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최신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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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인권위를 몰락시키는 이들에게 연일 뉴스를 보며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2020년대에 일어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비상계엄이 선포되었고, 국회에 군인이 난입하는 모습을 전 시민이 지켜봐야 했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지만, 뒤를 이은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 선별 임명 등 대통령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 내란수괴는 적법하게 발부된 체포영장을 부정하며 관저를 요새화하고 있다. 지금 가장 자주 들리는 단어인 ‘법과 원칙’이 말 그대로 무너지고 있다. 그러한 상황을 더욱 가중시킨 기관이 있다. 모든 시민의 인권과 존엄을 보호하고 민주적 기본질서를 확립해야 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이다. 지난 9일 김용원, 강정혜, 김종민, 이한별, 한석훈, 5명의 인권위원이 13일 개최되는 전원위원회에 긴급안건을 제출했다.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의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이라는 거창한 안건의 내용은 읽어볼수록 놀랍다.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으므로 탄핵이 바람직하지 않고, 오히려 야당의 탄핵소추 남발이 국헌문란이라는, 극우세력의 주장을 그대로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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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인권이 무시되는 만행을 막기 위해 지난 12월10일은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된 지 76년이 되는 날이었다. 1948년 유엔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된 것은 두 차례의 전쟁,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행된 집단학살 등을 겪으며 인권이야말로 이와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한 장치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선언문의 전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인권에 대한 무시와 경멸이 인류의 양심을 격분시키는 만행을 초래하였다.” 그리고 세계인권선언일로부터 일주일 전 시민들은 또 다른 만행을 목격했다. 바로 12월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다.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비상계엄 선포와 그 후 나온 계엄사령부 포고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를 준수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내용도 인권에 대한 무시와 경멸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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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11월20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독일 성별 스스로 결정… 한 달간 1만5000명 신청.” 최근 나온 기사들의 헤드라인이다. 독일에서 어떠한 조건도 없이 등기소에 신고만 하면 성별을 선택할 수 있는 성별자기결정법이 통과되었다는 내용이다. 기사는 이러한 법률이 성범죄자에 의해 악용되어 여성, 청소년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고 스포츠의 공정성도 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얼핏 건조하게 다양한 입장들을 전하는 기사 같지만 핵심은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 어떻게 독일이 이와 같은 결정을 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독일은 이 사안에 있어 후발주자이다. 2012년 전 세계 최초로 성별자기결정법을 만든 나라는 아르헨티나이다. 그 후 현재까지 덴마크, 아일랜드, 콜롬비아, 우루과이 등 전 세계 20여개국에서 어떠한 조건도 없이 성별을 변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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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성소수자가 먹고살아 가는 모습들 지난 수요일 재·보궐선거를 위해 투표장을 찾았다. 입구에서 신분증을 제시하니 담당자가 선거인명부 대조 전표를 주면서 투표장 안으로 들어가라고 안내를 했다. 전표에는 등재번호와 함께 이름, 성별을 적도록 되어 있었고 내가 받은 전표에는 성별란에 ‘여’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전표를 들고 투표장에서 다시 한 번 선거인명부와 대조하는 절차를 거치면서 보니 이름과 성별을 적게 되어 있는 선거인명부에는 내 이름 옆에 ‘남’이라고 적혀 있었다. 대조 전표의 성별과 명부의 성별이 다른 상황, 혹시 추가적인 확인 절차를 요구받거나 안 좋은 이야기를 듣지 않을까 잠시 긴장하던 순간, 문제없이 투표용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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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인권위의 위기, 구조를 바꾸자 활동을 하면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엔 인권위에 기대는 일이 줄고 있다. 집회 현장에서 경찰이 인권침해를 하거나 차별이 발생했을 때, 인권위 진정을 생각했다가 그만두는 일이 많다. 인권위가 제대로 사건을 조사·해결할 수 있을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2024년 6월 기준으로 인권위 진정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3%, 사건 처리 건수는 21.4%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검찰·경찰 등 권력기관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권고 건수는 3분의 1 수준으로 대폭 하락했다. 구체적으로 경찰 관련 사건 진정에 대한 권고는 16건으로 작년 대비 절반 이하로, 검찰사건의 경우엔 아예 권고 건수가 0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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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학생인권법, 모두의 인권을 위한 법 가끔 학교에 성소수자 인권을 주제로 특강을 나갈 때가 있다. 강의가 끝났을 때 조용히 한 학생이 찾아와서 자신도 성소수자 당사자라고 이야기를 꺼낼 때가 있다. 어렵게 찾아준 그 용기에 감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다. 이러한 자리를 빌려서야 비밀리에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그 학생에게 학교는 어떤 공간일까. 또 다른 감동을 받은 일도 있다. 한번은 강의 때 알려준 주소로 한 학생이 e메일을 보내왔다.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들로 인해 막연히 성소수자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아직 성소수자를 완전히 지지하긴 어렵긴 해도 좀 더 노력해보겠다는 내용이었다. 