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머리와 무정차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대구 대현동 이슬람 사원을 짓는 골목에 놓인 돼지머리 사진을 봤다. 때를 놓쳐 쓰지 못했지만 말을 잃어 쓰지 못하기도 했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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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증축을 둘러싼 갈등은 꾸준히 접하고 있었다. 경북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무슬림 유학생들이 십시일반 모금으로 비좁은 기도실의 증축을 계획했고 2020년 9월 건축허가를 받았다. 2021년 2월 인근 주민들이 민원을 넣으러 구청에 찾아간 날, 구청은 즉시 공사를 중지하라고 명령했다.

느닷없는 통보에 이어 무슬림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현수막과 팻말이 골목에 들어섰다. 대화로 잘 풀어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놓지 않고 혹시나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까 봐 인터뷰도 사양하던 무슬림 유학생들은 7월 법원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해를 넘겨 작년 9월 대법원이 공사중지 처분을 취소시켰다. 돼지머리는 한 달쯤 지나 골목에 등장했다. 이슬람에서 금기시하는 동물을 보여주는 의도는 명백했다.

혐오가 무서운 이유는 상대가 겪는 고통의 실질을 행위자가 모른다는 데 있다. 어떤 집단이 존재를 부정당하는 “영혼의 살인”(모로오카 야스코)으로 겪는 일이, 행위자에게는 냄새 난다고 말하거나 돼지고기를 먹는 일상의 에피소드일 뿐이다. 그래서 반복될 수 있고 집요해질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상대를 괴롭게 한다는 걸 알기에 벌이는 행위들이다. 상대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몫이라고 여길 뿐이다. 사원을 짓겠다면 감수해보라고, 당신들의 종교를 존중받고 싶다면 우리의 문화를 존중해보라고. 사적 징벌이다. 이런 행위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신호가 단호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신호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슬람 혐오를 인식하고 해법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니 대구 북구청은 한쪽 편을 드는 일이라며 거부했다.

서울 지하철에서는 신호등이 거꾸로 켜졌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행동이 1년 가까이 이어지던 중이었다. 지난해 12월8일 무정차 방침이 알려졌고 14일 기어이 삼각지역을 무정차 통과했다.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함께 사는 그날”을 바라며 장애인 권리 예산을 요구하는 행동에 서울시는 “시민의 피해와 불편을 방치할 수 없다”며 강경 대응을 선포했다. 당연하다는 듯 장애인을 시민으로부터 편 가르는 말에서 이동하지 못하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지 못하는 시민의 피해는 사라졌다. 장애인의 권리에 빨간불을 켜고 비장애인의 권리에 초록불을 켠 것이 아니다. 이동과 교육과 노동과 주거가 모두를 위한 인권이 되지 못하게 빨간불을 켠 것이다.

오작동하는 신호등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말하며 노동조합에 부패니 적폐니 하는 말을 쏟아내는 윤석열 대통령은 모든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빨간불을 켰다. 이태원참사 유가족을 앞에 두고 이상민 장관은 “촌각을 다투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하니 차라리 신호등을 꺼버리겠다는 태도다. 작년 한 해 벌어진 사건들이 인권을 거스르는 신호로 고스란히 남아 새해를 열고 있다.

오작동하는 신호등을 당장 수리할 방법을 알아낼 수 없는 나는 차라리 과거를 기억하기로 했다.

신호등보다 먼저 건널목을 만든 이들이 있었다. 10년 전 기도할 작은 공간을 얻어서 기뻐하며 주민들에게 반갑게 인사했을, 지금도 주민들과 다시 안부를 주고받는 이웃이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 20년 넘게 싸우며 지하철역마다 승강기를 만들어온, 15년 가까이 누구든 지역사회에서 어울려 살 수 있게 탈시설 권리를 만들어온 이들. 전장연이 “‘무관심’이 ‘권리의 독’이었습니다. 차라리 욕설과 혐오의 무덤에 들어가겠습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혐오하든 말든 싸우겠다는 오기가 아니다. 건널목에 이어 신호등도 제대로 세우겠다는 선언이다. “연대를 통한 ‘연결과 관계’의 공간을 만들어주십시오.” 길을 같이 건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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