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위험하다

김택근 시인·작가

불안하고 불길하다. 대통령이 외신과의 회견에서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또 중국이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대만 문제를 언급했다. 당장 러시아와 중국이 벌떡 일어났다. 러시아 외교부는 “무기 제공은 적대행위”라 했고, 중국은 친강 외교부장이 “대만 문제로 불장난하면 불에 타죽을 것”이라는 극언을 뿜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겁박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가 무능하고 굴욕적이라며 흥분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공포가 밀려오고 있다.

김택근 시인·작가

김택근 시인·작가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의 동강 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전쟁을 지원한다면 국제사회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 한국이 보유하고 있던 포탄이 우크라이나 전선을 날아다니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 포탄이 날아가 인명을 해친다면 ‘살인’을 수출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머잖아 그런 일들이 벌어질 것 같다. 미 정보기관의 도청 문건에서 보듯이 미국은 한국에 30만발 이상의 155㎜ 포탄 지원을 요구했고, 윤석열 정부는 이에 대해 우회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선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음이다.

역대 정권은 보수든 진보든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4대 강국과의 균형외교를 추구해왔다. 사실 국제분쟁지역에 개입해달라는 미국의 요구는 늘 있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평화’를 내세워 이를 따돌렸다. 전쟁 중인 국가에 살상무기 제공은 법률 위반이고, 또 국내 여론이 용납하지 않는다며 미국을 설득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라크에 파병을 해야 했지만 이는 전투병이 아닌 평화유지군이었다. 그럼에도 파병까지는 거센 반대 여론에 진통을 겪어야 했다.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을 추진했고, ‘뼛속까지 친미’라는 힐난을 받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한·중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로 격상시켰다. 그런데 지금 윤석열 정부는 무엇을 바라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합의 문구 하나하나에 한반도는 물론 강대국의 패권 경쟁 양상이 묻어나올 것이다. 조 바이든은 어떤 카드를 뽑아들 것인가.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바이든을 외교적 식견이 빼어난 인물로 평가했다. 바이든은 김대중을 존경했고, 국민의정부의 햇볕정책을 적극 지지했던 인물이다. 이런 ‘숨막히는’ 시점에 김대중과 바이든이 정상회담을 하는 상상을 해본다. 부질없지만 김대중 정부의 외교가 자꾸 떠오른다. 김대중은 뒤에 오는 이들에게 자신이 왜 4대국 외교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제발 살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처럼 4대 강국에 둘러싸여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외교가 필요한 나라이다. 외교가 운명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정치는 실수하더라도 고치면 되지만 외교의 실패는 돌이킬 수 없다. 이 점은 한반도의 역사를 뒤져보면 알 수 있다. (…) 한국은 지리적으로 작은 나라지만 지정학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나라이다. 우리의 4강 외교는 ‘1동맹 3친선 체제’가 되어야 한다. 미국과는 군사동맹을 견고히 유지하고 중국, 일본, 러시아와는 친선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 한반도는 4대국의 이해가 촘촘히 얽혀 있는, 기회이자 위기의 땅이다. 도랑에 든 소가 되어 휘파람을 불며 양쪽의 풀을 뜯어먹을 것인지, 열강의 쇠창살에 갇혀 그들의 먹이로 전락할 것인지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렸다. 나라를 책임진 사람들이나 외교관은 어느 누구보다 깨어 있어야 한다.”(<김대중 자서전>)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김대중에게 조언했다. “중요한 것은 중국을 파트너로 대하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이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한국이 어느 한쪽을 무시하고 중국과 미국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면 그것은 위험하다.”

우리는 지금 위험하다. 서해와 동해에서는 중국과 러시아 전함이 물살을 가르고 있다. 신냉전의 먹구름이 한반도에 몰려들고 있다. 정신 차려야 한다. 국민의 안전을 무시하고 평화를 해치는 어떠한 행위도,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는 어떠한 전쟁 개입 행위도 용서받을 수 없다. 착한 전쟁, 좋은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큰 전과를 얻는다 해도 작은 평화보다 못하다. 장막 속의 수상한 짓들을 당장 멈춰라. 한반도 평화는 오로지 국민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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