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 김종인이 4번째 선거지휘를 맡았다. 여야를 넘나들면서 선거지휘를 하고, 선거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나면 사실상 배신을 당하거나 갈등을 빚어 퇴장한 그의 이력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긍정적 평가 못지않게 부정적 평가가 많은 탓인가? 지난 6일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전성인이 경향신문에 쓴 칼럼의 제목이 ‘김종인을 위한 변명’이다. 변명? 김종인이 이번엔 국민의힘을 지휘하는 탓에 불편하게 생각할 경향신문 독자들의 기분을 고려한 것인가?
그런 의아심이 들긴 했지만, 내가 보기에 전성인의 칼럼 내용은 좋았다. 무엇보다도 왜 김종인이 ‘몽니 부리는 꼰대’ 소리를 들으며 권한과 자리를 요구했는지,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 그건 바로 ‘경제 민주화’라는 ‘미완의 꿈’을 이루고 싶어하는 김종인의 열망이다. 그런데 이 열망은 자주 권력욕과 혼동되곤 한다. ‘희대의 거간 정치인’이라느니 ‘노욕의 정치기술자’니 하면서 험담을 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정파적 입장에서 그렇게 보는 거야 이해할 수 있다 치더라도 정말 그렇게 믿는 건 한국정치를 이해하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일방적인 비방은 왜 거대 여야 정당들이 그를 필요로 했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설명할 수 있다면 여야 정당들은 그런 수준의 인물을 필요로 했을 만큼 한심한 집단이라는 이야긴데, 그런 집단에 표를 준 유권자들은 뭐가 되는가. 우리가 아무리 정치를 욕해도 그렇지, 그렇게까지 우리 자신마저 비하할 필요는 없잖은가.
김종인은 불행한 사람이다. 한국사회가 어떻게 가야 한다는 자신의 진보적 비전과 철학을 확고히 갖고 있었고, 그걸 실천하기 위한 권력의지도 없진 않았지만, 체질적으로 정치라는 게임에 맞지 않는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돌직구 품성’과 더불어 ‘단독자 기질’이 매우 강한 사람이다.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밝혔듯이 말이다. “나는 학자 출신 관료들의 어떤 인맥에도 들어 있지 않고, 정치적 파벌에도 속해 있지 않고, 내가 따르는 정치적 보스도 있어본 적이 없다. (그것이 지금껏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고 살아온 배경 가운데 하나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30년 보면
결국 민심의 바다로부터 고립된
‘갈라파고스 신드롬’에 정권 몰락
김종인의 ‘단독자’ 기질 알기에
거대정당은 선거 때 쓰곤 ‘팽’
권력자 변심 넘어 그도 성찰해야
지식인으로선 경의를 표할 만한 품성이지만, 이는 각종 인맥 관계로 얽힌 정치판에선 정치인으로선 치명적인 결격 사유다. 정치란 우선적으로 ‘사람 장사’가 아닌가. 그런 장사를 할 수 없으니 자신의 ‘세력’을 만들 수 없다. 게다가 사람에 대한 호불호(好不好)가 지나치게 강하다. 독선적이라거나 ‘고약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물론 누군가를 극도로 싫어할 때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것이겠지만, 정치인이라면 그런 감정의 표현을 적절히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정치판에서 “나는 한번 아니면 영원히 아니야”라고 외쳐서 좋을 게 무엇이 있단 말인가.
김종인이 그런 싫은 감정을 표출할 때엔 인정사정 없는 독설가로 변신한다는 것도 문제다. “그 사람은 내가 보기엔 정신이 이상한 사람 같다.” “떼쓴다.” “세상 물정 모른다.” “정치란 그렇게 잔머리를 굴려서 하면 안 된다.” “정치를 잘못 배웠다.” “어리석다.” “정상적인 사고를 안 한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 되면 나라가 또 엉망이 된다.” 이게 다 누구를 향해 한 말인지 잘 아실 게다.
김종인이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은 직후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해 생각을 밝힌 걸 들어보시라. 그는 국민의당 대선 후보 안철수를 향해 “스스로 윤석열 후보가 단일화 후보가 될 수 있도록 해 주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본인이 정권교체를 위해서 뭐든지 하겠다고 얘기를 했기 때문에 전국에서 정권교체를 위한 길을 택해 주시지 않겠나 생각한다”며 “(대선) 포기는 본인의 결단에 달린 것”이라고 했다. 알아서 스스로 물러나라는 이야기다. 안철수로선 김종인이 빌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그렇게 “약속을 지키라”는 식으로 큰소리 뻥뻥 쳐대니, 내심 ‘닥치고 완주’를 해야겠다는 결의를 다지지 않았을까?
