던 곳에는 컨테이너 박스 4동이 낡은 모습으로 서 있다. 거기에 304명의 사진을 걸어놓고, 그들을 기억하자는 ‘4·16기억관’도 있다. 방파제를 들렀던 사람들이 이곳을 지금도 찾는다. 거기에는 “너무 늦게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와 같은 말이 적힌 방명록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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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이태원특별법 거부권 행사는 폭력이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임박했다고 전해진다. 여당이 건의한 거부권을 3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할 것이 예상된다. 이 글을 쓰는 건 이미 늦은 일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태원특별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세상에서 가장 비통한 사람들을 다시 절망케 하는 폭력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쓴다. 박근혜도 그랬다. 그는 겨우 열일곱 살 아이들이 희생자의 대부분이었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가혹하게 핍박했다. 불법사찰과 감시, 공권력을 동원해 애도조차 못하도록 했고,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국회에서 제정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을 시행령으로 무력화하려 했고,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하면서 대통령의 7시간을 조사하려 하자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강제해산까지 시켰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복무해야 하는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유가족들을 탄압했다. 그 결과는 탄핵촛불로 타올랐고, 결국 그는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권좌에서 끌어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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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2024년에는 ‘해방’의 단초를 만들 수 있을까 별 감흥 없이 새해를 맞았다. 영락없이 2024년은 청룡의 해라는 말들이 SNS에서 돌아다닌다. 갑진년이니까 용의 해이고, 청룡의 기상으로 비상하자고 하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무엇으로 올해 비상할 수 있을까? 여의주는 찾을 수 있을까? 연말에 눈도 내리고, 겨울비도 내리고, 길도 얼었다 녹다를 반복했다. 궂은 날씨를 탓하며 두문불출하고 있는데, 아내가 드라마를 보자고 제안했다. <나의 해방일지>, 2022년에 ‘추앙하라’는 유행어를 만들었던 그 드라마다. 회당 1시간 이상 되는 분량이고, 16회라서 엄두도 못 내다가 이번에 도전했다. 서울이라는 노른자를 감싸고 있는 흰자에 해당하는 경기도 ‘산포시’에서 매일 서울로 출퇴근하는 염씨 3남매의 행복 찾기 여정을 그린 드라마다. 박해영씨는 <나의 아저씨>로 익숙한 극작가이고, 주위에서 꼭 보라고 권유를 많이 받았던 터라 졸린 눈 비벼가며 드라마를 정주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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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이충상·김용원, 두 인권위 상임위원은 사퇴하라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2001년 11월25일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올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언론 보도에 자주 등장했다. 이전처럼 새로운 인권 기준을 제시하거나 인권과 관련한 조사 결과나 권고를 발표하였기 때문이 아니다. “게이(남성 동성애자)들은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 “스스로 축제를 즐기기 위해 인파가 몰렸다가 밀려 넘어져 발생한 사고인 이태원 참사가 명백히 국가권력이 중무장해 시민들을 고의로 살상한 5·18보다 더 귀한 참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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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책임자를 찾습니다 서울시청 광장의 한 모서리에는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있다. 천막으로 만들어진 이 분향소는 매일 오전 8시에 문을 열고 오후 10시에는 문을 닫는다. 유가족과 시민들이 매일 이 분향소를 지킨다. 이태원 참사 1주기였던 10월29일, 추모대회에 시민들이 많이 참석했다. 추모대회가 끝나고 서울시청 광장에 가득 찼던 군중은 모두 돌아갔다. 저녁 먹고 난 다음에 지하철을 타려다가 분향소에 들렀다. 아무래도 시민들이 북적이던 1주기 추모기간이 끝난 다음이니 쓸쓸하게 유가족들이 분향소를 지킬 것 같아서다. 그날은 밤 10시가 넘어도 분향소 문을 닫지 못했다. 분향소에 시민들이 계속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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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한국판 ‘베버리지 보고서’를 만들 수 없을까 베버리지가 ‘사회보험과 관련 서비스’라는 이름의 보고서(베버리지 보고서)를 발표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12월이었다. 전쟁 와중에도 이 보고서가 간행돼 판매된다는 소식을 들은 영국 시민들은 1.6㎞나 줄을 서서 보고서를 샀다.