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파적 통계’가 갈등을 부추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의 화이부동]‘정파적 통계’가 갈등을 부추긴다

19세기 프랑스의 공학자이자 자유주의자인 미셸 슈발리에는 “훌륭한 통계는 협박과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증언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가 원하는 것처럼 돌아가진 않았다. 통계는 늘 조작의 위협에 시달리느라 훌륭해질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 정치가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거짓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는 말을 하기에 이른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그럼에도 여전히 통계의 힘은 강하다. 정치인이 통계 수치를 잘 활용하면 유권자들에게 매우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똑똑하다는 인상과 더불어 성실하다는 느낌도 줄 수 있다. 무엇이 “엄청나게 많다”고 말하는 정치인과 개략적인 통계수치를 제시하면서 말하는 정치인을 비교해 보라. 누가 더 똑똑해 보이며 누가 더 신뢰할 만한 정치인이라고 여기게 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는가.

몇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정치적 논쟁이 벌어질 때에도 통계는 힘을 발휘하지만, 오히려 싸움을 부추길 수도 있다. 논쟁을 벌이는 두 사람이 동일한 문제에 대해 각기 다른 통계를 제시하면서 자기 것이 맞다고 주장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라. 요즘과 같은 스마트폰 시대엔 즉각 팩트체킹이 가능하지 않으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결코 그렇지 않다. 두 사람이 제시한 서로 다른 통계는 각자 나름의 근거는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올 6월 정부는 지난 4년 동안 서울 집값이 17% 올랐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시세를 기준으로 79% 올랐으며, 세금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은 86%로 시세보다 더 올랐다고 반박했다. 경실련은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과 청와대는 더는 국민을 속이지 말고 지금 당장 깜깜이 통계, 조작왜곡 통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바른 정책과 평가에는
국가 통계가 기준이 돼야 한다
그 기준이 흔들릴 때에는
국정운영이 왜곡될 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불통의 난투극 벌어져

정부로선 펄쩍 뛰면서 재반론을 해야 마땅할 일이었다. ‘국민을 속이는 조작왜곡’이라는 말까지 듣고서 가만있을 순 없잖은가 말이다. 각기 다른 조사 방식 때문에 빚어진 차이였을망정, 경실련의 통계보다는 정부의 통계가 더 정확하다든가 하는 주장이 나왔어야만 했다. 그런 재반론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론 보도에 의존하는 일반 시민의 입장에선 아무런 이야길 들을 수 없었다. 궁금해하는 시민도 없었을 게다. 17%라는 수치를 믿을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아니 꼭 그렇진 않다. 정부의 통계를 믿으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물론 대부분의 통계야 다 믿을 만한 것이겠지만, 부동산 가격 상승의 정도처럼 정치적 논쟁의 소재가 될 수 있는 통계 말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을 평가하는 데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통계는 사적인 정치적 논쟁의 자리에서 ‘소통’이 아닌 ‘불통’의 원인이 되곤 한다. 이른바 ‘확증편향’의 원리에 따라 자신의 정파성에 맞는 통계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통계가 논란의 한복판에 서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2018년 8월 황수경 통계청장의 경질이었다. 소득주도성장의 실효성을 의심케 하는 통계들이 나온 상황에서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그 의도에 대해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야당의 비판이 빗발쳤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국가 경제에 불이 났는데 불낸 사람이 아니라 불이 났다고 소리 지르는 사람을 나무란 꼴”이라고 했고, 주호영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가통계는 신뢰와 정직이 생명이다. 통계를 소위 마사지하기 시작하면 국가 경제는 망하게 된다”고 했으며,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은 “2분기 가계소득 동향이 1분기에 비해 격차가 벌어졌는데 통계청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다시 (표본을) 재조정한다고 하면 누가 그 통계를 믿겠냐”고 비판했다.

