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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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사도세자와 느티나무 처절, 무참, 비운. 사도(思悼)세자 하면 시호처럼 왠지 모르게 떠오르는 이미지다. 세자는 어렸을 때부터 글공부보다 병서를 가까이하고 활과 칼을 즐기는 무인 기질이 많았다. 그런 성품으로 방 안에 앉아 책만 보기는 답답했으리라. 세심하고 꼼꼼했던 영조는 품 너른 아버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들의 행실이 기대에 못 미치자, 심지어 가뭄과 우레도 세자 탓으로 돌렸다. 영조의 끊임없는 질책과 조바심은 결국 세자의 화증을 돋우고 바깥으로 돌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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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프로이트와 코카나무 코카인 밀매가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남미 마약 카르텔은 코카인 유통 거점을 생태계 보고이자 다윈의 ‘진화론’ 산실이었던 갈라파고스 해역으로까지 옮겼다고 한다. 최근 국내에 밀반입되는 코카인 양이 엄청나다. 지난달 강릉 옥계항에서 1.7t의 코카인이 적발됐다. 한국이 통과 지역이 아니라 소비 지역이라는 것이 더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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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겸재 정선과 소나무 금강산에 다녀왔다. 장안사와 박연폭포도 둘러보았다. 명산과 사찰, 한양과 시골 풍광까지 그야말로 와유강산(臥遊江山)이었다. 정선 작품이 총망라된 호암미술관의 ‘겸재 정선전’이 성황이다. 디테일을 극대화한 것과 웅건한 것이 번갈아 전시돼 지루할 틈이 없다. 산수는 역시 겸재다. 우주의 중심이 겸재를 통해 조선으로 이동했다. 중국 관념산수화가 SF 영화라면, 그의 산수화는 ‘인간극장’이 포함된 한반도 자연 다큐를 연상시킨다. 아련하면서도 박진감 넘치고, 우아하면서도 인간미 넘친다.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는 공자 말씀대로라면, 겸재는 지혜롭고 어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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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해녀와 쑥 숨은 목숨이다. 숨이 다 되는 순간이 생과 사의 갈림길이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생사를 넘나들며 살아가는 사람, 제주도 잠녀(潛女)다. 숨비소리는 잠녀들이 물속에 잠수했다가 물 밖으로 나오며 내뱉는 숨소리다. 마치 긴 휘파람 소리처럼 들린다. 흔히 해녀라고 부르지만, 제주에서는 잠녀(잠녀)라 불렀다. 물질이 얼마나 힘든 일이면, 해녀들 사이에서 “저승에서 벌어서 이승에서 쓴다”는 말이 나왔을까. 해녀의 역사는 오래되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었고, 숙종 때 제주목사 이형상의 시찰 장면을 기록한 화첩 <탐라순력도>에도 등장한다. 그중 ‘병담범주’에는 용두암에서 흰옷을 입고 물질하는 해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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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교황 프란치스코와 마테차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했다. 2014년 한국을 방문해 세월호 참사로 상처 입은 사람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비 내리는 베드로 광장에 홀로 서서 전 세계에 연대를 강조하던 교황의 모습은 매우 인상 깊었다. 그는 우리를 ‘침략과 전쟁, 분단의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은 민족’이라 평했다. 얼마 전 프란치스코와 전임 교황이었던 베네딕토 16세의 관계를 다룬 <두 교황>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권위적인 베네딕토와 달리 인간미 넘치는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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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벚꽃 ‘꽃은 벚꽃, 사람은 무사’는 일본인들 사이에 흔히 하는 말이다. 꽃 중 최고는 벚꽃이고, 벚꽃이 지듯 죽음을 맞이하는 무사가 아름답다는 말이다. 일본인들은 원래 매화를 좋아했다. 매화는 당나라에 파견된 사절단에 의해 일본에 도입됐다. 선망의 대상이던 중국의 꽃이라 귀족들은 모두 매화를 사랑했다. 그러다 무사가 등장하던 가마쿠라 시대부터 벚꽃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삶과 죽음이 항시 공존하던 무사들은 인생의 덧없음을 벚꽃에서 찾았다. 그들은 낙화의 무상함을 자신들의 삶에 투영하면서 벚꽃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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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태조 이성계와 억새 한식(寒食)인 지난 5일, 경기 구리 동구릉 내 태조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에서 국가유산청이 ‘청완 예초의’를 거행했다. 