김종인의 독설은 무슨 정치적 이점이 있는 것 같진 않다. 유권자들을 겨냥한 효과는 좀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상쇄하는 ‘안티’ 세력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가성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독설은 비평가의 무기일 수는 있어도 정치인에게는 늘 부메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김종인의 타고난 기질이 그런 걸 어이하랴.
김종인은 그간 이재명을 “시대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능력이 탁월”하고 “재주가 많은 사람”이라며 긍정 평가해 왔는데, 나는 늘 이게 궁금했다. 이재명은 김종인의 정치적 지향성이나 스타일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재명이 평소 김종인을 극진하게 대해왔다는 걸 알고선 이런 의심이 들었다. 그가 친소관계나 읍소에 약한 건 아닌지, 이는 그가 자신과 비슷한 단독자 체질을 가진 다른 정치인을 과도하게 싫어하는 것과 동전의 양면관계를 이루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심이다.
정치인으로선 여러 한계를 안고 있음에도 그가 거대 정당들의 요청을 끊임없이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지 ‘경제 민주화’ 때문인가? 나는 한국의 거대 정당들이 ‘갈라파고스 정당’이라는 점에서 그 답을 찾고 싶다. 2년여 전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을 향해 “작은 섬에 고립돼 퇴화하거나 멸종하는 갈라파고스 정당의 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용법과 비슷하긴 하지만, 나는 좀 더 넓은 의미로 쓰고 싶다.
두 정당 모두 ‘갈라파고스 정당’이다. 둘 다 대중과 차단된 채 독자적인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두 정당 모두 강성 당원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 현시점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민주당은 확실히 그렇고, 국민의힘은 그 지배에서 탈피하는 중이다. 민주당의 경우엔, 지난 5·2 전당대회의 최고위원 선거에서 강성 당원들의 문자폭탄을 옹호한 세 사람이 각각 1, 2, 4위를 차지하며 당선된 것을 단적인 예로 들 수 있겠다.
민주당 정치인은 민심의 바다에서 멀어질수록 당내에선 정치적 경쟁력을 갖는다. 게다가 문재인 정권의 국정운영 기조가 ‘팬덤 정치’의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라 그런 강성 지향성은 증폭된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적폐청산’에 역행하는 불순한 책동으로 간주된다. 이는 단호한 응징의 대상이 되며, 이런 행태는 개혁의 이름으로 미화된다.
지난 30년 넘게 이루어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잠시 돌아보시라. 정권의 몰락 이유는 늘 ‘갈라파고스 신드롬’이었다. 점잖게는 ‘독선과 오만’, 속된 말로는 ‘싸가지 없음’이 지적되기도 했지만, 그 본질은 민심의 바다로부터의 고립이었다. 각종 전자제품의 세계 선두를 달리던 일본이 든든한 내수 시장만을 믿고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뒤처져 ‘잘라파고스(Jalapagos)’라는 오명을 얻었듯이, 한국 정당들은 늘 ‘집토끼’ 위주의 국정운영을 일삼다가 ‘산토끼’들로부터 버림을 받는 행태를 반복해 왔다.
바로 이런 환경이 김종인의 강점을 돋보이게 만든다. 그는 고령임에도 세상을 보는 눈은 청춘이다. 그는 갈라파고스 정당들이 신봉하는 이념, 좌우 구분, 진영논리를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비웃는다. 그가 여야를 넘나드는 건 이런 신념 때문이다. 그는 국민의힘은 중도로 이끌고, 민주당엔 현실주의를 요구한다. 민주당이 실천하는 진보는 도덕적 당위를 곧장 현실세계에 적용하는 ‘실험 진보’이기 때문이다. 단독자 기질은 자신이 권력의 주인공이 되는 데엔 결정적 장애가 되지만, 전체 상황을 객관적으로 조망하는 데엔 유리하다. 그는 어느 정당에 가서건 갈라파고스 정신에 충실한 인사들을 억누른다. 그 과정에서 적을 많이 만들어내지만, 그것 역시 단독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거대 정당들은 갈라파고스일망정 그의 이런 강점을 알기에 그걸 사용하는 데에 필요한 권한과 자리를 준 것이다. 선거라는 비상 상황에선 그의 다른 결함이 묻히지만, 선거 승리 후엔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뒷간에 갈 적 맘 다르고 올 적 맘 다르다”는 원리에 따른 권력자의 변심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김종인에게도 성찰은 필요하다. 갈라파고스 정당의 정상화를 위해 애쓴 그가 자신만 갈라파고스로 머무르겠다는 건 과욕이 아닌가. 그에게 그런 성찰이 필요한 기회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