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
한국전통문화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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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김열과 소나무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면 이미 군내부터 난다. 이때는 허접한 훈계나 치졸한 영웅담일 경우가 많다. 대화란 주고받는 것인데, 지위나 나이를 무기 삼아 상대방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자기 말만 앞세우면 일방통행일 뿐. 서로 통하지 않는 대화는 답답함만 남는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격식과 품위를 갖춘 만남은 오래 기억된다. 450여년 전 임경당 김열과 율곡 이이가 그럴 것이다. 강릉에 터전을 둔 김열은 율곡의 고향 어르신이자 강릉 십이향현 중 한 사람이다. 향교 교관으로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향리 처사로 남아 경서 강독에 전념하였다. 조상 대대로 살던 그의 집 뒷동산에는 선친이 심고 가꿨던 소나무 숲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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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가야마 미쓰로와 옥잠화 주말마다 오르는 인왕산 자락길에 옥잠화가 피었다. 꽃잎이 백옥같이 흰 옥잠화는 봉오리가 옥비녀(玉簪)와 똑같다. 깨끗하고 유려한 꽃 모습이 아름다워 정조와 다산도 옥잠화에 대한 시를 지었다. 최남선, 홍명희와 함께 조선 3대 천재로 평가받던 가야마 미쓰로도 옥잠화를 사랑했다. 1940년 2월20일자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그는 ‘창씨(創氏)와 나’라는 제목으로 창씨개명에 대한 자신의 분명한 의지를 밝힌다. “나는 일본인이 되는 결심으로 성을 향산(香山)이라고 하고 이름을 광랑(光郞)이라고 하였다. 내 처자도 모조리 일본식 이름으로 고쳤다. (…) 나는 천황의 신민이다. 내 자손도 천황의 신민으로 살 것이다. 이광수라는 성과 이름으로도 천황의 신민이 못 될 것이 아니다. 그러나 향산광랑이 조금 더 천황의 신민답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광수는 가야마 미쓰로(香山光浪)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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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김민기와 상록수 혼밥도 좋지만, 여럿이 왁자지껄 떠들며 함께 먹는 음식엔 공유의 미덕이 있다. 그것이 술잔이든, 감정이든, 또는 땀 냄새든. 예술도 마찬가지다. 오감으로 느끼는 예술 중 가장 손쉽고 흔히 접하는 게 음악일 것이다. 감성을 동시에 같이 나눌 수 있는 것도 음악이다. 합주가 그렇고 합창이 그렇다. 모두 함께 부르는 떼창은 참여와 공유의 감동이 있다.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고단했던 내 젊은 날을 지탱해준 비타민이었다. 거의 반세기 동안 힘들 때마다 그 노래를 웅얼거리며 나는 다시 일어섰다. 노래를 부를 일이 거의 없는 요즘에도 티브이나 라디오에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가슴속 저 아래서부터 무언가 뜨끈하고 단단한 게 서서히 차오른다. 고리타분한 꼰대가 된 지금도 가슴이 절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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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쿠베르탱과 올리브나무 제2의 프랑스 혁명, 파리 올림픽이 드디어 개막되었다. 사상 처음 시도된 야외 개회식은 파리 센강을 중심으로 시내 전체를 관통하며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보여준 한 편의 야외 오페라였다. 파격적이고 혁명적이었던 개회식을 통해 다양성과 독창성을 추구하는 프랑스의 자유정신을 마음껏 발산하였다. 올림픽의 엠블럼은 또 어떤가. 불꽃 속에 숨어 있는 자유의 여신은 고혹적이기까지 하다. 이번 파리 올림픽은 100년 만에 파리에서 다시 열리는 올림픽이거니와 현대 올림픽의 시조가 프랑스 파리 출신이니 프랑스인들에게 더욱 의미 있는 행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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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정조와 담배 얼마 전 강원도 영월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차창 너머로 담배밭이 눈에 띄었다. 마치 여름철 쌈 채소처럼 보이는 커다란 담뱃잎을 오랜만에 만나니 반가웠다. 예전에는 곳곳에서 담배 농사를 지었지만, 외국산에 밀려 많이 줄었다고 한다. 담배 농사가 다른 농사보다 더 힘든 것은 수확철이 한여름인 데다가 기계 수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지인 담배는 조선 중기에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 그 후 남녀노소가 모두 즐겼으며, 어전에서도 담배를 피웠다. 담배는 ‘남령초’ ‘남초’ ‘연엽’ ‘연초’ 등으로 불렸다. 학명은 니코티아나 타바쿰(Nicotiana tabacum)으로, 누구나 기억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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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존 펨버턴과 콜라 무더운 여름에는 너도나도 시원한 음료를 찾게 된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제로 음료가 인기다. 제로 콜라, 제로 사이다 등 제로 칼로리를 표방하는 음료는 고열량 설탕 대신 무열량 감미료로 단맛을 낸다. 특히 탄산음료에 제로가 많이 붙는다. 탄산음료의 대명사는 뭐니 뭐니 해도 콜라다. 독특한 향에 톡 쏘는 탄산이 주는 청량감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콜라 하면 누구나 탄산음료를 떠올릴 테지만, 그 이름은 나무에서 비롯되었다. 콜라(Cola)는 아욱과(Malvaceae)에 속하는 식물의 속명(屬名)이다. 아프리카 열대우림에 자생하는 상록수 콜라 아쿠미나타(Cola acuminata)와 콜라 니티다(Cola nitida)가 대표적이다. 카페인을 함유한 콜라나무 열매는 아프리카에서 식용으로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다. 이 나무 열매에서 채취한 향료 성분이 음료에 사용되어 그 이름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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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우크라이나인들과 해바라기 소피아 로렌의 우수에 찬 눈망울이 깊이 각인되었던 영화 <해바라기>. 