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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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돔 페리뇽과 코르크참나무 한때 술을 즐겨 마신 적이 있지만, 여러 이유로 간헐적 단주 중이다. 잠시 술을 잊고 있다가 얼마 전 이웃에 사시는 청매 선생 덕분에 돔 페리뇽을 맛볼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돔 페리뇽을 마주하니, 모두가 기쁜 빛이 눈에 비치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톡 쏘는 청량감과 함께 부드러운 목 넘김도 좋았다. 은은하면서도 복잡한 온갖 과일향이 어우러져 입안뿐 아니라 머릿속까지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포르치니버섯 모양을 한 코르크 마개 때문일까. 버섯향도 슬쩍 숨어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돔 페리뇽은 발포성 와인인 샴페인의 이름이자 그 샴페인을 처음 제조한 수도사의 이름이기도 하다. 프랑스 북동부 샹파뉴 지방의 수도사였던 그의 본명은 피에르 페리뇽. 수도원에 헌신한 업적을 인정받아 존칭을 붙여 돔 페리뇽이라 불렸는데, 그것이 곧 브랜드명이 되었다. 품질 좋은 와인을 위해 그는 여러 품종을 혼합하여 새로운 와인 생산에 심혈을 기울였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발포성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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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김오천과 매실나무 오랜만에 숨통이 트이는 봄이다. 코로나19로 꼭꼭 싸맸던 몸과 마음이 봄바람에 조금씩 풀리는 듯하다. 뒤로 슬쩍 물러선 지리산 자락을 휘감아 도는 섬진강변 광양에서 매화축제가 다시 열린다. 매화축제의 주무대인 청매실농원은 김오천 선생이 일군 땀의 결과물이다. 그는 일본에서 광부로 일하며 번 돈으로 매실나무 묘목을 구입했다. 1931년 귀국하며 이 마을에 심은 것이 매실농원의 시작이었다. 그 덕분에 주변에도 널리 보급되었고, 지금은 전국의 대표 매화마을이 되었다. 이 마을은 기후와 입지조건이 매실나무 생육에 적합하다. 청매실농원 입구에는 그가 심은 매실나무가 손님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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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양귀비(楊貴妃)와 양귀비 몬브뢰첸이라는 독일 빵이 있다. 양귀비씨를 뿌려 구운 빵으로, 그야말로 ‘겉바속촉’의 전형이다. 아침 식사용으로 자주 먹는 이 빵을 독일에서 처음 보았을 때, 적잖이 놀랐다. 아편전쟁의 불씨였던 양귀비씨를 빵에 뿌리다니! 그때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양귀비 하면 쉬쉬하던 때라 직접 본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 후 유럽의 들판에서 만난 개양귀비꽃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개양귀비의 목이 긴 꽃자루와 붉고 하늘하늘한 꽃잎이 무척 고혹적이라는 것과 모네의 작품 속에도 등장하는 꽃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개양귀비(Papaver rhoeas)는 양귀비와 학명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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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문신(文信)과 떡잎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는 문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 특별 전시회가 지난 1월 말까지 열렸다. 초기 회화부터 후기 조각까지 생애를 망라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작가의 사유의 흐름을 일별할 중요한 기회였다. 전시 기획도 놀라웠지만, 국립현대미술관과 수류산방이 공동 제작한 2권의 책은 방대한 사진과 글, 도면들이 입체적으로 편집되어 전시도록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 오래전 문신의 조각 작품을 처음 마주한 순간, SF영화 에이리언의 외계 생명체와 가우디의 조각 작품이 연상되었다. 트레이드마크인 대칭(시메트리) 구조 형상들은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또 다른 우주의 생명체나 기호를 상징하는 듯했다. 대칭적 측면에서만 보면, 그의 조각 작품은 식물성이라기보다 동물성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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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괴테와 장미 ‘괴테는 자연과학자다’라고 하면, 많은 분이 의아해할 것이다.