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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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구스타프 클림트와 장미 작품과 화가의 얼굴이 서로 매치되지 않으면, 간혹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렇다. 헐렁한 장옷에 고양이를 안고 찍은 그의 사진을 처음 본 순간, 장난기 많고 다소 거친 듯한 그의 모습이 의외였다. 과연 그가 이 나른하고 몽환적인 그림을 그린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키스>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클림트의 풍경화 중에는 1912년에 그린 <장미정원>이 있다. 그가 1912년부터 거주하던 오스트리아 빈의 주택에 딸린 장미정원을 그린 작품인데, 현재 ‘클림트 빌라’라고 불리는 곳이다. 최근에는 박물관으로 탈바꿈하여 유럽의 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장미정원>은 과일나무 아래로 붉은 장미들과 꽃들이 만개해 있는 이 빌라 정원을 그린 작품이다. 초록의 배경에 화려한 색의 조각들이 화면을 가득 채워, 싱그럽고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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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연산군과 탱자나무 폭군의 대명사 연산군. <중종실록>에는 그의 죄상이 무려 4쪽에 달한다. 즉위 초에는 백성을 보살피고 국방에 주력했으나, 생모 폐비 윤씨 사건으로 온갖 폭정이 시작되었다. 꽃과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천성이었는지, 나라와 백성보다는 자신의 지취(志趣)와 향락이 우선이었다. 그야말로 ‘풍류에 진심’인 왕이었다. 그렇다고 탄핵당한 폭군으로만 치부하긴 아쉽다. 조선시대 원예사와 공연예술에 큰 족적을 남긴 임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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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앙리 루소와 열대 식물 ‘원시림의 화가’라고 하면, 아마 많은 분이 폴 고갱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정작 원시림의 열대 식물에 푹 빠져 지낸 사람은 앙리 루소라는 화가다.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한 그는 프랑스 출신인데, 스스로 깨우치고 궁리한 덕분에 독특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의 초기 작품에 조금씩 등장하던 나무나 꽃들이 말년의 작품에는 아예 열대식물로 가득 찬 우거진 원시의 숲을 이룬다. 그렇다고 그가 남미나 아프리카의 열대림을 탐험하거나 여행을 한 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평생 프랑스는 고사하고 파리를 벗어나 본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끊임없이 거친 바다와 열대 정글을 꿈꾸는 화가였으니, 그야말로 ‘방구석 유람’을 즐긴 진정한 와유인(臥遊人)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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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다산 정약용과 국화 동서고금 꽃을 좋아하는 이는 수없이 많다. 그 이유와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오감을 동원해 색깔이나 모습, 또는 향기를 품평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사람에 비유하며 꽃을 탐닉한다. 한겨울에도 꽃을 찾아 먼 길을 떠나거나 꽃과 호형호제하기도 한다. 그런데 꽃의 자태뿐 아니라 그림자마저도 완상하며 찬탄한 이가 있었으니,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산 정약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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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최순우와 용담 꽃에는 서정이 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표정도 다채롭다. 화려한 제 얼굴을 자랑하듯 뽐내거나 은근하고 점잖은 모습으로 물러서 있는 꽃도 있다. 또 자기를 보아달라고 노골적으로 들이대거나 얌전하고 수줍게 서 있는 것들도 있다. 어떤 이는 화려한 색깔의 커다란 꽃을, 또 어떤 이는 조촐하고 자잘한 꽃을 선호한다. 좋아하는 꽃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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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엘리자베스 2세와 머틀 ‘굿바이, 퀸.’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가 세상을 떴다. 향년 96세. 서거 이틀 전까지 화사하게 웃으며 신임 총리를 맞이했으니, 이쯤 되면 가히 호상이라 할 만하다. 23년 전 조선시대 진연(進宴)에 버금가는 여왕의 73세 생일상을 우리가 차려줬던 터라 더욱 감회가 새롭다. 여왕은 1999년 4월에 한국을 방문했다. 그중 안동 하회마을 방문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당시 안동시에서는 하회마을의 민박간판과 음식점 등을 정비하고 자판기도 철거했다. 