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과 함께 사라질 것인가

김택근 시인·작가

고종 연간인 임오년(1882년) 6월1일, 고삐 풀린 말이 창덕궁으로 달려들었다. 궁인들이 놀라 뒤쫓으니 말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마입궁중(馬入宮中). 예부터 말이 입궁하면 나라에 변고가 있다고 했다. 불길했다. 마부는 귀양을 가고 말 주인은 사직소를 올렸다. 하지만 그렇게 끝낼 일은 아니었다. 어전회의를 열어 이궁에 의견을 모았다. 왕이 명했다. “경복궁으로 이어(移御)해야 하니, 날짜는 이달 그믐 이전으로 택하라.”(조선왕조실록) 그리고 28일 이궁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화는 그보다 빨리 닥쳤다. 임오군란이 발발했고, 군병들은 자신들을 천대한 민씨 일파를 찾아내 도륙했다. 6월9일 병사들이 궐 안으로 난입했다.

김택근 시인·작가

김택근 시인·작가

명성황후는 나인으로 변장하여 궁궐을 빠져나왔다. 한강을 건너려 하자 사공이 이리저리 행색만을 살폈다. 황후가 금가락지를 던져주자 비로소 노를 저었다. 한강을 건너 광주 근처에서 쉬고 있는데 노파가 다가와 말했다. “중전이 음란하여 이런 난리가 일어나 낭자가 여기까지 피난 오게 되었구려.” 민비는 숨죽여 듣고만 있었다.

충주 장호원에 숨어 공포에 떨고 있던 황후에게 무당이 찾아왔다. 그는 피부가 희고 얼굴에 덕이 붙어 있었다. 무당은 머잖아 군란이 끝나고 황후를 모시러 사자가 올 것이라 예언했다. 정확히 그 날짜에 환궁하라는 전갈이 왔다. 황후는 무당을 데리고 환궁했고, 무당에게 진령군(眞靈君)이라는 군호(君號)를 내렸다. 자신을 능멸했던 노파와 마을은 병졸을 보내 쓸어버렸다.

무당은 자신이 관우의 딸이라 했고, 북관묘를 세워 본거지로 삼았다. 황후에게 접근하려면 진령군을 통해야 했다. 벼슬은 성균관이 아닌 북관묘에서 나왔다. 고관대작이 바친 뇌물이 북관묘에 쌓였다. 그 후 12년 동안 황후와 궁궐의 수호신으로 살았다. “화와 복이 그의 말 한마디에 달렸으니, 수령 방백들이 자주 그의 손에서 나왔다.”(황현 <매천야록>)

마입궁중이나 환궁 예언을 어찌 한갓 미신이라며 내칠 수 있겠는가. 황실이 그랬으니 궐 밖은 당연히 무당들의 세상이었다. 조선은 무속의 나라였다. 미국 선교사 호머 헐버트는 ‘한국인들은 사회생활에서는 유교, 곤란한 지경에 빠지면 귀신을 찾았다’고 했다. 마을마다 당골네(무당)가 있었다. 서울 정동에는 고관대작이 찾아가는 무당골이 있었다. 그들의 신통력이 워낙 높아 어떤 세도가라도 그 앞에서 숨을 죽였다고 한다. “수많은 귀신들이 구름 속에 떠다니고 나무와 숲에 살고 있으며, 심지어 집의 서까래 속에도 머무르고 있는데, 무당들은 이들을 쫓아내거나 화나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주장한다.”(버튼 홈스 <1901년 서울을 걷다>)

진령군은 곁에서 황후를 지키려 했지만 신기(神氣)가 자꾸 떨어졌다. 권력이나 재물에 눈이 팔리면 신통력은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귀신은 물질에는 관심이 없다. 물질에는 중력이 있어 흘려보내지 않으면 또 다른 물질을 끌어들이고 귀신은 이를 피해 나가 버린다. 진령군은 군호처럼 한때 ‘진정 신령스러운’ 술사였지만 이내 명성을 지키려 사술(詐術)을 동원해야만 했을 것이다. 당대 의학자 지석영이 상소문을 올렸다. “요사스러운 진령군은 온 세상 사람들이 그의 살점을 먹고 싶어 하는 자입니다. 전하께서 속히 상방보검(尙方寶劍)을 내려 죄인을 도성 문에 목매달도록 명하신다면 민심이 비로소 시원해질 것입니다.”(<승정원일기> 1894년 7월5일)

대명천지에 역술인들이 먼지를 피우고 있다. 용산 일대를 휘젓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진상이 무엇이든 그들의 신통력은 이제 끝이 났다. 권력의 손을 타고 재물 맛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뉴턴이 열어젖힌 중력시대를 건너와 양자역학시대에 살고 있다. 양자역학시대가 열린 지 100년이 됐다. 양자역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식 저편에 도사리고 있었다. 과학이 미신이라 여겼던 영역까지 들춰내고 있다. 그만큼 귀신의 공간은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도포 입은 역술인이 과학에 눈 흘기며 시대를 비웃고 있다.

민심은 에너지 덩어리다. 민심을 이길 신통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의 정점에 있던 무당들의 한결같은 파멸이 이를 증명한다. 개인의 길흉은 ‘겨우’ 맞힐 수 있을지 몰라도 국가의 운명은 ‘감히’ 점칠 수 없다. 역술인에게 기대어 원한 것을 이루었으면 되었다. 이제 국운을 역술인에게 물어봐서는 안 된다. 민심에 길을 물을 일이다. 민심의 과학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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