봉분에 자라는 억새(청완)를 잘라주는 행사다. 건원릉 봉분에는 태조 이성계의 유교(遺敎)에 따라 억새를 심었다. 억새가 다른 풀보다 크게 자라니 내막을 잘 모르는 사람은 능을 관리하지 않아 풀이 무성한 걸로 오해하기도 한다. 능침(陵寢·임금이나 왕후의 무덤)은 사초 작업도 중요하지만, 산불 관리가 가장 중대한 일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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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클로드 모네와 수양버들 연초에 일본 도쿄에 다녀왔다. 마침 클로드 모네 전시회가 열렸다. 게다가 전시회장은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우에노 공원의 국립서양미술관이었다. 한 곳에서 세계적 대가의 혼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니, 이런 호재가 어디 있을까.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빛이다. 그 빛을 찾아 ‘방구석 화가’들을 바다로, 들로 내몰아 바깥바람을 쐬게 한 이가 모네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 풍광에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담아 화폭에 옮겼다. 중년에 그는 노르망디 지방의 지베르니에 정착해 정원을 꾸미고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전시회는 바로 지베르니 정원에서 보낸 마지막 10여년의 작품들을 집대성한 것으로, ‘만년의 모네: 수련, 물의 풍경’이 주제였다. 모네 하면 수련, 수련 하면 모네 아닌가. 그동안 여러 곳에서 3~4점씩 찔끔찔끔 보았던 그의 작품을 한꺼번에 무려 60여점이나 감상할 수 있어 그런 호사가 없었다. 모네의 작품 대부분이 역동적이거나 격정적이지도 않고 잔잔하다. 게다가 미디어에 수시로 노출되다 보니, 사실 내겐 그간 별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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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허균과 방풍 요즘은 TV 오락 프로그램에도 온통 전쟁 모드다. 춤과 노래 경연은 물론 퇴역 군인들의 힘겨루기와 요리사들의 대결까지 격렬한 전투다. 음악으로, 힘으로, 또는 맛으로 상대방을 꺾고 올라가 깃발을 쟁취해야만 한다. 그중 요리 경연은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데다, 불과 칼을 다루는 종목이다 보니 더욱 치열하고 살벌하다. 그러나 그 결과물에는 모두 환호한다. 이름이 오르내린 식당 앞에 새벽부터 장사진을 이룬 손님들이 이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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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마거릿 대처와 국화, 아니 해바라기 “군중을 따르지 말고, 군중이 당신을 따르게 하라.”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가 한 말이다. 대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강력한 리더십과 고집불통이다. 굳센 뱃심이 선한 방향으로 작동되면 더할 나위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여러 사람이 피곤하다. 대처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나뉜다. 그녀는 문화예술 예산을 삭감하기도 하여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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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나치 회스와 라일락 칸영화제와 아카데미상을 휩쓴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기묘한 영화다. 얼핏 잔잔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조명하는 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파괴와 살육을 직접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섬뜩함과 잔인함이 밀려오는 공포영화에 가깝다. 글레이저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담장을 기준으로 안팎이 대비되는 모습은 흡사 키아라 메잘라마의 어린이 동화 <안팎정원>을 연상시킨다. 일부 장면은 적외선 카메라로 찍어 현실을 잔혹동화처럼 보여주는 것도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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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이덕무와 윤회매 매화는 눈 속에 핀 것이 제일이다. 심사정의 ‘파교심매도’나 전기의 ‘매화초옥도’ 등도 설매(雪梅)가 주제다. 혹독한 겨울 추위를 이겨내며 꽃망울을 터트리는 고절한 자태에 모두 탄복했다. 지조, 절개 등의 덕목을 자랑하는 사대부들이 매화에 자신을 투영시킨 것도 그 때문이었다. 동양 정신의 표상으로 일컬어지며 많은 이들이 칭송하고 추앙했으니, 매화가 사람이었다면, 꽤 젠체하며 거드름 피웠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