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시행령 통치, 법률 개정 취지 몰각
국법 체계의 기본 질서 망가뜨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검찰청법과 개정 수사준칙의 괴리
딱하다, 이 시대의 형사사법

법무부가 지난 7월31일 입법예고한 개정 수사준칙이 11월1일부터 시행된다. 주요 개정 내용은 ①경찰의 고소·고발장 반려 제도 폐지 ②검사의 보완수사 요구와 재수사 요청에 대한 경찰의 수사기한과,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시한 설정 ③보완수사의 경찰 전담 원칙 폐지와 검찰과 경찰의 분담 ④경찰의 위법부당한 불송치결정에 대한 검사의 재수사요청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검사가 사건을 송치받아 마무리함 ⑤검찰이나 경찰 일방이 요청하는 경우나 선거사건의 시효가 임박한 경우 상호협의의 의무화 등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의 수사권 조정에 관한 개혁은 요컨대 검찰의 수사권 남용을 막기 위하여 직접수사권을 대폭 축소한 것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죄의 종류를 제한하고,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를 원칙적으로 폐지하고, 경찰 수사 결과 기소할 수 없을 경우 경찰에 수사종결권을 부여하는 것 등이다.

경찰 입장에서 수사지휘권과 수사종결권 문제는 숙원인 수사권 독립에서 핵심적 사항이었다. 그 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법무부 주도로 시행령인 수사준칙을 바꾸어 사실상 법률의 규정에 어긋나는 내용으로 수사제도 중 상당 부분을 법 개정 이전 상태로 돌려놓은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바다. 이번의 수사준칙 개정은 그 연장선 위에 있다.

수사권 조정에 관한 법률 개정 이후, 변호사로 일하면서 피부로 느낀 것이 한마디로 불편과 불만이었음은 솔직히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고소 사건의 처리가 한없이 늘어져서 1년, 2년이 지나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 충분한 조사를 해 주지 않고 고소인에게 증거를 가져오라는 말만 한다, 경찰의 불송치결정에 이의를 신청하여 검사의 재수사 요청을 받아냈는데 경찰의 재수사가 제대로 되는 것 같지 않다가 대부분 종전의 결론을 바꾸지 않은 처분이 다시 나온다는 등의 일이 자주 생긴다. 2021년의 변협 조사에서 응답한 변호사 중 수사가 지연되고 있다고 한 비율은 86%에 이르렀다. 가장 고약한 행태는 ‘핑퐁 치기’다. 고소인의 이의 제기 후 사건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경찰과 검찰을 오가는 상황을 말한다. 수사 지연의 이유가 뭔지 알 만한 사람에게 솔직한 의견을 구하면, 일은 폭증했지만 경찰의 수사 인력은 부족하고 몇몇 범죄에서는 수사 역량도 부족한데 경찰 지휘부에서는 마땅한 지원책을 내놓지 않으며 수사 쪽은 기피 부서가 되었다는 대답이 나온다. 그러니 수사준칙 개정의 이유로 법무부가 수사 지연과 부실 수사를 내세운 것을 반박하기는 어렵다.

제도가 바뀌면 그 운영을 뒷받침할 만한 인적 물적 자원을 구비해야 하는데 경찰이나 국회나 이 문제엔 별 관심이 없었던 듯하다.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대한 국민의 불편과 불만을 줄이는 실효적 조치를 하지 못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니, 그 해결책은 당연히 경찰의 수사 인력 보충과 수사 역량 제고여야 한다.

하지만 현 정부가 나서서 인력과 예산 문제에서 국회를 설득하여 해결책을 찾으려 할 것 같지는 않고, 법무부는 법률로 빼앗긴 권한을 되찾으려고 시행령을 또 바꾸는 편법을 쓰는 형국이다.

현행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아래에서 이에 어긋나게 수사준칙을 개정하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그런데도 국회의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이런 개정안에 대해 경찰이 어떻게 입장을 내지 않느냐는 의원의 추궁에 경찰청장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만 했다. 기이하다.

개정 수사준칙은 악용의 소지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보완수사 이행 결과 통보를 받은 날로부터 1개월이 경과하면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를 원칙으로 한다’는 조항은 검사가 어떠한 이유에서든 직접 수사하고 싶은 사건을 가져가는 수단이 되거나 특정 사건에서 검사가 전면적인 직접수사를 하는 데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 재수사 요청 관련조항 역시 경찰의 수사종결권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더욱이 개정안 제7조는 검찰이 중요사건의 송치 전에 ‘상호 의견 제시·교환을 요청할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그 중요사건의 목록에 대공·선거(정당 및 정치자금 관련 범죄 포함)·노동·집단행동 사건을 넣음으로써 주요 공안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 관여가 규정화되었다. 개정안에는 현 정부의 정치적 관심사항이 끼워져 있는 것이다.

기실 문제는 근본적인 데 있다. 이른바 ‘시행령 통치’는 법률의 개정 취지를 사실상 몰각하는 것이고, 국법 체계의 기본적 질서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어디에서도 유효하다. 하필 법무부가 주도하는 법률과 시행령의 괴리라니, 딱하다, 이 시대의 형사사법.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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