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독일에는 괴테가 있다. 특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나폴레옹이 몇 번씩이나 읽었던 소설로, 18세기 후반 전 유럽에 열광적인 팬덤이 형성되었던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그런데 그가 사물과 현상을 단지 서정적 시선으로만 바라본 것은 아니다. 아예 동식물에 현미경을 들이대며 철저히 탐구한 사람이 바로 괴테다. 1790년 그는 <식물변형론>이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총 86쪽에 걸쳐 123절로 구성된 작은 책자에는 그가 과학자의 시선으로 식물을 관찰하고 실험한 결과가 담겨 있다. 떡잎에서 출발하여 조금씩 변해가는 식물의 성장 과정을 설명한 이 책은 다윈의 ‘진화론’을 최대한 압축하여 설명하는 듯하다. 이 책의 핵심은 ‘잎이 모든 식물 기관의 출발점’이라는 명제인데, 1817년 괴테가 ‘형태학’이라는 학문을 창시하는 데 초석이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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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노무현과 서어나무 식물이 사람을 만나면, 그 의미가 더 커진다. 그 사람이 임금이거나 대통령이면 더욱더 그렇다. 얼마 전 청와대가 개방되어, 역대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나무가 세상에 알려졌다. 박상진 교수의 <청와대의 나무들>에는 대통령의 기념식수 장소가 표시되어 있다. 기념식수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유사>에는 자장이 자신의 게송을 듣고자 이승과 저승의 중생이 몸을 드러낸 일을 기념하려 심은 나무를 지식수(知識樹)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성계가 함흥본궁에 직접 심은 소나무와 함경도 석왕사에 심은 소나무를 수식송(手植松)이라 칭했다. <정조실록>에는 영조가 선대 임금의 능에 심은 잣나무를 구리로 에워싸게 하고서, ‘수식(手植)’이라는 두 글자를 새겨 두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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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아이나르 홀뵐과 헬레보루스 사람 이름도, 꽃 이름도 생소하실 것이다. 크리스마스와 연관된 인물과 식물이지만, 그리 알려진 것은 아니다. 꽃은 알고 있었으나 아이나르 홀뵐은 필자도 처음 접하는 인물이었다. 서울 서촌의 ‘창성동 실험실’에서 열렸던 크리스마스실(seal) 전시회는 옛 추억을 소환한 반가운 전시였다. 덕분에 크리스마스실의 역사도 만날 수 있었다. 성탄절 하면 떠오르던 크리스마스실. 연하장에 글을 쓰고 우체국에서 부치던 아날로그적 정서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도 결핵 모금 운동이 아직 활발한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유럽에 결핵이 만연하던 19세기 말, 어린이가 결핵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하던 덴마크 코펜하겐의 우체국 직원 홀뵐은 결핵 기금 마련을 위해 크리스마스실의 아이디어를 냈다. 그리고 1904년 12월4일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실이 탄생하였다. 우리나라에는 1932년 12월 캐나다 선교 의사였던 셔우드 홀에 의해 처음으로 크리스마스실의 모금 운동이 시작되었으니, 그 역사가 이제 9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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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구스타프 클림트와 장미 작품과 화가의 얼굴이 서로 매치되지 않으면, 간혹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렇다. 헐렁한 장옷에 고양이를 안고 찍은 그의 사진을 처음 본 순간, 장난기 많고 다소 거친 듯한 그의 모습이 의외였다. 과연 그가 이 나른하고 몽환적인 그림을 그린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키스>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클림트의 풍경화 중에는 1912년에 그린 <장미정원>이 있다. 그가 1912년부터 거주하던 오스트리아 빈의 주택에 딸린 장미정원을 그린 작품인데, 현재 ‘클림트 빌라’라고 불리는 곳이다. 최근에는 박물관으로 탈바꿈하여 유럽의 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장미정원>은 과일나무 아래로 붉은 장미들과 꽃들이 만개해 있는 이 빌라 정원을 그린 작품이다. 