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보고서는 60만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전쟁의 비극이 진행 중이던 때, 전쟁 이후를 기약할 수 없는 그 시점에 베버리지는 “전쟁이 모든 종류의 역사적 유적을 파괴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어떤 제약도 없이 경험을 활용할 기회이다. 세계 역사에서 혁명적인 순간은 부분적 보수가 아닌 혁명을 위한 때이다”라면서 사회복지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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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오송 참사와 ‘단 두 평의 분향소’ 오송 궁평2지하차도 참사가 발생한 지 지난 9월1일로 49일째, 그날 참사 현장에서는 오후 5시부터 ‘49재 위령제’가 열렸다. 충청북도 부지사도, 세월호 참사·이태원 참사 유가족들도 함께한 위령제에서 오송 참사 유가족들은 단 두 평이라도 분향소를 유지해달라고 충북도와 청주시에 호소했다. 위령제를 마치고 청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 1층에 있던 분향소로 돌아가려던 유가족과 시민대책위 관계자들이 들은 소식은 분향소가 철거되었다는 것. 충북도와 청주시는 그날 위령제가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이 오후 8시40분부터 철거를 시작해 9시20분에 완료했다. 충북도나 청주시는 분향소를 49재까지 운영하기로 했고, 49재가 끝났으니 철거가 당연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위령제에 참석해 오열하는 유가족들을 보았을 텐데도 ‘엄정하게’ 행정력을 집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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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대한민국에는 한민족이 없다 곧 광복절이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이다. 그래서 고민하게 됐다. 대한민국에 민족은 있을까? 동일한 혈통과 언어와 문화전통을 지닌 한민족은 있는 것일까? 일제강점기 시절에 혹독한 시련 앞에서도 대한독립을 외치다 산화해간 독립운동가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본다면 뭐라 말할까? 대한민국에는 세 개의 민족이 있는 것 같다. 제1민족은 사대의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명나라에 이어 청나라에 복종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왕을 위해 목숨 바칠 것을 맹세했다. 해방 뒤에는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조공을 들여왔고, 지금도 그렇다. 일본군 위안부들이나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권리를 찾아주려고 나서기보다 이들의 권리를 묵살하는 데 발 벗고 나선다. 상전과의 관계가 어그러진 불편한 상황을 어떻게든 바로잡아보려고 후쿠시마 오염수를 방류한다고 하는 짓마저 적극 나서 대변하고 있다. 항의 한번 못해보고 그들의 반도체도, 자동차도 미국의 시장을 위해 열심히 협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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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현장에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있다 시민단체 활동가로 사는 일은 고단하다. 한때 정부가 69시간 노동제를 도입하려고 할 때 중견 활동가들이 모였다. “주 69시간만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중론이었다. 아침에 눈 뜨고, 밤에 잠들 때까지 활동가들은 일한다. 워낙 일이 넘쳐나고, 활동가는 부족하기 때문에 일은 늘 밀려있고, 쌓여있다.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서 얘기를 듣는 일도 힘들고, 사건을 사회적 의제로 이끌어내기 위한 기자회견, 토론회를 해야 하고, 집회와 농성을 준비하고, 정책도 만들어낸다. 1년 차 변호사, 교수가 토론회 자리에서 발제를 하는 동안 10년 차 활동가는 원고를 사정해서 받고 복사물도 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활동가의 지위가 낮은 곳도 없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욕도 참 많이 먹는 게 활동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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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 6·10 민주항쟁과 인간의 존엄 ‘6·10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주요 행사들이 지난주에 대부분 끝났다. 정부가 주최하는 ‘6·10 민주항쟁 기념일’ 행사에 정부가 공식 불참하는 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기념식이 열렸던 6월10일 오후에는 ‘제32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가 서울시청 옆 도로에서 열렸다. 높고 긴 제단 위에 올라간 죽은 이들의 얼굴 사진들을 보면서 저들의 공통점에 대해 생각했다. 한평생을 민주주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다가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고, 독재와의 싸움 과정에서 자결로, 고문이나 의문사 등 국가폭력에 의해 죽어간 젊은이들도 있다. 최근에는 정치적 민주화보다는 생존권을 사수하는 과정에서 죽어간 이들도 제단 위 영정으로 올려져 있다. 모두 다른 삶의 궤적을 가졌음에도 그들을 하나로 꿰는 실은 민주주의다. 입장이 달랐고, 실천 방법이 달랐다고 해도 이들의 죽음 위에 우리는 민주주의의 길을 내왔음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