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송이
경향신문 기자
최신기사
-
천쓰홍 “보수적인 사회에서 영화나 문학은 청춘의 구원” “<귀신들의 땅>이 한국에서 출간된 후, SNS를 통해 한국의 성소수자 분들로부터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대만의 농촌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작품 속에 담긴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었다는 말을 전해주었죠.” 지난해 말 출간돼 국내에서만 1만5000부가 팔리며 ‘타이완 문학 붐’을 일으켰던 <귀신들의 땅> 천쓰홍 작가가 ‘2024 서울국제작가축제’ 참석 및 최신작 <67번째 천산갑>의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귀신들의 땅>은 타이완의 양대 문학상인 금장상 문학도서부문상과 금전상 연도백만대상을 수상했고, 12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는 등 세계 각국에서 호평을 받았다.
-
“천천히 몰입하고 경험하는 게 재미의 핵심” 아날로그에 빠진 독자들 “손글씨에는 그 사람의 성격을 보여주는 지점이 있어 매력적이에요. 마치 화장을 하는 것처럼 손글씨 역시 사람을 꾸며주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산만한 편이라 글씨를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집중력을 잃어 글씨체가 흐트러지기도 해요. 고치기 위해 항상 노력하죠.” 천송이씨는 지난달 책의 한 문장을 손으로 옮겨 적는 ‘교보손글씨대회’에 도전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해로 10회째인 ‘교보손글씨대회’에 약 4만5000명이 응모했다. 역대 최대이며 전년 대비 3배가 넘는 인원이다. 진영균 교보문고 브랜드커뮤니케이션 과장은 “개인, 군부대, 기업 손글씨 동호회, 필사모임 등 개인·단체,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이 응모했다”면서 “최근 SNS에서 손글씨에 관한 관심이 늘면서 올해 폭발적인 호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
책과 삶 추앙했던 사람의 반전 모습 마주했다면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다산책방 | 304쪽 |1만7500원 “그대가 이겼다, 오 창백한 갈릴리인이여. 세상은 그대의 숨으로 잿빛이 되었구나/ 우리는 레테(지옥에 흐르는 망각의 강)의 물을 마셨고 죽음을 배불리 먹었다.” 19세기 영국 시인 앨저넌 찰스 스윈번의 시 ‘프로세르피나 찬가’다. 여기서 창백한 갈릴리인은 나사렛 예수다. 위 시는 ‘배교자’ 율리아누스가 전장에서 쓰려져 죽어가면서 한 말로 풀이된다. 4세기 로마의 황제였던 율리아누스는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화를 정면에서 거스르며, 다신교인 로마 종교의 부활을 꿈꿨던 인물이다.
-
낙서일람 樂書一覽 ‘집’ 문턱 넘나드는 ‘기기괴괴’ 이야기 오래전, 즐겨보던 TV 외화 시리즈 중 스필버그 감독의 <어메이징 스토리>라는 게 있었다. 기괴한 이미지, 평범한 일상을 조금씩 비튼 이야기가 더해져 ‘시간순삭’의 흡입력을 지닌 프로그램이었다. 사만타 슈웨블린의 단편 소설집 <일곱채의 빈집>은 <어메이징 스토리>를 떠오르게 한다. 시작부터 기이함을 자아내는 등장인물들의 낯선 행동, 생생한 묘사, 물 흐르듯 전개되는 가독성은 <어메이징 스토리>에 필적할 만큼 흥미진진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단편 ‘그런 게 아니라니까’에 나오는 딸과 어머니는 매일 어쩔 수 없는 구실을 만들어 내서 생판 남의 집인 호화주택에 들어간다. 그들은 집을 구경하다가 인테리어나 배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마음대로 바꾸는 등 “미친 짓”을 한다. 그리고 주인이 나오기 전에 도망치는데, 하루는 차가 진흙탕에 빠져 정원에서 집주인과 마주치고 만다. 집주인은 이들의 기이한 행동에 경악하면서도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이걸 어떻게 배상할 것인지 모든 게 궁금해진다. 어머니는 아픈 척 위기를 모면하고, 이들은 가까스로 도망친다. 한편 이들이 너무 궁금했던 집주인은 결국 그들의 집까지 찾아오게 된다. 도대체 왜 이들은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걸까.