전쟁에 참전한 남편을 찾아 멀리 소련까지 간 애잔한 사랑 이야기다. 무엇보다 화면 전체를 노랗게 물들인 대평원의 해바라기들이 바람에 흔들리던 장면은 아직도 선명하다.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밭 촬영 무대는 우크라이나였다. 남미가 원산지인 해바라기는 17세기 초 스페인 사람들이 유럽으로 가져왔고, 우크라이나에는 18세기 중반에 도입되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해바라기 씨앗을 간식이나 빵의 재료로, 또 그걸 짜서 식용유로 사용했다. 전 세계 해바라기씨유 50% 이상이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될 만큼 해바라기는 우크라이나 경제의 핵심 요소다. 영화 장면처럼 정원이나 들판 등 어느 곳에서나 해바라기를 볼 수 있어 우크라이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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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이철호와 은행나무 이철호라는 사람을 아는 분은 드물 것이다. 누구에게나 알려진 유명 인사가 아니다. 사회에 큰 업적을 남기거나 독립운동을 한 인물도 아니다. 오늘 소개할 인물은 나무를 살린 한 사람의 이야기다. 어려서부터 동식물을 좋아했던 그는 산에 자라는 식물을 가져와 화분에 기르는 것을 즐겨했다.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하고 흙과 식물에 대한 연구를 집중하여 ‘생명토’라는 조경용 토양을 개발하기도 했다. 1990년 이철호는 경북 안동의 임하댐을 건설하면서 생긴 용계리 수몰지구 내에 은행나무 이식 공사를 맡게 되었다. 마을의 중심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할배 은행나무는 700여년 된 노거수로 높이 약 35m, 줄기 둘레 약 14m, 무게 약 600t이었으니 이식 자체가 무리였다. 더구나 나무를 뽑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자라는 위치에서 위로 약 15m를 들어올리는 이식 공사로, 전무후무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 사업은 ‘나무가 고사하면 공사비 전액을 변상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 그는 지성으로 고유제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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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스티브 잡스와 사과 17세기에 아이작 뉴턴의 사과가 있었다면, 21세기에는 스티브 잡스의 사과가 있다. 한 사람은 물체끼리 끌어당기는 힘의 원리를, 또 다른 사람은 사람끼리의 물리적 거리를 좁히고자 궁구하였다. 결국 뉴턴은 사물의 친화력을, 잡스는 인간의 친화력을 궁리한 셈이다. 뉴턴의 사과만큼이나 이 시대의 애플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애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혁신이다. 직관적 인터페이스, 통합된 시스템 등을 지향하며 세계 정보통신기술의 흐름을 이끌고 있다. 애플의 아이폰은 스마트폰의 개념을 재정립한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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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제국대장공주와 작약 마당 한 귀퉁이에 붉은 작약이 피었다. 진분홍 꽃잎이 매력적이다. 작약과 모란은 사촌간이지만, 모란은 크고 화려한 색깔의 꽃을 자랑하는 나무이고, 작약은 상대적으로 꽃이 작으면서 꽃잎 개수도 적은 풀이다. 모란이 젠체하는 꽃이라면, 작약은 낯을 가리는 꽃이다. 화기(花期)가 짧은 것도 부끄러움 때문일 게다. 특히 백작약의 함초롬한 모습은 때론 가련하게도 느껴진다. 그에 따라 모란은 부귀영화, 작약은 수줍음 등을 상징한다. 중국에선 작별할 때 작약을 꺾어주던 풍습에 따라, ‘가리(可離)’, 즉 이별의 꽃이기도 하다. 작약에 얽힌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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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엘리엇과 라일락 매년 4월이면 자주 인용되는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 이번에는 총선과 맞물려 정치 전선에 불려 나왔다. 황무지는 그 내용이 난해하거니와 분량도 적지 않다. 각종 신화와 종교, 인물과 고전, 은유와 상징이 서로 맞물리며 복잡한 구조로 엮여 다차원적 풀이가 가능하다. 특히 시의 도입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라는 구절은 다양한 배경과 상황으로 치환할 수 있는 문구다.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이 모더니즘의 텍스트다. 황무지가 1차 세계대전 후 물리적·심리적 폐허에 대한 환멸과 절망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대부분이지만, 그와 부인 모두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인한 불행한 결혼 생활도 시작(時作) 배경으로 거론된다. 그의 시에는 라일락, 히아신스, 라벤더, 수선화, 연꽃, 장미, 제라늄 등 다양한 꽃이 등장한다. 그중 황무지의 맨 앞에 나오는 라일락 의미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탄생이나 환생, 또는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우울과 슬픔을 은유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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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제주도민과 마농지 제주는 언제나 옳다. 학생들과 매년 한라산 답사를 가면서도 시간을 내어 가족과 또다시 제주를 찾는다. 품 너른 한라산과 올망졸망한 오름, 울창한 녹지와 조응하는 짙푸른 바다, 나지막한 집들과 진회색 스펀지 돌담, 소박하고 뭉근한 제주 밥상이 나를 이끈다. 설문대할망이 점지해 준 자연이 싱둥하고 한없이 평화로운 제주에도, 쓰라린 과거가 있다. 우연히 들른 제주시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에서 또다시 그 과거를 마주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고구마 주정으로 항공기 연료를 생산했고, 1949년부터 수많은 사람을 감금했던 수용소로 쓰였다. 불법적 군사재판을 받고 육지 교도소로 끌려가는 모습의 역사관 앞 조각상이 처절했던 당시를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