초록의 배경에 화려한 색의 조각들이 화면을 가득 채워, 싱그럽고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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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연산군과 탱자나무 폭군의 대명사 연산군. <중종실록>에는 그의 죄상이 무려 4쪽에 달한다. 즉위 초에는 백성을 보살피고 국방에 주력했으나, 생모 폐비 윤씨 사건으로 온갖 폭정이 시작되었다. 꽃과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천성이었는지, 나라와 백성보다는 자신의 지취(志趣)와 향락이 우선이었다. 그야말로 ‘풍류에 진심’인 왕이었다. 그렇다고 탄핵당한 폭군으로만 치부하긴 아쉽다. 조선시대 원예사와 공연예술에 큰 족적을 남긴 임금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임금이 꽃에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연산군만은 예외였다. 그는 기이한 꽃과 나무를 구해 후원에 심도록 하고, 각종 꽃을 전국 각지에서 바치게 하였다. 또한 철 지난 감귤이라도 ‘가지에 붙어 있는 채’로 올리도록 하거나, 일본철쭉을 “뿌리에 흙을 붙인 채 바치되 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하라”고 하명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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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앙리 루소와 열대 식물 ‘원시림의 화가’라고 하면, 아마 많은 분이 폴 고갱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정작 원시림의 열대 식물에 푹 빠져 지낸 사람은 앙리 루소라는 화가다.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한 그는 프랑스 출신인데, 스스로 깨우치고 궁리한 덕분에 독특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의 초기 작품에 조금씩 등장하던 나무나 꽃들이 말년의 작품에는 아예 열대식물로 가득 찬 우거진 원시의 숲을 이룬다. 그렇다고 그가 남미나 아프리카의 열대림을 탐험하거나 여행을 한 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평생 프랑스는 고사하고 파리를 벗어나 본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끊임없이 거친 바다와 열대 정글을 꿈꾸는 화가였으니, 그야말로 ‘방구석 유람’을 즐긴 진정한 와유인(臥遊人)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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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다산 정약용과 국화 동서고금 꽃을 좋아하는 이는 수없이 많다. 그 이유와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오감을 동원해 색깔이나 모습, 또는 향기를 품평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사람에 비유하며 꽃을 탐닉한다. 한겨울에도 꽃을 찾아 먼 길을 떠나거나 꽃과 호형호제하기도 한다. 그런데 꽃의 자태뿐 아니라 그림자마저도 완상하며 찬탄한 이가 있었으니,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을 흔히 유학자, 실학자로 표현하지만, 그는 문·사·철을 두루 갖추고 법학, 공학, 지리학, 농학, 심지어 의학까지, 그의 시선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꽃에 관해서도 관심이 많아 관련 글이 많다. 특히 국화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 그는 “국화는 다양한 품종이 많으므로 48종은 있어야 제법 구색을 갖추었다고 할 만하다”라고 하였다. 꽃에 관한 글 중에 <국화의 그림자를 읊은 시(菊影詩序)>는 꽃 완상의 또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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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최순우와 용담 꽃에는 서정이 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표정도 다채롭다. 화려한 제 얼굴을 자랑하듯 뽐내거나 은근하고 점잖은 모습으로 물러서 있는 꽃도 있다. 또 자기를 보아달라고 노골적으로 들이대거나 얌전하고 수줍게 서 있는 것들도 있다. 어떤 이는 화려한 색깔의 커다란 꽃을, 또 어떤 이는 조촐하고 자잘한 꽃을 선호한다. 좋아하는 꽃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최순우는 우리가 정원에 흔히 가꾸는 목련이나 모란, 또는 장미나 달리아 같은 꽃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기름져 보여 싫다는 것이다. 그보다 들이나 산에 피는 꽃들을 사랑한다고 하였다. 그는 특히 용담을 좋아하여 용담을 소재로 글을 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