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볼트와 자귀나무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토이푸들이 천연기념물인가요? 내공 45 갑니다.” 지식검색 포털에 올라온 ‘사랑스러운’ 질문이다. 이 질문을 올린 사람은 반려견이 천연기념물처럼 소중하고 귀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을까? 포털 사이트에 천연기념물을 검색하면 용어의 출처나 유래에는 관심이 없고, 온통 그 대상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천연기념물이라는 용어는 약 200년 전 독일의 자연과학자이자 지리학자였던 알렉산더 폰 훔볼트가 처음으로 제창한 용어다. 훔볼트 해류, 훔볼트 펭귄, 훔볼트 오징어 등과 관련된 바로 그 사람이다. 그의 이름을 딴 동식물이 30여종에 달한다. 남미의 해발 6255m 침보라소산을 오르면서 몸소 겪었던 고산병이 산소가 부족해 생기는 병이라는 것을 처음 밝혀낸 사람도 훔볼트이다.

1800년 남미 여행 중 베네수엘라 북부 투르메로 마을에 들른 훔볼트는 엄청난 규모의 노거수를 마주하고 입이 떡 벌어졌다. 유럽에서는 볼 수 없었던 거대한 노거수였기 때문이다. 이 나무는 자귀나무의 일종으로 수관 둘레가 무려 약 180m에 달했다. 그는 이 나무가 멀리서 보면 마치 수풀이 우거진 커다란 고분(古墳)이나 언덕 같다고 했다.

나무에 대해 경외감을 가지고 있던 원주민들의 말을 듣고 훔볼트는 이 자귀나무를 Naturdenkmal(나투어뎅크말)이라고 표현하였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천연기념물이라고 부르는 용어의 유래이다.

그렇다면 훔볼트가 처음으로 제창한 이 용어는 어떻게 ‘천연기념물’이라는 한글로 다시 태어났을까. 그 과정에는 일본인 식물학자 미요시 마나부(三好學)가 있다. 1850년대 독일에 유학했던 그는 훔볼트가 처음 사용했던 ‘Naturdenkmal’이라는 독일어를 ‘天然紀念物’이라고 번역하였다. 이 용어는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거대한 자귀나무의 아우라에 감명받아 떠오른 단어가 천연기념물의 기원이 되었으니, 자귀나무가 천연기념물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겠다. 한평생 지리학, 식물학, 동물학, 천문학, 광물학 등 다양한 연구와 전 세계 탐험 여행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했음에도 훔볼트는 90세까지 장수하였다. 당시 유럽의 평균 수명이 30~40세였던 것을 고려하면 그의 인생 자체가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사족 하나. 위 질문자에겐 아쉽겠지만, 천연기념물은 우리나라 특유의 동물이나 자생하는 식물을 대상으로 하니, ‘토이푸들’은 천연기념물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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