-
2024 박인환상 시 부문 - 시집 ‘릴리와 들장미’ 정철훈 2024 박인환상 시 부문 수상작인 <릴리와 들장미>는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터전인 동북 3성, 극동 러시아, 카자흐스탄 알마티 지역 등을 답사하는 가운데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정철훈 시인은 1997년 등단 이후 <뻬쩨르부르그로 가는 마지막 열차> <만주만리> 등 시집을 펴내며 꾸준히 디아스포라의 삶과 정서, 정체성을 담은 시들을 발표해왔다. 그의 시의 뿌리에는 분단으로 흩어진 채 만나지 못했던 시인의 가족사가 드리워져 있다. 올해 시 부문에는 12권의 시집이 후보에 올랐다. <릴리와 들장미> 외에도 한국시의 공간과 배경을 한반도 밖으로까지 넓힌 시집이 여럿 있었다. 심사위원단은 여타 시집과 <릴리와 들장미>의 차별성으로 “서정적이면서도 서사적인 기록에는 그의 아픈 가족사가 배경을 이루고 있어 그로부터 야기되는 비애의 정서가 아련한 충격을 준다”는 점을 들었다.
-
2024 박인환상 영화평론 부문 - ‘얼굴이라는 미로 속에서’ 김민세 2024 박인환상 영화평론 부문 수상작인 김민세씨의 ‘얼굴이라는 미로 속에서’는 “얼굴과 신체라는 키워드를 통해 토드 헤인스의 작품세계를 조명하여 이 기묘한 작품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는 꼼꼼한 분석”이라는 심사위원단의 평을 받았다. 김씨는 수상소감에서 “1년에 몇백 편의 영화를 보곤 했지만, 최근 몇달 동안은 손에 잡히지 않아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렇기에 박인환 평론상 공모는 어떻게든 나를 되찾기 위한,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시험이었다”며 “모든 것이 두렵고 알 수 없는 청춘의 한순간에 이런 수상의 경험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
한국말로 옮긴 셰익스피어의 운율....“독자들 상상의 나래 마음껏 펼치길” “봄의 어린 새싹들이 봉오리도 열기 전에/ 자벌레가 너무 자주 그것들을 갉아 먹고/ 청춘의 아침과 그 이슬 속에는/ 전염성 마름병이 가장 빨리 생긴단다.”(<햄릿> 1막 3장 중에서) 원전의 운문 형식을 한국말의 아름다움과 리듬을 살려 옮긴 <셰익스피어 전집>(전 10권)이 국내 셰익스피어 권위자인 최종철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의 번역으로 완간됐다. 2014년 민음사에서 전집 시리즈가 첫 출간된 지 10년 만이며, 1993년 최 교수가 <맥베스> 운문 번역을 내놓은 지 30년 만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대사의 상당 부분이 운문 형식임에도 줄곧 산문으로 번역됐다.
-
책과 삶 끝끝내 업로드될 수 없는 욕망의 끝은? 영원한 천국 | 정유정 지음 |은행나무 |524쪽 |1만9800원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전개, 긴박감 넘치는 생생한 묘사로 한 번 책을 열면 좀처럼 책장을 덮을 수 없게 만드는 ‘스릴러의 대가’ 정유정 작가가 3년 만에 신작 <영원한 천국>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가능하고, 누구도 죽지 않는 가상세계 ‘롤라’를 배경으로 극소수에게만 주어지는 ‘롤라’행 티켓을 두고 벌어지는 복마전을 몰입감 넘치게 그린 작품이다.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의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만난 정유정 작가는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책 <호모 데우스>를 읽고 소설을 처음 구상하게 됐다고 밝혔다. <호모 데우스>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신과 같은 능력을 거머쥔 인류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전망한 책이다. 정 작가는 “지금도 전 세계인의 데이터가 수집이 되고 있지 않나. 인간이 생물학적인 몸을 버리고 우리 뇌의 의식·무의식을 모두 데이터화해서 업로드한다면 어떤 세상이 올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
금요일의 문장 끝없는 삶의 난제를 형태로 만들어가는 게 인생 유명한 수학 상수인 파이는 원의 지름에 대한 원주의 비율로, 참으로 매혹적인 숫자다. 그리고 파이 파텔이 말했듯이, 이 숫자는 영원히 계속된다. 파이는 두 정수의 비로 나타낼 수 없는 ‘무리수’다. 끝이 없으니 딱 떨어지는 분수나 소수로 적을 수도 없다. 주인공의 이름에 빗댄 ‘무리수 파이’에 대한 생각이 바로 이 소설의 핵심 주제다. <수학의 아름다움이 서사가 된다면>(미래의 창) 부커상 수상작인 소설 <라이프 오브 파이>는 바다에서 조난당한 소년이 벵골 호랑이와 구명정에서 227일을 표류하며 살아남는 이야기다. 주인공의 별명인 ‘파이(Pi)’는 원주율을 말할 때 쓰는 바로 그 파이(π)다. 수학자 새러 하트는 주인공의 이름에 빗댄 ‘무리수 파이’에 대한 생각이 바로 이 소설의 핵심 주제라고 말한다.