한 번의 교육이 어떻게 개인을 바꿀 수 있는지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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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사랑이 이겼고 또 이길 것이다 7월18일, 긴장된 마음으로 대법원 대법정에서 선고를 듣기 시작했다. 대법원장이 이유 요지를 읽기 시작하고 몇분 뒤, 동성 동반자를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마디가 떠올랐다. 이겼다. 판결 선고가 끝나고 모두가 웃고 울면서 함께 법정을 나온 뒤, 한마음으로 외쳤다. 사랑이 또 이겼다. 이날 대법원은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사실혼)에 대해서는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면서도 동성 동반자에게는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동성 동반자인 원고의 피부양자 지위를 박탈하고 보험료를 소급 부과한 처분을 취소한 서울고등법원의 결론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이는 대법원이 처음으로 동성 동반자의 권리를 인정한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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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 제대로 된 국가인권위원장이 필요하다 지난해 두 차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인권위원 후보추천위원회에서 활동할 기회가 있었다. 현재 인권위원은 국회, 대법원장, 대통령이 각각 지명하도록 되어 있다. 이 중 대통령이 지명하는 인권위원에 대해서는 후보 추천위원회가 구성되어 3배수의 후보를 추천하여 왔다.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인권위원의 자격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후보 추천위원을 맡으면서 과연 내가 이러한 자격을 갖춘 인권위원 후보를 제대로 살펴보고 추천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막상 받아본 후보자 면면 중엔 다소 실망스러운 이들도 많았다. 그런 가운데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한 후보가 있었다. 면접 과정에서 그는 진중한 태도로 앞으로 경청하며 배워나가겠다고도 말했다. 당시 이충상 상임위원으로 인해 인권위 안에서 여러 문제들이 있던 상황에서, 나름 기대도 갖게 해주었다. 그러한 기대가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가 바로 지금 여러 언론에서 오르내리는 김용원 상임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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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성소수자 자긍심의달 6월은 성소수자 자긍심의달(LGBT Pride Month)이다.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기념하고 인식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지정된 달이다. 이 시기를 맞아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 지역에서 퀴어퍼레이드 등 다양한 행사가 이루어진다. 6월이 이렇게 자긍심의달로 지정된 것은 55년 전인 1969년 6월28일 미국에서 있었던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이 항쟁은 당시 미국 전역에서 동성애가 불법이던 시절, 성소수자들의 모임 공간이던 스톤월 주점을 경찰이 급습한 것에 항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4일 동안 이루어진 항쟁을 기념하여 그다음 해인 1970년 6월28일, 뉴욕에서 세계 최초로 퀴어퍼레이드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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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한 달은 매우 길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지 20여일이 지났다. 정치권은 다가올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분주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의 위성정당은 모정당과 합당하였고, 조국혁신당의 교섭단체 구성을 놓고도 날선 공방이 오갔다. 법사위원장을 놓고도 거대 양당은 기싸움을 하고 있다. 이렇게 22대 국회 향방을 둘러싼 여러 소식들을 보고 있으면 이미 21대 국회의 시간은 끝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21대 국회의 임기종료까지는 아직 한 달의 시간이 남아 있다. 한 달 갖고 무엇을 할 수 있냐 하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2020년 5월21일 20대 국회는 임기 마지막 본회의를 열고 133건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20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된 1만6000개의 법안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숫자이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국회가 할 일은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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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인권위, 더 늦기 전에 바로잡아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20년 넘게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해 온 기관이다. 설립 직후인 2003년부터 차별금지법 성안 작성을 추진하였고, 2006년 국무총리에게 제정을 권고했다. 이후 2007년 법무부의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이 성소수자 혐오로 좌절된 이후에도, 인권위는 계속해서 이를 이야기해왔다. 2020년 제21대 국회 출범 직후에는 평등법 시안을 공개하며 다시 한번 강력히 국회에 제정을 권고했다. 그런 인권위에서 표결로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가 빠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였다. 지난 3월25일 인권위 전원위원회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제출할 보고서를 채택했다. 이미 일본군 성노예제 권고, 비동의간음죄 제정 등 주요한 내용에 관하여 몇 차례의 진통이 있었던 보고서이다. 그런데 심지어 최종 보고서에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가 아예 제외되었다. 출석한 10명의 위원 중 4명만이 찬성 의결을 던졌기 때문이다. 인권위의 지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활동을 생각하면 가히 참사라 부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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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 1973년 미국 정신의학회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3판에서 동성애를 제외하기로 결정하였다. 동시에 성명을 통해 “동성애가 그 자체로서 판단력, 안정성, 신뢰성, 또는 직업 능력에 결함이 있음을 의미하지 않으며” “동성애자에 대해 행해지는 모든 공적 및 사적 차별에 개탄한다”고 선언하였다. 그 후 1990년 세계보건기구는 국제질병·사인분류 제10판에서 역시 동성애를 정신장애 범주에서 제외하였다. 이에 따라 현재 그 어떠한 정신의학 진단 기준에서도 동성애는 질병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