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수, 이예람… 가해자는 대한민국 군대다

송현숙 논설위원

우연인지 같은 날이었다. 지난 7일 군인을 천직으로 여겼던 두 청년의 죽음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죽음으로 군 내 성폭력을 고발한 이예람 공군 중사에 대한 국방부의 최종 수사 결과 발표와 성전환 수술 뒤 군에서 강제 전역을 당한 고 변희수 전 하사가 낸 전역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1심 승소를 했다는 소식이 동시에 전해졌다. 절망하며 죽어가는 군인조차 끌어안지 못하는 대한민국 군대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돌아본 날이다.

송현숙 논설위원

송현숙 논설위원

공군 성폭력 피해자로 불렸던 이예람 중사의 이름이 알려진 건 지난달 28일이었다. 사랑하는 딸이 지난 5월21일 사망한 후 130일째. 군 당국의 최종 수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아버지가 기자회견을 자청해 딸의 이름과 얼굴을 드러냈다. 억울한 죽음의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고 잘못한 자들이 모두 단죄되리라 철석같이 믿었던 아버지는 수사가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불길한 예감에 딸의 이름을 걸고 특별검사 도입을 호소했다. 예감대로 수사 결과는 맹탕이었다. 입건된 군 관계자 25명 중 15명이 기소됐다. 그러나 정작 이 중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초동 부실수사 책임자와 수사 지휘부는 한 명도 기소되지 않았다. 피해자가 핵심 증거를 확보해 군사경찰에 제출하고, 백방으로 호소하다 죽음으로 성폭력을 고발했지만, 결국 핵심 관계자들에게 면죄부만 주고 수사는 종료됐다. 대통령이 엄정 처리를 지시하고, 국방부 장관은 사상 첫 특임검사를 세우고 민·관·군 합동위까지 구성했어도 달라진 건 없었다.

변희수 하사는 어릴 때부터 “나라와 국민을 수호하는” 군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2017년 육군 하사관으로 임관했다. 맡은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자신을 괴롭히던 우울증이 한계상황에 이르며 2019년 국군수도병원의 정신과를 찾았고, 본인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됐다. 부대에 이를 밝히고 그해 11월 수술을 하겠다고 20여일의 휴가를 얻어 외국에서 성전환 수술(성확정 수술)을 받은 후 복귀했다. 여단장, 군단장, 부대원 등으로부터 수술을 잘하고 돌아오라는 격려와 응원까지 받았다. 추호도 군대 복귀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육군은 지난해 1월 심신장애를 이유로 변 하사의 전역처분을 결정하고 그날로 짐을 싸서 나가도록 했다. 지난 7일 남성을 기준으로 한 육군본부의 전역 결정은 위법이라는 법원 판단은 너무 늦었다. 누구보다 기뻐했을 당사자는 이미 지난 3월 절망 속에 세상을 떠난 뒤였다.

믿을 수 없다. 많은 국민이 이예람 중사가 지난 3월 초 성추행을 당한 후 여러 차례 신고가 모두 묵살되며 80일 만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 분개했는데, 조직적인 범죄 은폐 시도와 부실수사 정황도 드러났는데, 군은 핵심 관계자들의 불기소 이유를 모두 “증거부족”이라고 했다. 핑계일 뿐이다. 군은 관련자 통신영장 청구를 무더기 기각했고, 진술이 엇갈리는 대목에선 수사를 접었다. 초기의 부실한 수사 때문에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는데, 증거가 부족해 기소하지 않는다니 이런 모순이 없다. 변희수 하사가 외로운 싸움을 하는 동안에도 군은 그를 내쫓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여군들이 불편해한다며 여군 인권까지 들먹였다. 군은 1심 판결 이후에도 누구보다 군을 사랑했던 변 하사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다. 13일 국정감사장에서 겨우 고인의 명복을 빌었을 뿐이다. 군은 여전히 항소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 두 사람에 대한 가해자는 대한민국 군대다. 군이 규정대로 피해자 편에서, 당사자 편에서 최선의 방향을 고민하고 선택했더라면 이 두 청년의 죽음은 막을 수 있었다. 두 명뿐 아니다. 이제까지 군 전역에서 수없이 많은 성폭력 사건이 반복됐다. 지금도 비슷한 사건이 싹트고 있을지 모른다. 일벌백계는커녕 ‘부실수사를 부실로 덮은’ 수사 결과에, 절대 신고하면 안 된다는 나쁜 학습효과만 증폭됐다. 변희수 하사의 비극적 결말을 보면서도 제2, 제3의 변 하사들은 끝까지 커밍아웃을 해선 안 되겠구나 생각할 것이다. 사건들은 안으로만 곪아가게 됐다.

지난 6월 국방부 장관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께서 우리 군의 자정 의지와 능력을 믿어주신 만큼, 국민의 요구와 눈높이에 맞춰 정의와 인권 위에 ‘병영문화’를 재구축하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역설적으로 이번 수사 결과, 군의 자정 의지와 능력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이 더없이 명백해졌다. 원칙도 철학도 없이 비난 여론만 피하겠다는 민낯이 드러났다. 군은 감히 정의와 인권을 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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