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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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윤탁과 은행나무 노거수에 관한 신화나 전설은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하다. 대개 이런 식이다. ‘옛날 고승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땅에 꽂은 것이 거목이 되었다’ 또는 ‘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들어 임금의 가마를 지나가게 했다’. 나무의 나이도 어림잡아 1000년, 혹은 500년 등 ‘전설적’이다. 최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나이를 추정한 결과, 1018년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그렇다면 대략 서기 1000년경, 고려 목종 때부터 그 자리를 지켰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의상대사나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근사한 전설은 아쉽게도 과학적 사실 앞에 힘을 잃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사실이 밝혀져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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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유럽인들과 올해의 나무 대항해시대를 거치며 19세기 말까지, 유럽인들의 탐욕과 폭력으로 점철된 정복의 역사는 환경재앙으로까지 번져갔다. 뒤늦은 후회라도 하는 것인지, 그들은 자연환경에 관심이 높다. <대영식물백과사전>을 집필한 영국 식물학자 리처드 메이비는 “나무가 없다는 것은 그야말로 뿌리가 없다는 것이다”라는 말로 문화의 뿌리가 자연임을 강조했다. 매년 2월 한 달간, 유럽에서는 ‘올해의 나무(European Tree of the Year)’ 선정 온라인 투표가 있다. 우승목은 3월 말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럽의회 시상식에서 발표된다. 2011년부터 시작된 유럽 올해의 나무는 현재 15개 국가가 참여하여 특정 나무(개체)를 선정한다. 기준은 나무 크기나 형상, 수령 등도 중요하지만, 사람과 얽힌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나무가 사람을 만나 그 의미가 더욱 부각되는 사례에 주목했다는 점이 눈여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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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카사노바와 레몬 위키피디아의 ‘카사노바’ 항목은 언어별로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영어·이탈리아어·독일어·프랑스어판 등에는 대부분 그를 모험가, 작가, 연금술사, 외교관 등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탈리아어판에는 그 외에 철학자로도 설명한다. 한국어판에는 작가, 시인을 자칭한 사기꾼으로 묘사되어 있다. 위키피디아 내용으로 모든 것을 재단할 수 없지만, 국내 평가는 곱지 않다. 그가 활동했던 18세기 유럽에선 전통적 가치와 권위가 부정되었다. 세속주의가 본격 대두되고, 계몽주의에 힘입은 혁명이 일어났으며 물리학의 새로운 체계가 완성되었다. 그런 격변의 사회 속에서 인간사회의 여러 군상은 어떤 삶을 보냈을까? 그 내면을 소개한 사람은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 자코모 카사노바였다. 17세에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여성 편력만큼이나 직업도 다양해 박물학자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당시 많은 학자들이 세계를 돌며 새로운 문화와 자연을 탐구할 때, 그는 사교계를 주유하며 전 유럽을 탐색(探色)했다. 열정과 감각으로 무장한 그가 미식가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에게 음식과 사랑은 불가분이었다. 푸아그라는 물론 와인과 치즈, 메추라기 요리 등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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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고종과 회화나무 아관파천(俄館播遷). 용어도 괴이하지만, 내용은 더 신산하다. 쉽게 말해 ‘러시아공사관으로 망명’이란 뜻이다. 아(俄)는 러시아를 칭하는 한자 ‘아라사(俄羅斯)’의 첫 글자이고, 관(館)은 ‘공사관’의 관이다. 파천이란 임금이 도성을 떠나 다른 곳으로 피난 가는 일인데, 고종이 한양을 떠나지 않았으므로 파천이 아니라 망명이 옳다는 의견이 많다. <고종실록>에는 ‘이어(移御)’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일본 공사관과 일본인이 설립한 ‘한성신보’에 ‘아관파천’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어 지금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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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찰스 다윈과 난초 1862년 1월, 찰스 다윈은 원예가 베이트먼으로부터 마다가스카르에서 자생하는 난초를 선물받았다. 