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민주항쟁과 인간의 존엄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6·10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주요 행사들이 지난주에 대부분 끝났다. 정부가 주최하는 ‘6·10 민주항쟁 기념일’ 행사에 정부가 공식 불참하는 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기념식이 열렸던 6월10일 오후에는 ‘제32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가 서울시청 옆 도로에서 열렸다. 높고 긴 제단 위에 올라간 죽은 이들의 얼굴 사진들을 보면서 저들의 공통점에 대해 생각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한평생을 민주주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다가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고, 독재와의 싸움 과정에서 자결로, 고문이나 의문사 등 국가폭력에 의해 죽어간 젊은이들도 있다. 최근에는 정치적 민주화보다는 생존권을 사수하는 과정에서 죽어간 이들도 제단 위 영정으로 올려져 있다. 모두 다른 삶의 궤적을 가졌음에도 그들을 하나로 꿰는 실은 민주주의다. 입장이 달랐고, 실천 방법이 달랐다고 해도 이들의 죽음 위에 우리는 민주주의의 길을 내왔음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600명도 넘는 그들을 위해 거대한 제단을 도로 위에 쌓고, 그 위에 한 명 한 명의 영정을 올린 다음에 제를 올린다. 이젠 많은 유가족들이 돌아가셨다. 몇 남지 않은 유가족들도 병중이라 추모제에 참석하지 못하셨다. 팔십 넘은 유가족들이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해 릴레이 단식농성을 해야 하는 상황이 서글프다.

‘6·10 민주항쟁’의 결과 1987년 헌법 개정이 이뤄졌고, 그 헌법은 지금도 대한민국의 헌법으로 기능한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말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이다. 6·10 민주항쟁은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한 독재에 맞선 시민들의 투쟁이었고, 이 항쟁 이후로 민주화 과정을 거쳐왔다.

인간의 존엄, 더욱더 나빠질 위험

그럼에도 명시적인 독재정권은 사라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위한 더디기만 한 민주주의의 여정을 거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지금이 더욱더 ‘인간의 존엄’이 위험에 처한 상황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6·10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박종철의 죽음은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밀실에서 고립된 가운데 일어난 일이다.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상황에서 그의 인격성은 파괴되었고, 그에게 도움을 줄 연대의 손길을 닿을 수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죽었고, 그의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언 강 위에 유골이 뿌려졌다.

베르너 마이호퍼는 <법치국가와 인간의 존엄>에서 “인간은 국가에 대해 인간의 인격성을 존중하라고 요청할 권리뿐만 아니라, 인간 사이의 연대성을 존중하라고 요청할 권리도 갖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하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개인이 갖는 인격성과 연대성을 파괴하는 행위는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지 말라는 명령과 이를 존중하라는 요청을 국가가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인간의 존엄에 대한 헌법의 명령은 ‘세계인권선언’으로부터 유래한다. 1948년 12월10일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은 “우리가 인류 가족의 모든 구성원이 지닌 타고난 존엄성을 인정하고”란 말로부터 시작된다. 현대의 인권과 평화에 대한 지향은 바로 이 선언으로부터 새로이 출발했다. 이에 따라 국가가 있고 개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권리들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극을 겪은 인류는 이 선언에서부터 국가주의적 관념을 폐기했다.

그럴수록 연대의 손이 필요하다

우리는 인간의 존엄이 훼손된, 침해된 상황들을 매일 본다.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죽음의 벼랑 끝에서 추락하는 죽음들이 얼마나 많은가. 노동절에 분신한 건설노조 양회동의 경우가 그렇고, 아직도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싸우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비롯한 재난 참사 유가족들이 그렇다. 고통의 눈물 위에 민주주의는 설 수 없다. 그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사회가 필요하고, 강화되어야 한다. 누구도 고립되지 않도록, 연대의 손을 내밀 수 있는 사회가 강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의 정치권력은 정반대로 가는 것이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인간 존엄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가는 권력은 곧 권위주의 권력이 된다. 6·10 민주항쟁은 권위주의 권력에 저항한 시민들의 항쟁이었음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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