여왕을 위한 배려가 얼마나 지극정성이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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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해바라기 눈부신 태양과 정열을 노래한 나폴리 민요, ‘오 솔레미오’. 유럽에서도 청명한 날이 많고, 열정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이탈리아다운 민요다. 북유럽 사람들은 지중해의 태양을 그리워하여 여름이면 이탈리아를 포함한 남유럽에서 휴가를 즐긴다. 음울한 날씨의 북유럽보다 화창한 남유럽이 훨씬 더 밝고 활기차다. 그것은 사람이나 식물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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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이미륵과 꽈리 예전에는 집 주변이나 길가에서 흔히 보았던 식물이 요즘은 무척 귀해졌다. 꽈리도 그중 하나다. 늦여름 붉은빛으로 변해 홍등(紅燈)을 연상시키는 꽃받침과 그 속의 열매는 신기한 모습이었다. 특히 붉게 익은 열매는 씨를 빼고 입에 넣어 씹으면 ‘꽈~악, 꽈~악’하며 개구리 울음소리를 내는 아이들의 노리개였다. 소싯적에 ‘꽈리 좀 씹어 보신 분’은 이제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되었을 것이다. 꽈리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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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폴 시냐크와 우산소나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온통 장안의 화제다. 사건의 결과보다 과정과 인물의 배경에 초점을 맞춘 특성 때문일까. 그 인기가 국내를 넘어 전 세계 20여개국에서 넷플릭스 1위에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우영우 신드롬이 엉뚱한(?) 곳으로까지 번져 나갔다. 극 중 등장한 ‘소덕동 당산나무’는 경남 창원에 실재하는 팽나무인데, 연일 관람객들이 몰려 인증샷을 찍으며 야단법석이다. 갑작스러운 관심에 주민들은 반가워하면서도 혹시 팽나무 생육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뭔가 유명하다고 하면 바로 몰려가 북새통을 떨다가 결딴내기 일쑤인 우리 행태를 돌아보면 괜한 걱정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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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중종과 홍도화 오랫동안 닫혀 있던 청와대가 개방되니 연일 관람객으로 넘쳐난다. 주말은 물론 평일 아침부터 경복궁 담장을 따라 성지 순례하듯 수많은 사람이 몰려간다. 이런 민심에 부응하려는 것일까. 정부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사례로 청와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한다고 한다. ‘베르사유 궁전’이라 하니, 일제강점기 경복궁 전체를 베르사유 궁전과 흡사하게 바꾸려 했던 계획이 떠오른다. 1916년 일제는 경복궁 전체를 해체하고 그 자리에 도쿄의 히비야공원을 본떠 총독 관저와 야외음악당, 분수대 등 부속 공원을 계획하면서 당시 유행하던 유럽풍 정원 양식을 그대로 도입하려 했다. 전체 배치도가 마치 베르사유 궁전 정원을 연상시키는 공간 계획은 다행히 실행되지 못했지만, 상세 도면은 지금까지 전해진다. 또한 일제는 조선물산공진회, 조선박람회 등을 개최하며 경복궁을 전시장으로 활용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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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칼 라거펠트의 난초와 수국 은발의 꽁지머리에 검은색 선글라스,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칼 라거펠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마치 피아노 건반의 흑백 대비를 보는 것 같다. ‘패션계의 교황’ ‘패션계의 카멜레온’ 등 수많은 수식어가 그를 따라다닌다. 고전적 형태를 현대적 디자인 모티브로 재해석하며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했던 창조적 디자이너 라거펠트. ‘책은 과하게 복용해도 부작용이 전혀 없는 마약과도 같다’던 그는 독서광이자 장서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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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 이근우와 능소화 꽃이 귀한 여름, 오렌지 빛깔의 꽃을 피우는 능소화는 격려의 꽃이다. 무더위와 장마에 지친 사람들에게 손나팔을 불며 ‘기운 차리시라’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다. 담장을 타고 오르는 줄기도 역동적이다. 능소화는 한자로 凌宵花로 표기하여 ‘하늘을 능가하는 꽃’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고, ‘양반꽃’이라고도 불려 조선시대까지 귀한 대접을 받았다. 1830년 유본예의 <한경지략>에는 김한신이 살던 자하문, 덕흥대원군의 사당이 있던 사직동, 그리고 심상규가 살던 중학동에 자랐다고 전한다. 1930년대 문일평은 <화하만필>에서 덕흥대원군 사당의 능소화가 서울 안에 남은 유일한 것이라고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