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의 화이부동]언론인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을 맞아 하루 전까지만 해도 신문사 편집국장과 논설위원 등으로 일하면서 ‘정치 중립’ ‘공정 보도’를 부르짖었던 중견 언론인들이 바로 다음날 대선 주자 캠프로 출근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폴리페서’처럼 정치(politics)와 언론인(journalist)의 의미를 합친 ‘폴리널리스트’란 이름을 붙일 수도 있겠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15년 전 경향신문(2007년 7월6일)에 게재된 “ ‘폴리페서’와 ‘폴리널리스트’ ”란 제목의 사설이다. 그 이전에 사용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알기론 ‘폴리널리스트’란 신조어가 탄생한 최초의 기록이다. 약 보름 후 한겨레는 사설을 통해 폴리널리스트를 언론계의 ‘산업 스파이’라고 부르면서 비난했다.

그럼에도 선거라고 하는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만 오면 폴리널리스트가 양산된다는 건 이젠 상식이 되고 말았다. 물론 언론의 비판은 계속 나오고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 1월19일에도 ‘현직 앵커들의 대선캠프 직행, 언론 신뢰도는 안중에 없나’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폴리널리스트를 비판했다.

그런데 이런 비판은 무력해 보인다. ‘대선캠프 직행’이 ‘대선캠프 완행’에 비해 더 비판을 받긴 하지만,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이 전체 국회의원의 10%를 넘는 현상이 고착화된 것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폴리널리스트 현상의 이유에 대해 언론인 개인의 윤리의식을 넘어서 총체적인 접근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섯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한국의 ‘정치 지상주의’ 문화다. 한국인은 정치를 혐오하는 것 같지만 자신이 하는 정치는 죽도록 사랑한다. 둘째, 언론산업의 불안정성과 미래의 불확실성이다. 이는 디지털혁명으로 인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셋째, 언론인이라는 직업의 전후후박(前厚後薄) 문화다. 언론인은 조직의 리더 역을 맡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론 단독자 모델인지라 나이가 들수록 초라해진다. 넷째, 산학협동 체제의 부재다. 관련 분야의 대학교수가 돼 예비 언론인을 양성해내는 출구가 제대로 열려 있지 않다. 언론사들의 시험 성적 위주의 채용 관행으로 인해 대학 쪽에서 실무 교육을 할 필요가 없어서 벌어진 일이다. 다섯째, 언론인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인한 자긍심의 박약이다. 특히 정파적 정치팬덤의 ‘기레기 타령’으로 인해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다.

고급검색 서비스로 불확실성 극복

이 이유들 모두 언론사가 개별적으로 대응하긴 매우 어렵지만, 둘째와 다섯째 이유는 워낙 시급한 것이기에 이에 대해 좀 생각해보자. 한겨레 미디어전략실장 최우성이 1월24일 아주 멋진 칼럼을 썼다. 그는 “한겨레가 서비스기업이 되는 날”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좋은 콘텐츠(기사)를 생산하면 독자가 당연히 소비하리라던 종래의 고집”이 여전히 건재한 것에 대해 의문을 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이야말로 언론사들도 서비스의 관점에서 업의 재정의를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업무 공정을 재정비하고 당연시했던 조직구조를 다시 그려야겠죠.”

과연 업을 어떤 식으로 재정의할 것인가? 세계 각국의 유명 언론사들이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긴 하지만, 업을 재정의하는 수준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지난 수백년간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던 언론이라는 제도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는 문명사적 문제인 만큼 이렇다 할 아이디어가 쉽게 나오긴 어려울 것이다. 파격적인 아이디어일수록 비웃음을 사기 십상인지라 언론인들 스스로 아이디어 제시에 ‘자기검열’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7년 전 경향신문엔 이런 내용의 칼럼이 실렸다. “검색 만능 시대다. 생각하고 사유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무엇이든 인터넷 검색 포털에 물어보면 즉시 답이 나온다. 컴퓨터와 스마트폰만 있으면 이 세상 모든 지식과 정보를 다 가르쳐준다.” 당시 많은 언론이 ‘검색 만능 시대’를 외쳤지만, 나는 이 말을 믿지 않는다. 단순한 정보나 지식의 경우엔 맞는 말이지만, 조금만 난도가 높아지면 검색을 통해 알 수 없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취재가 필요한 ‘고급 검색’ 서비스의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언론이 새로운 정보지식산업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익 모델 가능성은 거시적으로는 ‘오락 코드’ 중심의 한국 IT 문화가 얼마만큼 ‘지식 코드’로 이동하느냐에 달린 문제이지만, 미시적으론 언론사가 ‘고급 검색’의 수요를 스스로 창출해내는 역량이 중요하다. 나는 이런 수준의 원론에만 머무르고 있을 뿐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순진한 생각’이라는 비아냥을 들을까봐 염려돼 자기검열에 발이 묶인 지 오래다.

