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
한국전통문화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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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왕실의 여성과 잇꽃 누가 우리를 백의민족이라 했던가? 활옷을 감상하며 드는 생각이다. 조선 왕실의 예복으로 여성이 결혼할 때 입던 혼례복이 활옷이다. 직접 마주하니 환희와 장엄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듯하다. 활옷이라는 용어는 순수 한글이다. 그 유래는 몇 가지 있으나, 나는 이런 느낌을 살려 ‘활(活)’옷으로 해석하고 싶다. 붉은색이 주조색인 활옷은 무엇보다 그 색감으로 눈을 사로잡는다. 너무 가볍거나 무겁지도 않다. 화려하지만, 들이밀지 않는 오묘하고 깊은 색이다. 백제와 조선의 미학 중 하나인 화이불치(華而不侈)가 활옷에도 유효하다. 활옷의 원조인 홍장삼(紅長衫)은 기품이 있고 소매가 넓고 길어 넉넉한 품을 보여준다. 붉은 비단 위에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인 각종 자수와 금박은 지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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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조지 스탠리와 설탕단풍 본격적인 단풍철로 들어섰다. 티브이 뉴스는 곳곳의 단풍 명소와 단풍 구경을 위해 줄지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우리나라 단풍도 볼만하지만, 캐나다의 단풍 풍광도 빼놓을 수 없다. 오죽하면 단풍나무 잎사귀가 국기의 문양으로 자리매김했을까. 캐나다 국기를 보면서 늘 그 유래가 궁금했다. 현재의 캐나다 국기가 탄생한 것은 1965년이다. 생각보다 역사가 짧다. 그 배경에는 여러 인물이 참여했지만, 조지 스탠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단풍잎을 모티브로 한 캐나다 국기를 디자인한 인물이다. 캐나다 캘거리 출신인 스탠리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군인이었으며, 전후에는 캐나다 왕립군사학교 교수를 지냈던 역사학자이자 작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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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마가렛과 마리안느, 그리고 소나무 구라탑(救癩塔). 한자를 병기해도 금방 이해하기 힘들다. 한센병 환자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세워진 소록도 중앙공원의 탑이다. 부모 자식이 생이별하고 몇년 만에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던, 시름과 탄식의 장소 수탄장(愁嘆場).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부모의 건너편에는 자식들이 바람을 등지고 서 있었다. 행여 천형(天刑)이 바람에 실려 갈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름은 아름답지만 삶은 처절했던 섬, 소록도. 부모 자식 간에도 쉽사리 만날 수 없었던 그곳에 환자를 돌보려 스스로 찾아온 사람이 있었으니, 수녀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이었다. 그들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국립간호대학 출신으로 마리안느는 1962년에, 마가렛은 1966년에 소록도로 파견됐다. 오로지 봉사만을 생각했던 그들은 급여를 받지 않았고 열악한 숙소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자원봉사자’로 한정 짓고, 수녀로 불리기도 꺼렸다. 대신 ‘큰할매(마리안느할매)’, ‘작은할매(마가렛할매)’라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은 한국인 의사들도 주저했던 환자들의 짓무른 손발을 직접 소독하고 고름을 닦으며 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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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단군과 신단수 올해는 추석 연휴와 개천절이 겹쳐 마음까지 풍요로웠다. 북한에서도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로 여겨, 평양의 단군릉에서 매년 개천절 행사를 거행한다. 우리 민족의 시원을 기념하는 날이니 남북한이 따로 없다. 단군신화에는 곰과 호랑이, 마늘과 쑥, 신단수 등처럼 여러 동식물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세계 여러 민족의 신화에도 동식물은 자주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나무는 주요 신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상징물이다. 