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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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태도 환대의 서가 지방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한 친구가 고민을 털어놨다. 카페 서가에 있는 책을 한 달에 한 번씩 교체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책의 내용을 검열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어느 날 자신을 공간 컨설턴트라 소개한 손님이 비치된 페미니즘 서적을 가리키며, 상업 공간에 이런 책을 두면 안 된다고 지적한 뒤부터 시작된 검열이었다. 그 얘기를 들은 친구는 자신의 관심사인 환경, 여성, 지역에 관한 책들을 숨기고 모두가 좋아할 만한 음악과 사진에 관한 책을 가져다 놓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음악과 사진에 있는 정치적 함의도 거슬리기 시작했다. 결국 모든 책을 외국 작가의 그림책으로 바꾸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지만, 가끔 그 책을 자세히 읽는 손님을 보면 그림 속에서 어떤 상징을 발견해 그 의도가 무엇인지 자신에게 따져 물을 것 같아 심장이 떨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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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태도 작별의 장면들 안성기를 생각할 때면 왜인지 늘 그의 뒷모습부터 떠오른다. 내가 기억하는 영화 속 그는 언제나 쓸쓸히 길을 걷는 모습이다. 눈 덮인 산속을 헤매던 빨치산(<남부군>)은 물론, 첫눈에 반한 여자에게 끝없는 구애를 퍼붓던 너드(<기쁜 우리 젊은 날>), 악연인 형사의 얼굴에 주먹을 꽂던 조폭 두목(<인정사정 볼 것 없다>), 한물간 록스타를 꾸준히 뒷바라지하며 재기를 성공시킨 매니저(<라디오스타>)까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인상임에도 그의 존재는 왜인지 모두 춥고 언 길을 묵묵히 걷는 뒷모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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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내일의 태도 점선을 따라 안쪽으로 접으세요 이제 10대 시절의 이야기를 하기엔 제법 나이를 먹었지만, 내가 느끼는 고통의 기원을 찾다 보면 태연히 그때로 돌아가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무엇도 탓하지 않고 오직 나의 서사 안에서 싹트는 새파란 고통을 보기 위해서. 그러나 어린 내 모습을 마주하고 연민을 경계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 한동안은 그 연민을 이겨내지 못해, 어른이 된 내가 어린 시절의 나를 안아주는 신파적인 장면을 수없이 바라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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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내일의 태도 학교 밖의 동창회 숫자 ‘1’ 옆에 마치 실수로 인쇄된 듯 보이는 또 다른 ‘1’. 손가락 열 개를 채우고도 하나가 남는, 인심 좋은 숫자 11. 실수를 저질러도 왠지 한 번 기회를 줄 것 같은 안도의 숫자 11. 아직 한 달이 더 남았으니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듯한 11월. 게으른 인간의 마지막 보루. 스무 살 노동, 어떻게 위협받는가 “12년의 입시가 종료되는 날이네요. 차분히 문제를 풀고, 끝나면 마음껏 기쁨을 누리세요.” 아침 라디오 DJ의 반복적인 응원과 격려를 듣고서야 11월에 수능이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수능, 인생엔 그보다 몇 곱절이나 힘든 고통이 있다는 걸 체험한 후, 내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지고만 아주 사소한 이벤트. 음, 쓰고 보니 ‘인생 별거 아냐’ 하는 종류의 허세 가득한 소회인 것 같아 부끄럽다. 하지만 오늘은 지우지 않는다. 수능 당일 SNS에서 보았던, ‘제발 수능 못 쳐도 인생 망한 거 아니라고 해줘요’란 어느 청소년의 절박한 요청에 답을 보태고 싶어서. 학교 밖에서 11월을 맞았던 열아홉의 나 역시 ‘인생은 그리 쉽게 망하지 않는다’는 증언을 수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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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내일의 태도 토끼풀 신문사 꽤 오랫동안 게임에 문외한이란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게임 속 세계관에 대한 해석이나 게임회사의 운영 방식을 두고 골치 아프게 싸워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는 게임을 잘 몰라서요. 가끔 스도쿠 정도 해요” 하며 얄밉게 빠져나가는 식으로 말이다. 내가 자란 세계관에서 게임이란 학생이 해서는 안 될 불량한 활동이자, 단속의 대상이었다. 학교 선배 중 하나가 스타크래프트 게이머가 되었다는 것에 분노하다 급기야 그의 미래에 저주를 퍼붓고 말았던 교장 선생님의 담화는 그 세계관을 형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억이다. 그렇게 축적된 편견들 때문에 서른이 넘어서까지 나의 유일한 게임 경력은 일곱 살에 했던 ‘슈퍼 마리오’뿐이었다. 그러니 2년 전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킹덤’을 플레이하며 내가 흘린 뜨거운 눈물은, 게임을 모르고 살아온 지난 20여년의 한이자 설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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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내일의 태도 종로의 밤 본관이 어디냐는 질문에 잠시 눈앞이 하얘졌다. 우물쭈물하니 친구의 아버지가 먼저 “요즘엔 성을 묻는 사람이 잘 없지” 하고 속을 헤아려줬다. 대체 어른들은 남의 집 족보가 왜 궁금한 걸까? “그게 어른들한텐 일종의 MBTI 같은 거지.” 친구는 자신의 아버지를 변호하듯 멋쩍게 말했다. 