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윤석열 대통령의 언어는 거칠다
갈라치기와 공격적 언사가 잦다

문제는 설득의 언어가 아니란 점
감동까진 아니어도 통합을 말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는 없는가

레이건 대통령은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후 공중 폭발하자 사고가 난 지 불과 6시간 후에 4분여 동안 대국민 연설을 했다. 연설의 첫머리에서부터 마지막까지 그는 계속 ‘우리’를 주어로 썼다. ‘우리’는 이들 영웅 7인의 죽음을 애도한다면서 승무원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 다음 ‘우리’는 그 가족들처럼 슬퍼한다고 했고, ‘우리’와 승무원들은 모두 개척자라고 했다. 이어 승무원들은 ‘우리’를 미래로 이끌었으며 ‘우리’는 앞으로도 그들을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2차대전에서 공중충돌사고로 사망한 존 길레스피 매기의 시 ‘고공비행(High Flight)’에서 두 구절을 인용하여 연설을 마쳤다. 연설 중 그는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에게 챌린저호 사고를 “탐험과 발견의 과정 중 일부이며 인간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모험”이라고 이르면서 “미래는 마음 약한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용감한 사람들의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연설 중의 “용감한 사람들”이 미국 국가의 마지막 구절인 “자유인들의 땅, 용감한 사람들의 고향 위에”에서 따온 것임을 직감하면서 그의 수사(修辭)에 감탄했다.

수사는 설득의 기술이다. 샘 리스는 저서 <레토릭>에서 수사를 ‘말로 설득하는 기술’로 정의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서 설득의 수단으로 제시하였던 에토스(청중과의 신뢰관계 형성), 로고스(이성적 논증), 파토스(공감)의 세 가지 기법을 논한다. 레이건의 연설을 분석한 사람들은 그가 연설 중 계속 ‘우리’를 주어로 내세운 것을 에토스 기법으로, 승무원들의 위험을 무릅쓴 임무 수행의 이유를 지적한 것을 로고스 기법으로, 모든 국민과 함께 이 고통을 나누고 있다고 말한 것을 파토스 기법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 연설의 가장 훌륭한 점은 슬픔과 좌절에 빠진 온 국민들에게 미래를 향해 한마음으로 나아가자며 절절하게 통합을 호소한 데 있지 않았을까. 레이건은 성난 얼굴로 미항공우주국을 질책하지 않았고,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여 책임 있는 사람들을 반드시 처벌하겠다고 약속하지도 않았다. 또 우주탐사계획이 예산을 낭비하였으니 백지화한다거나 거기에서 이권을 챙긴 카르텔을 부수겠다고 선언하지도 않았다.

정치 지도자의 수사 중 감탄할 만한 것의 목록은 길다. 페리클레스의 전몰용사 추도사부터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연설에 이르기까지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들의 수사가 감동을 주는 것은 그것이 듣는 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면서 무엇보다도 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은 것, 즉 통합에의 호소에서 정서적으로 큰 울림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 지도자들의 언어는 자주 거칠거나 서투르다. 자주안보를 말하면서 “미국에 매달려서 바짓가랑이 잡고 엉덩이 뒤에 숨어서 형님 빽만 믿겠다, 이게…”라고 하거나(노무현), 민생문제 호소에 “그거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면서 해법 아닌 해법을 내놓거나(이명박),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조하면서 “진돗개는 한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때까지 안 놓는다”라고 하거나(박근혜), 코로나19 상황에서 간호사들의 헌신과 희생을 치하하면서도 굳이 “의사들이 떠난 의료 현장”을 지적한다(문재인).

윤석열 대통령의 언어 역시 거칠다. 그의 공식 연설문을 읽어 보면, 보좌진이 관여해서인지 짜임새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내용에서는 이분법적 사고를 드러내면서 갈라치기를 일삼거나 공격적 언사를 수시로 사용한다. 그는 국무회의에서 “법을 제대로 안 지키면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 보여줘야 한다”면서 엄포를 놓거나, “사기행위, 착취행위”를 비난하고, “예외 없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각오”를 밝힌다. 그것은 국정 최고 책임자의 언어가 아니라 검사의 언어에 가깝다. 또한 연단과 회의석상을 벗어난 곳에서도 대통령의 언어는 공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때 윤 대통령의 발화는 종종 즉흥적이며 부적절하다. 반말체를 보통으로 쓰고 매우 거친 언사를 사용한다.

문제는 기본적으로 그의 언어가 설득의 언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분노하고 비난하고 공격하지만 책임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는 않는다. 지지자들을 만족시킬지는 모르겠으나 반대자들을 포용하지 못한다. 샘 리스는 수사의 종류 중 하나인 정치적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는 감동을 주는 것이라 했다. 그 감동적 메시지의 수신자는 지지자들을 넘어 전 국민이어야 한다. 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윤여준 전 장관 말대로 ‘절제되고 기품 있는 언어’를 구사하고 나아가 통합을 말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는 없는가.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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