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없는 ‘미사일 지침’ 종료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불편한 동맹’에서 ‘화해의 동맹’으로 옮겨간 것일까. 이번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문에서 필자의 주목을 끈 대목은 “한국은 미국과의 협의를 거쳐 개정 미사일 지침 종료를 발표하고, 양 정상은 이러한 결정을 인정하였다”라는 문구였다. 공동성명 발표에 앞서 일부 언론은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우리 외교안보팀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미사일 지침 해제’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겠다는 의지와 구상을 갖고 있었다”며 “그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결론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보도했다. 개봉 박두 미사일 지침 종료를 알리는 전단이었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회담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기쁜 마음으로 미사일 지침 종료 사실을 전합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초기 한·미 방위비 협정 타결과 더불어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상징적이고 실질적인 조치입니다”라고 했다. 2017년 11월 탄두 중량을 무제한으로 개정하고, 작년에 우주발사체에 고체 연료 사용 제한을 해제한 이래 또다시 이룬 성과이다. 보수 진영은 물론 진보 진영에서도 이를 반기는 분위기다.

‘구멍 난 주권’을 상징하는 전시작전권 환수, 한미연합사 구조개편, 원자력추진 잠수함 건조 등 큰 구멍을 메우는 것은 유보하고, 대신에 수차례 보수공사 등을 해온 ‘미사일 지침’ 구멍 하나를 이번에 완전히 메운 셈이다.

한국 정부가 미사일 사거리와 중량을 자율적으로 제한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은 1979년 ‘한·미 미사일 양해각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카터 행정부가 한국의 고체 연료 탄도미사일 개발 가능성을 우려하자 박정희 정권의 국방부 장관이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미사일 사정거리를 180㎞, 탄두중량을 500㎏으로 제한하는 문서를 보낸 것이 시초였다. 그렇다면 한국이 왜 문서를 보냈을까?

문서는 1978년 9월26일 국방과학연구소 안흥시험장에서 미국산 미사일 나이키 허큘리스를 개량한 국산 미사일 1호 ‘백곰’의 시험 발사가 성공하자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우려한 미국이 미사일 개발 중단을 압박해온 데 따른 강요된 약속이었다. 이는 가난했던 시절에 맺은 위계적·비대칭적 군사동맹의 실체를 보여주는 불편한 진실의 한 장면이다.

그럼에도 미사일 지침은 국내법에 준하는 조약의 특징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한국 정부는 ‘협력적 자주국방’의 이름 아래 ‘자율적 선언’을 준수한다는 조건으로 ‘미사일 거인’ 미국으로부터 관련 기술을 이전받았으며, 이후 네 차례 개정을 통해 제한적으로 미사일 개발 능력을 증강해오다 이번에 ‘족쇄’를 푼 셈이다. ‘미사일 주권 회복’ 운운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다만 핵무기에 버금가는 미사일 개발도 가능하게 됐다는 점에서 중국을 위시해서 주변국들의 압력과 견제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를 정교하게 짜놓아야 한다.

나는 미사일 지침 종료가 한편으로는 우리 안보의 ‘눈과 귀’를 강화해 준다는 점에서 보약이 되는 ‘미나리즙’을 마신 셈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역내의 군사적 불안과 긴장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면서 우리의 안보위협을 되레 자초하는 ‘독미나리 추출액’을 들이켠 것은 아닌지 일말의 불안감이 있다.

어느 ‘미나리 액’을 삼킨 것이든 그 효능 내지 증상은 머지않아 나타날 것이다. 눈치 빠른 이라면 미사일 지침 종료 관련 문구를 읽으면서 ‘취옹의 뜻은 술에 있는 게 아니다(醉翁之意不在酒)’라는 송나라 구양수의 문장과 ‘달을 가리키면 달을 쳐다봐야지 손가락 끝을 쳐다봐서는 안 된다’는 불가의 법어(法語)를 함께 떠올렸으리라 본다. 임기 말 문재인 대통령에게 그야말로 ‘굿 럭(Good luck)!’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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