황 전 청장은 이임식 내내 눈물을 흘리면서 억울함을 내비쳤다. 그는 이임사에서 “통계청장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통계청의 독립성, 전문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해왔다”며 “국가 통계는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고 평가함에 있어 기준이 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며 “그것이 국가 통계에 대한 국민 신뢰를 얻는 올바른 길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의 통계를 둘러싼 논란은 거세졌다. 2019년 10월 자유한국당은 ‘최저임금 긍정효과 90%’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1년 전 발언은 청와대가 통계청에 압력을 넣어 불법적으로 확보한 가계소득 자료를 재가공한 보고서에 근거한 것인데, 이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와 무직자 등 ‘근로자 외 가구’를 빼고 만든 ‘엉터리 보고서’였다고 주장했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정권의 실정을 가리기 위해서라면, 불법도 자행하는 현 정부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2021년 1월18일 문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주택공급 물량이 과거 정부보다 훨씬 더 많이 설계돼 있다”며 “그러나 한편으로 시중 유동성이 풍부해져 부동산 시장으로 자금이 몰리고, 작년 한 해 가구 수가 예정에 없이 61만가구 급증하면서 공급 부족이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긴 측면도 있다”고 했다.

이에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구체적인 통계 수치를 들어 반박하면서 “권력 내부 소통과 대국민 메시지 왜곡이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그는 “실패가 불가피했다는 인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미적분학에서나 쓰는 ‘증가의 증가’ 개념이 대통령 발언에 동원된 것도 어이없는데, 통상의 반올림원칙은 내다 버리면서 한쪽은 올려붙이고 다른 쪽은 통으로 깎는 신공까지 활용됐다”고 했다. 이런 말도 했다. “정말 지질하게 통계를 비튼 건데… 화가 나기보다 오히려 짠하다. 이런 걸 생각해 내느라 청와대 참모들이 얼마나 머리를 쥐어짰을지 생각하면….”

문 대통령은 7월27일 참모회의에서 태양광 발전량 수치가 2.9%밖에 안 된다는 보고를 받자, 전력 시장에서 거래하지 않는 신재생 에너지 발전량까지 정확히 산출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산업통상자원부가 8일 만에 다시 꺼내든 보고서엔 11%가 적혀 있었다. 말 한마디에 무려 3배 이상 늘어난 것인데, 대형, 소형, 가정집 태양광 판까지 포함해 그것도 한여름 일조량이 가장 좋은 피크시간을 기준으로 적용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통계조작 의혹 사건은 무수히 많지만, 그걸 비판하려는 건 아니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하려는 것이다. 사적인 자리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논쟁에서 정파적 통계가 소통보다는 불통의 원인이 되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훨씬 더 심각한 것은 언론마저 정파성에 따라 정부 통계를 대하는 자세가 크게 다르다는 사실이다.

내가 소개한 사례들은 대부분 보수 언론 기사에서 가져온 것이다. 진보 언론은 이런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보수 정부가 들어서면 언론은 역할 교대를 한다. 정부 통계조작에 대해 보수 언론은 침묵하는 반면 진보 언론은 열변을 토한다. 가장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건 한겨레가 2013년 6월에 보도한 ‘권력에 춤추는 통계’라는 이름의 기획 연재물이었다. 다음 기사 제목들만 보더라도 당시 통계조작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게다.

“청와대, 박근혜 후보에 불리한 통계 대선 직전 발표 미뤄”, “한국이 스웨덴보다 빈부격차 적다?…통계청 직원도 못 믿는 ‘지니계수’ ”, “통계에 꼼수가…금값 뛸 때 물가에서 금반지 뺐다”, “MB정부 때 청와대, 통계청장 수시로 불러들여”, “통계청서 승인 못 받은 ‘국가통계’ 멋대로 발표 수두룩”, “국가통계 원자료, 국책기관 연구원도 접근 어렵다”, “통계청 자료 미루고 미루다 축소 공개…끝내 학술발표 무산”, “ ‘통계 왜곡’ 자행한 이명박 청와대 책임 물어야”, “기재부가 통계청 주물러… ‘국가통계위를 독립시켜라’ ”, “캐나다·호주 통계청장 임기 보장, 영국·프랑스 각료 통제 안 받아”.

통계조작을 근절할 해결책은 이 기사 제목들 중에 이미 제시돼 있다. 통계청을 중립 기관으로 독립시키면서 관련 학계의 감시 기능을 제도화해야 한다. 황 전 통계청장이 역설했던 것처럼, 국가 통계는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고 평가함에 있어 기준이 돼야 한다. 그 기준이 흔들리면 국정운영이 왜곡될 뿐만 아니라 소통은 사라지고 불통의 난투극만 벌어진다. 우리는 이미 그런 비극적 상황에 처해 있다. 이제 제발 이런 비극을 끝내자고 외치는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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