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무효표와 ‘수박’ 색출

안홍욱 논설위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이 진행된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감표위원들이 ‘부’ 표기가 애매한 2장의 투표용지를 확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이 진행된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감표위원들이 ‘부’ 표기가 애매한 2장의 투표용지를 확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6·25 전쟁 후인 1954년 11월,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 정권은 개헌에 나선다.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 조항을 없애기 위해서였는데, 초대·2대 대통령인 이승만으로서는 종신 집권 시도였다. 문제는 의석수, 자유당이 원내 다수(114석)였지만 개헌 정족수(136석)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승만은 무소속 의원들을 협박·회유한 끝에 137표를 확보했다고 자신했다. 막상 표결을 해보니 찬성은 135표밖에 되지 않았다. 정족수 미달로 개헌안은 당연히 부결이었지만 이승만은 희한한 논리를 들이댔다. 재적의원 203명의 3분의 2는 135.3333…이라는 것이었다. 서울대 수학과 교수까지 동원해 개헌 정족수가 135표라고 주장하며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소위 ‘사사오입(四捨五入, 0~4는 버리고 5~9는 올림) 개헌’이다. 당시 기권·무효가 8표였는데 한 표만 더 찬성에서 이탈해 무효표만 됐어도 우리 헌정사의 오점인 이 개헌은 성립할 수 없었다.

무효표는 원래 실수나 부주의로 잘못 기표된 경우를 말하지만,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2017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인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득표율 24.01%, 2위 마린 르펜이 21.30%였는데 무효표가 무려 11.5%였다. 찍을 후보가 없다는 불만을 집단 무효표로 표출한 것이다. 또 북한·중국 등 일당체제 국가에서는 무효표가 심각한 정치 행위가 된다. ‘100% 찬성’이 당연시되는 투표에서 찬성표가 아닌 표는 당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소수의 무효표가 강력한 정치적 의사 표현이 되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과반 미달로 간신히 부결된 투표에서 무효표가 주목받았다. 최종적으로 기권이 9표, 무효 11표가 나왔는데, 처음에 무효표로 분류됐던 2표는 ‘가(찬성), 부(반대)’ 표기가 명확하지 않았다. 결국 김진표 의장이 나서 한 표는 무효표로, 나머지 한 표는 부표로 정리했다. 투표를 안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찬성하기도 힘들었던 민주당 의원들의 속내가 읽힌다. 체포동의안 부결의 후폭풍이 민주당에서 거세게 불고 있다. 이 대표 강성 지지자들이 ‘수박(겉으로만 민주당원인 사람)’ 색출을 요구하고 나섰다고 한다. 해법이 또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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