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한 말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는 소망이 재난인가.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이 ‘사회적 재난’이라며 중대본을 꾸렸다. 정부의 사고회로를 도통 알 수가 없다. 화주업체 재산의 안전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만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를 포함한 모두의 안전을 위해 정부가 먼저 확대해야 할 제도다. 화물노동자가 화물을 실어나르는 덕분에 돈을 버는 화주업체가 마땅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모든 게 거꾸로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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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불법파업’으로부터 ‘법과 원칙’을 지키는 역할을 자청했다. 화물연대 파업을 ‘불법과 범죄’로 만들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모로 가도 불법이기만 하면 된다는 듯 이유가 계속 바뀐다. 화물기사는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이므로 파업할 권리가 없어 불법, 개인사업자는 영업하지 않을 자유가 있지만 업무개시명령을 거부하면 불법, 사업자가 부당하게 담합하여 공동으로 행위하였으므로 불법. ‘불법파업’은 신묘한 힘을 가진 말이다. 파업이 불법인가 합법인가 따지다 보면 노동자가 파업까지 하게 된 이유는 사라져버린다. 되풀이해 듣다 보면 파업 자체가 불법인 듯 홀리게 된다. 파업은 경제적 손실을 입히니 불법적이고, 제한된 경우에만 허용된다고 많은 이들이 오해한다. ‘불법파업’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후일 법원이 어떤 판단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파업 자체가 불온한 것이 되는 순간 승리하기 때문이다. 불법파업의 반대말은 합법파업이 아니다. 파업할 권리다.

모든 사람은 결사의 자유를 누리며 불의에 맞서 저항할 권리를 가진다. 일하는 사람이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행동할 권리는 보편적 인권으로부터 비롯된 권리다. 헌법은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라 이름 붙여 보장한다. 대법원은 이를 “법률이 없더라도 직접 법규범으로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체적 권리”라고 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권리를 보장할 목적의 노조법도 있다. 노조법 2조는 ‘근로자’ ‘사용자’를 폭넓게 정의한다. 3조는 단체교섭이나 쟁의행위로 발생한 손해에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명시한다. 파업권 보호를 위해 현대 국가에 통용되는 원칙이다. 하지만 정치와 문화, 법과 제도가 오랜 시간 권리를 지워왔다. 심지어 노조법마저 권리를 지우는 일에 동원되고 있다.

고용관계나 형태가 다양해지는 추세에 맞춰 ‘근로자’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지만 사용자나 국가는 일단 아니라고 우긴다. 화물기사는 ‘근로자’라고 결론 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업자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하청노동자나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정하는 데 영향력을 가진 원청업체 등은 ‘사용자’지만 노동조합의 대화 요구를 일단 거부한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이라도 권리를 박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업이 시작되면 노조법이 정한 파업이 아니라며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수백억원의 청구만으로도 삶이 파탄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탈퇴를 조건으로 소를 취하하는 등 권리를 파괴하려는 의도도 숨기지 않는다. 가혹하다 못해 잔혹한, 정부의 화물연대 파업 탄압도 같은 의도다.

국회 앞에서는 노조법 2·3조 개정을 요구하는 단식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권리 행사를 수월하게 하려고 만든 법이 권리 행사의 자격을 심사받는 관문이 되어버린 탓이다. 권리 자체를 부정하는 법적 다툼에 권리가 소모되지 않도록 취지와 뜻을 분명히 풀어쓰라는 요구다.

‘불법파업’이 있다면 잘못한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국가다. 파업할 권리를 보장하고 실현할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권리를 지키고 있다. 안전을 요구하는 고단한 파업으로, 법의 본색을 찾아주려는 고달픈 단식으로. 지워지는 권리가 더 잊히기 전에 살려야 한다. 신묘한 힘을 가진 또 다른 말을 떠올려본다. 연대, 우리의 존엄과 권리를 살아 숨 쉬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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