마침 그는 얼마 전 <종의 기원>(1859)을 펴낸 후, 곤충과 식물 사이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었다. 난초를 보내준 베이트먼은 “당신의 <종의 기원>에 대한 이론을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지만, 이 난초와 곤충 간의 관계가 밝혀지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윈은 소포 속에 들어 있던 난초를 발견하고, “맙소사, 어떤 곤충이 이 꿀을 빨아 먹을 수 있을까?”라고 외쳤다. 꽃 아래쪽 약 30㎝ 길이의 긴 대롱 형태의 꿀샘 관(管)을 보았기 때문이다. 다윈은 난초보다 수분매개체가 더 궁금했지만, 그때까지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난초의 수정을 위해서는 같은 크기의 긴 주둥이를 가진 동물이 존재하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생물을 미리 예견하다니, 시간과 환경을 바탕으로 생물 변형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그이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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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가토 기요마사와 토란 임진왜란과 이순신을 그린 3부작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가 4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명량>에서부터 <한산>을 거쳐 <노량>까지, 이순신의 노정과 충정의 완결편이다. 조선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전란인 임진왜란을 생각하면, 마치 한 사람(이순신)이 한 나라(일본)를 대적해 싸운 전쟁처럼 기억된다. 전쟁 내내 주요 전투를 지휘했던 이순신의 존재와 업적이 그만큼 위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군 중에는 가토 기요마사를 빼놓을 수 없다. 가토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선봉에 섰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대마도와 부산을 거쳐 보름 만에 한양에 도달했다. 그 후 북진을 거듭해 함경도와 두만강을 넘어 여진족 구역까지 진격하였다. 함경도와 남해 등 중첩되는 지역이 일부 있었지만, 이순신과 가토가 직접 부딪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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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김대중과 인동덩굴 오는 1월6일은 고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민주화 운동과 투옥, 납치와 감금, 고문과 음해, 대통령과 노벨 평화상. 김대중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정치가도 드물다. 정치가로서 살아온 그의 삶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읽은 책으로 도서관을 꾸밀 정도로 그는 책을 좋아했다. 또한 다독가답게 많은 책을 집필했다. 그중 <옥중편지>는 정치가로서의 사상 외에도,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삶이 잘 드러난다. 가족에게 민주 회복과 이웃사랑에 대한 바람은 물론, 과음과 과식을 조심하라는 당부까지 한다. 그가 얼마나 자상하고 가정적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기 관리가 철저했던 그가 구호처럼 외치던 ‘행동하는 양심’은 언뜻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중시하던 조선 양명학의 본류, 강화학파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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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안토니 가우디와 사이프러스 무려 140년 넘게 공사 중! 무슨 일이든 후딱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에겐 익숙지 않지만, 느긋한 스페인에서는 가능한 일인 모양이다.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이야기다. 옥수수 모양의 외부와 달리,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키 큰 나무들이 사방으로 가지를 뻗어 천장을 받치고 있는 듯하다. 바르셀로나의 성자 가우디는 건축을 지탱하는 많은 요소를 자연에서 차용했다. 병약했던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덕분이다. 항상 자연에서 건축의 구조를 찾으려 했던 그는 하중을 시각화할 수 있는 간단한 방식으로 줄에 추를 매달아 늘어뜨린 ‘현수 모델’을 만들었다. 줄이 포물선을 이루며 추의 무게가 고르게 분산되는 것을 확인한 그는, 이를 그대로 뒤집어 성당의 구조로 삼았다. 당시 절대적 원칙이던 구조의 수직성으로부터 건축을 해방시킨 셈이다. 