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대법원 서랍 속 국가폭력의 기록 224건

“사법부의 어두운 과거,
그냥 접어두고 지나갈 일은 아니다.”


  2005년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의 말이다. 그는 고문과 가혹행위로 물든 간첩 조작 사건 등을 다둔 사법부의 잘못된 점이 있는지 살펴보고 반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취임했다. 그리고 이듬해까지 전국의 법원과 국가기록원 등에서 6000여건의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 판결문을 수집해 이를 검토했다. 문제가 있거나 중요하다고 보이는 사건을 중심으로 1차 선별한 사건이 224건이었다.
  224건에는 재일교포 유학생들을 고문해 간첩으로 만들거나, 납북된 뒤 귀환한 어부들을 간첩으로 몰아 처벌한 사건들이 포함됐다. 훗날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면서 벌인 시국·공안사건들도 있다. 재판은 공정하게 이뤄졌는지, 처벌은 합리적인 기준으로 내려졌는지, 재판을 둘러싸고 다른 문제는 없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대법원 판사가 직접 선별한 것들이다.
  사법부는 어두운 역사를 재검토하기 위해 첫 발을 뗐지만 지금까지 이 국가폭력의 기록을 “그냥 접어두고” 숨을 죽였다. 사법부 과거사 청산의 목소리는 ‘법원의 과거 청산은 재심으로만 가능하다’는 구실로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대법원 서랍 속에 방치돼 온 224건. 16년 만에 공개된 이 기록에는 사법부까지 동원된 국가폭력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들 사건 당사자 중 상당수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살아 남은 이들은 힘겹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재심 청구도 하지 못하고 숨어 지내는 이들도 있다. 언제 시작될지 알 수 없는 재심을 막막함 속에서 그저 기다리는 청구인들도 있다. 그리고, 이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사건도 더 많다.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없는 사건들이다. 과거는 현재의 일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러두기 : 사건번호 중 ‘서고’는 서울고등법원, ‘대고’는 대구고등법원 등을 가리킨다. 같은 방식으로 법원명은 줄여서 표기했다. 사건구분 중 계엄 하에서 이뤄진 재판 등은 ‘비상고등군법회의 형사 항소 사건’(비고군형항) 등으로 따로 구분돼 있다. 224건 절반 가량은 재심을 거쳐 당시 공소 사실과 보도된 내용이 고문 등에 의해 조작된 근거 없는 혐의라는 게 밝혀졌다. 다만 이 목록에서는 이미 알려진 사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사건 당시 보도 및 공소 내용을 토대로 정리했다. 관련 판결문 및 보도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사건은 미확인으로 남겨두었다. 당사자가 다수인 경우 1인만 기재했고, 전체 인원이 파악된 경우는 뒤에 숫자로 나타냈다. 2022년 7월 26일 현재 기준으로 파악된 내용이다.

관련 기사

1화

대법원이 사과 하려고 만든 224건,
사법부는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바로가기

2005년 대법원은 수천건의 판결문을 검토해 총 224건의 국가폭력 사건을 목록화 했다. 이른바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한 재조사 검토 자료'다. 선별됐지만 외면 당한 224건의 과거사, 그 사건번호가 모두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EP.01

재일교포 이동석,
그리고 사법부의 시간

바로가기

1970년대 간첩 조작 사건으로 수감됐던 이동석. 그는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2022년 현재에도 과거사 사건의 재판정을 찾아다닌다. 50년 전 자신에게 유죄를 선고한 그 법정을.

2화

법원은 어떻게 국가폭력에 가담했나…
과거사 사건 분석

바로가기

재심에서 판결이 뒤짚힌 사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유죄의 결정적 증거였던 '영사증명서'가 실은 증거능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김양기를 간첩으로 만든 증거들을 보면, 간첩조작사건의 패턴이 드러난다.

EP.02

47년 만의 무죄…
하지만 달라지지 않은 것들

바로가기

유정식은 '간첩'이란 이유로 20여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출소 후, 가족도 친구도 곁에 없었다. 2022년 7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세월에 끌려온 몸 곳곳에 병만 남았다.

3화

재심 생각 못하고 살아온 수십 년…
재심 청구해도 '기다리라'는 법원

바로가기

1974년 간첩으로 몰려 옥살이를 한 재일교포 2세 최창일씨. 1996년 55세로 사망했다. 그가 체포된 이후 가족의 시간은 멈춰버린 듯 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딸은 수십년 전 가족에 남긴 상처를 이겨내기 위해 재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 기다림과 싸운다. 수명이 있는 인간과 수명이 없는 법원의 시간은 전혀 달리 흐른다. 시간은 1분1초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법원은 이들에게 그저 기다리라 말한다.

EP.03

1972년의 고문 당한 진술
믿을 수 있다는 2022년의 법원

바로가기

1972년 간첩 사건에 연루됐다 44년만에 재심 청구한 이대식씨. 지난 7월 받아든 결과에 망연자실한다. 재심으로도 지난 과거를 되찾을 수 없었다.

에필로그

에필로그

50년 전 간첩으로 몰린 납북어부는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바로가기

평생을 한 집에서 살아온 신평옥씨는 50년 전 조업 중 납북된 뒤 귀환했다 간첩으로 몰려 처벌 받았다. 억울하고 고통스러웠지만, 마음 속 응어리를 품은 채 남을 원망하지 않고 평생을 고향에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