나는 친구 아버지가 준 배 한 상자를 트렁크에 실으며 호쾌하게 웃었다. 친구야,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익현(최민식)은 ‘어디 최씹니까?’라는 질문 하나로 주먹 세계의 실세가 됐어. 한국 사회에서 뿌리를 안다는 건 그만큼 강력한 힘인 거야. 참… 난 경주 최씨도 아닌데 이렇게 좋은 배를 받아도 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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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채무일기 빚과 실 말할 수 있는 빚이 있고, 말할 수 없는 빚이 있다. 말할 수 있는 빚은 ‘반은 은행 거야’라는 말로 자신의 집을 소개하거나, 운영에 부침을 겪는 업주가 희망을 찾을 때의 것이다. 겸손하고, 성실하고, 명예롭다. 반면 말할 수 없는 빚은 말해진 적 없기에 예를 들 수가 없다. 생존이나 중독에서 기인했을 것이라 짐작할 뿐. 숨기고 감추느라 어둠 속에서 축축해진 그것들의 이미지는 오만하고, 나태하고, 굴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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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채무일기 코 없는 코끼리 눈을 감고 코끼리를 만졌다. ‘왜 코가 없지?’ 코끼리의 몸을 아무리 더듬어도 내 손끝은 눈을 감기 전 보았던 ‘코 없는 코끼리’의 형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치 내 모든 감각이 시각 속에 갇히는 기분이었다. 정답을 적었는데도 자꾸만 틀렸다고 하는 이상한 시험문제를 푸는 것 같았다. 처음 느끼는 막막함이었다. 엄정순의 ‘코 없는 코끼리’는 ‘본 것’ 대신 ‘보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작품으로, 시각 예술이면서도 시각 중심의 감각을 전복시킨다. 작가는 시각장애인이 손끝으로 코끼리를 이해했던 경험을 조각으로 복원해 시각에만 의존해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 시각을 차단해야만 알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에 대해 말한다. 감각의 체계가 다르기에 낯선 상상과 새로운 통찰이 있는 세상, 타인이 되어보지 않고도 그를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세상, ‘코 없는 코끼리’가 인도하는 그런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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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채무일기 물과 불 지난 2월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을 유튜브로 시청했다.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는 시상식답게 채팅창은 소란스러웠지만, ‘올해의 앨범’을 꼽는 마지막 순간만큼은 누구도 이견을 내지 않았다. ‘단편선 순간들’의 <음악만세>. 그들의 노래는 ‘물에 잠기면서 시작해,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끝나는 이야기’라는 설명처럼 신비로웠다. ‘위풍당당 행진곡’을 편곡한 첫 번째 트랙부터 ‘독립’ ‘물’을 지나 ‘불’에 닿을 때까지 그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웃으며 ‘삶과 음악’이라는 내러티브를 완성했다. 눈치 보며 키득대고, 배를 잡고 폭소하고, 절망하듯 헛웃음을 짓고. 그렇게 모인 웃음은 아홉 번째 트랙 ‘음악만세’에 이르러 절규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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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채무일기 눈 뜨기 연습 집 앞 하천에 물이 마르면 괜히 눈이 삐뚤어졌다. 냇물을 제집 수도처럼 쓰는 골프장과 저수지 근처의 도축장 공사판을 종일 탓하느라 그랬다. 야속할 만큼 오지 않던 비는 내 눈이 제자리로 돌아올 때쯤 소리 없이 내렸고, 하천에 물이 차면 모난 마음이 조금씩 깎였다. 산천이 대수냐, 저 미운 골프장 방문객들이 마을을 먹이고 살린다. 쌀밥을 한술 떠 제육 반찬을 올리고 둥글어진 속에 넣었다. 마음에서 깎여 나간 모서리가 목구멍에 가시처럼 박혔어도 밥알을 뭉쳐 삼키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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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채무일기 광주 드라이브 여행을 자주 다니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불과 200㎞ 떨어진 이웃 도시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사실을 끝내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왜였을까? 문장을 좀 더 또렷하게 고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으려나. 내가 사는 도시가 대구이고,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도시가 광주라는 사실이 그 감정의 원인이 될 수 있느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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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채무일기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긴 연휴를 맞아 요리를 계획했다. 메뉴는 ‘오코노미야키’. 흡사 ‘해물전’처럼 보이지만 새우와 오징어의 탱글한 식감과 마요네즈와 간장이 혼합된 짜릿한 소스 맛은 ‘혼술’에 제격인 안주 같기도 해서 홀로 맞는 명절에 더없이 어울린다. 언젠가 먹었던 그 맛을 떠올리며 신나게 마트로 뛰어갔다. ‘아, 인간은 이렇게 약간의 식량과 여유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구나’ 생각하면서. 그러나 재료를 담기 위해 채소 진열대에 다다른 순간, 내 행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양배추 7300원.” 연휴엔 라면을 먹으면서 농산물 가격 폭등의 원인을 다룬 기사를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