이는 자연의 겉모습을 모사하는 태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인위적으로 형태를 만든 게 아니라 자연 속에서 그가 원하던 것을 ‘찾아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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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나폴레옹과 수양버들 “이 세상에는 오직 두 가지 힘만 존재한다. 칼과 정신이다. 그러나 종국에 칼은 정신에 정복될 것이다.” 전 유럽을 칼로 휩쓸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한 말이라 고개가 갸웃해진다. 인생의 황혼기에 했던 회한의 말이 아니라, 한창 전성기에 한 말이라니 더욱더 의외다. 수많은 전쟁에 앞장섰던 상황을 단지 그의 호전성 때문이라 말할 수 없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열혈 독자이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몇 번씩 읽었던 그는 꽤 감성적인 군인이었다. 수천명의 프랑스군과 오스트리아군이 뒤엉켜 숨진 전쟁터에서 그는 오스트리아 황제에게 그 비통함을 전하며 평화를 간청하기도 했다. 칼과 정신의 힘을 잘 알고 있던 그도 그 말을 실천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거니와 전쟁의 수레바퀴를 자기 혼자 멈춰 세울 수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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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왕실의 여성과 잇꽃 누가 우리를 백의민족이라 했던가? 활옷을 감상하며 드는 생각이다. 조선 왕실의 예복으로 여성이 결혼할 때 입던 혼례복이 활옷이다. 직접 마주하니 환희와 장엄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듯하다. 활옷이라는 용어는 순수 한글이다. 그 유래는 몇 가지 있으나, 나는 이런 느낌을 살려 ‘활(活)’옷으로 해석하고 싶다. 붉은색이 주조색인 활옷은 무엇보다 그 색감으로 눈을 사로잡는다. 너무 가볍거나 무겁지도 않다. 화려하지만, 들이밀지 않는 오묘하고 깊은 색이다. 백제와 조선의 미학 중 하나인 화이불치(華而不侈)가 활옷에도 유효하다. 활옷의 원조인 홍장삼(紅長衫)은 기품이 있고 소매가 넓고 길어 넉넉한 품을 보여준다. 붉은 비단 위에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인 각종 자수와 금박은 지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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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조지 스탠리와 설탕단풍 본격적인 단풍철로 들어섰다. 티브이 뉴스는 곳곳의 단풍 명소와 단풍 구경을 위해 줄지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우리나라 단풍도 볼만하지만, 캐나다의 단풍 풍광도 빼놓을 수 없다. 오죽하면 단풍나무 잎사귀가 국기의 문양으로 자리매김했을까. 캐나다 국기를 보면서 늘 그 유래가 궁금했다. 현재의 캐나다 국기가 탄생한 것은 1965년이다. 생각보다 역사가 짧다. 그 배경에는 여러 인물이 참여했지만, 조지 스탠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단풍잎을 모티브로 한 캐나다 국기를 디자인한 인물이다. 캐나다 캘거리 출신인 스탠리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군인이었으며, 전후에는 캐나다 왕립군사학교 교수를 지냈던 역사학자이자 작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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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마가렛과 마리안느, 그리고 소나무 구라탑(救癩塔). 한자를 병기해도 금방 이해하기 힘들다. 한센병 환자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세워진 소록도 중앙공원의 탑이다. 부모 자식이 생이별하고 몇년 만에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던, 시름과 탄식의 장소 수탄장(愁嘆場).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부모의 건너편에는 자식들이 바람을 등지고 서 있었다. 행여 천형(天刑)이 바람에 실려 갈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이름은 아름답지만 삶은 처절했던 섬, 소록도. 부모 자식 간에도 쉽사리 만날 수 없었던 그곳에 환자를 돌보려 스스로 찾아온 사람이 있었으니, 수녀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이었다. 그들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국립간호대학 출신으로 마리안느는 1962년에, 마가렛은 1966년에 소록도로 파견됐다. 오로지 봉사만을 생각했던 그들은 급여를 받지 않았고 열악한 숙소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자원봉사자’로 한정 짓고, 수녀로 불리기도 꺼렸다. 대신 ‘큰할매(마리안느할매)’, ‘작은할매(마가렛할매)’라 불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은 한국인 의사들도 주저했던 환자들의 짓무른 손발을 직접 소독하고 고름을 닦으며 치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