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
환경단체 대표
최신기사
-
녹색세상 ‘기후행동’ 노년에도 유효하다 어느새 환갑 나이가 되었다. 때마침 모교 동창회보와 인터뷰를 했는데, 다시 대학 시절로 돌아간다면 뭘 하고 싶은지 물었다.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1도 없다. 대신 주어진 인생이 얼마일지 알 수 없고, 환경운동엔 은퇴란 게 없으니 노년기에 걸맞은 환경운동가로 ‘진화’하고 싶다. 지난 4월9일 64세 이상의 스위스 여성 2400여명으로 구성된 ‘기후 보호를 위한 여성 노년층 클럽’은 환호했다. 이 단체는 2016년부터 스위스 국내에서 정부를 상대로 세 차례 소송을 제기했으나 모두 기각되었다. 그러나 굽히지 않고 2020년 유럽인권재판소(ECHR)에 정부를 상대로 인권 침해 소송을 냈고, 법원은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스위스 정부는 이 판결에 따라 이 단체에 8만유로(약 1억원)의 배상금을 3개월 안에 지급해야 한다. 시오프라 오리어리 재판관은 판결에서 “스위스가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를 지키지 않았으며 탄소 예산도 책정하지 않았다”며 “지금 기후위기 대응에 실패한다면 미래세대가 더 심각한 부담을 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유럽인권협약 체결국인 46개국에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
-
녹색세상 얼마나 나빠져야 기후선거 될까 엊그제 어떤 기업의 주주총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주가가 떨어지니 주주들의 날선 질문이 이어졌다. 이사회 의장이자 그 기업의 대표는 차분하게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설명했다. 나도 모르게 수긍이 갔다. 별로 큰 정보가 주어진 것도 아닌데 그의 말이 왜 미더운 걸까? 요즘 ‘핫한’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도 불과 몇 소절만 듣고는 전문가들이 당락을 결정한다. 우리 재단에서 직원 면접을 할 때 여러 명이 참여하는데도 채용 여부를 결정할 때 그렇게 논란이 되지는 않는다. 외부 기관의 채용심사에 가봐도 사람 눈이 다 비슷비슷하단 걸 깨닫는다. 어째서 그렇게 순식간에 믿음이 가고, 이 사람이 적절하다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일까?
-
녹색세상 ‘갈매기들’의 밥은 되지 말자 선거철이다. 지역구마다 주요 관심사가 다르고 거주민의 성향이 다르지만 선거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 경영을 혁신할 좋은 기회이다. 하루아침에 봄이 겨울로 바뀌는 기후 롤러코스터를 타는 와중이라 어떤 후보가 예측하기 어려운 기후위기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인지 눈여겨봐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IMF 외환위기 이전이니 근 30년 전엔 이런 일이 있었다. 인터넷이 일상화되지 않은 때라 대형 강연장이 있던 서울시내 건물 외부에 우주선 같은 대형 수신기를 걸어놓고 미국에서 하는 강의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수신 상태가 좋지 못했는데 현지 시간에 맞추느라 오후 8시에 시작한 강연 도중 눈이 내려 빗자루로 수신기의 눈을 치우기까지 했다. 그때 영상에서 경영컨설턴트 켄 블랜차드는 어느 조직이든 미래를 준비하는 조직을 만들고 총에너지의 5%를 쓰라고 역설했다. 그때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때라 그냥 글자로만 이해했지만, 지나고 보니 현재를 경영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리더의 역할이라는 것에 공감한다. 그러나 임기가 있는 지도자들은 단기 성과에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미래준비팀을 두고 가동하는 것이 조직이나 리더에게 상당히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 같다.
-
녹색세상 AI보다 더 위험한 ‘기후’ 1970년대 흑백TV로 연속극을 함께 보던 할머니는, 아까는 이 남자와 살던 저 여인이 지금은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린 드라마 속 현실을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를 못하셨다. 2000년에 휼렛패커드 최고경영자 칼리 피오리나 회장이 방한하여 했던 연설을 기억한다. 앞으로 수년 내에 인터넷을 수돗물처럼 쓰는 시대가 올 거라고 했다. 벽돌 휴대폰을 들고 다니던 때라 인터넷과 수돗물을 연관지을 수가 없었다. 그때의 예상을 넘어 인터넷은 이제 수돗물이 아니라 공기처럼 우리 삶 그 자체가 된 지 오래되었다. 보름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4)에서 만난 여인이 옛날 생각이 나게 해주었다.
