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는 사치, 향락, 욕정의 화신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혁명 정부는 재정 낭비, 정부 부패, 반역 행위 등 책임을 물어 앙투아네트를 단두대에 올려 처형했다. 그러나 그는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는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 사건’과 무관했고,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훗날 역사가들은 앙투아네트를 겸손하거나 검소하다고 할 순 없어도, 왕정 시대 왕비들과 견줘서도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인물로 평가한다. 죽을죄를 지은 정도는 아니란 것이다.
앙투아네트는 억울하겠지만 지금도 그는 서민들의 삶에 무지하고 자기만의 세상에 사는 ‘무개념 집권층’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부인은 지난해 3월 반정부 시위가 한창일 때 시내 중심가 호화 미용실에 갔다가 “탐욕스러운 앙투아네트 같다”는 비난을 샀고,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부인도 ‘중동의 앙투아네트’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집권 기간 소통을 거부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두고 ‘말이 안통하네뜨’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 지난 17일 명품백을 받은 김건희 여사를 앙투아네트에 빗댄 것이 여권에 격랑을 몰고 왔다. 그는 “프랑스 혁명도 앙투아네트의 사치, 난잡한 사생활이 드러나 감성이 폭발한 것”이라며 “이(명품백 수수) 사건도 국민의 감성을 건드렸다. 바짝 엎드려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김 여사를 비극적 최후를 맞은 앙투아네트에 비유했으니 윤석열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김 위원 발언을 방치하고 공천까지 약속했다는 이유로 최측근인 한동훈 비대위원장 사퇴를 요구했으니 말이다.
대통령실은 해외 순방 도중 명품 쇼핑, 양평 고속도로 등 김 여사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뭉개왔다. 명품백 수수도 보도된 지 이미 두 달이 지났다. 윤 대통령이 사과했으면 이토록 파장이 커지진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사과는커녕 김 여사가 정치공작의 피해자라고 강변하고 있으니 김 여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부풀어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과의 공감 능력이 이토록 떨어지는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국정을 기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