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는 당신의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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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가장 트랜스젠더를 많이 접한 정부기관은 어디일까? 정답은 나도 알 수 없다. 현재 트랜스젠더에 대한 국가 통계는 없으며, 트랜스젠더는 정책 수립을 위한 인구집단으로도 잡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가설은 있다. 바로 국방부와 그 외청인 병무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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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는 이러하다. 일단 법적으로 성별이 변경되면 병역법에 따라 병무청에 통보된다. 이로 인해 트랜스남성들이 성별 정정을 마친 후 바로 병역 이행 통지를 받고 놀랄 때도 있다. 한편 성별 정정을 하지 않은 트랜스여성의 경우 병역의 의무가 부과되며 그중 일부는 병역판정 신체검사 시에, 또 다른 일부는 군복무를 하면서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드러나곤 한다. 결국 국방부와 병무청은 성별 정정을 한 모든 트랜스젠더와 성별 정정을 하지 않은 트랜스여성 중 상당수와 접점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들 기관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변화된 논의들을 빠르게 반영하였다. 2021년 2월1일 국방부는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을 개정하여 ‘성주체성 장애’를 ‘성별불일치’로 변경하고 고도의 성별불일치에 해당하는 경우 군면제를 받도록 하였다. 여기서 성별불일치는 세계보건기구가 2018년 국제질병분류 제11판을 개정하면서 채택한 용어이다. 국제질병분류 제11판이 2022년에야 정식으로 발효된다는 점에서 국방부의 이러한 대응은 나름 선제적이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조치들이 트랜스젠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이들의 존엄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성주체성장애를 삭제하고 성별불일치를 둔 것은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더 이상 정신장애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럼에도 국방부의 개정된 검사규칙은 성별불일치로 인한 군면제는 정밀심리검사와 정신의학적 진단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앞서 트랜스남성들은 바로 병역 이행 통지를 받는다 했지만 결국 이들은 ‘성을 전환했다’는 이유로 군복무에서 면제된다.

성별이분법적이고 성차별적인 군대 조직 문화를 감안하면 이런 식으로라도 트랜스젠더가 면제되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실제 군인으로 복무하는 트랜스젠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2020년 국가인권위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트랜스여성과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259명 중 109명(42.1%)이 현역 또는 보충역으로 군복무를 했다. 실제로 병역판정 신체검사 과정에서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밝히기 어렵거나 군이 요구하는 면제 조건을 갖추기 어려운 등 다양한 이유로 트랜스젠더들이 군복무를 하곤 한다. 한편으로 본인이 원해서 직업군인이 되는 트랜스젠더도 있다. 고 변희수 하사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군에 존재하는 트랜스젠더의 존재는 철저히 무시되어 왔다. 위 인권위 조사에서 군복무를 한 트랜스젠더의 84.3%가 정체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트랜스젠더 군복무 관련 지침은 전무하다. 또한 국방부는 변 하사가 커밍아웃한 이후 1년이 넘는 기간 관련된 어떠한 연구도 하지 않다가 최근에야 국회의 지적을 받고 검토하겠다고 답하였다. 결국 트랜스젠더와 상당한 접점을 가진 정부기관임에도 그 존재에 대한 무지로 일관해 온 것이 국방부의 태도였다. 그리고 그 무지와 오만함 앞에 결국 한 용기 있는 트랜스젠더가 우리의 곁을 떠났다.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대위가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것처럼 변 하사의 복직 소송은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변 하사를 추모하는 수많은 시민들 역시 그 싸움에 함께할 것이다. 소수자 인권의 보루로서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 동시에 국방부가 지금이라도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사과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트랜스젠더는 당신의 곁에 있다’는 말이 주는 무게를 국방부, 나아가 이 사회 전체가 깊이 숙고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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