-
녹색세상 가짜 정책과 ‘오늘의 화석상’ 7일 두바이에 도착했다. 현재 진행 중인 제28차 기후변화당사국 총회(COP28)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COP의 배경은 이렇다. 1988년 유엔환경계획과 세계기상기구가 기후변화의 위험을 평가하고 대책을 위해 설립한 협의체가 IPCC이다. 1990년 IPCC가 발표한 1차 보고서를 근거로 1992년 리우회의에서 온실가스 방출을 규제하기로 채택한 것이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다. 매년 이 협약 내용대로 국가별로 잘 이행하고 있는지 보고하고, 논의하는 자리가 바로 COP이다. 벌써 28회차를 맞이하다니 감회가 새롭다. 최근까지도 기후변화가 사실이네 아니네 논란이 무성했지만 2015년 파리에서 개최된 COP21에서 195개 당사국이 평균 지구 온도를 2도 이상 올리지 않겠다는 파리협정도 채택했고(2018년에 1.5도로 변경), 올해는 피해국을 위한 기후기금까지 조성하고 있으니 유엔이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 같다. 국가 간 연합이라는 느슨한 조직이 이 정도로 단결했다는 것은 그만큼 기후문제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이런 국제적인 추세에 우리는 얼마나 보조를 잘 맞추고 있을까.
-
녹색세상 ‘신뢰’ 제 발로 걷어찬 환경부 환경부가 지난 7일 ‘일회용품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종이컵을 일회용품 사용제한 품목에서 제외했다. 플라스틱 빨대와 비닐봉지는 계도 기간을 연장했으나 기한은 정하지 않았다. 1년 전 정부는 ‘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며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했다. 비닐봉지도 무상 제공하거나 판매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데 중소상인의 부담을 덜어주고 현장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규제보다는 ‘자발적 참여에 기반하는 지원정책’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
녹색세상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큰판’ 퀴즈 하나. ‘대서양 비행, 경도계(經度計), 통조림의 공통점은?’ 대서양 횡단 하면 린드버그를 떠올리지만 엄밀히 말해 그는 67번째로 대서양 비행에 성공한 사람이다. 그가 영웅으로 떠오른 것은 대서양을 최초로 ‘무착륙 단독 횡단’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시도를 하게 됐을까. 바로 오티그상 때문이다. 1919년 미국 뉴욕 라파예트 호텔의 주인 레이먼드 오티그는 5년 내에 뉴욕에서 파리까지 ‘무착륙’ 대서양 횡단 비행을 하는 사람에게 2만5000달러를 주겠다고 선언했다. ‘오티그상’이라 불린 이 상의 상금은 현재 가치로 약 3억7000만원이다. 프랑스 공군의 영웅도 추락하고 항공탐험 전문가도 날아오르지 못했다. 우편 비행기 조종사 찰스 린드버그는 무명이었고, 위험을 감수할 동반자도 없었다. 3발기를 타는 경쟁자들과 달리 단발기여서 엔진 고장 즉시 추락하는 상황이었다. 무게를 줄이려고 생존용 낙하산마저 싣지 않았지만 마침내 미국 루스벨트 공항 이륙 후 33시간29분30초의 비행 끝에 프랑스 파리 르 부르제 공항에 착륙, 최초로 북미~유럽 대륙무착륙 비행을 이뤄냈다. 오티그상을 받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언론의 엄청난 반응에 힘입어 오늘날 약 3000억달러에 달하는 항공시장을 여는 단초가 됐다.
