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홍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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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친미 정권 만들기 냉전 시기 미국이 사용한 외교정책 수단 중 하나는 정권교체였다. 민주주의 체제·질서 수호자를 자처하며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정권을 전복시키고 친미 정권을 수립하려는 것이었다. 그 뒤에는 중앙정보국(CIA)의 비밀공작이 있었다. 과테말라의 아르벤스 대통령이 1950년 취임해 대대적인 토지개혁 작업에 나섰다. 그러자 미국의 프루트 컴퍼니 사업이 타격을 받게 됐다. 이 회사는 바나나 자본을 바탕으로 주요 경작지를 장악하고 철도·항만 등에서도 큰 돈을 벌고 있었다. 미국은 군 장교인 아르마스를 내세워 반군 세력을 지원, 1954년 아르벤스를 쫓아냈다. 다음 타깃은 칠레였다. 1970년 집권한 ‘사회주의자’ 아옌데 대통령이 주요 산업 국유화를 추진하자, 칠레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했던 미국은 정권 붕괴 작업에 들어갔다. 1973년 CIA가 지원한 피노체트가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아옌데 정권을 전복시켰다. 냉전 시대 이후인 2003년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겠다며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켰고, 2011년 리비아의 카다피 체제를 무너뜨렸다. -
여적 통일부 장관의 대북 사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10일 민간인이 북한으로 무인기를 보낸 데 대해 “북측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사건은 현재 군경이 합동조사 중인데, 정 장관은 조사가 마무리 국면이라고 판단해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정부 차원에서 나온 첫 공식 사과였다. 분단 후 남북 간에 사과할 일은 대부분 북한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대체로 사과에 인색했고, 조선중앙통신 등 대외 매체를 통해 간접 사과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2020년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사건 발생 사흘 뒤인 9월25일 통일전선부가 청와대에 보낸 통지문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줘 대단히 미안하다”는 뜻을 전했다. 남한 당국에 직접 공개 사과한 최고지도자는 김정은이 처음이었다. 정 장관은 이 사건과 2015년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사건을 거론하며 민간인 무인기 침투 사건도 공식적으로 유감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했다. -
여적 개성공단 ‘멈춤 10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세계적 수준의 공단을 만들겠다”며 황해도 해주를 부지로 제안했다. 김정일은 해주엔 해군사령부가 있다고 난색을 표하더니 역제안했다. 개성이었다. 그러곤 휴전선 일대 포진한 조선인민군 6사단·64사단·62포병여단 등 6만 병력을 10㎞ 뒤로 물렸다. 개성(開城)이란 지명 뜻대로 성문을 연 셈이다. 노무현 정부 첫해인 2003년 6월 ‘2000만평 규모 공업지구·배후도시 건설’의 1단계로 100만평 개발이 시작됐다. 2004년 12월15일 첫 제품인 ‘통일냄비’가 생산됐다. -
여적 대북 인도적 지원 1995년 7월 말부터 20일간 북한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최소 70년 만에 가장 큰 홍수가 발생했다. 냉전 붕괴 이후 경제난이 가속화하던 터에 경작지가 잠기고 비축 식량까지 휩쓸리며 식량 위기에 직면했다. 북한은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식량 등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북한은 1996년 혹독한 가뭄, 1997년엔 또 대홍수로 대기근이 발생해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절을 보내게 됐다. 북한의 인도적 위기에 국제사회가 손을 내밀었다. -
여적 전작권 전환과 한·미 연합훈련 한·미 연합 군사훈련의 시작은 1954년 ‘포커스 렌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 미군이 대거 철수하자 전쟁 재발을 가정한 훈련이었다. 주한미군이 6만명으로 줄고 1968년 북한군 특수부대가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한 1·21 사태 발생 후 1969년 미군의 신속 기동성을 강조한 ‘포커스 레티나’로 훈련 명칭이 바뀌었다. 미국은 헬싱키 선언으로 유럽에서 대규모 훈련이 어려워지자 한국에서 세계 최대 군사 훈련인 팀스피릿(1976~1993)을 했다. 그 후 한·미연합전시증원(1994~2007), 키리졸브(2008~2018)로 대체됐고, 현재는 상반기 프리덤실드(자유의 방패), 하반기 ‘을지프리덤실드’를 한다. -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트럼프, 극단적 나르시시즘에 사익 몰두…그의 ‘DNA’ 제대로 알아야” 미국 정치 전문가다. 뉴스쿨대학에서 로널드 레이건과 빌 클린턴 대통령을 비교한 정치학 박사 논문으로 ‘해나아렌트상’을 받았다. 