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정책과 ‘오늘의 화석상’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7일 두바이에 도착했다. 현재 진행 중인 제28차 기후변화당사국 총회(COP28)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COP의 배경은 이렇다. 1988년 유엔환경계획과 세계기상기구가 기후변화의 위험을 평가하고 대책을 위해 설립한 협의체가 IPCC이다. 1990년 IPCC가 발표한 1차 보고서를 근거로 1992년 리우회의에서 온실가스 방출을 규제하기로 채택한 것이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다. 매년 이 협약 내용대로 국가별로 잘 이행하고 있는지 보고하고, 논의하는 자리가 바로 COP이다. 벌써 28회차를 맞이하다니 감회가 새롭다.

최근까지도 기후변화가 사실이네 아니네 논란이 무성했지만 2015년 파리에서 개최된 COP21에서 195개 당사국이 평균 지구 온도를 2도 이상 올리지 않겠다는 파리협정도 채택했고(2018년에 1.5도로 변경), 올해는 피해국을 위한 기후기금까지 조성하고 있으니 유엔이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 같다. 국가 간 연합이라는 느슨한 조직이 이 정도로 단결했다는 것은 그만큼 기후문제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이런 국제적인 추세에 우리는 얼마나 보조를 잘 맞추고 있을까.

우리나라는 아직 손실과 피해 기금을 내겠다는 의지표명도 안 했다. 이뿐만 아니라 COP28에서 노르웨이, 캐나다 앨버타주와 함께 세계 기후환경단체들의 연대체인 기후행동네트워크로부터 기후악당에게 주는 ‘오늘의 화석상’까지 받게 됐다. 한국이 이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바다를 오염시키고 ‘탄소 폭탄’을 터뜨리게 될 호주 바로사 가스전에 투자하여 원주민들의 권리를 침해한 과오 때문이다. 1999년 이 상이 만들어진 이래 우리나라가 올해 처음 이 불명예를 안았으니 비행기 배출 탄소량에 더해져 COP로 향하는 심정이 편치 않았다. 특히 최근에 읽은 <가짜 노동>이라는 도발적인 책이 환경운동이라 불려왔던 나의 노동이 과연 진짜였을까 의심들게 하여 연말이 심란하기만 하다.

생산활동에 직접 연결되지 않는 활동들, 형식적인 회의와 아무도 읽지 않는 보고서 작성, 빔의 불빛이 꺼지면 기억조차 되지 않는 파워포인트 같은 것들을 이 책을 공동 저술한 덴마크의 인류학자 데니스 뇌르마르크는 ‘가짜 노동’이라 불렀다. 인터넷 같은 디지털 신문물은 일을 편리하게 해주었지만, 근로시간이 줄어들기는커녕 가짜 노동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만 생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응용하자면 선거용으로 일회용컵을 허용하거나 그린벨트 풀기 같은 선심성 정책들이야말로 표만 훑어가려는 가짜 정책이고, 이런 정책을 내는 이들은 가짜 정치인이 아닌가.

이 지점에서 나야말로 진짜 환경운동을 했는지 자문해 본다. 가수 이효리씨가 최근 보컬학원에 등록해 발성연습부터 새로 배우고 있다고 해서 놀랐다. 연습생 시절 없이 데뷔해서 롱런하기엔 기초가 부족하다는 자각에서다. 이효리씨 같은 스타가수에게도 발성 연습이 기본이라면 늙은 내가 지치지 않고 더 혁신적으로 환경운동을 지속할 발판은 무엇일까. 기후환경문제의 현장을 더 보고, 현장을 지켜온 환경운동가들에게 더 배우련다. 비상하는 비행기 엔진처럼 신념이 요동치는 진짜 환경운동,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진짜 노동을 향해 청룡처럼 나아가련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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