북유럽신화의 우주수인 위그드라실이나 나무에서 태어난 아스크와 엠블라가 대표적이다. 중국 산해경에는 부상(扶桑)이라는 나무 이야기가 나온다. 개천절 노래 가사 중에도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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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공자와 생강 우리 동네 영국식 베이커리에서는 생강빵을 판다. 차나 향신료로만 먹어보던 생강이 빵으로 변신하니 그 맛이 오묘했다. 달큼한 생강 맛이 살짝 도는 생강빵은 우유와 버터 맛이 강한 다른 빵에 비해 상큼한 맛이 매력적이다. 생강은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이고, 현재 최대 생산국은 인도다. 독특한 맛과 향이 있어서 향료나 식용 또는 약용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생강빵과 생강과자를 만들어 먹었다. 독일 그림 형제의 <헨젤과 그레텔>에도 생강과자로 만든 집이 나온다. 진저브레드 맨이라는 사람 모양의 생강과자는 동화에도 등장하며 유럽과 미국에서 성탄절이나 핼러윈 등 특별한 행사일에 즐겨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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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장 자크 루소와 양버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킬러문항’이 논란이 되고 있다. 심지어 일부 학군의 주택 시세에 영향을 끼친다거나, 사교육 과열에 대한 외국의 보도까지 이어졌다. 교육 문제는 사회 전체에 파장이 큰 초미의 관심사다. 교육과 사회 이론의 대표주자 장 자크 루소에게도 교육은 어려운 문제였다. <에밀>로 교육의 이상을 제시한 그도 정작 자식들은 보육원으로 보냈으니 말이다. 동서고금 난제 중의 난제가 교육 아니겠는가. 오랫동안 인문학 연구와 저술에 몰두했던 루소는 나이 50이 넘어 식물학에 매료됐다. 그에게 식물은 인간과 사회, 자연과 문명을 해석하려는 지향점이었다. 그는 마지막 저술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한 장(章)을 할애해 식물학의 의미를 설명했다. 식물학에 빠져든 계기는 스웨덴의 자연과학자 칼 폰 린네 덕분이다. 그는 린네의 <자연의 체계>라는 책을 끼고 살았다. 산책길에도 반드시 이 책과 돋보기를 지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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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정조와 복숭아 드디어 극한 폭염도 한발 뒤로 물러섰다. 오랜 폭염과 장마도 지나가고 저녁이면 ‘모기 입도 삐뚤어’ 질 만큼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23일은 처서다. 조선시대에는 그간 눅눅해졌던 실록 등을 거풍하고 햇볕에 말리는 포쇄 행사를 했다. 햇볕은 따뜻하지만, 바람이 선선해지니, 눅눅한 서적뿐 아니라 처졌던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우기도 좋은 때이다. 처서에는 복숭아가 제철이다. 일교차가 커지는 이맘때쯤이면 복숭아의 당도가 높아져 늦여름 과일 중 으뜸으로 친다. 복숭아는 비타민, 미네랄 등 다양한 성분이 포함돼 더운 날씨에 지친 사람들에게 원기 회복은 물론 노화 방지 효과까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서왕모의 전설에 따라 장수를 상징하는 과일로 조선시대엔 진찬에도 올렸던 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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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간디와 목화 목화 하면 문익점이 생각난다. 붓대 속에 씨앗을 숨겨온 700여년 전의 드라마틱한 사건. 덕분에 우리는 1000년 넘게 한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었다. 목화는 누르스름한 꽃을 피우지만, 꽃에 관심 두는 이는 없다. 그보다 씨를 둘러싼 솜이 중요했다. 목화를 면화(棉花), 또는 초면(草綿)이라 부르는 이유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목화밭이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어쩌다 카페에서 장식용으로 꽂아 놓은 마른 목화송이에도 감개무량하다. 목화는 땀의 작물이다. 한여름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목화밭에서 호미질해본 사람이 이제 몇이나 되랴. 바다 건너 미국의 목화밭은 노예들의 노역장이었다. 미국과 영국의 섬유 산업 발전은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의 노동에 의존해 발달했다. 노예무역이 끝나기 전인 19세기 초반까지 아프리카 노예들은 미국 남부의 목화 농장으로 끌려왔다. 