문명적 전환기에 민주주의와 정치가 나아갈 길에 주목하고 있다. 2016년 대선 앞에 트럼프의 등장, 정치 지형의 변동을 다룬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를 출판했다. 2021년 미국의 정치 세력들을 분석한 <미국은 그 미국이 아니다>를 썼다. 지난해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으로 참여했다. 이후 기술이 국가의 성패와 국제정세를 좌우하는 기정학의 시대, 실리콘밸리를 연구하기 위해 스탠퍼드대학에 방문학자로 다녀왔다.2017년 미국 45대 대통령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으로 전 세계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미국’을 경험했다. 트럼프 2기는 더욱 극렬하다. 고율 관세를 무기로 국제경제를 뒤흔들 것임은 예견됐던 일이다. 여기에 불법이민을 단속하겠다는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은 자국 시민을 총으로 쏴 사망케 하고, 트럼프는 서반구를 통째로 장악하겠다며 덴마크령 그린란드 병합을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국제사회도 경악하고 있다. -
여적 미 외교문서 오른 ‘돈로 독트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월20일 2기 행정부가 출범하기 전부터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한다느니, 파나마 운하와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미국령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이런 트럼프를 두고 뉴욕포스트는 1면에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1823년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명명한 ‘먼로 독트린’에 트럼프 이름 ‘도널드’를 합친 조어였다. -
여적 벽란도 예성강은 황해도 곡산군 고달산(868m)에서 발원해 서해로 흘러들어간다. 고려 시대 예성강 하류에 ‘푸른 물결의 나루’ 벽란도(碧瀾渡)가 있었다. 수심이 깊어 밀물 때는 큰 배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수도 개경과 12㎞ 거리로 가까워 외국에서 고려로 들어오는 관문이었다. 송(중국), 왜(일본), 교지국(베트남), 섬라곡국(태국), 마팔국(인도), 대식국(아라비아) 상인들이 벽란도에서 교역을 했다. 벽란도는 국제 무역항이자 해상 실크로드 종착지였다. 고려가 ‘코리아’로 세계에 알려진 것도 이때다. -
안홍욱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청년 문제 해결하려면…‘청년 탓 아니다’ 기성세대 자기 선언 있어야” 경남 하동 출신으로 부산대를 졸업하고 충남 지역을 중심으로 시민사회 운동을 시작했다. 아산YMCA 사무총장과 한국YMCA전국연맹 정책기획실장을 지냈다. 지방분권국민운동 충남본부 사무처장을 하며 지역균형발전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이후 충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장을 4년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외협력보좌관, 시도지사협의회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이런 폭넓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재명 정부 청와대에서 사회 곳곳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갈등의 조율자 역할을 하고 있다. -
여적 팍스 실리카 평화를 뜻하는 영어 ‘피스(peace)’는 라틴어 ‘팍스(Pax)’가 어원이다. 팍스에 나라나 세력이 더해지면 ‘장기간의 안정·번영’ 체제가 된다. 기원전 27년부터 기원후 180년까지 로마의 최전성기인 ‘팍스 로마나’가 있었고, 19세기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팍스 브리타니카’ 시대를 구가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질서를 주도한 ‘팍스 아메리카나’를 시작했고, 1990년대 소련 붕괴로 확고해졌다. 한 세력이 압도적 힘으로 세계 질서를 주도하고 강제하는 ‘팍스의 시대’도 실상은 패권의 시대였다. -
여적 백악관 ‘수치의 전당’ 미국은 1791년 12월 채택한 수정헌법 1조에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 언론의 자유는 연방대법원 판례로도 몇 가지 원칙이 정립됐다. 그중에 ‘실질적 악의’ 원칙이 있다. 명예훼손 입증 책임은 권력을 가진 공직자에게 있다는 것으로, 1964년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 판결로 확립됐다. 공직자가 소송 남발로 언론 자유를 위축시켜선 안 된다는 취지다. 언론을 증오하고 불신하는 대통령들은 많았겠지만, 언론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로 결국 자진 사퇴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
여적 알 아얄라 2004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청으로 영국을 국빈 방문했다. 역대 대통령 중 처음이었다. 여왕이 1999년 김대중 대통령 초청으로 국빈 방한한 데 대한 답례이자, 한·영 수교 120주년을 기념한 것이었다. 영국은 국빈 초청 횟수를 1년에 2차례로 제한하는데 왕실의 전통과 의식이 어우러진 의전으로 유명하다. 왕실 마차 퍼레이드, ‘로열 살루트’(예포 발사), ‘비팅 리트리트’(기마 근위병·군악대 행진) 등은 방문한 정상의 위상을 높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