이럴 땐 역으로 생각해보는 게 좋다. 언론이 현재 유지하고 있는 제도와 관행 중 이상한 건 없는가? 출입처 제도는 어떤가? 그건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일지라도, 그렇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업의 변경을 완강히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가? 똑같은 ‘받아쓰기’ 기사일지라도 언론사마다 다소의 차이가 있고, 기자가 열심히 뛰면 뒷이야기를 더 내보낼 수도 있다. 그런데 단지 그 정도뿐이다. 언론사들이 여러 유형의 협업체제를 구축해 출입처 기사를 공유하면서 그 덕분에 확보된 인력을 다른 업의 창출을 위한 노력에 돌리는 경쟁을 하면 무슨 큰 일이라도 나는가?

언론이 알아서 잘하기 바란다. 내가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건 다섯째 이유다. 정치팬덤의 기레기 인신공격으로 우울증을 앓는 기자가 많아지고 있으며, 급기야 다른 직업을 택하는 기자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을 비롯한 일부 언론사들이 기자 보호 대책을 도입하고 있긴 하지만, 이를 지면을 통해 공론화하려는 시도는 없다.

자성과 소통 통해서 신뢰 회복해야

영국 언론인 제임스 볼의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라는 책을 읽다가 ‘개소리에 맞서는 현명한 방법’이라는 대목에 눈길이 갔다. 그는 “기자들의 내부 사정을 설명하자”고 제안한다. 예컨대 보도팀과 논설팀은 별개로 움직이기 때문에 보도와 논설의 일관성 문제를 제기하며 비난하는 독자들에게 오히려 서로 다른 게 좋을 수 있다는 걸 납득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집단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기자 모욕’은 그런 수준의 대응 방법으론 넘어서기 어려운 것이긴 하지만, 생각해볼 점은 있다. 언론은 내부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한겨레 기자들이 연재하고 있는 ‘말 거는 한겨레’와 ‘슬기로운 기자생활’ 칼럼이 인상적이다. 앞서 소개한 “한겨레가 서비스기업이 되는 날”이라는 칼럼도 그런 마당이 주어졌기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내부의 어려움을 독자들에게 알리지 않으려는 언론의 의연함은 옛날 같으면 칭찬받을 수 있는 것이겠다. 하지만 ‘쌍방향성의 오·남용’이 왕성하게 일어날 정도로 쌍방향성이 기본 문법이 된 오늘날엔 잘하는 일이라고 박수를 쳐주긴 어렵다.

미국 언론인 헬렌 토머스는 저널리즘에 대해 묻는 젊은이들에게 “당신이 만일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거든 기자 직종에 끼어들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기자들이 원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일부 독자들이 자신의 정파성에 조금이라도 어긋날 경우 퍼부어대는 증오와 혐오의 배설 공격을 받고 싶지 않은 최소한의 자존감이다.

나는 어느 언론사에서건 댓글 등을 통해 걸핏하면 기자와 대한 욕설과 함께 ‘절독’ 위협을 하는 독자 몇 사람을 초청해 그들의 익명을 보장해주면서 좌담회를 갖고 그 내용을 소개하는 기사라도 하나 나오길 기대했다. 그러나 언론은 그런 정면대응을 하지 않았다.

‘절독’ 위협의 논거들은 쌍방향 대화에 의해 다 부서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무리한 것이었다. 그냥 재미 삼아 해본 위협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그런 재미 추구가 집단적으로 이뤄지면서 언론계를 떠나는 기자들이 늘고 있다는 걸 심각하게 생각해줄 걸 요청하고 싶다.

최악의 여건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기자들에게 폴리널리스트 현상은 또 한번 그들의 힘을 빼는 비극이겠지만, 나를 포함한 독자들도 사회제도로서의 언론에 대해서는 너무 무신경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언론을 비난하면 찬사를 받지만, 언론을 조금이라도 옹호하거나 변호해주면 욕을 먹는다. 내가 여러 차례 직접 겪은 경험이다.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 언론도 뼈아프게 성찰하면서 언론인 스스로 할 수 있는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을 다해주길 바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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