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행동’ 노년에도 유효하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어느새 환갑 나이가 되었다. 때마침 모교 동창회보와 인터뷰를 했는데, 다시 대학 시절로 돌아간다면 뭘 하고 싶은지 물었다.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1도 없다. 대신 주어진 인생이 얼마일지 알 수 없고, 환경운동엔 은퇴란 게 없으니 노년기에 걸맞은 환경운동가로 ‘진화’하고 싶다.

지난 4월9일 64세 이상의 스위스 여성 2400여명으로 구성된 ‘기후 보호를 위한 여성 노년층 클럽’은 환호했다. 이 단체는 2016년부터 스위스 국내에서 정부를 상대로 세 차례 소송을 제기했으나 모두 기각되었다. 그러나 굽히지 않고 2020년 유럽인권재판소(ECHR)에 정부를 상대로 인권 침해 소송을 냈고, 법원은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스위스 정부는 이 판결에 따라 이 단체에 8만유로(약 1억원)의 배상금을 3개월 안에 지급해야 한다. 시오프라 오리어리 재판관은 판결에서 “스위스가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를 지키지 않았으며 탄소 예산도 책정하지 않았다”며 “지금 기후위기 대응에 실패한다면 미래세대가 더 심각한 부담을 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유럽인권협약 체결국인 46개국에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

이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건강과 삶의 질이 저하되고 있음에도 스위스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 생명권과 자율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폭염에 가장 취약한 여성 노인을 위한 정책을 펴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2022년 유럽 전역에서 폭염으로 6만1000명 이상이 사망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79세 이상 노인이었고, 여성 사망자가 남성 사망자보다 63%나 많았다.

이보다 먼저 2020년 3월 미국 몬태나주에 거주하는 5~22세 아동·청소년 16명이 주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석탄 매장량의 3분의 1을 보유한 몬태나주가 화석연료 개발을 적극 독려하며 기후변화를 가속화해 주헌법에 명시된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을 누릴 권리’를 침해했다는 취지였다. 미국에서 청소년이 제기한 기후 관련 헌법 소송이 본안까지 회부된 건 처음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2023년 8월 몬태나주 지방법원은 주가 헌법상 권리를 침해했다며 역사적인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특히 법원은 기후변화로 인한 신체 피해뿐 아니라 절망감, 불안감 등 정신 피해까지도 ‘인식 가능한’ 손해로 인정했다.

우리나라에도 ‘60+기후행동’이라는 단체가 있다. 1947년생부터 1964년생까지 ‘60대 이상 정년퇴임 교수와 시인·주부·기자 등 직업도 사는 곳도 제각각인 ‘실버 세대’가 모인 이유는 단 하나, 기후위기 대응 필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유럽·미국 등에서 적극적으로 기후위기 대응 목소리를 내는 ‘그레이 그린’의 한국형이다. 이 단체의 윤정숙 공동대표는 “노년은 수동적이지 않다. 무기력하지도 퇴행적이지도 않다. 모든 세대와 함께 기후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외쳤다.

기후위기같이 전 지구적 재난 앞에서 가장 앞장서야 할 곳은 정부여야 한다. 그러나 에델만이 발표한 기관별 신뢰도에서 정부 점수가 가장 낮았다. 그래서 시민운동의 비주류였던 청소년들이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밥상을 차리고 있다. 푸짐하게 상다리를 지켜주는 할머니로 늙고 싶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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