-
녹색세상 ‘기후고통’ 해소할 마법은 없다 이화여대 건축과 강미선 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교 건물이나 병원 등 큰 건물의 건축을 지휘하는 기획자이다. 주업 외에 그는 새롭고 다양한 주거 방식을 소개도 하고, 직접 실험도 하는 실학자이다. 2018년 말에 강릉 숲속의 양옥을 친구 10명과 협동조합을 꾸려 구입했다. 별장이나 콘도를 각자 소유하는 대신 친구들과 모여 세컨드 하우스를 구입해 날짜를 정해 돌아가며 사용해왔다. ‘회화나무집’이라는 당호까지 짓고 주변 사람들에게 별장 체험을 하게 해주는 이 실험은 인기가 대단했다. 그런데 그만 지난 4월11일 강릉 산불로 하루 만에 전소되고 말았다.
-
녹색세상 잼버리 파행과 ‘죄책감 지수’ “죄책감에 휩싸인 사람들이 훌륭한 리더가 된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2011년 1·2월호에 이런 도발적인 제목의 인터뷰가 실렸다. 미국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의 조직심리학자 프랭크 플린 교수가 진행한 ‘죄책감이 성과에 미치는 연구’에 대한 심층 인터뷰였다. 플린 교수는 ‘포천’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의 재무임원 약 150명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경향을 측정하는 표준 심리 테스트를 실시하고, 업무성과를 비교했다. 죄책감을 잘 느끼는 사람이 업무성과 점수가 높았고, 조직에 헌신적이며 동료들에게 강력한 리더로 인정받고 있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연구자도 이런 상관관계에 놀라워했다.
-
녹색세상 후쿠시마 오염수 불안의 ‘뿌리’ 누군가 공공장소에서 휴대전화 통화를 할 때 우리는 왜 불쾌감을 느끼나? 소음 때문일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했다. 의외로 소음 요인은 불쾌감에 큰 영향이 없었다. 불쾌감을 가장 줄여준 조건은 통화 상대의 말을 스피커폰으로 들려주었을 때였다. 대화는 하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한쪽 이야기만 들어서는 알아채기 어렵기 때문에 불쾌감이 생긴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오래전 과학잡지에 실린 실험 결과는 여기서 끝나지만 인간 심리를 잘 보여주는 것이어서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타인의 통화 내용을 알면 불쾌감이 사라지는 이유는 인간의 인식이 완결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생각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한쪽 귀퉁이를 열어둔 원형 모양을 생각해보자. 한쪽이 비어 있지만 원으로 지각한다. 시각적으로도 완성된 형태로 지각하도록 뇌가 프로그래밍돼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 사조에서 형태주의(Gestalt) 심리학이라고도 하며, 20세기 초 독일에서 발전한 심리학의 한 분야이다.
-
녹색세상 원전 오염수, 과학과 괴담 사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놓고 갑론을박 중이다. 요즘 오고 가는 발언 중에 매우 거슬리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과학’이다. 지난달 31일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정부 시찰단의 브리핑 과정에서 평소 감정표현이 별로 없어 보이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마무리 발언으로 “굉장히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만족스러웠다”는 평가와 함께 “모든 검증의 기초는 과학이 돼야 한다. 과학에 기초하지 않은 정치적인 목적이나 이념에 의해 사람들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 자꾸 생각하게 하는 것이 어민들을 굉장히 힘들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들의 걱정을 ‘괴담’이나 진영 논리로 깔끔하게 정리해버리는 이 태도는 과연 과학적일까.
-
녹색세상 생물다양성이란 ‘바벨’ 지난주 리움 미술관에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회 ‘WE’를 관람했다. 전시회 제목이 ‘우리’라니…. 전시장 입구엔 실물 같은 노숙자가 관람객을 맞고 있었다. 로비에 들어서니 역전 광장이나 고가 아래서 배회할 법한 비둘기들이 천장 곳곳에서 관람객들을 내려보고 있었다. 작가는 어디까지가 ‘우리’냐고 묻는 것 같았다. 유머와 풍자로 가득한 전시 작품은 때론 기발하고, 때론 공격적으로 오감을 깼다. 구멍 속에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밖을 바라보는 남성을 형상화한 작품과 이를 전시하기 위해 전시장 바닥을 깬 미술관의 취지가 내 안의 뭔가를 부수는 굉음을 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