하디 레드베터 작품으로 미국 록밴드 CCR 등이 부른 ‘Cotton Field(목화밭)’라는 노래는 흥겨운 리듬 때문에 흑인들의 고달픈 삶을 노래한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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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최치원과 상림(上林) 7월 들어 비가 잦더니, 초복이 지나서는 물 폭탄이 쏟아졌다. 농작물 피해는 물론 일부 지역의 제방이 붕괴하고 인명피해가 속출했다. 장마가 예전과는 다른 양상이다.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이 생각보다 빠르게 현실로 다가왔다.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기후위기’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사태가 급박한 것이 점차 피부에 와 닿는다. 홍수에 의한 피해는 과거에도 빈번했다. 그러나 미리 대비해 피해를 줄인 사례는 이미 1000년 전에도 있었다.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된 함양 상림(上林)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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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이한열과 은백양 이한열. 그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하다. 지난 5일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6년째 되는 날이다.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반독재투쟁에 가담했다. 중학교 때 목격한 5·18 민주화운동이 그를 이끌었다. 그는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 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쟁취 국민대회’를 하루 앞두고 열린 ‘6·10 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 앞장서 참가했다. 백양로 맨 앞에서 독재 타도를 외치던 그는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 그의 삶과 죽음이 고스란히 새겨진 백양로는 지금 평온하고 활기차다. 연세대를 상징하는 중심도로 백양로는 백양(白楊)나무가 심어져 붙였던 이름이다. 미국 출신의 연희전문학교 화학과 교수 밀러(한국명 밀의두·密義斗)가 1917년에 진입로 좌우에 실습용으로 백양나무를 심은 데서 유래되었다. 1960년대까지 교정의 가로수로 남아있었지만, 현재는 연세대백주년 기념관 앞에 몇 그루 남아 명목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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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지볼트와 수국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요즘, 제주·신안·울산·공주 등 각지에서 수국 축제가 한창이다. 무더운 여름에 풍성하고 화려한 꽃잎을 자랑하며 활짝 웃는 수국을 보면 청량감이 느껴진다. 수국 종류는 우리나라 산골짝에 자생하는 산수국(사진), 일본 원산인 나무수국과 수국 등이 있다. 수국 축제에는 대부분 일본 원산의 수국이 대표선수다. 토양의 산도(pH)에 따라 꽃 색깔을 바꿔 입맛에 맞는 꽃을 피우니 일본인들이 좋아한다. 일본 나가사키시는 아예 시화(市花)가 수국이다. 여기에는 애틋한 러브스토리가 전해진다.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 유럽과 교류가 있던 일본은 나가사키 해안에 작은 인공섬 데지마를 만들고, 외국인 전용 거주지로 사용했다. 이 섬에는 독일 출신 지볼트라는 군의관이 살았는데 식물학자이기도 하여 일본의 수많은 식물을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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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인조(仁祖)와 창포 다음주면 단오다. 단오는 길일로 여겼던 음력 5월5일로, 1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다. 단오를 속칭 ‘술의일(戌衣日)’, 즉 우리말로 ‘수릿날’이라 하는데, 진경환 교수의 <서울의 풍속과 세시를 담다>에는 ‘신을 모시는 날’로 해석되어 있다. 여성들이 개울가에서 머리를 감고, 그 옆에서 그네를 타는 풍광을 그린 신윤복의 ‘단오풍정’이 당시 풍습을 잘 보여준다. ‘단오에 창포물’은 다 알지만, 창포를 꽃창포와 혼동하는 사람도 많다. 둘 다 연못가나 개울가 등 습지에 자라는 생태는 같지만, 단오와 관련된 창포는 보라색 꽃이 피는 꽃창포가 아니다. 창포꽃은 부들처럼 작은 소시지 형태이고, 누런빛이 돈다. 창포의 잎과 뿌리는 독특한 향을 지녀 삶은 물로 머리를 감고, 창포 뿌리를 깎아 만든 비녀인 ‘창포잠(菖蒲簪)’은 역병을 물리치려는 액땜으로 부녀자들이 즐겨 꽂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