-
책과 삶 습지…지구에게 준 것, 인간이 앗아간 것 습지에서 지구의 안부를 묻다 | 애니 프루 지음 |김승욱 옮김 |문학수첩 |264쪽 |1만4000원 습지의 역사는 곧 습지 파괴의 역사였다. 세계 습지의 대부분은 마지막 빙하기 때 빙하가 녹아 콸콸 쏟아지면서 생겨났다. 펜((Fen·풀이 많고 수심이 깊은 지대), 보그(Bog·강우가 수원이 되고 수심이 얕은 지대) 스웜프(Swamp·수심이 많이 얕고 나무와 덤불이 무성한 지대), 바다 후미 등 습지는 자원이 풍부한 곳이었고, 그 곳에 서식하는 수많은 생물을 먹여 살렸다. 그러나 인간의 수가 급증하면서 사람들은 습지를 쓸모없는 땅으로 간주하며 물을 빼내 농경지와 택지로 바꿨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습지는 본격적으로 벌목, 개척, 개간 등 개발의 대상이 됐다.
-
낙서일람 樂書一覽 요란할 것도 없는데 뒤를 못 돌아보겠네 어느 늦여름 밤, ‘나’는 친구 집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깜깜한 시골길을 걸어가는데 괜스레 무서운 생각이 든다. 마침 길 끝에 아직 영업 중인 빙수가게가 보여 들어간다. 그런데 빙수가게 주인 남자가 좀 수상하다. 흔하디흔한 스이(꿀이나 설탕을 탄 얼음물을 가리키는 속어)를 시켰는데 도리어 스이가 뭐냐고 물어본다. 그러더니 안절부절못하며 자꾸 나에게 뒤를 돌아보라고 한다. 건너편 묘지에서 ‘도깨비불’이라도 본 걸까. 주인 남자는 갑자기 술 한잔 하자며 소주를 내온다. 술을 마시는 동안에도 그는 여전히 좌불안석이다. 안색이 갈수록 창백해지더니 나에게 어디서 왔는지 캐묻기 시작한다. “요 앞에서” 왔다고 답하자 아예 파랗게 질려버린다. 주인 남자와 함께 있으니 자꾸만 무서운 생각이 떠올라서 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만 일어서려는데 주인 남자는 갑자기 얼마 전 죽은 아내가 집 안에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지금도 죽은 아내가 거실에 앉아 있어 밖으로 나왔다며.
-
김애란의 귀환 “성장의 의미 다르게 바라보고 싶었다” “저는 성장의 의미를 다르게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성취 혹은 성공을 이루기보다는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무언가를 그만둔 아이들이 나와요. 재능이 구원이 되는 이야기는 되지 않았으면 싶었습니다.” 김애란 작가는 21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뒤집어진 가족 소설, 성장 소설”이라고 새 작품을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김 작가는 “무언가를 그만두는 과정에서 자기 이야기에 몰두하다 종래에는 타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게 되고 내 고통만큼 다른 사람의 슬픔도 상처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더불어 그리고 싶었다”라고 말했다.