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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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차별금지법이 당연한 세상 지난달 한 대학의 인권센터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았다. 학내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해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를 주제로 한 강연이었다. 그런데 한창 강의 준비를 하던 중 연락을 받았다. 강의 홍보가 나간 후에 교내외에서 반발이 있었고, 이에 인권센터장으로부터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말아달라는 의견을 전달받은 것이다. 대학과 같이 다양한 청중이 있는 자리에서 강연을 하다보면 여러 일을 겪게 마련이다. 몇 년 전에는 한 기독교 계열 학교에서 성소수자 차별을 주제로 강연을 한 뒤 보수 개신교 단체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내 사진이 게시되고 학교 측에 항의가 쏟아진 일도 있었고, 다른 학교에서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강의에서 역차별을 이야기하는 교수와 설전을 벌인 적도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강연 전에 차별금지법 자체를 언급하지 말라는 연락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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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트랜스젠더 변호사’라는 이름 얼마 전 한 방송 인터뷰를 했다. 성별정정제도의 문제점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후 실제 방영된 프로그램을 봤을 때 자막으로 나에 대한 소개가 이렇게 나왔다. ‘박한희(트랜스젠더 변호사)’. 트랜스젠더 변호사, 나를 소개하는 말로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위 방송에서 자막에 그렇게 소개돼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방송에서 인터뷰한 내용은 내가 트랜스젠더 당사자로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성별정정 사건을 대리해 온 변호사인, 이른바 전문가로서 이야기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전문가 인터뷰를 할 때 남자 변호사, 시스젠더 의사, 이성애자 교수, 이런 식으로 인터뷰이가 소개되는 것을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왜 나를 소개하는 문구는 트랜스젠더 변호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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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모두에게 안전하고 행복한 학교 지난주 근처를 지나는 김에 서울시교육청 앞을 찾아갔다. 4월1일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제2기 학생인권종합계획(2021~2023)’에 성소수자 학생 지원과 보호가 담겼다는 이유로 국민희망교육연대가 설치한 근조화환들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기사 등을 통해 소식을 접했고 이에 대항하는 현수막을 게시하는 행동을 하기도 했지만, 역시 수십개의 근조화환과 ‘서울교육은 죽었습니다’라는 문구가 담긴 현수막을 실물로 보자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나, 그리고 다른 성소수자들의 학교 경험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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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트랜스젠더는 당신의 곁에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트랜스젠더를 많이 접한 정부기관은 어디일까? 정답은 나도 알 수 없다. 현재 트랜스젠더에 대한 국가 통계는 없으며, 트랜스젠더는 정책 수립을 위한 인구집단으로도 잡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가설은 있다. 바로 국방부와 그 외청인 병무청이다. 근거는 이러하다. 일단 법적으로 성별이 변경되면 병역법에 따라 병무청에 통보된다. 이로 인해 트랜스남성들이 성별 정정을 마친 후 바로 병역 이행 통지를 받고 놀랄 때도 있다. 한편 성별 정정을 하지 않은 트랜스여성의 경우 병역의 의무가 부과되며 그중 일부는 병역판정 신체검사 시에, 또 다른 일부는 군복무를 하면서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드러나곤 한다. 결국 국방부와 병무청은 성별 정정을 한 모든 트랜스젠더와 성별 정정을 하지 않은 트랜스여성 중 상당수와 접점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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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무엇이 ‘가족’입니까 여기 한 부부가 있다. 2013년부터 만났고 2017년부터 함께 살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여러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면서 결혼식도 올렸다. 가사를 나눠 하고 서로가 아플 때 돌봐주고 서로의 경조사를 챙기는 등 여타의 부부랑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한다. 하지만 이들은 혼인신고를 올리지 못했다. 두 부부 모두 법적 성별이 남성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들 부부는 2020년 2월 국민건강보험 부양-피부양 관계로 등록을 했다. 건강보험공단에 동성 부부인 것을 밝히며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고, 공단으로부터 사실혼 관계면 등록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고 나서였다. 그런데 이후 두 부부의 사연이 알려지자 공단 측은 이들의 피부양자 등록을 없던 일로 해버렸다. 결국 2월18일 이들은 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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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차별금지법이라는 출발점 최근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가 개인정보 침해, 소수자 혐오 등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킨 끝에 서비스가 중단되는 일이 있었다. 특히 이루다가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거나 무분별하게 혐오발언을 하는 모습은 그간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개발의 문제로만 이야기되어 온 인공지능을 인권과 평등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인공지능의 혐오발언, 이렇게 들으면 뭔가 거창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루다의 혐오발언은 그렇게까지 특별한 무언가는 아니기도 하다. 이루다는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한 약인공지능이며, 따라서 이루다의 발언들은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해 내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통해 학습한 결과로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루다가 쏟아낸 소수자 혐오발언은 기존에 없던 혐오를 인공지능이 만든 것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지닌 기존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그대로 투영한 결과물일 뿐이다. 이루다 사태와 관련해 알고리즘에 대한 점검을 넘어 사회 전반적인 성찰과 제도적 대안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